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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및 관련 단어 소개 6≫
◆성경◆
성서, 혹은 성경이란 하느님이 자기 자신과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의지에 관하여 계시한 바를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기록자가 작성한 책들의 집합체로 교회에서 정전(正典, canon)이라 인정한 것들을 말한다. 하느님이 인류 구원을 인간들에게 약속한 계약'이란 의미에서 'Testament'라고도 하며, 이스라엘백성이 하느님과 맺은 '옛 계약'을 뜻하는 구약(Old Testament)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새로워진 '새로운 계약'인 신약(New Testament)으로 구분된다. 이 구약과 신약을 합하여 성서(biblos)라고 부른 것은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ysostomus, 349∼407)가 최초였다.
구약성서는 천지창조에서 그리스도 이전의 시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게 계시한 바를 집대성한 것으로 인류의 기원, 죄로 인한 인류의 타락,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한 계획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 출애급, 모세의 율법, 가나안에의 정착, 이스라엘 왕국의 흥망, 포로기의 이스라엘 백성 등으로, 구약시대 전역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예시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잡이인 세례자 요한, 예수의 탄생과 활동 및 교훈,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사도들의 활동, 세상의 종말 등에 관한 기록으로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즉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된 구약의 구세사(救世史)는 신약을 통하여 완성되어 세상의 종말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을 성서는 알려주고 있다.
모세 오경으로부터 시작되는 성서의 원본은 여러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고 편집되었는데, 수많은 번역본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서는 히브리어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과 384년 교황 다마소의 명으로 예로니모가 번역한 라틴어 번역본인 불가타(Vulgata)역이 있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 번역본 가운데 어떤 것이 신의 영감을 받아서 쓴 성서에 속하는 책인가에 대해서 유권적인 해석을 내려왔다.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정통신앙을 가진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라 구약과 신약의 성서를 경건한 마음으로 존중한다"고 선언하면서 불가타역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번역본이라 하여 46권의 구약성서와 27권의 신약성서를 정전으로 규정하고 나머지는 위경(僞經)이라 하여 배척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약4세기 후인 1946년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 를 통하여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인한 성서의 정전과 불가타역을 가톨릭 교회의 성서정전목록을 확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구약성서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판관기, 룻기, 사무엘 상 · 하, 열왕기 상 · 하, 역대기 상 · 하, 에즈라, 느헤미야, 토비트, 유딧, 에스델, 마카베오 상 · 하,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지혜서, 집회서,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바룩, 에제키엘,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가, 나훔, 하바꾹,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 등 46권이며, 신약성서는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가 복음서, 요한 복음서, 사도행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디모테오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디모테오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야고보의 편지, 베드로의 첫째 편지, 베드로의 둘째 편지, 요한의 첫째 편지, 요한의 둘째 편지, 요한의 셋째 편지, 유다의 편지, 요한의 묵시록 등 27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서는 1795~1800년경 이가환(李家煥)과 정약종(丁若鍾) 두 사람이 번역한 성서로, 그 사실 여부는 알 수 없고,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그 뒤 1892~1897년경 4복음서의 일부가 번역되어 ≪셩경직해≫란 서명으로 간행되었고, 1910년에는 불가타역의 4복음서를 번역한 한기근(韓基根, 바오로) 신부의 ≪사사셩경≫이 출판되었다. 한 신부는 또 1922년 ≪종도행전≫(宗徒行傳, 사도행전의 번역서명)을 번역하였고, 신약성서의 나머지 부분은 1941년 덕원 베네딕토 수도원의 실라이허(A. Schleicher) 신부가 모두 번역하여 1971년까지 교회의 공인 역본으로 사용하였다. 그 뒤 교회일치운동의 일환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합동으로 성서공동번역에 착수하기로 하여 출간된 ≪공동번역성서≫가 공인 성서로 사용되고 있다.
