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얼마 전 사물에 대한 단상을 적은 적이 있다. 그리고 간혹 사물이라는 말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그렇구나 사물이라는 말 안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물의 생명과 신비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 쉼없이 바뀌는 핸드폰, 컴퓨터, 텔레비전 같은 전자제품은 물론 가구나 연필 등 모든 사물에 대해 나는 문득 연민을 느낀다. 오직 쓰임과 디자인으로 평가를 받을 뿐 고유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 채 사물들은 내 옆을 스치고 버려졌다. 기성품이면 어떤가? 기왕 이 세상에 내놓여진 것을 내가 지녔다면 나는 그것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것의 영혼을 맞이해야 한다. 핸드폰이나 책이나 숟가락이나 빗자루나 마찬가지다. 내가 결여하고 있는 것은 생활의 성스러움을 특별한 무엇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독이며 게으름인데 말이다.
고기
요즘 내 생활을 돌아보니 영양과잉을 생각하게 한다. 너무나 쉽게 고기를 먹는데 익숙해 있다. 하지만 반성 없는 익숙함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익숙함은 맥락의 사유를 불가능하게 하고 도덕적 질문을 회피하게 한다. 내가 먹는 밥에 고기가 틈틈이 드러나는 것은 역시 자본주의 발달 및 세계화와 관계가 있다. 지역과 토착 삶을 식민화하고 맛과 영양으로 부당한 현실을 용납케 한다. 자연으로부터 내가 직접 사냥을 하거나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고기를 먹는 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유목사회도 아닌 농경사회에서 고기는 특별한 날의 성찬에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그랬다. 누구 생일에 미역국에 소고기가 들어갈 수 있었고, 불고기는 명절날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신 날이나 맛보는 것이었다. 물론 갈치며 고등어 같은 생선도 손님이 와야 먹는 것이었다. 지금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가난이지만 농촌을 떠난 서울살이에서 고기를 맛보기 어려운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오히려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도시가 농어촌보다 먹거리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정상이 아닌 게 정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생명과 관계에 대한 돌아봄이 없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유기농이든 친환경농이든 같은 고민을 통과해야 한다.
서수경누나
아침에 차를 마시며 아내가 가져다 놓은 10년 전에 나온 <모올도비>라는 잡지를 건성으로 넘기려는데 거기 창간호에 수경이 누나 사진이 나왔다. 북부사랑 노동자회 시절 인터뷰를 했던 모습이다. 같은 날 신고헌책방엔 인간방패를 하며 이라크의 사정을 알렸던 유은하의 <아이들에게는 전쟁이 없다>는 책이 보였다. 내가 가진 못한 사랑의 길을 투신하며 걸었던 두 사람이다. 무슨 메시지일까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서수경 누나는 지난해 겨울 화가로서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쓸쓸함’이라는 주제였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뒷모습들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한 시대를 겪어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가려진 앞섶에 다 담겨 있으리라. 그 모든 것들의 메시지 대신 쓸쓸함의 시공간을 떠도는 안개를 그렸던 것은 역시 수경 누나의 성품탓일지 모른다. 한없이 따스하고 싶은. 아름다움과 슬픔이 이슥한 시간 날아가는 안개의 붓 터치에 배어있었다. 마음이 아직 상처 언저리를 떠도는 것일까? 그림 모두를 볼 수는 없었지만 몇 편의 인상은 그랬다. 그래도 분명 자신의 또 다른 길을 가고 있으리라.
그렇구나. 벌써 10년이 지났구나.
이
정원이의 작은 어금니가 빠졌다. 초등여행을 떠나며 흔들린다더니 마지막 날 그냥 툭 빠졌다. 3,4일 흔들리고 빠졌다. 보니 이 뿌리가 참 얕다. 거의 2,3미리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영구치가 나면 뿌리가 몸보다 2,3배 긴 것을 생각했다가 빠진 이를 보니 새삼 놀랍다. 그렇구나. 10살인 아이들은 지금 한창 생장점의 활동하고 있는 시기인 것이다. 이뿐이겠는가? 내가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아이들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벚꽃잎
세은이가 벚나무 아래 바람에 나려 떨어지는 벚꽃잎을 두손으로 잡는 놀이를 한다. 한참을. 그리고 내게 다가와 선물이라고 준다. 연분홍빛이 살짝 스민 벚꽃잎을 손에 담아 소원을 빌고 후우~ 하늘에 날려 보내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나는 아이들이 서로 맘 상하지 않고 많이 웃고 씩씩하게 자라기를 빌고 후우~ 벚꽃잎을 날렸다.
아이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자신의 소원을 다 빌었는지 이번엔 두세 아이와 같이 벚꽃잎 잡기 놀이를 계속한다. 그러더니 이젠 소원을 들어주는 벚꽃잎을 사라고 외치며, 벚꽃잎 장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