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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서관 -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도서관 프랑스 의학사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는 곳[ Institut Pasteur Bibliothèque ]
hanjy9713
2023.12.24. 16:16조회 2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도서관
프랑스 의학사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는 곳
[ Institut Pasteur Bibliothèque ]
세균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가 1888년 주도적으로 설립한 파스퇴르 연구소. 연구소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여러 동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현재 이 건물은 박물관 겸 파스퇴르가 안장된 묘소로 쓰이고 있다.
파스퇴르 연구소의 구내식당에 매료되다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세균학자인 루이 파스퇴르. 공부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면서 필자와 파스퇴르와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프랑스인들에게 단순히 유명한 한 사람의 과학자 이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인물임을 프랑스에 가서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파스퇴르’란 이름과의 인연은 필자가 프랑스에 공부를 하러 가면서 시작되었다. 먼저, 유학 가서 3년 동안 받은 프랑스 정부 장학금의 명칭이 ‘파스퇴르 장학금’이었다.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살던 집의 주소가 ‘루이 파스퇴르 1번가’였다(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프랑스의 웬만한 도시에는 파스퇴르의 이름을 딴 거리가 존재한다).
더 결정적인 인연은 함께 간 아내가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병리학을 전공한 아내는 원래 프랑스에 아무런 관심도, 관계도 없었다. 남편이 프랑스로 가는 바람에 급하게 거기서 일할 곳을 몇 군데 알아보았고, 그 가운데서 운이 좋게도 파스퇴르 연구소의 면역학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거기서 받는 월급이 내가 받는 장학금의 두 배였으므로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프랑스 정부에서 받는 돈만으로도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일이었다.
필자가 파스퇴르 연구소에 출입을 하게 된 것은, 특히 연구소의 도서관을 드나들게 된 것은 순전히 아내가 거기서 일한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연구소의 구내식당에 함께 밥을 먹으러 몇 번 갔다가 구내식당 맞은편에 있는 새로 지은 멋진 건물이 도서관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서관은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사실 처음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가장 감동을 받은 장소는 다름 아닌 구내식당이었다. 구내식당에 감동을 받은 이유는 순전히 거기서 제공하는 맛있는 음식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느끼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필자에게 가장 큰 장점의 하나는 음식이었다. 자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답게 음식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관심은 남다르고, 또 어딜 가서 먹건 실망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학생 식당의 음식은 맛도 없고 영양도 부족한 경우가 많지만, 프랑스의 학생 식당은 그렇지 않았다. 파리 시내 곳곳에 있는 학생 식당들은 저마다 특색이 있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전채 요리와 주요리, 후식까지 포함한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제공한다.
그런데 파스퇴르 연구소 구내식당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거기서 제공되는 음식의 질은 바깥의 중상 수준의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우선 매일 선택할 수 있는 주요리의 종류가 일곱 가지 정도는 되었다. 지금도 미관을 위해 접시 가장자리에 묻은 소스를 깨끗이 닦아낸 후, “본 아페티(맛있게 드세요)!”라고 외치며 음식이 담긴 접시를 식판 위에 올려주던 주방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 성탄절에 즈음해서는 프랑스 각지의 고유한 요리들로 특별한 식사를 제공하는 날이 있다. 이때는 식당도 온통 축제 분위기로 꾸며놓는다. 우리와 같은 회식 문화가 없는 프랑스에서는 연말을 맞아 이날 각 연구실별로 구내식당에서 일종의 회식을 하기도 한다.
구내식당은 파스퇴르 연구소의 직원이나 연구원이 가진 아이디 카드로만 결제가 되기 때문에 외부인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항상 아내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갔고, 아내가 실험으로 바쁠 때에는 아내의 아이디 카드를 받아 혼자 가서 먹기도 했다. 먹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연구 시설 못지않게 연구소의 구내식당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구내식당을 새로 지을 때 무슨 식당 건물을 그렇게 좋게 짓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려면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장점이라면, 반대로 단점은 도서관이다. 프랑스에 가서 지도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게 해준 말은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려면 길거리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말은 필요한 책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다녀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책들이 대부분 있을 것이라며 나를 데리고 간 곳이 유명한 고등사범학교(ENS)의 도서관이었다.