◆구약성경◆
옛 계약의 내용을 언어의 다양한 형식을 빌어와 적어 놓은 거룩한 책이다. 여느 책과는 달리 이 책이 종교의 경전인 이상 구약성경(舊約聖經)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확하다. 외적으로 보아 성서는 그 시대와 저자들이 매우 다양한 책들의 대전집(大全集)으로 나타난다. 이 전집의 가장 오래된 본문과 마지막으로 씌어진 본문들 사이에는 거의 천년이나 되는 세월이 흘렀다. 그리스인들은 이 전집을 ‘책들’(ta biblia)이라 이름하였으니, 이 말이 현대어 ‘성서’(Holy Bible)의 어원이다. 그리스도 교인들은 ‘거룩한 책들’을 또 다시 두 개의 전집으로 분류하고 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이다. 옛약속, 새약속의 낱말에서 약속이란 표현은 고대 라틴어 역본을 지칭하던 ‘테스타멘툼’(Testamentum, 遺言)에서 유래했으니, 당대의 그 라틴어휘는 ‘인간들과 맺은 하느님의 계약’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성서는 ‘옛계약의 책들’과 ‘새계약의 책들’로 각기 나누어 이름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아직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유다이즘의 입장과는 달리 구약성서를 주님 예수의 등불 아래서 읽고 있다. 그리하여 구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예언하였으니, 그 책의 변형(變形)의 결과로 신약성서가 세상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믿는 이는 성서를 읽을 때, 두 계약의 밀접한 관련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옛 계약의 책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들을 글로 적고 있다. 하느님은 제일 먼저 이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해방시켰고, 이스라엘을 사나이계약의 파트너로 삼아 당신의 뜻을 계시(啓示)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선물하심으로써 그들의 역사를 인도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일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백성의 유일한 역사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그 뿌리를 찾을 길이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길고도 험난한 이 역사를 통해 그들의 하느님으로부터 한 분의 구세주, 곧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원후 1세기 초엽이 되자 상당수의 유대인들과 또 점차로 그 숫자가 불어나던 이방인들이 ‘나자렛의 예수’라 불리던 그 인물을 메시아로 인정하였다. 그들이 히브리어의 ‘메시아’와 동일한 뜻을 지닌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예수께 붙였다. 또 그들은 예수의 역사적인 개입, 특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께서 온 인류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들을 모은 책들이 ‘새로운 계약’ 곧 ‘신약성서‘의 전집으로 세상의 빛을 본 것이다.
독자들이 성서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발전하게 되는 하느님은 ‘말씀을 통해 활동하시는 분’이다, 그 분이 말씀하시면 천지가 개벽되고 사람들이 인생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행동을 하게 되고 또 사건들이 발생한다. 하느님은 목청을 돋우어 아브라함과 모세, 판관들과 예언자들과 말을 건네고 있다. 그분은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이사 45:1)와 같은 이방인들에게도 말씀하시기를 꺼리지 않았다.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를 통해 그 꼴을 갖추었으니, 친히 선택한 사자(使者)들을 시켜 이스라엘 사람과 세세대대의 전 인류에게 오늘도 말씀하시고 있다. 신약성서의 어떤 본문들(요한복음, 히브리서)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가장 탁월한 말씀이라”고까지 단언하고 있다. 말씀 곧 언어는 하느님과 인간이 공동으로 나누어 가지는 도구(道具)요, 그 둘의 욕망을 표현하는 매체이다. 말이란 누가 쓰고 나면 또다시 사전(事典) 속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그 무엇이 아니다. ‘누가 말한다’는 것은 그 화자(話者)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요, 반드시 모종의 실행(實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말씀이 진리의 빛(요한 1:9)으로 세상의 어둠을 비추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다. 또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전하고자 했던 모든 말씀은 나자렛 예수라는 그 ‘유일하신 분’ 안에 집약되어 있다.
성서의 작가들은 말씀의 증인(證人)들이다, 불행하게도 그들 중의 상당수가 필명(筆名)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라성 같은 그 작가들의 증언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인류는 하느님의 말씀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인간의 양심을 뒤흔들어 놓고 밝히 비추며 또 인간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성서적 메시지의 정확한 번역은 교회의 가장 중대한 사업이다. 번역가는 원전의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훼손해서도 안 되고 또한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일 수 있는 그 ‘의미의 효과’를 놓쳐서도 안 된다.
