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듣는 것
우리는 배움에 대한 경험이 매우 제한적인 편이다. 배움에 대한 대부분의 경험이 평가를 받기 위한 시험공부로 점철되어 있다. 잘 배워서 잘 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을 좇아 능동적으로 배워나가는 경험은 부족하다. 그래서 배움의 ‘즐거움’을 미뤄둔 채 배우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는 성과 또는 성장(발전)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내면의 성숙, 곧 창의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만약 그리기에 관심이 있다면 익숙한 관점을 달리하여 새로운 배움의 경험으로 일상을 삶을 더 충만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리기’를 권하며 그리기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가보려 한다. 당장 그리기를 시작하지 않더라도 그리기에 관한 즐거운 엿보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언젠가 당신이 있는 곳, 당신이 당신의 시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도록. 세계와 교감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당신을 기대한다.
▲ 여기 저기에 내가 있었던 흔적 _ 75JEROME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에 대한 고민 또는 당신의 모든 시작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너무 멀리(만) 두는 경향이 있다. 원하고 바라지만 쉽게 손대지 않는다. 거기에 함부로 몸을 두거나 발을 담그지 않는다. 말과 행동을 최대한 미룰 만큼 미룬다.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신중함 또는 겸손함의 태도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주변의 시선 때문이다. 눈치를 보느라, 내 진심이 남들에게 왜곡되어 전달될까 봐, 그래서 혹시 무슨 안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까, 나에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미리 모든 것을 걱정하느라 ‘원한다’,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원하고 솔직하게 표현해 놓기에는 나는 내 주변을 쉽게 믿지 않는다. 시작이 항상 어렵다.
그러나 ‘그리기’를 시작하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듣는 일’이다. 그것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위대한 풍경화가가 소박한 풍경에서 중요한 것을 표현하듯, 위대한 사상가는 소박한 것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소박하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의 겸손함을 말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 중요한 것이 소박한 것에 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우리의 병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하는가. 니체는 그것을 “단번에”, “성급하고 폭력적으로” 성취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사람들은 사소하고 작은 문제들과 시험들을 무시하고 지름길을 원하다. 그러나 한 번 믿음을 주는 것으로 영생을 약속하는 기독교처럼 그런 지름길은 우리를 속인다.” _ 언더그라운드 니체 / 고병권
고병권 선생님의 책 ‘언더그라운드 니체’에 있는 이 글은 모든 ‘시작’을 앞둔, 그리고 ‘그리기’를 시작하기를 이어가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가 된다. 그리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면 방법, 기법, 비법을 일단 생각하지 말고 욕구를 바로 행위로 옮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을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듣는’ 것에 두는 것은 매우 건강하다. ‘진정 소중한 것이 소박한 것에 있음’을 공감한다면, 지금 나에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자. 그렇다면 모든 시작, 그리기의 시작을 위한 정확한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다. 저 멀리만 있던 ‘그리기’를 눈앞으로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시공간에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당신이 감각하는 세계도 그러하다. 때론 관념은 감각을 방해하기 때문에 지나친 생각(걱정)은 실재를 놓치게 한다. 그릴 ‘생각’이 오히려 그리기를 방해한다. 많은 화가들은 그들의 그리기를 잘 모른 채 ‘그리기’를 시작한다. 미지에 이끌려 무지한 채로 다가선다. 나를 이끄는 그 무엇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몸을 움직여 볼 뿐이다. 종이 위에는 감흥(미지)에 반응하는 신체의 움직임이 물리적인 변화를 만들어 낸다. ‘그리기’보다는 ‘그려지는 것들’을 관계 속에서 계속 관찰한다.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그저 호기심을 따라간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인정한다. 무지와 불확실성의 상태를 피하지 않고 계속 머무른다. 미지와 무지를 연결한 상태를 때론 오래도록 유지한다. 머무르고 기다린다. 하지만 그 기다림과 머무름은 매우 적극적이다. 온 신경을 쏟는다. 효율을 중시하는 시선에서는 이러한 상태가 바보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는 그 상황 안에서 자신의 실존을 경험한다. ‘내가, 여기, 있음’을 확실하게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지각하는 것, 보는 것의 더 깊은 행복은 효율성의 부재에 있다. 사물을 착취하지 않고 그에 머물러 있는 오랜 시선에서 깊은 행복이 나오는 것이다.” _ 투명사회 / 한병철
몸을 통하지 않은 지식(앎)은 힘이 없다. 허황되다. 우리의 몸은 어디에 있는가.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듣는 데에 있다. 그리기에 대한 어색함, 부담, 두려움은 아직 내게 없는 그리는 방법, 기법, 비법으로 관심을 돌리게 만든다. 보이는 것을 보지 않고, 들리는 것을 듣지 않게 한다. ‘그리기’를 방법, 기법, 비법 그 너머로 아주 먼 곳으로 보내버린다. 욕망하는 것을 행동하지 못하는 신체는 막연하고 불행하다.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하면 미지는 당신에게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 세계는 당신을 부른다. 그 소리는 은밀하고 감미롭다. 그 부름에 응답하고자 하는 마음 즉 용기가 생긴다. 용기는 이제 몸을 움직이게 만들어 경험이 일어난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배움이다. 배움은 이렇게 생생한 중에 탄생한다. 그 생생한 과정이 바로 ‘보이는 것을 보는 것, 들리는 것을 듣는 것’이다. 멀리 있는 ‘그리기’를 눈앞으로 가져오는 것,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함이다.
▲ 여기 저기에 내가 있었던 흔적 _ 75JEROME
이러한 것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반복과 훈련이 필요하다. 호기심과 자신의 욕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긴 여정을 생생한 즐거움으로 만들라.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듣는, 소소한 것이 소중해지는 즐거움.
▲ 전시회 '행위 탐구자의 모험' 포스터 _ 75JEROME
매우 복잡하고 정신없이 빠른 세계에서 신체는 희미해진다. 이러다가는 내 인생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다. 아무리 바쁜 중에라도 한 번씩 몸(감각)을 깨우자. ‘내가, 여기, 있음’을 확인하자. 그저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듣는 나만의 고요를 만들자. 우리가 언제 만나게 된다면 나눌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다.
제롬 (www.75jero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