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천과 옥화9경' 시냇물 따라 펼쳐지는 소소한 풍경과 옛 이야기 옥화9경 제4경 옥화대의 추월정과 정자 앞으로 흐르는 달천
새해의 시작은 세 번이다. 양력 1월1일, 음력 1월1일인 설날, 그리고 세시풍속으로 보는 새해의 시작인 입춘이 있다. 다 의미와 풍속이 다르니 어느 것 하나 뺄 게 없다.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을 새기기에 새해를 맞이하는 1월이 좋겠다.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임하는 도리가 사람 사는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을 흐르는 미원천과 달천을 돌아봤다. 흐르는 물을 따라 펼쳐지는 아홉 가지 풍경 하나하나에 옛사람들은 이름을 붙였다.
옥화9경, 사람을 압도하는 풍경이나 절경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풍경이 그곳에 든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감싸주고 있어 아름다웠다.
옥화9경 제1경인 청석굴 앞으로 흐르는 미원천. 돌다리를 건넌다
●구녀산에서 시작 되는 미원천 물줄기, 그리고 쌀안(미원)돛대
미원천 물줄기는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과 상당구 미원면의 경계에 솟은 구녀산에서 시작 된다. 구녀산 북쪽 산비탈에 떨어진 빗방울은 금강이 되고 남쪽 산비탈에 떨어진 빗방울은 한강이 된다는 말이 있다.
구녀산 남쪽 산비탈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모이는 저수지 중 하나가 구녀산 기슭에 있는 재실저수지다. 미원천 쌀안(미원) 돛대 조형물. 미원면소재지 미원천 둔치에 있다
재실저수지를 지난 물줄기는 용곡저수지를 지나 미원천의 모습을 이룬다. 미원천이 흘러 당도하는 미원면소재지 미원천 둔치에 ‘쌀안(미원)돛대’ 조형물이 있다.
옥화9경 제1경인 청석굴 주변 풍경. 미원천과 청석굴스카이전망대가 있는 절벽이 어울렸다. 돌다리를 건널 수도 있다.
미원사람들이 부르는 미원의 옛 이름은 ‘쌀안’이다. 여기에 얽힌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래 전 옛날에 가뭄으로 나라 전체에 흉년이 들었을 때 미원에서는 농사가 잘 돼 집집마다 배를 곯지 않고 쌀밥을 해먹었다.
방방곡곡을 떠돌던 스님이 미원에 당도해서 허기져 쓰러졌는데, 미원 사람들이 잘 돌봐서 기력을 회복했다. 나라가 흉년으로 고생하는데 이 고을은 쌀농사가 풍년이 들었다고 해서 쌀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쌀마을이 쌀안이 되고 세월이 흘러 미원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이다. 미원의 형국이 흐르는 물에 띄워진 배를 닮았다고 해서 돛대를 세워 땅의 기운을 도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미원면소재지 미원천 둔치에 세워진 ‘쌀안(미원)돛대’의 내력이다.
옥화9경 제1경인 청석굴로 가는 다리. 미원천 위에 놓인 다리다.
옥화9경 제1경인 청석굴. 굴 내부 초입에서 본 굴 밖 풍경
●옥화9경의 시작 미원천의 청석굴
미원면소재지를 지난 미원천이 달천과 만나기 전, 운암리에 옥화9경의 제1경인 청석굴이 있다. 청석굴 부근에 있는 황금박쥐 조형물. 청석굴에 황금박쥐가 산다
청석굴 내부 초입. 굴의 길이는 약 60m 정도라고 알려졌다
청석굴에서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지금의 미원천과 그 일대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임이 밝혀졌다. 근래에는 청석굴에서 황금박쥐가 살고 있는 게 확인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게 됐다.
황금박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청석굴 옆, 미원천에서 솟아오른 절벽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청석굴을 보고 전망대에 올라 굽이쳐 흐르는 미원천과 미원천이 품은 운암리 들판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았다.
한파와 폭설이 지나간 겨울풍경이었지만 굽이치는 미원천과 운암리 들판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겨울도 따듯하게 보였다.
옥화9경 제2경 용소
용소
제2경 용소는 달천이 만든 풍경이다. 제1경 청석굴 앞을 지난 미원천이 달천과 하나 되면서 이름도 달천으로 바뀐다.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는 동쪽을 향한다.
용소의 옛 이름은 오담이다. 한자 중에 자라 오자가 있다. 그 한자를 빌어 풍경에 붙인 것이다. 지금은 용소라고 부르지만 오담이라는 이름에 정이 더 간다. 옥화9경 제3경 천경대. 물에 절벽이 비친다 천경대 제3경은 천경대다. 냇물에 비친 달을 보고 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다고 해서 천경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스로 마음을 씻을 줄 알았던 옛 사람의 흔적, 옥화대에 서다. 옥화9경 제4경 옥화대가 있는 마을의 풍경. 200~300년 된 느티나무 고목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옥화9경 제4경 옥화대의 추월정과 솔숲 제4경은 만경정, 추월정, 세심정 등을 품은 옥화대다. 추월정과 세심정은 달천 절벽 위 숲에 있다. 추월정은 옛 사람들이 달을 맞이했다던 곳이고, 세심정은 달천의 흐르는 물을 보며 스스로 마음을 씻었다는 곳이다.