구약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집이다. 그런데 이 첫 문집은 고대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써서 남긴 여러 책들 중에서 골라 묶어 놓은 선집(選集)이란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민수 21:14, 여호 10:13, 역대 29:29 참조). 시중에 나돌던 여러 책들 중에서 “이 책들만이 하느님의 말씀이다”라고 확정하는 것을 정경(正經, canon)의 고정이라고 부른다. 구약정경의 첫 선정(選定)은 에즈라시대(기원전 5세기 후반경)에 와서 처음으로 있었다. 정경의 목록을 고정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종교의 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 또 교회들의 만장일치로 이러저러한 책들만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결정하면, 그 책들이 향후 신자들의 믿음과 생활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즈라시대의 정경목록은 성서의 첫 다섯 권의 책을 율법(Torah, 느헤 8장 참조)의 제하에 묶었다. 다음 시대에 와서 성서의 예언서들이 ‘예언자들의 문집’이란 제하에 정경목록 속으로 들어왔다. 유다이즘의 지도자들은 율법의 해설과 연장(延長)이란 관점하에 예언서들을 선정하였다. 예수의 시대에 이르러 누가 ‘성서’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의 문집(文集)’을 지적하였다(마태 5:17, 7:12 …등). 또 그 다음에, 정경의 목록 안에 들어온 책은 시편집이었다(루가 24:44). 시편들이 예루살렘의 성전과 유대교의 회당들에서 ‘공식기도서’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시중에 나돌던 상당수의 책들이 과연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위 율법학자로 통하던 사람들이 기원후 90년경 팔레스티나의 얌니아(Jamnia)란 곳에 모였다. 거기서 그들은 당시의 팔레스티나에 살고 있던 유태교 신도들을 위하여 성서의 경전목록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였다. 이 정경은 성서의 서책들을 세 가지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 항목은 ‘율법’과 ‘예언자들’ 그리고 ‘그 외의 문집들’이었다. 이 문집은 150편의 시편들만 포함하고 있었다. 얌니아의 정경은 모두 히브리어로 쓰여졌고 다만 몇 구절만이 히브리어의 사촌뻘인 아람어로 쓰여졌다.
그런데 당시의 많은 유태인들이 그리스 문화권 속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3세기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시(市)에 이민하여 살고 있던 유태인들은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 그리고 몇 권의 다른 책들을 당시의 국제어인 그리스말로 번역할 필요성을 느꼈다. 오늘날 미국으로 이민간 교포들의 제2세가 모국어를 읽지 못하게 된 것처럼 당대의 유태인 후손들도 조상들의 말인 히브리어를 읽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생긴 성서의 그리스역본을 ‘칠십인역 성서’(Septuaginta)라고 부른다. 70인역본은 얌니아의 정경목록에 들어 있지 않은 토비트서와 벤시라의 집회서를 정경으로 취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역본은 직접 그리스말로 저술한 마카베오 하권과 솔로몬의 지혜서도 수록하고 있다. 또 이 역본은 그리스 문화권 안에 살고 있던 첫 수세대의 그리스도 교인들에게 ‘성서의 권위’를 행사하였다. 그래서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예의 역본을 읽었고 또 그들의 글에 인용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유다이즘의 경우에 얌니아의 히브리어 정경만이 성서로 통하였다.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은 얌니아의 히브리 성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가톨릭 교회는 기원후 4세기(그러니까 382년의 로마 주교회의)에 성서의 정경목록을 공식적으로 고정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1546년)는 382년 로마 주교회의(Synodus)가 확정한 정경을 재차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정경에는 소위 제2경전(Deuterocanonicus)으로 통하던 성서의 그리스어 책들이 포함되어 있다. 종교개혁에서 나온 교회들은 제2경전을 성서로 인정하지 아니했지만,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성서역본에서 소위 위경(僞經)이란 항목 하에 수록하고 있었다. 위경에 관하여 로셀(La Rochelle)의 신앙고백은 “이 책들이 아직 유익하지만 이 책들은 근거로 신앙의 조항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동방정교회들은 제2경전의 성서적 권위에 관하여 한 번도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적이 없었다. 정경에 관하여 이 같은 엇갈린 입장을 개선한 것은 교회일치운동의 덕분이었다. 1968년에 세계성서공회와 로마교회의 일치사무국은 획기적인 협정을 체결, 제2경전을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동번역’에 수록하도록 합의하였다. 따라서 대한 성서공회가 공동번역에서 ‘가톨릭용’과 ‘개신교용’을 분리시킨 것은 분명히 교회일치운동에 역행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편협한 분리주의(分離主義)의 소산이며 그 말씀에 언론통제를 가하는 것이다. 또 공동번역의 정경목록은 제2경전을 ‘그외의 문집’이란 항목하에 수록하고 있다. 한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것은 에스델서의 경우이다. 그리스어로 씌어진 에스델서의 제2경전 부분이 히브리어로 씌어진 원전과 너무나도 정교하게 섞여 있어서 그 자체로 일관성 있는 의미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여 공동번역의 편집자들은 에스델서를 두 가지 책으로 분리시켜 번역하였다. 그 첫 권은 히브리어에서 번역한 에스델서요, 다음의 책은 그리스어에서 번역한 에스델서였다. 후자는 제 2경전의 목록 안에 수록되었다.
