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대산(564.4m)-구현산(鳩峴山, 581.4m)-쌍교산(雙轎山, 469m)
산행일 : ‘15. 12. 26(토)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창녕읍과 장마면, 계성면의 경계 산행코스 : 여초주유소→법성불원→쌍교산→전망바위→구현산→전망봉→석대산→여초저수지갈림길→신당리마을회관(산행시간 : 3시간 4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는 말이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살펴보고 일을 시작하라는 뜻이다. 이런 속담이 생각나게 하는 산이 바로 쌍교산과 구현산, 그리고 석대산이다. 산을 귀히 여기는 지자체에 있었더라면 대우를 받고 남았을 터인데도 등산로 관리가 허술한 창녕군에 자리 잡은 탓에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산은 웅장한 산세(山勢)를 자랑하지는 못한다. 또한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산 또한 아니다. 하지만 산길은 걷기에 좋을 만큼 순하고, 특히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바위지대에서의 조망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이만하면 다른 산들에 뒤질 게 없을 거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 개의 산 모두 정상석은 물론이고 산의 어디에서도 이정표 하나 찾아볼 수가 없다. 한번쯤은 꼭 찾아봐도 좋을 산이건만 선뜻 찾아가보라고 권할 수 없는 이유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 산행들머리는 현대오일뱅크 여초주유소(창녕군 창녕읍 여초리) 중부내륙고속도로(옛 구마고속도로) 창녕 I.C에서 내려와 좌회전하여 20번 국도를 타고 창녕읍내 초입의 오리정사거리(창녕읍 교리)로 온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1080번 지방도를 따른다. 읍내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공설운동장삼거리(창녕읍 퇴천리)’에서 5번 국도로 올라가 마산방면으로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만수판휴게소(창녕읍 여초리)가 나온다. 휴게소 방향으로 빠져나와 여초교차로 아래로 난 지하도(굴다리)를 통과하면 저만큼에 여초주유소가 보인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 주유소 앞에서 창녕읍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법성불원’ 앞까지 도로가 나있으나 협소해서 관광버스는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도로 왼편에 5번 국도가 나있으니 참조한다.
▼ 오른편에 ‘영광사’라는 자그마한 사찰이 보인다. 그 너머에 보이는 산이 잠시 후에 오르게 될 쌍교산이다. 몇 걸음 더 걸으면 ‘홍련화보살’이라는 간판을 단 또 다른 사찰이 나타난다. 여기에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될 법성불원까지 줄줄이 사찰이 늘어서 있는 걸 보면 인근 주민들은 불심(佛心)이 깊은가 보다. 아니면 무속신앙(巫俗信仰)에 관심이 많던가 말이다. 여염집을 개조한 것처럼 보이는 절집의 외형이나 간판에서 불심보다는 다른 뭔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 3~4분쯤 걷다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들머리 양쪽에 법성불원의 입구임을 알리는 입간판과 표지석이 마치 수문장(守門將)처럼 버티고 서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법성불원이 나타난다. 일반 여염집을 법당(法堂)으로 개조했다. 절집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는 조계종이나 천태종 등 주요 종단의 소속사찰에서 검색이 불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 절집 앞에서 마을 농로(農路)로 내려선다. 차량이 다닐 정도로 반듯하게 나있는 걸 보니 애초부터 농로를 타고 왔어도 되었겠다. 하지만 들머리가 어디인줄 모르니 하나마나한 얘기일 것이다. 다시 말해 법성불원 입구를 들머리로 삼는 게 편하다는 얘기이다.
▼ 농로로 내려서서 100m쯤 걸으면 왼편 산자락으로 난 임도(林道)가 보인다. 임도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 임도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만 가파르다. 하지만 이런 맘씨 좋은 길은 딱 묘역(墓域)까지다. 그러고 보니 임도가 아니라 묘역을 조성하면서 낸 사도(私道)였던 모양이다.
▼ 묘역 두 곳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오솔길로 변한다. 경사(傾斜) 또한 가팔라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팔라져 버린다. 하지만 오르는 게 고달프지만은 않다는 느낌이다. 이는 주변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심신을 맑게 해주는 솔향은 물론이려니와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가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35분쯤 지나면 가파르기 짝이 없던 산길은 그 기세(氣勢)를 조금은 늦춘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작은 바위전망대에다 올려놓는다. 장마면 방향으로 시야(視野)가 열리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별로 없다. 짙은 연무(煙霧) 때문이다.
