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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바라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다.
80대 할머니들의 동창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98세의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의 강계열 할머니께서 오손도손 살아가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지금은 두 어르신께서 이 세상을 하직하고 떠나셨겠지만, 이 두 어르신은 어디를 가더라도 똑같이 아주 고운 커플 한복을 입으시고 두 손을 잡고 다니시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어느 80대 할머니들의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었습니다.
모처럼 모여 맛나게 식사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담소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한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얘들아, 우리 이렇게 모였으니 교가나 한번 부르자.”라고 하면서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두 놀라서 그 할머니를 주시하면서, “아니 여지껏 교가를 안 잊고 있었단 말야~ 우린 모두 잊어서 아는 사람 없는데... 그럼... 네가 한번 불러봐라.”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일어나서 의기양양하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러자 할머니들이 하나같이 박수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얘는 학교 다닐 때에 공부도 잘하더니 기억력도 참 놀랍네.”
칭찬을 들은 할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의기양양하게 할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혼자 독창했다고~”
이 소리에 할아버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여지껏 교가를 안 잊었단 말야~~~ 어찌 불렀는지 다시 한번 해 봐요.”
그러자 할머니는 또 벌떡 일어나 아까처럼 신이 나서 불렀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 “어... 이상하네!! 우리학교 교가와 비슷하네~~”
사실은 애국가를 교가라고 생각하고 부른 것입니다.
그 연세에 애국가를 부르는 것만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연세가 들면 자연스럽게 뇌세포가 노화되고 죽어서 기억력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치매에 걸리고,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자기 가족들조차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곱게 곱게 늙어가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다가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천국으로 불러 가시면 곧바로 천국으로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건강하게 살면서 가족들 일일이 챙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다가 천국으로 간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건강하게 장수하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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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객지 생활하는 많은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향수가 많다고 한다.
늘 고향에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는 고향에 내려가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고향에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은 어릴 때부터 받아온 상처가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내 영혼이 돌아갈 영원한 본향, 영원한 본국이 있다.
나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
천국이야말로 내가 영원히 돌아갈 본향이고, 본국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고향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내 영원한 본향, 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천국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고, 우리 예수님이 계시고, 신앙의 수많은 선진들이 계신다.
우리 부모님도 계신다.
나는 언제나 그 곳,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가고 싶다.
그 곳에 가면 성경에서 만났던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을 만나게 된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아론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바나바도 만나게 될 것이다.
교회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앙의 의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천국에는 아무 때나 가고 싶다고 갈 수가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신의 고향은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비행기 타고 갈 수 있지만, 영혼의 본향이라는 천국은 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이다.
오직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야만 갈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귀한 복음의 사명을 다하기 전에는 결코 불러 가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하고 본향으로 돌아오라고 부르시기 전에는 신앙인들의 영혼을 꽉 붙들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다 감당하게 되면 더 오래 살 수 있는데도,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고 본향, 천국으로 돌아오라고 불러 가신다.
연로하기도 하고, 온갖 질병이나 여러 가지 사고로 인해서 고통 중에 지내는 분들을 보면서 ‘어서 빨리 돌아가셨으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직 주어진 사명을 다 감당하지 않았다고 여겨지신다면 그 사명을 다 감당할 때까지 붙들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빨리 가고 싶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최대한 빨리 감당하면 된다.
하나님은 세례요한에게는 30세에 불러 가신다.
예수님께서도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더 살 수 있을 만큼 젊었는데도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감당했을 때 순교자라는 이름으로 먼저 불러 가신다.
그러나 사도 요한도 얼마든지 순교할 수 있었는데도, 90세 될 때까지 붙들어주시다가 순교당하지 않고 늙어서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역자,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았던 사역자라고 해서 다 장수하는 것도 아니고, 다 빨리 죽어서 단명하는 것도 아니다.
젊은 나이에 빨리 죽는 사람들도 있고, 늙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를 다 마치고 죽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사명을 다 마쳤다고 판단되시면 그 사람을 데려가신다.
아직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러가신다.