이리하여 한국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제2경전을 격하시키는 일 없이 성서로 받아들인 것이다. 단지 세계의 공동번역은 히브리 성서의 분류원칙을 따르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수된 그 분류 항목은 ‘오경’(Pentateuque), ‘예언서들’(Livres prophetiques), ‘그 외의 문집들’(Autres Ecrits)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성서의 역본들은 성서를 ‘오경’, ‘역사서들’, ‘시서(詩書)들’ 그리고 ‘예언서들’로 분류하였다. 가톨릭 신자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분류원칙에 익숙하였다. 하지만 공동번역의 분류원칙은 성서의 히브리어 원전의 분류순서를 따르고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또 히브리 성서의 분류순서는 어떤 의미로 성서의 여러 서책들의 문학유형을 존중하고 있다. 가령 여호수아서와 판관기(判官記) 혹은 열왕기(列王記) 들이 단순히 ‘역사서’라는 관점에서 읽을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역사적 의미’를 밝혀 주는 ‘예언자적 메시지’의 관점에서 읽어야 하는 것과도 같다.
유태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마호메트의 이슬람교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약성서의 내력을 ‘책의 사건’이란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서구의 문예부흥 이후에 역사비평적 방법론에 입각한 성서 연구의 실적은 실로 눈부시고 방대하다. 문제는 한국의 성서독자들이 성서의 본문은 읽지 않고 오히려 400년 동안 누적된 성서에 대한 그 연구문헌들을 읽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학문적 방법론들은 성서를 읽는 데 필요한 한갓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성서에 관한 책들을 읽을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 그 자체를 읽어야 한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외침은 “성서를 집어 들고 읽어라”(tollo et lege!)하는 것이었다. 성서의 본문을 읽고 또 읽어 하느님의 말씀에 익숙해진 사람만이 그 책의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파악할 수가 있다. 성서 봉독에 필요한 학문적인 방법론과 그 연구 결과만을 읽는 것은 마치 어느 어머니가 아기를 목욕시킨 뒤에 그 물이 더럽다고 해서 10층 높이의 아파트 안방에서 아기가 들어 있는 채로 목욕물을 창밖으로 쏟아 버리는 것과도 같다.
현대의 언어과학적(言語科學的) 성서연구는 사학(史學)에 입각한 성서 연구의 방법론의 그 한계점을 시정하려고 한다. 성서본문의 통시성(通時性)만을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 기원에 가두어 버리려고 하는 고고학(考古學)적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씀은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역사성도 함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언어학이 강조하는 바대로, 성서본문의 공시성(共時性)은 하느님 말씀의 ‘예언자적 성격’을 부각시키는데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주 하느님은 ‘알파요 오메가’이시다(묵시 1:6). 시작이요 마침이신 그 분이 하신 말씀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안에 수록되어 있으며 또 성서의 보통 독자들이 먼저 생명의 그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읽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야고 1:21 이하 참조). (徐仁錫)
◆신약성경◆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보완하는 한 단위의 문학 장르로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계시의 기록을 완성하고 있다. 오늘날 신약성서 작품의 분류는 연대순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구약성서가 역사적 · 교훈적 · 예언적 작품별로 분류된 것에 영향을 받아서 신약성서도 초기의 그리스도교 계에서 유사한 방법으로 분류하였고, 이것이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정착되었다. 이리하여 역사적인 분류 기준에 드는 것으로 4복음서, 사도행전 있고, 교훈적인 각종 분류에 드는 것으로 바울로의 14개 서간들, 베드로의 첫째 · 둘째 편지, 요한의 세 편지, 야고보의 편지, 유다의 편지가 있고, 예언서 분류에 드는 것으로 요한의 묵시록이 있다.
1. 신약성서의 문학 장르 : 신약성서는 다양한 문학 장르에 속한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작품은 스타일이나 문장기술(文章記述)의 기교면에서 특정한 문학 유형이나 시대를 의식적 따르지는 않았다는 의미에서 문학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신약성서는 처음에는 그리스어로 씌어졌고, 따라서 그리스도교 발생 제1세기의 그레코-로마 문화와 관련지어 있다. 신약성서는 코이네(koine), 즉 그 당시에 널리 쓰인 그리스어로써 기술되었다. 어느 특정한 문체를 도용(盜用)해 쓰지도 않았고 세속 작가들로부터 인용한 구절도 많지 않다. 신약성서는 오히려 구약성서를 특히 칠십인역(Septuaginta)에서 300회 이상 인용한 것으로 보아 구약성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
요한의 복음서의 머리글(요한 1:1-13)과 바울로의 자랑 예찬론(1고린 13:1-13)에서처럼 시적(詩的) 표현 형태를 취하는 경우에는 구약성서의 예언서와 시편(psalmists)이나 찬미가(hymns)들에서 원용(援用)하고 있으나, 동시대에 어떤 문학작품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스도의 설교나 가르침은 복음서에서에 예언서의 정신과 문체로 그 당시에 통용되던 랍비문학 형태로 기술되었다. 또한 설교, 비유, 대화 등의 표현방법은 복음서작가(Evangelists)들에 의하여 널리 애용되었다. 특히 바울로의 서한에서 나타나는 서간체는 동시대의 서간체의 문형을 본뜨고 있기는 하지만 플라톤(Plato), 치체로(Cicero)나 에피쿠로스(Epikuros) 등을 맹목적으로 모방하였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위에 든 세 사람은 그들의 사상이나 가르침을 표현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이러한 표현방법을 채택했었다.
