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2일 노회교역자연합회 설교
**나 한 사람의 가치(욘 4:1-11)
*요나서는 뜬금없이 끝난다.
-마치 미완성의 소설과 같은 느낌으로 ‘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박 넝쿨을 아끼는데 나도 니느웨에 있는 이방 사람들 12만명을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으로 급히 마무리된다.
-‘하나님의 질문을 받고 이야기를 들은 요나가 회개하고 돌아왔다’고 개운하게 끝나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는다.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가감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선지자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욕망을 따라 반대로 간다.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데 요나는 다시스로 간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자신의 이름 뜻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비둘기는 온유하고 겸손한 성령의 상징이다.
-노아의 방주에서 물이 빠졌다는 기쁜 소식을 알게 하였던 전령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하늘의 ‘사자’였다.
-하지만 기쁜 소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가 고집만 부리는 모습을 보였다.(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뒤에도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고만 말합니다.
-니느웨가 회개하길 원하지 않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나는 성 동쪽에 초막을 짓고 니느웨가 언제 망하는지 지켜본다.
-이후 벌레가 박 넝쿨을 갉아먹어 뜨거운 햇빛이 비치자 하나님께 화를 낸다.
-하여튼 그는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나서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은 순종하는 자세를 보인다.
-다시스로 가는 배의 사공들은 요나를 살리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들에게는 한 생명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닷속으로 요나를 던지며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욘1:14)라고 말한다.
-멸망 직전까지 갔던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예언을 듣고 금식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
-롬5:12은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세상 가운데 죄와 죽음이 생겨나 모든 사람이 멸망하게 됐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예수님 한 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돼 다시 생명을 얻게 됐다.(롬5:19)
*내 몸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단순한 구도자의 자세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생명과 사랑의 통로로 삼아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부경노회와 목회자인 우리를 오랫동안, 변함없이, 진실하게 사랑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다.
-요나는 한 명의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니느웨 사람 12만명의 생명을 맡기셨다.
-요나서 마지막에 나오는 하나님의 질문은 요나에게 맡긴 12만 명의 목숨을 상기시켜 준다.
-하나님은 니느웨 땅과 사람들을 오랫동안 변함없이 진실하게 사랑하며 구원을 계획하셨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먼지투성이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먼지 따위에 짓눌리지 않아야 한다.
-먼지는 털면 된다.
-요나처럼 마음속에 품은 미움과 분노의 감정,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은 모두 찌꺼기로 여기고 버리면 된다.
-하나님 뜻과 관계없이 내 뜻을 관철하려는 의지를 버려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우선하는 요나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지만, 요나에게 맡기신 12만 명의 생명처럼 내게 맡기신 사명을 기억해야 한다.
-요나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요나 한 사람은 12만 명을 살릴 자로서의 가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외람되지만 하나님께서 목사인 나, 강태선을 구만면 전체를 맡길만한 가치 있는 자로 세우셔서 여기로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게 하신 곳, 하나님이 보내 서게 하신 곳에 오랫동안, 변함없이, 진실하게 사랑으로 구원을 계획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하시며 은혜를 베푸셨다.
-때로는 요나에게 씌어준 박 넝쿨도 주셨다.
-한량없는 은혜다.
-우리도 오랫동안, 변함없이, 진실하게 맡겨주신 거룩한 그 사명을 기억하며 감당함으로 충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산을 맡길만한, 경남을 맡길만한, 양산을 맡길만한, 거제를 맡길만한, 포항을 맡길만한 가치 있는 자로 여기셔서 교회를 허락하시고 각각의 사역지로 보내신 것이다.
-요나의 가치가 12만 명을 살릴 가치였듯, 이 자리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수많은 생명을 살릴 가치를 부여받았다.
*20여 년 전 이곳에 내려올 때 부산의 동기 목사들과 선배들이 ‘경상도에서 무연고지 농촌 지역 개척이라는 것이 맨땅에 헤딩하는 일인데 ’더 좋은 사역지‘를 찾으라’는 현실적으로 매우 고마운 조언을 해주었다.
-그때 대답했다. ‘내가 가서 더 좋은 사역지를 고성 그곳에 만들면 된다.’고.(무식하면 용감하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고성지역 교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된 것 외에는 얼마 후 은퇴를 하게 될 때 후임 목회자가 들어 올 수 있는 좋은 사역지를 만들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라 ‘나는 무엇인가?’라는 자괴감이 들어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그저 용서를 구하는 심정이다.(동기 목사 왈 “아름다운 바톤 터치~! 꿈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꿈을 꾼다.
-인터넷에서 살펴본 장 지오노의 책 ‘나무를 심는 사람’에 나오는 어느 노인처럼 되기를 기도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황무지에 묵묵히 날마다 도토리를 땅에 묻는 노인.
-아무도 그 노인에게 그 일을 부탁하지 않았고 그의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황무해진 땅에 생명을 초대하는 그 노인의 수고.
-몇 년 후 사람들은 그곳에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와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명의 숲으로 바뀐 그곳을 놀라워하며 즐거워하였지만, 그 일이 늙은 한 노인의 수고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우리 노회는,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세상적으로 작은 교회들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회가 실패라는 열패감은 갖지 말자.
-기왕이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좋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닮은 한 사람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감히 목사님들께 말씀드리기는,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소망을 분명히 붙잡고, 나의 가치를 기억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통해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