좀 안 된 말로 빨리 죽고 싶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최대한 늦게 감당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똑같은 사명을 주시지 않고, 각각 다른 사명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빨리 죽도록 하시지도 않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장수하라고 하시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인명은 재천이라 한다.
인간의 생명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할 때 불러 가신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아직 불러 가실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자기 스스로 생명을 단축하는 이들이 있다.
가룟 유다도 자기 스스로 자살하여 생명을 단축한다.
사울 왕도 자살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단축한다.
사울 왕은 전쟁 중에 큰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부상당했다고 자기 스스로 생명을 단축시킬 자격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자기 스스로 단축시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말을 바꾸면 ‘살자’가 된다.
자살할 마음이 있으면 마음을 바꿔서 살자로 바꾸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솟구쳐 오른다.
가룟 유다도 자살하지 않고 회개하여 온전하게 주님 앞으로 돌아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울 왕도 자살하지 않고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에 대통령을 지냈던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자기 집 뒷산에 있는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하여 죽었다.
그 여파로 인해서 많은 유명 인사들이 자살하여 죽었다.
서울시장을 했던 사람도, 부산사장을 했던 사람도, 국회의원했던 사람도, 대그룹의 총수도 자살하여 세상을 떠났다.
연예인들도 자살하여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연달아 자살하여 세상을 떠나면서 급속도로 자살율이 증가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OECD회원국 중에서 10년 동안 자살률 1위의 국가가 되었다.
우리들은 자살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생명을 스스로 단축시키는 죄악은 절대로 범하지 말아야 한다.
토라 곧 모세5경을 보면 토라를 시작하는 창세기도 야곱과 요셉이 죽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토라를 마무리하는 신명기도 모세가 죽는 이야기로 대단원의 토라가 마무리하고 있다.
그만큼 죽는 이야기가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한 번 사람이라는 옷을 입고 태어나면 언젠가 반드시 죽음이라는 옷을 입고 떠나기 마련이다.
노아홍수 이전 시대 곧 창세기5장에서 보면 한번 태어나면 800년, 900년은 보편적으로 살았었다.
인류 최초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아담도 930세를 살았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고,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는 950세, 셈은 600세를 살았던 인물들이다.
신앙의 의인으로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175세, 이삭은 181세, 야곱은 147세, 요셉은 110세를 살았다고 창세기에서 기록한다.
모세의 조상이 되는 레위는 137세, 고핫은 133세, 아므람은 137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고 출애굽기에 기록하고 있다.
아론은 123세, 모세는 120세, 여호수아는 11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는다.
오늘 모세라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는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위하여 준비하며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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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육과 영으로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
1-3절에서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아직까지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체력, 근력, 시력과 같은 신체적인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발 1200m가 되는 높은 느보 산에 올라가서 비스가 산으로 넘어가서 가나안 땅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게 하신다.
구석구석을 다 볼 수 있도록 해 주신다.
길르앗 온 땅은 요단강 동편이다.
단은 갈릴리바다를 넘어서 요단강이 상류가 되는 가나안의 가장 위쪽으로 북쪽 끝부분이다.
네게브 지방은 가나안의 가장 아래쪽으로 남쪽 끝부분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비록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가나안의 모든 땅,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다 볼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
예루살렘 성을 비롯하여, 대추야자 나무가 무성한 여리고성, 남쪽으로 브엘세바에서 북쪽 갈릴리 땅, 나사렛 땅에 이르기까지 다 보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해발 1200m의 느보산, 비스가산에서 요단강대협곡의 건너편을 바라볼 수 있다.
7절에서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말씀하시더라도 곧 세상을 떠날 노인의 시력이다.
모세가 살았던 시대는 노아와 셈처럼 몇 백 년을 살았던 시대가 아니다.
아론이 123세, 여호수아가 110세를 살았다는 말은 그 당시 노인들의 평균연령이 110세를 전후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120세 모세의 시력은 노인치고는 꽤 밝은 시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지만, 한창 젊은이들의 시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성지순례를 가서 느보산에서 요단강 건너편의 지역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과거 3500년 전의 상황과 오늘날의 상황은 지형적으로 많이 바뀌고 다를 수밖에 없다.