사실상의 설교인 디아트리베(diatribe, 비판적 강론)는 가르침을 위해서 만이 아니라 청중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신앙에 귀의케 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는데, 철학적 작품에 가장 흔하게 쓰인 형태이다. 디아트리베는 디아스포라(diaspora, 초기 유태인 그리스도교인)의 유적인 설교자들에 의해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그 뒤 그리스도 후계자들도 사용하였다. 예언서나 박해(迫害)시대에 랍비들에게 가장 흔하게 쓰였던 묵시문학 형태는 파루시아(parousia)와 묵시록(apocalypse)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개별적 문학작품이나 그 구성부분을 어떤 스타일의 범주에 넣을 것인가에 대하여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 범위를 점점 더 넓혀가는 추세에 있다. 궁극적인 분석이 어떻게 되든 간에 성서의 책들은 동시대의 세속작가나 종교작가들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글로써 표현해야 하겠다는 정신적 절실감이 있었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이어 나가야 하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교회가 우선하여야 할 일은 예수 안에서 사람들이 깊은 신앙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길을 살도록 입교자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기억을 하기 알맞도록 베풀어졌었다. 사도행전 2, 3장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베드로의 설교형태인 구두(口頭) 교리교육(oral catechesis)은 신앙을 전파하는 가장 기초수단이었다. 전례(典禮)가 발전함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차츰 미사로 통합되었고 이것이 성서작가들의 제재(題材)가 되었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서 초기의 구두 설교자는 문자로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2. 발전 : 대부분의 신약성서가 처음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는 어둠에 가려져 있지만, 4복음서와 논란이 많은 히브리인들에 보낸 편지를 제외한 바울로의 편지들이 어떻게 씌어졌는지는 추적해 볼 수 있다. 기원 50년경 팔레스티나의 유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하여 씌여졌다고 추정되는 아랍어로 쓰인 마태오의 복음서는 복음서 중에서 최초의 것으로 초기 전승(傳承)에 언급되어 있지만, 이보다 훨씬 뒤에 세상에 나온(기원후 70년) 그리스어 번역본은 아랍어 마태오의 복음서를 참고로 했을 뿐만 아니라, 마르코의 복음서와 Q문서도 참조했었다. 베드로의 통역자였던 마르코는 베드로가 죽은 뒤 (기원 후 64 혹은 67년), 혹자에 의하면 50년대 후반에 이교도 그리스도인(Gentile Christians)을 위하여 기억을 더듬어 썼으며, 바울로의 동반자였던 루가는 아케아(Achaea)의 이교도들을 위하여 마르코의 복음서가 씌어진 얼마 후에 복음서를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냉정한 어조(impersonal intone)를 견지하고 있으며 아마도 미사를 목적으로 쓴 것 같다. 루가의 복음은 더욱 문학적이며 역사적 서술에 비중을 두고 있다. 마태오와 마르코, 루가의 복음서는 상호의 의존적이며 이를 특히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라고 한다.
