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일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활기차게 시작했는데, 끝이 별로 시원찮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용두사미(龍頭蛇尾)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흐지부지’하다고 할 때도 많은데요.
이 단어는 홀로 부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고,
‘~하다(되다)’와 어울려 서술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흐지부지’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순우리말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한자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이와 같이 우리말에는 순우리말 같은 한자어, 혹은 한자어에서 유래하여 우리말로 굳은 것 등 다양합니다.
순우리말 같은 한자어는 ‘장작(長斫)’, ‘죽(粥)’과 같은 단어이고,
순우리말 같은 것은 ‘어영부영’, ‘흐지부지’ 등이 한자어에서 온 것들이 있습니다.
일이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시작되었는데, 그 결과가 분명하지 않은 때에,
우리는 그 일이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1999)에는
'확실하게 끝맺지 못하고 흐리멍덩(맑지 못하고 아주 흐릿함)하게 넘기는 모양'이라고 풀이되어 있지요.
(참고로 북한에서는 ‘흐리멍텅’이라고 함)
북한의 『조선말대사전』(1992)에는 이 뜻 이외에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걸고들거나 말썽을 부리는 모양'이라는 풀이도 있는데,
용례가 없어서 그 쓰임을 알 수 없습니다.
'흐지부지'는 부사로도 쓰이지만, '흐지부지하다'나 '흐지부지되다'란 표현을 더 많이 씁니다.
우선 부사로 쓰인 예를 하나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이 처음에는 잘 진행되다가 뜻하지 않은 어려움으로 흐지부지 끝나는 일이 많다.”
일반적으로는 ‘흐지부지하다’ 혹은 ‘흐지부지되다’의 서술어로 쓰인다.
예를 들면,
“이번 집회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으니 어쩌면 좋아!”와 같다.
‘흐지부지’와 비슷한 형태의 단어로는
'애지중지(愛之重之), 감지덕지(感之德之), 전지도지(顚之倒之), 좌지우지(左之右之)' 등이 있습니다.
‘흐지부지’라는 말은 원래 '휘지비지(諱之秘之)'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1920년에 간행한 『조선어사전』(조선총독부)에는 '흐지부지'란 어형은 등재되지 않고,
원래의 어형인 '휘지비지(諱之秘之)'가 실려 있습니다.
그 뜻은 ‘기탄(忌憚)하여 비밀히 하는 것’
즉 ‘꺼려서 비밀히 하는 것’을 줄여서 '휘비(諱秘)'라고 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어서 문세영의 『조선말사전』(1938년)에도 이 '휘지비지(諱之秘之)'가 실려 있는데요.
‘휘지비지’가 ‘흐지부지’로 변하여 현대에 전해진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흐지부지’라는 단어는 20세기 초에 와서 정착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훈의 계몽소설 <상록수>(1935년)에 보면 ‘히지부지’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흐지부지’보다 앞에 나타난 어형으로 보입니다.
‘회가 히지부지 끝이 날 무렵에야, 동혁은 서기석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동화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바람에, 윳노리판은 히지부지 흩어지고’
‘휘지비지(諱之秘之)’는 ‘본래의 뜻을 사리고 조심하여 감춘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공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공자 왈”이라고도 하지 않고 “공모 왈”이라고 읽기도 하였는데요.
그런가 하면 요임금이나 순임과 이름이 같을 때 같은 글자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본래의 의미를 조심스럽게 말했던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김정은과 같은 이름을 쓸 수 없다고 해서 개명을 명령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피휘(避諱 : 국왕, 조상, 성인이 쓰는 이름, 국호와 연호 등에 같은 글자를 쓰지 않음.
또는 그러한 관습. 존중받아야 할 대상의 이름을 범하지 않음)라는 말이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휘지비지’라는 용어에서 보는 것처럼 글자(흐지부지)와 의미가 변질되어
‘마무리를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어가는 것을 이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언어는 항상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