요단강만 보더라도 현재 요단강은 아주 좁은 시냇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던 시절에는 폭이 대략 1km 정도 될 수 있는 대협곡이었다고 한다.
이른바 요단강대협곡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느보산, 비스가산은 현재의 높이보다 훨씬 더 높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비스가 산에 현재보다 높았다고 하더라도 1-3절에서 기록하는 모든 지역을 바라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느보산에서 건너편 가나안 땅을 바라보더라도 서해까지는 바라보지 못한다.
성경에서 기록하는 서해는 지중해를 의미하고 동해는 염해, 사해를 의미한다.
육안으로 느보산에서 염해, 사해는 바라볼 수 있지만, 서해 바다가 되는 지중해까지는 절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북쪽의 단도 마찬가지이다.
육안으로 최북단에 있는 단까지는 절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보산에서 서쪽으로 지중해까지, 북쪽으로 단까지, 남쪽으로 네게브 지방까지 바라보았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육안으로 보는 것이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곳까지는 영으로 보았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나라의 신령한 세계까지 다 보여주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육안은 물론이거니와 영안으로 가나안 땅의 이곳저곳 구석구석까지 볼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의미이다.
조상들에게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정말 정말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구세대는 들어가지 못하는 대의명분 때문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가나안땅의 전경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영을 활짝 열어서 가나안 땅의 이곳저곳을 환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느보산에서 육안으로, 영안으로 가나안 땅의 전체 전경을 보여주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어하던 모세를 격려해 주면서 위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육안으로 영안으로 가나안 땅의 구석구석까지 다 보여주시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세상에서의 가나안 땅이라는 축복보다는 영원한 천국이라는 가나안 땅을 상급으로 주고 싶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라는 본향을 더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다.
모세에게 육안과 영안과 지안과 심안을 활짝 열어주시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 것처럼, 육안도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 볼 수 있는 것이고, 영안도 하나님께서 활짝 열어주셔야 볼 수 있는 것이다.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세계가 활짝 열려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육안(肉眼)과 영안(靈眼)과 지안(智眼)과 심안(心眼)을 활짝 열어주셔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 만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와 하나님의 심정과 마음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실존하심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인지하면서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②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
10-12절에서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보증해 주시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평가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시고, 친구처럼 대면하여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지금까지의 전 과정을 감동으로 깨우쳐 주신 사람이다.
지난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정말 속상한 일들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하나님 앞에서 간청하면서 백성들을 구해낸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신앙인들의 삶은 가장 먼저 하늘의 아버지께 인정받는 사람이라야 한다.
삼위 하나님께 인정받고, 가정과 교회와 주변 신앙인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라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인들에게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맡겨주시든 그 맡켜주신 사역을 충직하게 감당하면서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사람이라야 한다.
고린도전서 10:31에서 사도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권고하신다.
신앙인들의 삶이란 오직 삼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앉으나 서나 무엇을 하거나 모든 것들을 오직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신앙인의 삶이다.
③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도록 감추어버리시는 하나님.
5-6절에서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8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12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30일 동안 애곡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느보 산에서 죽어서 그 산에 묻히지 않고 벳브올 맞은 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 지내도록 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1일장을 진행한다.
영혼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면 육신은 곧바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할 때 누군가 죽었다면 지체없이 곧바로 장례를 치르고 곧바로 짐을 챙겨서 떠나야 하는 형편이다.
무덤에 묻힌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둘러앉아서 애곡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세 만큼은 한 달 동안이나 애곡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모세를 직접 무덤에 묻었고, 한 달 동안 애곡하는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백성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차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무덤에 찾아와서 이상한 짓거리를 할까 봐서, 곧 모세의 무덤이 우상이 될까 봐서 아예 모세의 무덤이 어디에 묻혔는지를 기억할 수 없도록 모든 기억력을 삭제하고 흩어버리시는 것이다.
또한 골짜기를 변모시켜서 아예 모세의 무덤이라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하게 이 세상의 땅, 가나안 땅이 아니라 저 아름다운 천국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위대하게 살았던 모세의 흔적조차 다 없애버리신다.