복음서에 필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다만 ‘예수가 사랑한 제자’라고만 언급되어 있는 요한의 복음서는 고대 전승에 의하면 팔자가 그리스도교 발생 1세기 말경에 소아시아의 에페소(Ephesus)에 있을 때 쓴 것 같다. 이 복음서는 그리스도교 입교자의 믿음을 확고히 하고 더욱 심화하기 위하여 씌어졌다. 요한의 복음서는 유태교(Judaism)를 힐난하는 어조로 씌어 있으며 필자를 성 요한이라고 믿는 것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도행전은 사실은 제5의 복음서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대부분 베드로와 바울로의 행적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데, 성 바울로의 말년에 제3의 복음서(루가의 복음서)를 쓴 동일한 작가가 복음서를 쓴 후 얼마 지나서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사도행전의 텍스트는 두 가지-짧으나 세련된 표현을 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텍스트와 150년경에 개작한 것으로 보이는 문장이 방만한 이서(以西)의 텍스트-로 전하여 지고 있으므로 어느 것이 원형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심이 있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말씀과 행적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10, 20년에 문자로써 기록되기 시작한 반면, 1세기말이 다 지나도록 구약성서나 바울로의 서간 중의 몇 작품에 허용되었던 성서로서의 온전한 권위가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것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구성의 연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바울로의 서간집은 특정 공동체나 공동체의 집단에 대하여 쓴 것인데 가르침과 교회와 오해를 불식하는데 원래의 사명이 있었다. 그 서간들 중에서 세 가지 서간은 사목서간(Pastoral epistles)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주로 공직자들을 위해 쓴 것이다.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는 기원 52년초에 고린토인을 위해 쓰여졌으며 따라서 바울로의 서간 중에서 제일 먼저 쓰여졌고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나머지의 서간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쓰여진 것으로 본다. 즉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편지(52년 후반),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54년),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57년 봄),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57년 가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57~58년),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61~63년) 등과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는 이들 세 서간이 바울로가 쓴 것이 분명하다면 63, 67년 사이에 쓰여졌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요약하고 보면 대부분의 바울로의 서간들이 복음서들 이전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우리가 마르코나 루가를 기원 62년 이전으로 잡지 않는다면 바울로의 몇 작품은 베드로에게 보낸 둘째 편지 3장 15절에서 보이는 것처럼 구약성서와 똑같은 성서로서의 대접을 받게 된다. 바울로의 서간 모두가 그의 저작으로서 현대 성서학자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목서간이나 에페소인들에게 보인 편지의 저자가 바울로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이니 그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히브리인들에게 보인 편지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가톨릭 서간(야고보의 편지, 베드로의 첫째, 둘째 편지, 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편지, 유다의 편지)은 개인이나 공동체보다는 일반 교회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그 작품의 성격으로 보아서 서간이라기보다는 교훈서라고 함이 더욱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또한, 각 서책에 붙은 이름이 그 성책의 진정한 필자를 의미하는지, 단지 가명에 지나지 않는지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그 중에서 야고보의 편지, 유다의 편지, 베드로의 둘째 편지, 요한의 둘째, 셋째 편지의 경전성(Canonicity)에 대하여서도 한때 논란이 되었었다. 이들 서간들은 기원 1세기에 걸쳐 다양하게 연대 표시가 되어 있어서, 그 서간의 필자로 인정할 수도 부인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묵시록이 필자에 대해서는 가장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편지라고 하기보다는 논설문이라고 하는 쪽이 더 알맞다. 바울로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학자가 많으며, 설사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간접적인 것이리라고 믿고 있다. 바울로가 쓴 것이 틀림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63, 67년 사이에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70, 90년 사이에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방교회는 4세기 중엽에 이르도록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바울로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동방교회에서는 3세기에 벌써 그것을 바울로의 저술이라고 믿어왔다.
묵시록 역시 필자의 동일성이나, 문학 장르의 이해에 곤란을 겪고 있고, 묵시록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는 달리 묵시록은 동방교회에서는 6세기가 지나도록 많은 반대에 부딪힌 반면 서방교회에서는 변함없이 성서로 인정해 왔었다. 초기의 전승은 사도 요한을 그 편지로 인정하여 왔으나, 오늘날 가톨릭 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견해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성서 작품의 필자의 진위(眞僞), 작품의 진실성, 경전으로서의 가치, 집필 시기나 문학 장르의 형태에 대하여 여전히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신약성서들은 하느님에 의하여 영감받은 경전으로서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교회에 의하여 여전히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위경◆
위경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경전에서 제외된 많은 서적들을 말한다. 위경(僞經, Apocrypha)은 그리스어로 ‘숨겨진’ 또는 ‘감춰진’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는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단어이고,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이 단어를 외경(外經)이라고 번역하여, 가톨릭의 ‘제2경전’을 지칭하고 있다.
◆복음◆
복음은 넓은 의미로 ‘복된 소식’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내리신 계시의 말씀이다. 좁은 의미로는 신약 성서 중 예수의 생애와 말씀을 담은 ‘4복음’을 말한다. 그런데 4복음 중에는 요한 복음을 제외하고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아 나머지 세 권을 공관 복음(共觀福音)이라고 한다. → 공관 복음
그러나 요한 복음은 공관 복음에 없는 내용을 보충해 준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과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강조한다. 4복음은 미사 중 말씀 전례 부분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한다. 독서와는 달리 행렬과 환호와 강복과 기도가 선행되기도 한다.