오래된 건물에 자리 잡은 도서관에는 과연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용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우선 점심시간 동안에는 도서관에서 나와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필요한 부분을 직접 복사하지 못하고 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일주일쯤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불편한 점들 때문에 그 이후에는 그 도서관에 간 적이 없다. 필요한 책들은 주로 소르본(Sorbonne)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보거나 복사를 했다. 그 도서관은 책은 많으나 학생 수에 비해 열람실이 턱없이 좁고 부족했다. 학생들이 많이 몰릴 때에는 들어가기 위해 바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지도교수가 대학 도서관이 그런 상태라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할 만 했다.
소르본 대학의 도서관.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파리의 도서관들은 대개 중후하고 멋진 시설을 자랑했지만 이용에 불편한 점들이 있었다. 지도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게 했던 ‘프랑스에서 공부하려면 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출처: (cc) Zantastik at en.wikipedia.org>
내가 등록하고 다닌 파리 7대학의 도서관도 '별로'였다. 학부생들이 보고서나 쓰면 알맞을 정도의 장서와 시설이어서 앉아서 차분히 공부할 공간이 못되었다. 물론 근처에 자연사박물관의 도서관처럼 호사스런 테이블에 스탠드까지 설치되어 있는 근사한 도서관도 있었지만, 거기서 딴 책을 보다 쫓겨난 쓰라린 경험도 있어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의 도서관에 대해서는 불만과 할 말이 많았다. 아마도 그런 사정 때문에 지도교수가 내게 파리에서 공부하려면 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고 경고 아닌 경고를 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대학 도서관들에 실망을 하고 있던 중에 미국의 대학 도서관을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누나 부부가 코넬 대학에 있어 여름방학을 이용해 방문했던 것이다. 나는 미리 준비해간 자료의 목록을 들고 코넬 대학 도서관의 아래위층을 오르내리며 일주일 동안 필요한 책이며 논문 등의 자료를 모두 복사했다. 물론 거기에 있던 자료들은 프랑스 어딘가에는 다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런 자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데다 도서 목록의 전산화가 안 된 곳이 많아 소재 파악이 쉽지 않고, 또 도서관마다 규정이 달라 자료를 빌리거나 복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자료들을 미국에 와서 하나의 도서관에서 다 해결했던 것이다. 거의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물론 프랑스에도 좋은 도서관, 특색 있는 도서관들이 많이 있다. 특히 가톨릭의 전통이 강한 나라이다 보니 교회나 수도회의 도서관들이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특정 분야에 대해 좋은 장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 새로 지은 국립도서관과 같은 훌륭한 도서관도 있지만 필자에게는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 별로 이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필자가 준비하던 논문의 성격이나 단계가 많은 자료를 보기보다는 주어진 텍스트를 엄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웬만큼 필요한 자료를 확보한 상태의 내게는 이제 많은 책이 있는 도서관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여유 있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절실했다. 그때 아내 덕분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파스퇴르 연구소의 도서관은 더 없이 적합하고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프랑스 의학사의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는 곳
새로 지은 파스퇴르 연구소와 도서관. <출처: Institut Pasteur 홈페이지>
파스퇴르 연구소는 파리 시내에, 그것도 중심부 가까이에 있어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으나, 도로를 하나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꽤 여러 동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연구소의 건물은 파스퇴르 시대에 지은 옛날 건물과 최근에 지은 건물들이 섞여 있다. 파스퇴르 연구소 도서관은 새로 지은 독립된 건물에 자리 잡고 있으며, 널찍하고 평소에 열람실에 사람이 별로 없어 무척 쾌적한 곳이었다.
많은 책을 필요로 하는 인문학과는 달리 자연과학 연구는 주로 최신 연구 결과들을 많이 참고하는데, 요즘은 거의 인터넷으로 그러한 정보에 접근이 가능하므로 과거처럼 논문을 찾거나 책을 찾아보기 위해 도서관을 찾을 필요는 거의 없어졌다. 실제로 도서관에서 연구원들을 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또 외부인들은 이 도서관의 존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외부인들 또한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파스퇴르 연구소의 도서관은 더욱 한적했던 것이다. 덕분에 필자는 넓은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필요한 자료들을 마음껏 늘어놓으며 논문을 쓸 수 있었다.