▼ 조금은 여유로워진 산길을 오른다. 작은 바위들이 그 밀도를 더해가더니 드디어 쌍교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5분 만이다. 쌍교산은 옛날 큰 홍수가 졌을 때 산봉우리가 쌍가마 형상으로 남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하지만 이 전설(傳說)에는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홍수와 관련된 전설들은 보통 인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들먹인다. 봉우리의 생김새를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유독 그 봉우리만 물위로 떠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쌍교산은 인근의 산들보다 낮아도 한참이나 낮은 것이다.
▼ 잡목(雜木)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정상은 꽤 너른 편이다. 하지만 삼각점(청도 332) 하나만이 외로울 뿐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만일 ‘준·희’라는 아호(雅號)를 사용하고 있는 최남준씨의 정상표지판마저 없었더라면 정상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뻔 했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별로다. 올라왔던 방향으로만 시야가 열릴 따름이다. 아련히 흐르는 낙동강과 창녕평야가 나타나야겠지만 연무로 인해 눈에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 구현산으로 향한다. 완만(緩慢)한 능선을 따라 난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흙길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그 위에 솔가리까지 수북하게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건 숫제 양탄자가 따로 없다.
▼ 고운 산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다보면 잠시 후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산길은 바위 사이로 나있다. 하지만 앞서가던 집사람은 바위 위로 냉큼 올라서고 본다. 부쩍 손맛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집사람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 바위의 위는 멋진 전망대이다. 그냥 지나쳤으면 후회했을 뻔 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들이 무성한 산줄기들이 멋지게 펼쳐진다. 아마 화왕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들일 것이다. 그 왼편에 있는 창녕시가지가 훤히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오른편에서는 이따가 오르게 될 구현산과 석대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 조망을 실컷 즐겼으면 이젠 자리를 뜰 차례이다. 하지만 바위를 다시 내려갈 것까지는 없다. 조금 거칠기는 해도 곧바로 능선을 따라 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산길도 역시 고운편이다. 그리고 간간이 나타나는 바위들이 눈요기까지 되어주는 나름대로 재미가 쏠쏠한 구간이다.
▼ 그러다가 15분쯤 후에는 또 다른 전망바위에 이르게 된다. 지도에 ‘전망바위’로 표기된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486m봉은 어디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왔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바위 위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아까 보았던 왼편의 바위산들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데 아까보다 시야가 더 넓어졌다. 이번에는 화왕산의 주봉까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여전히 곱기만 하다.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여유로운 산길이 계속된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6분 후 안부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해버린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20분 남짓 치고 오르면 드디어 구현산 정상이다. 구현산은 ‘비슬산’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산의 생김새가 닭의 벼슬을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쌍교산에서 45분, 산행을 시작한지는 1시간35분이 지났다.
▼ 어렵게 올라선 구현산도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가 없기는 쌍교산과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누군가가 ‘구현산’이라고 쓴 자연석을 세워 놓았다. 일로 치면 사설 정상석인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옆에는 ‘정상표지판’도 세워져 있다. 최남준씨의 정상표지판도 나무에 대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긴 이곳 구현산은 화왕지맥(火旺枝脈)에 포함된 산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화왕지맥은 비슬지맥의 천왕산(619m)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열왕지맥의 663m봉에서 또 다시 갈라져 나온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는 구룡산(740.7m)과 관룡산(754m), 화왕산(758m), 구현산(579m)을 품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쌍교산과 큰갓실산(122m)을 거쳐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의 낙동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총 도상거리 36.8km의 산줄기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현산에서 쌍교산 대신에 석대산을 거쳐 큰갓실산(122m)으로 연결시킨다. 난 후자에 믿음이 간다. 소문난 산꾼들의 흔적이 모두 석대산으로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는 조망이 터지지 않는다.
▼ 석대산으로 향한다. 오른편 방향이니 주의할 일이다. 왼편으로 갈 경우에는 화왕산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에는 비닐(vinyl)끈이 매달려있다. 아까 구현산에 올라올 때부터 보였던 끈이다. 아마 이 부근이 송이버섯의 생산지(生産地)인 모양이다. 끈은 몰래 들어가지 말라는 금(禁)줄일 것이고 말이다. 이런 금줄은 이후로도 심심찮게 보였다. 심지어는 비닐끈이 아니라 철조망을 쳐놓기까지 했다.
▼ 정상에서 10분쯤 내려오면 양쪽으로 길의 흔적이 나있는 안부이다. 오른편은 여초리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신경 쓰지 않고 맞은편 능선으로 향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 10분쯤 올랐을까 시야가 열린다. 조금 전에 올랐었던 구현산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정삼각형으로 생긴 것이 ‘비슬산’이라는 다른 이름을 낳게 한 ‘닭의 벼슬’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 잠시 후 능선삼거리에 이른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석대산은 오른편 방향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왼편, 즉 삼성암 방향으로 일단 가볼 것을 권하고 싶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바위로 이루어진 뛰어난 전망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위에 올라서면 일망무제(一望無題)로 조망이 터진다. 잠시 후에 오르게 될 석대산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 반대편에는 화왕산과 관룡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산줄기가 버티고 있다.