미사 때의 복음은 부제나 사제만이 낭독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복음 낭독 전에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십자를 긋는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에 간직하며,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고백하겠다는 다짐의 표시이다. → 성호경
◆서간◆
이는 신약 성서의 한 부분으로, 예수님의 직제자인 사도들이 지방 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서간은 사도 바오로의 이름으로 된 14편을 비롯하여 모두 21권이다. 서간은 주일 미사나 대축일 말씀 전례 때, 두 번째(제2독서) 봉독한다. 그리고 평일 미사 때는 대개 독서 때 봉독된다.
◆신앙고백◆
신앙이란 믿음을 말하며 신앙고백이란 믿음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성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즉 세상을 구하러 오신 메시아이시고, 그를 통해 인류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이단에 대하여 신앙의 본질을 명백히 하고,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신경(信經)을 신앙으로 고백하였다. 개신교에도 신앙 고백문이 있으며, 일치와 타종파와의 구별을 위해 이를 고백한다.
◆말씀 전례◆
이는 미사 전례의 전반부, 즉 성찬 전례 앞부분으로, 독서, 화답송, 복음 환호송, 복음, 강론,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 등으로 되어 있다. 이 ‘말씀 전례’라는 말은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 안에서 처음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원은 구약 시대 회당에서 하느님 말씀을 읽고 들은 데서 비롯되었다.
주일 미사의 독서 중 제1독서는 구약에서, 제2독서는 신약에서, 그리고 복음은 4복음서에서 발췌하여 낭독한다. 그런데 독서는 가, 나, 다(A, B, C)해, 3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예를 들어 2002년은 가해, 2003년은 나해, 2004년은 다해, 2005년은 다시 가해가 된다.
이 말씀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부분이므로, 성서를 같이 읽어 나가기보다는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마음과 귀를 열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겸손되이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요한 1,18).
출처 : [용어사전]
● (년수를 3으로 나누기 해서 1이 남으면 가해, 0 이면 다해, 2이면 나해가 된다, 예) 2026나누기 3을 하면 나머지가 1이 되므로 가해이다.)
◆교의◆
교의란 라틴어로 도그마(Dogma)라 한다. 이 말은 원래 의견이나 신념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는 성서나 성전(聖傳)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를 일컫는다. 한편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권한으로 신자들에게 믿도록 가르치는 교리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도그마라는 말을 신조(信條), 교리(敎理) 또는 학설(學說), 신앙이나 신념 등으로 번역한다.
출처 : [용어사전]
◆로고스◆
로고스는 그리스어 ‘말하다’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즉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 말씀, 만물을 이성적으로 관철하여 지배하는 법칙(그리스 철학), 우주를 통일하는 이성(理性),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말, 의미, 이유, 논리 등을 뜻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하느님은 로고스적 본질을 가진 분이시고, 로고스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서 생겨났다”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Logos)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러기에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은 곧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요한 1,14). 그리고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요한 1,1). 이상의 성서 구절에서 결국 말씀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뜻하며,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출처 : [용어사전]
◆경전◆]=정전=정경
경전은 하느님의 감도(感導, 靈感)를 받아 기록된 성서(聖書)를 말한다. 이를 정전(正典) 혹은 정경(正經)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성서의 어떤 부분이 서술이나 기술 연대, 혹은 상황 등에 비추어 볼 때,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생긴 말이다.
따라서 경전(經典, 正經, 正典)이란 하느님의 영감(啓示)을 받아 기록되었으며, 완전 무결한 하느님 말씀(聖書)이다. 그런데 성서를 기록한 자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는가의 여부는 교회의 일치된 견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는 일부 성서가 경전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아, 제2경전(第二經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들 모두를 경전으로 확정하였다. 그리스어 번역 성서(70人譯)에 들어 있는 일곱 권의 책(제2경전)을 경전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제2경전은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시라크),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권 등이다. 그 외 에스델서, 다니엘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 요한 1 · 2서, 묵시록, 마르코 복음(16,9-20) 등의 일부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구약성서 중 히브리어 성서만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7권과 마르코 복음 일부를 위경(僞經)으로 취급함으로써, 이들을 외경(外經)이라 하여 경전에서 제외하였다.
◆마소라본◆
마소라(Massora)본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구약의 히브리어 원본(일부는 아람어)을 말한다. 유다 성서의 관리자는 바빌론 귀양살이를 전후한 예언자나 판관들이었다. 그리고 그 후 예루살렘 멸망(70년)까지는 율법학자나 사제들이었으며, 600년까지는 랍비들이었고, 1200년까지는 마소렛들이었다.
이들은 텍스트 전승의 관리자로서 성서를 보관하고 연구하며 가르쳤다. 어느 때 히브리 구약 성서 정전 목록(Canon)이 확정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개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100년을 본다. 그 외에도 마소렛들의 공적은 모음(母音)을 만들어 자음(子音)에 붙여 놓았고, 히브리어가 사어(死語)가 되었음에도 읽을 수 있게 한 점이다.
