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살지 않으면 빈부귀천 막론하고 지옥간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지도를 받는 성도들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 신학만 배워 익힌 교주 같은 목사들로부터 태어난 교인들이, 육적인 부강과 권력과 쾌락만 추구하는 종북 반역 세력들과 함께 저들이 저지르는 모든 죄악을 구경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복들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복이 바로 하나님의 깊은 속까지도 깨달아 알 수 있는 성령과 함께 사는 복입니다.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의 죄를 속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하늘의 하나님께 아뢰어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각종 고통과 환난에서 건져내어 달라고 하여도 하나님이 그들의 간구를 좀처럼 들어주시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서 벗어나기 이전의 죄인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풍요와 평안을 주어도 그 풍요와 평안을 범죄하는 쪽으로만 악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이 저지른 죄악 때문에 참혹한 고통으로 죽어간 일들을 뼈저리게 느낀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의 실체와 같은 성령을 그들의 심령에 부어 주셔서 예수님과 같은 언행으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 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한복음16:8~11) 하심 같이, 예수님이 자기 대신 사람들의 스승되신 성령의 주된 역사는 예수님처럼 세상을 책망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이런 성령과 함께 하지 않고, 사람의 지식으로 성경말씀을 해석한 신학자들의 제자 노릇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 신학 속에 만연하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온갖 불신의 바이러스와 또 죄악으로 얼룩진 세상 기득권자들의 뜻에 맞는 성경 해석만 하는 신학에 의해 태어난 목사와 교인들이 교회를 장악하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저지르는 온갖 죄악에 대해서는 이들이 책망치도 않거니와 또 세상 사람들이 저지르는 온갖 죄악에 대해서도 책망치 않고, 그저 학문적 지식으로 가공된 인조 믿음에서 태어난 거짓 영의 역사만 믿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성령의 권면은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육적인 간음과 세상과 짝하는 영적인 간음이 팽배하게 되어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구해 준 사건만 미화시켜 자신들의 각종 간음 행위를 두둔해 자위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짝한 오늘날의 교회 교인들이 "예수님도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감히 나의 육적인 간음 행위나 영적인 간음 행위를 단죄할 수 있느냐?"면서 되리어 콧대를 높이 세우고 자랑합니다. 예수님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변호해 살린 것은, 간음죄 자체를 두둔해 보호한 것이 아니라, 본남편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유혹자 사단과 간음 상태에 놓인 인간들의 정의와 도덕으로는 세상의 그 어떤 악인도 죽일 자격이 없고,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점도 흠도 없으신 예수님의 정의로만 세상 악인을 멸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뿐, 결코 보편화된 간음죄를 두둔해 묵인하려는 뜻에서 그 여인을 단죄해 책망치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죄악으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살리고 구원하려 오신 예수님 앞에서, 죄인된 그들이 자신들에게 적발된 간음한 여인을 데려와 예수님이 보는 앞에서 죽이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교만한 자식이 부모님과 뭇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버릇 없는 형제들을 붙잡아도 놓고 따귀를 때리는 짓과 같으며, 또 경찰들 앞에서 악한 시위꾼들이 범법자를 붙잡아다 놓고 마구 짓밟는 짓과도 같습니다. 부모님(경찰) 앞에서 범죄한 형제(이웃)들의 죄를 심판(응징)하는 자식(군중)들은 범죄한 자식들보다 더욱 교만무례한 범법행위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경찰)이 부재한 상황하에서 형제(이웃)들의 잘못이 발견되었을 때에 부모님과 같은 심령으로 꾸짖고 책망하는 일은 정당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을 기준 삼아 남의 언행을 임의로 판단(비판, 정죄, 단죄, 교정)하는 짓은 죄악이지만, 모두의 부모가 되신 하나님의 말씀(옳고 그름)을 근거로해 남들의 언행을 판단하는 것은 진리의 책망이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령으로 이웃(형제)들을 꾸짖고 책망해 바른 길을 가도록 권면(경고)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과 국법만이 할 수 있는 고유독특한 권한, 곧 만물의 생성소멸이나 또 사람들의 생사화복을 임의로 좌우할 권한(자격)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 길로 행하면 하나님께 매맞는다 하여 꾸짖고 책망(판단)할 권한(자격)은 있어도, 그 길로 행한 자는 죽어 마땅하다 하여 하나님(국법)처럼 임의로 응징(형벌)할 권한(자격)은 없습니다.
