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시끄럽고 요란합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거짓말 홍수 속에 우리가 살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인간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양심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관의 지시를 받았다는 여러 부하들의 증언이 명확히 밝혀지고 있는데도, 전혀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는 말을 듣다 보면, 인간은 모두 양심을 지녔다는 말에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양심을 지녔다는 사실은 명확한 진리입니다. 이에 대해 딴소리를 한다면 인간 세상은 세상일 수가 없게 됩니다. 양심대로 살아가는 일이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인간은 양심대로 살아가야만 올바른 삶이라 여깁니다. 양심에 따르도록 정성을 바치는 일이 수양이고 인격도야의 본질입니다. 인간의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면서, 양심을 따르지 않는 삶이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더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거야 올바른 삶이 아닌 것은 너무나 명확한 일입니다. 양심을 속이고 따르지 않는 삶을 살다가 최고통치자가 당하는 요즘의 비극을 본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 문제에 대한 논란은 바로 인간의 양심과 관계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산은 천주교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장문의 상소문을 통해 자신은 한때 천주교 신자가 되었지만 얼마 뒤 바로 마음을 끊어 신자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다산을 연구하면서 그의 고백을 믿고 천주교 신자에서 벗어나 유학자고 실학자며 경제가였음을 밝히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에도 일생동안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는 학자의 주장이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약용은 7~8년간 천주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고백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천주에서 완전히 손을 뗐습니다. 「선중씨 묘지명」 『자찬묘지명』에 확인됩니다. 그답게 오직 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p.208)” “정약용은 학자로서 그리고 사상가로서 정직성과 양심이 보통 사람을 훨씬 능가하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정직성과 양심을 빼면 정약용이라는 인간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학문과 글쓰기는 정직성과 양심이 그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약용이 천주교도이면서 그것을 숨기고 글쓰기와 사상행위를 했다고 한다면, 이는 심중한 자기기만이고 사상가 혹은 학자로서 중대한 결격사유라고 해야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실제에도 맞지 않지만, 정직성과 양심을 중시한 정약용이라는 인간의 정체성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정약용이 죽을 때까지 천주교 신자였다는 일각의 주장은 정약용에 대한 모독을 넘어 모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p.209)” (박희병, 『한국고전문학사강의 3』(돌베개, 2023))
박희병 교수의 강의는 정직성과 양심으로 상징되는 학자 정약용은 천주교 신자가 아님을 그의 정직성과 양심 때문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정직성이 없다면 거짓말쟁이이고 양심이 없다면 사기꾼인데, 자신은 신자가 아니라고 명확히 밝혔고, 또 그렇게 삶을 살았는데, 그래도 신자였다고 한다면 다산은 양심이 없고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만 하는 데 진절머리를 느끼는 오늘, 다산까지 그런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제발 멈춰주기를 바랍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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