출처 : [용어사전]
◆디다케◆
디다케는 그리스어로 ‘가르침’을 의미한다. 또한 성서에 기록된 계시 내용의 교훈적 부분이나, 사도 시대 직후에 저술된 문헌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는 ‘12사도의 가르침’으로 불리기도 한다.
디다케는 당시의 전례 문헌을 모아 저술한 것으로, 초대 교회의 규범이나 교령의 전형적 역할을 하였다. 저자는 알 수 없으나, 시리아 지방에서 60년~4세기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초대 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도 잘 묘사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출처 : [용어사전]
◆불가타(성경)◆
예로니모 성인이 405년에 라틴어로 완역하여 가톨릭교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성경의 이름. ‘불가타’란 말은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한다.
◆강론◆라틴어 homilia(호밀리아)
가톨릭 성직자가 미사 등의 전례에서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인 생활 규범을 성경 구절로 해설하는 것을 뜻하는 말. “강론은 설교의 여러 형식 중에서 탁월한 것으로 전례의 한 부분이며 사제나 부제에게 유보된다”(교회법 제767조 1항).
출처 : [천주교용어자료집]
◆렉시오 디비나◆=‘성독’(聖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수행.
단순하고 정감적인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맛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관상적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행위로, 인간적 활동이면서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 활동이다. ‘거룩한 독서’, ‘영적 독서’, ‘신적 독서’, ‘성독’(聖讀)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출처 : [천주교용어자료집]
◆이콘(아이콘)◆
성화(聖畵). 원래 그리스어로는 형상과 모상을 뜻하며, 예수 그리스도나 마리아, 성인과 순교자 등과 성경, 교리의 내용을 소재로 그린 성화를 지칭한다. 목판에 그리거나 벽에 프레스코화로 그리고, 모자이크나 복음서 등의 세밀화로도 표현된다.
이콘은 1054년 교회가 동서로 분열되기 이전 함께 공유했던 전통이지만, 서방교회는 시대별 민족별 변화를 수용한 반면, 동방교회는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초대교회에서 글을 모르는 이들과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여러 민족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올바로 신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그림으로 성서와 교리의 내용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으로서, 교회는 이콘 자체에 대한 경의가 아닌 그 묘사된 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하는 것임을 늘 강조하여 우상숭배와 차별화하였다.
◆외경◆
신구약 성경으로 인정되지는 않으나 동시대에 쓰여진 종교적 문헌.
어원은 ‘Apocryphos’라는 그리스어 형용사로서 ‘숨겨진’ 또는 ‘감춰진’이라는 뜻이다.
구약 외경으로는 12성조의 유언, 에녹서, 희년서, 므나쎄의 기도, 제3에즈라기, 제3마카베오기 등이, 신약 외경으로는 에피온인, 히브리인, 이집트인, 니코데모, 야고보, 베드로 등의 복음서와 각종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 등이 있다.
개신교는 천주교와 달리 유다교처럼 히브리어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므로, 칠십인역(그리스어 성경)에는 수록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는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 · 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등을 ‘외경’이라 부르며, 가톨릭이 ‘외경’으로 분류한 경전들을 ‘위경’(僞經)이라 부른다.
◆아람어◆
히브리어, 페니키아어, 우가리트어, 모압어, 암몬어, 에돔어 등과 함께 북서 셈어군 중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사용된 언어.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성경 기록에도 사용되었으며, 기원전 10세기 전후에는 근동 모든 지역에서 사용된 국제어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아람어를 사용했고, 구약 성경 중 후기에 쓰여진 일부와 복음서, 사도행전에 아람어를 번역한 흔적이 있다. “아빠”(마르 14,36), “탈리타 쿰”(마르 5,41), “마라나 타”(1코린 16,22) 등이 대표적 구절이다.
출처 : [천주교용어자료집]
◆사탄◆
‘악마’의 고유 명사.
‘방해하다’, ‘반대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히브리어 ‘사탄’에서 유래되었다. ‘적대자’라는 뜻으로, 하느님과 대립하여 존재하는 악(惡)을 인격화한 말이다. 성경에는 마귀, 악마, 귀신, 더러운 영 등으로 표현되고있다.
출처 : [천주교용어자료집]
◆칠십인역◆
현재 남아 있는 성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번역본 구약성경.
72명의 학자가 이 번역 사업에 종사했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성경 연구에는 물론 언어학상으로도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신약성경의 문체와 사상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이다.
출처 : [천주교용어자료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