추월정 절벽 아래 흐르는 달천에 달이 뜬 풍경을 상상해본다. 세심정 절벽 아래 흐르는 달천을 보며 옛 사람들처럼 마음을 씻어본다. 바람이 솔숲을 지나며 ‘소쇄 소쇄’ 소리를 낸다.
옥화대 정자를 다 돌아보고 마을을 나서는 길을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배웅한다. 옥화9경 제5경 금봉 제5경은 금봉이다. 빗살무늬로 박힌 겨울나무들 사이로 금봉에 남은 잔설이 비친다. 금봉 아래 흐르는 달천은 냇가에 마른풀만 남겼다.
바람에 서걱대며 흔들리는 마른풀들이 안간힘으로 겨울을 버티고 있는 풍경 속으로 사람이 걸어온다. 옥화9경을 걸어서 돌아보는 사람이었다. 스산한 겨울 풍경도 사람이 있어 따듯하게 느껴졌다. 옥화9경 제6경 금관숲 제6경은 금관숲이다. 금봉에서 3.5km 정도 떨어졌으니, 금봉에서 만난 사람은 금관숲에서 그 길을 걸어온 것이었다.
2400여 평의 숲이 달천 바로 옆에 남아있었다. 겨울나무들이 서로 빈 가지를 촘촘하게 엮어 서로를 지탱해주며 겨울을 나고 있었다. ●슬픈 전설 깃든 가마소뿔 옥화9경 제7경 가마소뿔 제7경 가마소뿔에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막 혼례를 마친 신랑신부가 초례청에서 나와 물을 건너는데, 신부가 탄 가마가 물 깊은 웅덩이에 빠졌다.
신랑은 신부를 구하러 물에 뛰어들었지만 끝내 신랑신부는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슬픈 전설을 품고 흐르는 달천은 어암2리에서 여울을 만난다. 옥화9경 제8경 신선봉. 어암2리에서 본 신선봉 제8경인 신선봉은 어암2리 달천 냇가에서 보인다. 달천에서 떨어져있어 신선봉에 오르는 것보다 달천 풍경과 하나로 묶어 보는 게 낫다.
신선봉이 보이는 달천 앞에는 평생을 해로하는 팔순의 부부가 있다. 농사를 지으며 여름이면 올갱이 잡아 밥상에 올린다. 철이 되면 메주도 뜨고 장도 담는다.
30년 넘게 마을에서 하나뿐인 가게 문도 열고 있는 부지런한 팔순의 부부다. 제7경인 가마소뿔 전설의 주인공인 신랑신부가 이생에서 다시 부부로 만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
민들레꽃을 닮은 팔순의 노부부와 가마소뿔의 전설, 그리고 그 마을을 흐르는 달천 시냇물, 그 자리에서 영감을 얻어 막힘없이 한 번에 시를 썼다. <어암슈퍼>라는 제목의 시다. 옥화9경 제9경 박대소 풍경 제9경 박대소는 외진 곳에 있었다. 차 한 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비포장 좁을 길을 한참 달려야 만날 수 있었다. 파란빛 절벽 아래 흐르는 달천이 만들어낸 옥화9경의 마지막 풍경 앞에서 오래 서있었다. 옥화9경 제8경인 신선봉을 볼 수 있는 어암2리 달천 앞 옛집 풍경.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어암슈퍼다 어암슈퍼 " 초례를 마친 신랑신부의 무덤이 된 가마소뿔의 슬픈 전설도 어암2리 어암슈퍼에서는 눈물을 거두어도 좋겠다. 가마소뿔을 지난 달천이 어암슈퍼 앞개울에서 여울이 되는 것처럼.
여울물 소리로 초례청에서 나누었던 사랑의 약속 밤새 다 풀어놓고 맑은 햇살 빛나는 개여울 하나 마음에 들여 놓기를.
이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암슈퍼 아저씨 아줌마처럼 만나 개울 물결 닮은 주름으로 해로하기를. 여름 냇물에서 올갱이 잡아 저녁 밥상에 올리던 손길로,
겨울이면 메주 뜨던 아랫목 같은 손길로, 서로 기대며 걸어온 세월을 전설처럼 이야기하기를. 골진 그늘도 환한, 팔순에도 민들레꽃 같은 얼굴로 마주보기를.
그리하여 먼 훗날 또 어떤 누군가가 어암슈퍼 앞을 지날 때 오래도록 오래도록 개여울을 바라보게 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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