〈동네방네〉 조한솔
〈상상초콜릿〉 박은주
청년음악가 안병근
〈춘천상상마당〉 김도희
[강원] 강원도의 힘, 청년의 힘
이선철 (용인대학교 교수)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과 창업을 위한 정책적 지원, 사회적 관심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문화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술가는 물론 다양한 직종의 문화 분야 종사자에게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환경이 녹록지 않고 각종 공공 지원의 재원도 제한적인 현실을 감안하면
그 어느 분야보다 문화 분야의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그래서 다각적으로 대책과 자구책이 시도되고 있지만 잠시의 촉발 효과를 유도하거나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청년 창업의 경우, 일시적인 정책적 성과를 위한 지원이 많아지면서 지원을 위한 지원 경향의 사업 계획들은 오히려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낮추고 이른바 그랜트 헌터들을 양산하는 왜곡된 경향을 보이고도 있다. 진정한 사업성보다는 심사나 평가에 맞춘 짝퉁 사업 계획들은 마치 누구나 쉽게 성공할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켜 지나친 낙관이나 현실성 없는 비전에 안주하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더구나 서울이나 대도시가 아닌,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주체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지역은 기본적인 규모나 자원의 부족으로 아직 기반이나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이 시장에 진입하거나 지역의 관련 생태계에 서식한다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 예술가로 사는 것이나 문화계에 종사 또는 창업을 하는 일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이농이나 대도시 또는 서울로의 유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도시라고 딱히 상황이 더 낫거나 무언가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원이나 시장에의 접근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원도의 상황은 인구와 사회학적 규모, 시장의 특성상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쉬울 일은 없다. 특히 일부 지역의 경우, 동계올림픽 같은 메가 이벤트나 대규모 축제가 다소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청년들이나 시장 신인들이 참여하기에는 제약이 있다. 그런 가운데에도 강원도의 문화계에는 참신한 시도와 혁신적인 방식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꿋꿋이 틈새에서 나름의 독창성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다양한 유형의 청년들의 분투기이다. 그래서 최근 지역의 문화예술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몇몇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자 한다.
l 문화가 있는 공정여행 〈동네방네〉 조한솔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조금 더 다양한 지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대안적 여행과 체류 방식을 제시하는 〈동네방네〉는 네 명의 청년들로 시작되었다. 동네방네의 조한솔 대표는 서울 출신이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춘천에 거주하다 졸업 즈음하여 지역에서의 창업을 꿈꾸었고, 마침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춘천 중앙시장 안에 생긴 ‘궁금한 이층집’이라는 공간을 운영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 공간은 춘천을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여행자 카페로 활용되며, 저녁시간에는 지역 청년들의 문화공간으로도 사용된다. 이외에도 전통시장 교육, 원도심 투어 등을 묶어 춘천지역 초, 중학교 학생들에게 공정여행 교육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심에 방치된 여인숙을 개조하여 ‘봄엔’이라는 게스트하우스도 문을 열었는데, 이렇다 할 홍보 없이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려와 3개월 만에 1,000여 명이 넘는 관광객이 거쳐 가게 되었다.
특히 봄엔에서는 막걸리 파티나 주말 밤마다 작은 콘서트를 개최하여,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지역 문화교류 장으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제 동네방네는 지역의 문화와 관광, 교육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청년 기업으로 그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l 폐광지역에 초콜릿 향기를 〈상상초콜릿〉 박은주
폐광과 카지노로 대별되는 정선 고한에서 초콜릿이라는 독특한 아이템으로 사업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상초콜릿 박은주 대표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외지에서 공부를 마치고 결혼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내로서 엄마로서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박 대표는 이른바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있었다.
주변에 같은 처지의 젊은 여성, 청년과 함께 즐겁고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상상초콜릿을 구상하였으며, 수제 초콜릿에 대한 전문교육, 카페 운영을 위한 바리스타 교육, 제품개발, 공간 마련 등 창업 준비에만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중 마침 고한시장 내에 고객 쉼터 공간이 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공간을 활용하게 되었다.