그러면서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라는 그림자를 완전히 지어버리고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 대하여 9절에서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모세에 견줄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로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면서 더 이상 인간 모세를 바라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인간 모세를 쓰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인간 여호수아를 사용하실 것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여호수아도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의지하고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이 저 아름다운 천국을 바라보는 삶이라고 가르쳐 주고 싶어하신다.
L4 & B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육안으로, 영안으로, 지안으로, 심안으로 요단강 건너편의 가나안의 전경과 가나안 땅의 동서남북의 세계를 보여주시면서 더 나아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길 소망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위인들뿐만 아니라 교회사에 등장하는 모든 신앙의 위인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돌아가셨듯이, 우리 신앙인들도 언젠가는 다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서 “하나님, 여기가 너무너무 좋습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랍니다.”라고 소원을 빌어도 사람이라는 존재는 언젠가 죽어서 가야만 한다.
냉혹한 추위로 온 몸을 에의게 하는 엄동설한이 찾아오면 나무마다 앙상한 가지들만 남게 되겠지만, 그래도 어떤 나무들은 푸르른 잎사귀를 그대로 간직하는 상록수들도 많이 있다.
아무리 푸르른 잎사귀가 풍성한 상록수라고 하더라도 그 잎사귀에게 주어진 생애를 다하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다..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끝까지 영원토록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나뭇잎은 하나도 없다.
여전히 푸르름을 간직하여 자랑하는 소나무 밑에는 이미 떨어진 솔잎들로 가득 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이라는 생명은 언젠가 반드시 죽어서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흙에서 왔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의 육신은 흙에서 왔기 때문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생기, 생령은 반드시 본래 왔던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천국으로 가지 못하는 영혼들은 좋으나 싫으나 지옥으로 들어가야 한다.
간혹 이웃과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은 죽어서 꼭 지옥에 가서 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지옥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호언장담하는 것이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알면 절대로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지상에서 지옥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저 북녘 땅에 존재하는 정치범수용소를 떠올리면 된다.
수많은 탈북인들이 북한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이 살아야 하는 곳이라고 증언한다.
그래서 정치범 수용소를 생지옥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북한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도 지옥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정치범 수용소는 지옥보다는 훨씬 나은 곳이다.
지옥은 잠시 잠깐동안 사는 곳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야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 그들이 들어가서 영원토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결코 지옥에 가야 하는 참혹한 상황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신앙인들에게는 영원한 천국, 굳이 요한계시록에서 인용하는 천국의 모습을 그리지 않아도 천국은 너무너무 아름답고 좋은 곳이다.
다시 눈물도, 고통도, 미움도, 다툼도, 질병도, 두려움과 무서움도, 원망 불평도, 전쟁도, 근심 걱정도 없는 그 곳이 바로 천국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그곳, 구주 예수님이 계시는 그곳, 성령님께서 계시는 그곳,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이 계시는 그곳, 신앙인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는 그곳이 천국이다.
우리들이 설령 백번, 천번, 만번 다시 태어난다 해도 꼭 들어가야 하는 곳은 천국이다.
하나님은 오늘 모세에게 그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불러 가시기 위해서 육신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신다.
눈으로 바라볼 수는 있지만 몸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영원한 천국, 더 아름다운 천국으로 불러주시고 영원한 안식과 평강과 평안과 은혜와 축복을 주시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앙인들에게 영원한 안식의 나라, 평화의 나라, 샬롬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그 천국을 소망하며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말씀하신다.
영원한 천국, 저 아름다운 천국은 신앙인들이 돌아갈 영원한 본향이다.
오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기록한 모세5경을 마무리한다.
지난 몇 년에 걸쳐서 주일마다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신명기까지 대단원의 토라 묵상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모세5경, 토라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모세가 쓴 시편90편을 다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시편 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시편이다.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 수 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 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로마서1;17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하시는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신앙을 따라서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 나라,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맡겨주신 귀한 십자가 보혈과 복음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세움을 입는 은혜를 입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