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밝게 더 기쁘게
오늘 독서와 복음은 물이라는 소재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독서에서는 성전 오른편에서 흐르는 물이 닿는 곳마다 생기를 준다는 말씀이고, 복음에서의 물은 벳자타라는 못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는 이를 예수님께서 치유시켜 주신 표징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성당을 가보면 마을의 중심에 성당이 있습니다. 누구든 오기가 편해야하고, 그래서 성당을 중심으로 길이 퍼져 나갑니다. 우리나라 성당분할도 가능한 한 그 사목구 지역의 중심에 위치해 있도록 성당부지를 내는 게 당연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성당을 중심으로 우리 신앙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성당이 우리들 신앙의 전부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가정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이어져야 할 것이고 파견되어 나가는 우리가 세상으로 퍼져가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성당을 중심으로 모여라, 이것도 중요하지만, 성당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라, 이것도 중요합니다.
성전 동편에서 흐르는 물은 죽은 바다를 살리고 고기도 많게 합니다. 온갖 과일나무도 자라서 열매를 내놓고 잎은 약이 됩니다. 에제키엘 47장 9절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솟아납니다. 서른 여덟 해나 앓던 이가 일어나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갑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38년이나 벳자타 못에 먼저 들어가고 싶었지만 못에 들어가서 치유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천사가 그 물을 만지고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치유받는다는 민간신앙에 예수님이 부응해서 이 사람을 던져준 것이 아닙니다. 베자타 못이 치유해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성전 동편에서 흐르는 강물이 닿는 곳마다 생기있게 된다면 그 물이 온세상을 뒤덮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벳자타 못에 치유받고 싶어하는 많은 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다 치유해주시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답을 모릅니다. 제가 모른다는 것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주님께 묻고 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여지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빈구석에서 여러분들이 묵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벳자타 못에서 가장 오랫동안 앓는 이를 고쳐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치유는 물 없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5장입니다. 앞선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당신은 생명의 물이심을 밝히십니다. 이 여인은 물을 청하는 예수님께 물한방울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물론이고 이 여인도 해갈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물이시라는 것을 오늘 복음인 요한복음 5장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치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그 치유가 육적인 치유에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이 치유받은 이를 성전에서 다시 만나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우리는 복음을 대하면서 육적인 치유보다 영적인 치유, 영적인 위로, 영혼을 달래주시고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당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에서, 우리들 삶의 자리에서 치유, 위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청하며 이 미사 중에 기도합시다.
첫댓글 육적인 치유보다 영적인 치유, 영적인 위로, 영혼을 달래주시고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을 만나기를... 아멘...
성당중심으로 모이고
성당중심으로 퍼져나가라~
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