‘시장에 처음 와 본 초콜릿’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초콜릿 카페는 곰취, 오미자, 황기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독특한 메뉴로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고객들을 위한 쉼터, 시장 상인들을 위한 사랑방 등 고한시장의 문화 공간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상상초콜릿 수익의 일부를 환원하여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들도 운영하고 있다.
l 십 년의 꿈 청년음악가 안병근
청년 음악가 안병근은 평창에 살고 있다.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라는 평창의 화려한 위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평창 남부의 읍 지역에 거주한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 다루는 것을 즐겨 했던 안병근은 평창고등학교 재학 중 밴드 동아리에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문화부 학교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의 수혜 대상이 되면서 체계적인 음악교육과 체험을 맛보게 된다. 이후 실용음악과에 진학을 했지만 꿈꾸던 대학생활과의 괴리를 느끼고 군 복무를 마친 후 고향에 돌아왔다. 당시 지원단체였던 감자꽃스튜디오에 취업을 하였고,
지금은 스튜디오 운영자로서의 업무 외에도 지역 청소년 대상 문화예술교육 강습, 각종 지역 문화행사 엔지니어 지원, 주민들의 문화동아리 교육 등 멀티플레이어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으며, 사이버대학에 진학하여 학업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자신의 첫 번째 음반을 제작하여 십 년의 꿈을 이루었다.
강원도 평창의 산간지역 마을 특유의 풍광과 개인의 감성이 잘 버무려진 음악으로 지역 주민들과 방문자들에게 잔잔한 호응을 얻고 있으며, 이에 고무된 지역의 다른 청년 음악가들과 함께 음악 작업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안병근은 지역의 청년, 후배들에게 롤 모델로 여겨지면서 긍정적인 상을 제시하고 있고, 특히 문화예술이 아니면 만날 수 없었을 대외 활동과 방문자들을 통해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도 쌓아나가고 있다.
l 문화귀향 〈춘천상상마당〉 김도희
서울 홍대 앞, 대표적인 문화공간 브랜드로 자리 잡은 KT&G의 ‘상상마당’은 이제 그 외연을 지역으로 넓히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논산에 이어 춘천에 개장한 상상마당은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유서 깊은 어린이회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숙박 기능을 겸하여 지역 문화 관광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김도희는 춘천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춘천에서 나왔지만, 더 다양한 경험과 대학원 진학 등을 위해 서울로 가서 프린지페스티벌의 핵심 스태프로 일하며 홍대 앞 문화기획자로서의 경력을 쌓아왔다. 그러던 중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사업의 현장 매니저로 합류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업이 종료된 후에도 김도희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지역에 남아 춘천마임축제, 춘천문화재단 등에서 일하다가 새로 조성된 상상마당에 채용되어 자신이 그동안 서울과 춘천에서 얻은 경험과 전문성, 인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고향에서 태어나서 고향을 지키는 청년, 진학으로 지역으로 왔으나 오히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계속 지역에 남는 유형, 취업으로 지역을 떠났다가 전문가가 되어 다시 돌아온 유형 등 개인적인 배경이 실로 다양하다. 그리고 문화를 기반으로, 소재 또는 매개로 활용하며 관광, 예술, 농촌, 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네 청년의 활약을 보면, 시사점과 함께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접근과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이종과의 융복합에 자유로운 발상, 적절한 지원의 활용과 자생력 강화의 조화, 구체적인 목표의 설정, 탄탄한 전문성의 강화, 그리고 활발한 교류와 네트워킹으로 인적 자산을 쌓아가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노력들이 훌륭하다.
또한 시장 프로젝트나 유휴시설 활용 또는 문화예술교육 등 공공지원 프로젝트에서의 참여를 지렛대로 삼아 열심히 일하며 커리어의 발판으로 잘 활용했다는 점, 이후 자신들의 실질적인 사업 경쟁력을 위해 늘 노력하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비즈니스를 넘어 지역 문화나 사회공헌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려는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시장 동력의 부족, 각종 정책의 현실성 결여, 지원과 시장의 불균형, 지역 기성세대들과의 갈등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막연한 꿈과 열정의 강조는 피로를 낳고 화려한 프레젠테이션들은 현실 앞에서 좌절하게 만들며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지역에 수없이 쏟아지는 각종 지원 사업들이나 공공정책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지역의 단단한 권력구조로 인하여 한계를 느끼는 상황 등 안타까운 면이 있다. 그래도 위의 사례처럼 남다른 노력과 틈새 전략으로 좋은 사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며 강원도 청년 문화 인력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