점과 흠이 없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간음한 여인을 즉결심판할 권한(자격)은 있었어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계명이 저들의 죗벌을 대신해 죽으려 오셨기 때문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한복음 8:11)는 정도의 경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의 죗값을 대신 지고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치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이 같은 경고의 뜻이 담긴 판단(정죄)조차도 이웃들에게 말해 주지 않습니다. 즉 간음한 여인더러 "그 같은 짓의 종점은 참혹한 지옥형벌에 이르게 되니 이 후부터는 그 같은 죄를 범치 말라"는 경고성 책망을 일체 말해 주지 않습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누가복음 6:37~38) 하신 말씀과 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누가복음 6:42) 하신 말씀을 사단의 뜻으로만 알 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다윗의 간음 행위에 대해 나단 선지자처럼 꾸짖고 책망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을 통칭(通稱)해 '죄인'이라고 단죄하고 정죄하고 책망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회개하라!'는 경고의 말씀은 죄악의 길로 행하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을 비판이라고 하며 정죄라고 하며 또 남의 눈에 티를 빼려고 하는 뜻의 교만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까? 오죽 하면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태복음 5:13~14) 하셨겠습니까? 세상이 캄캄하다고 단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세상이 부패타락한 소돔·고모라와 같다고 정죄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인이 예수님의 언행을 신실하게 좇아 실행하게 되면, 반드시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 모두가 죄악 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참된 성도들은 유대 교회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의 뜻과 성품에 어긋나도록 성경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칠 땐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고 책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경건에 입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위해 국정에 임할 때에는 그것이 나라를 망치는 짓이라고 지적하고 책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을 탐하는 부자들과 학문 지식의 선생들이 육적인 부강을 제일로 취급해 가르치고, 하나님의 정직과 의와 경건을 무시할 때에는 그 일마저도 책망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남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거나 또 국법에 근거하여도 오직 자기 개인과 정당과 사설 단체의 뜻과 야욕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을 할 때에는 그게 바로 사단의 뜻으로 말미암은 이적행위 짓입니다. 자기 눈의 들보가 된 악은 뽑지 않고 남의 잘못만 찾는 자들이 바로 종북 반역 세력들입니다. 비판이나 정죄가 자신의 뜻으로 말미암으면 죄악이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국법)에서 비롯되면 공의가 됩니다. 예수님이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한복음 5:30) 하심 같이, 국법에 근거하지 않고 제 임의대로 판결하는 말은 모두 불의하지만, 예수님처럼 법에 기록된 판결문을 대독(代讀)하는 뜻의 책망은 모두가 정의가 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요한복음 8:14~18) 하심 같이, 자신의 뜻에서 발생된 말은 하나님의 뜻에서 발생된 공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증거를 받지 못하는 거짓말이 되지만,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 책망(정죄, 단죄)만은 반드시 하나님의 증거를 받습니다.
오늘날의 목사들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정직하고 정당한 공법(公法)인 성경 말씀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주면서도 그 말씀으로 이웃들에게 빛과 소금 노릇만은 하지 못합니다. 즉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들만 깨끗하려 하고, 처·자와 친인척, 교회 교인들, 직장 동료들, 정치인들과 부자들의 음란방탕한 짓은 일체 책망하지 못하고, 또 저들이 살인자 김정은을 존경하는 흉악한 들보가 박혀 있어도 뽑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즉 남들이 걸어가는 발 앞에 함정과 올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그들에게 직고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남을 즐겁게 해 주는 아부만 착한 일로 취급하고, 남의 잘못을 책망하는 일은 남에게 상처 주는 악행으로 취급해 금지시킵니다.
목사들이 이 같은 그릇된 신앙을 교인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에 결국 오늘날과 같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혼란이 야기된 상태에서 경제적인 풍요만 누리면 그것을 태평성대로 취급하는 소돔·고모라인들이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도 인간들은 범죄하면 쫓겨나게 되었고, 또 소돔·고모라와 같은 낙원에서도 음란방탕하게 되면 유황불 세례를 받으며, 또 가나안 복지에 살게 된 이스라엘 민족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달아 죽이면 민족 전체가 나라를 잃고 세상 방방곡곡에서 유리방황하게 됩니다. 교인들이 사단처럼 하나님의 소유물만 사랑해 가지려 하고, 예수님처럼 이웃이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의인들로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망하는 이유는 물질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불순종)해 거역하는 영적 기근 때문에 망합니다.
사람이 재물과 기술이 부족해 망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불신 때문에 망하겠습니까? 세상의 재물만 탐하는 자들은 도적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 지키는 자들은 참된 자녀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해 지키는 분들입니다. 사단의 졸개된 종북 반역 세력들은 김정은의 지령을 목숨 바쳐 지키는데 반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목숨 바쳐 지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물들만 챙기려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불효불충한 자들에게 속을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세상 만민들 중에 뽑고 뽑아 정금 같이 점도 없고 흠도 없게 하시려고 하였건만, 저들은 하나님의 소유물만 탐하였습니다. '실세자 예수'에 기록된 지헤로 세상을 책망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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