▼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오른편(전망대에서 바라볼 때에는 왼편)으로 향한다. 그리고 잠깐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석대산 정상이다. 구현산에서 이곳까지는 30분, 산행을 시작한지는 2시간 5분이 지났다.
▼ 석대산 정상도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누군가 정상을 이루고 있는 바위에다 ‘창녕 석대산’이라고 써 놓았다. 그리고 주변 나뭇가지에는 ‘화왕지맥 석대산’이라고 쓰인 정상표지판도 매달려 있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바위로 이루어진 덕분일 것이다. 방금 전에 올랐던 전망바위에서 보았던 조망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다만 석대산 정상과 전망바위가 서로 바뀌어 나타날 뿐이다.
▼ 정상에서 만난 끈질긴 생명력, 거름기 하나 없는 바위틈새에서도 개의치 않고 꿋꿋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광채가 날 정도로 푸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오늘도 난 또 다른 지혜를 배운다.
▼ 정상의 바위지대를 왼편에 끼고 돌며 하산을 시작한다. 마사토로 이루어진 산길은 미끄럽기도 하지만 길 찾기 또한 쉽지가 않다. 눈길 가는 곳마다 모두가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방법은 단 하나이다. 그저 능선만 따른다고 생각하고 진행하면 된다.
▼ 능선은 꽤나 길게 이어진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길이다. 하지만 중간에 몇 곳의 바위전망대가 나타나면서 그런 우려를 불식시켜 준다. 가야할 능선과 지나온 능선, 거기다 창녕읍시가지까지 조망되는 등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또한 괜찮은 편이다.
▼ 이어지는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중간에 제법 높은 봉우리도 나타나지만 크게 힘들지는 않기에 작은 오르내림으로 묶어 두었다. 그런 길은 40분 가까이나 계속된다.
▼ 석대산을 내려선지 40분 쯤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옛날에 봉수대 (烽燧臺)라도 있었던 양 돌들이 수북하게 널려있는 지점이다. 계속해서 능선을 따르는 길이 훨씬 더 또렷하지만 우린 왼편 산비탈로 내려선다. 취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찾던 산악회 버스가 신당리에 주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신당리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가파르다. 벼랑수준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내려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솔가리가 두텁게 쌓인 흙길은 미끄럽지 않고, 거기다 소나무들이 빼꼭히 들어차있어 내려서는 게 여의치 않을 경우 나무를 붙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 15분 정도를 가파르게 내려서면 묘(墓)가 보이면서 산길은 편안해진다. 그리고 잠시 후 임도에 내려선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만일 신당산성(新堂山城)을 둘러보고 싶을 경우에는 임도를 따르지 말고 건너편 산자락으로 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84호인 신당산성은 가야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는 원형의 퇴뫼식 산성(山城)이다. 내성 450m에 외성이 650m이지만 전체적인 형태만 남아있을 뿐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다. 지역 주민들은 이 성을 목마성(牧馬城)이라 불러왔고, 계성이 옛 현의 소재지였던 것으로 보아 한 때 말을 키운 듯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 하지만 난 임도를 따랐다. 갑자기 산행코스가 변경된 터라 이곳에 대한 지리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당연히 난 ‘신당산성’이라는 새로운 앎을 놓쳐버리게 된다.
▼ 하지만 대신에 멋진 경치를 볼 수는 있었다. 임도의 끝자락에 있는 저수지에서 수면(水面) 위에 그려진 풍경화를 구경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에서 왼편에 보이는 산이 석대산이고 신당산성은 오른편 산봉우리에 있다.
▼ 산행날머리는 신당리마을회관 저수지에 내려서면서 산행은 대충 끝났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신당리마을회관은 아직도 20분 정도를 덜 걸어야만 한다. 꽤나 먼 거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장지대와 띄엄띄엄 서있는 민가들을 지나면 저만큼에 신당리 마을이 보인다. 마을 안길을 통과할 경우 회관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이를 알 수가 없는 우린 부득불 5번국도 아래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물어물어 마을회관을 찾으면서 오늘 산행을 마친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40분이 걸렸다. 온전히 걷는 데만 걸린 시간이라고 봐도 좋을 듯 싶다. |
출처: 가을하늘네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