도서관이 연구소에 소속된 것인 관계로 다양한 분야의 책이 고루 갖추어져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기관답게 연구소와 관련된 자료, 파스퇴르 관련 문헌, 혹은 의학사나 과학사 관련 문헌들은 풍부하게 잘 갖추어져 있어 나처럼 의학사를 공부하는 연구자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세계 각국어로 출판된 파스퇴르 전기를 서가 한쪽에 모아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머리가 무겁거나 자리에 앉아 있기가 지겨워지면 서가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이 책 저 책을 빼보며 머리를 식히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그런 시간에 내게 좋은 벗이 되어준 것은 19세기 프랑스에서 나온 100권짜리 의학백과사전이었다. 아무리 의학백과사전이라지만 100권씩이나……라며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백과전서파의 후예답게 프랑스 사람들은 백과사전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의학 분야에서도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을 만들었던 것이다. 의학 분야의 백과사전은 19세기 동안 활발히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사전의 편찬은 19세기 프랑스 의학의 한 특징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의학사전은 만들어졌지만, 프랑스와 같이 방대한 규모의 의학백과사전을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의학백과사전의 편찬에 관한 내용은 프랑스 근대 의학사를 다룬 책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그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바로 파스퇴르 연구소 도서관에서였다.
연구소 도서관에 비치된 백과사전은 19세기 후반의 것으로, 그런 종류의 의학백과사전으로는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810년대에 나온 60권짜리 의학백과사전을 가장 좋아한다.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 현대 의학과의 연결성이 강한 것에 비해, 1810년대의 백과사전은 그 이전 시대와의 연결성이 강해 역사적으로 흥미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당시의 의학백과사전을 들여다보면 요즘 같으면 도저히 의학백과사전에 들어있지 않을 항목이나 내용들도 많아 무척 흥미롭다. 그런 항목들을 찾고, 또 그와 관련된 항목들을 찾아 읽거나 복사하며 머리를 식히곤 했다. 이 도서관에서 발견한 의학백과사전 덕분에 다른 의학백과사전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후에는 프랑스의 고서점을 통해 이 시기에 나온 의학백과사전 종류들을 사서 모으게 되었다.
도서관에는 책들 이외에 흥미로운 시청각 자료들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자료 영상에서는 파스퇴르 연구소의 활동을 비롯하여 당시 보건의료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어 무척 유익했다. 또 도서관에 비치된 각종 의료 관계 신문들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그런 자료들을 뒤적이며 프랑스 의학계의 상황이나 현안, 혹은 문제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도서관에 비치된 컴퓨터로 필요한 자료들을 무료로(!) 무제한 출력할 수도 있었다.
프랑스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담고 있는 곳
연구소에 함께 위치한 파스퇴르 박물관에서는 미생물, 생화학 연구에 쓰였던 각종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아침에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공부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바로 옆 건물에 있는 구내식당에 가서 아내와 함께 매일같이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후에 논문을 쓰다가 지치거나 졸리면 로비로 내려와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판기의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뽑아 마시며 잠도 쫓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으니 나로서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이 도서관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귀국하기 직전까지 필자는 1년 좀 넘게 파스퇴르 연구소 도서관에서 학위논문을 썼다. 사정상 학위논문의 마무리는 한국에 와서 했지만, 그것은 파스퇴르 연구소 도서관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대략 써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파스퇴르 연구소의 도서관은 엄청난 장서를 자랑하는 큰 도서관도 아니고, 또 수도원의 고색창연한 분위기가 있는 도서관도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는 바로 옆에 있는 구내식당 덕분에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단점은 최소화시켜준, 그래서 논문을 마칠 수 있도록 해준 더없이 고마운 도서관이다.
'영혼과 지식의 보물창고, 세계의 도서관'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사업단의 기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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