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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일 월요일 수호천사 기념일
제1독서 : 탈출 23,20-23
복 음 : 마태 18,1-5.10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몇 년 전에 기분 좋지 않은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저를 화나게 했고 또 너무 억울했습니다.
글쎄 예전에 있었던 본당에서 제가 성당 돈을 많이 챙겼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문으로 넘기려고 했지만,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억울했습니다.
당시 본당에서는 성당 옆 건물을 매입하느라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외부 강사료, 방송 출연료,
그리고 책 인세까지 모두 성당 수입으로 넣었었습니다.
혹시라도 신자들 부담을 줄 것 같아서 축일 행사도 단 한 번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당 돈을 제 것인 양 챙기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고 있다고 하니
억울한 것을 넘어서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 상황을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저를 믿어주었던 많은 신자 덕분이었습니다.
잘 모르는 몇 명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면서,
대부분의 신자는 저를 믿는다면서 힘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다른 이에게 믿음과 희망을 전하는 사제로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즉, 저도 다른 이의 수호천사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예수님을 떠올린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억울하다고 화를 내던 저였지만, 주님의 억울함과 비교하면 저의 경우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또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인 인간에게
억울한 판단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하십니다.
아무 죄 없는 분에게 죽을죄를 지었다면서 난리 치는 인간의 죄악에 얼마나 억울하셨을까요?
죄 많은 저의 경우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비난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낮아지지 못하고
그만큼 나를 드러내려는 욕심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회개해서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어린이는 단순합니다. 이것저것 재면서 자기 이익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그런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어른을 따릅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겸손한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호천사가 필요합니다.
어렵고 힘든 이 세상 안에서 나를 믿어주고 희망을 전해 줄 수호천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과 희망이 가득할 수 있도록 나 역시 다른 이의 수호천사로 힘껏 일해야 합니다.
수호천사는 사람을 선으로 이끌며 악에서 보호하는 천사라고 하지요.
따라서 악을 피하고 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내 이웃의 소중한 수호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의미 있는 고통은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자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류시화).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반영억 라파엘 신부
“천사”라는 말은 어떤 존재의 본성이 아니라 기능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천사는 “모두 구원을 상속받을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된 시중드는 영들”(히브1,14)입니다.
그리스도의 협조자들이 된 인간을 보호합니다(마태18,10).
그들은 하느님께 성도들의 기도를 전달하고, 의인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루카16,22).
그리고 자기들의 지휘자인 미카엘과 더불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태초부터 사탄과의 사움을 계속합니다(묵시12,1-9).
모든 천사들은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하나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천사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각 개인의 인생 여정을 지켜주고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하도록
지정하신 영적 존재를 수호천사라고 합니다. 수호천사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세워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주인공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린이같이 된 사람입니다.
어린이가 지닌 가장 큰 특성은 의존성입니다.
어린이는 어리면 어릴수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부모의 품에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처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 높은 지위에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을 높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위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마르10,21).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태19,27)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관념, 틀, 명예욕, 지배욕, 물질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주님께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늘나라의 주인이 어린이가 아니라 ‘회개하여 어린같이 된 사람’이라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만 의지하는 사람은 복됩니다.
워즈워드는 ‘어린이를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이의 솔직함과 겸손, 단순함, 신뢰, 특별히 의존성 안에서 한 수 배우시기 바랍니다.
키가 커서 큰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차지해서 큰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가끔은 사람을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으로 구별해 봅니다.
든 사람은 배운 것이 많아서 학식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당해 분야에서 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난 사람은 이름이 알려져서 누구나 아는 사람입니다.
당해 실무 분야에서 뛰어나게 실무 처리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된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배운 것이 없어도 인간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꼼수보다는 원칙을 살아갑니다. 곧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앞에서 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레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었을 때를 뜻합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을 때도 ‘유레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손님 신부님들이 신문사에 머물 때였습니다.
아침에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기로 했고, 9시에는 운동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하에 하수관이 막혀서 물이 넘쳤습니다. 그때 저에게 ‘유레카’가 있었습니다.
24시간 막힌 하수관이나 싱크대를 뚫어 주는 회사가 있었는데 전화번호를 알았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8시까지 온다고 합니다.
기사 분이 큰 기계를 가져와서 막힌 하수관을 시원하게 뚫어 주었고,
저는 다른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신문기사에서 뜻밖에 좋은 글을 찾았을 때도 ‘유레카’라고 하겠습니다.
평화신문 9월 10일자 지면에서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갈등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그 어원은 몰랐습니다.
갈은 칡나무를 뜻합니다. 등은 등나무를 뜻합니다.
칡나무는 왼쪽으로 꼬는 습성이 있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꼬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칡나무와 등나무가 만나면 좀처럼 풀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내용을 읽으면서 갈등이 풀기 어렵구나라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이 역시 ‘유레카’입니다.
인간관계에도 참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교회는 인간관계를 꼬이게 하는 대표적인 것을 칠죄종이라고 합니다.
일곱 죄의 뿌리가 얽히고설키면 인간관계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물론 하느님과의 관계도 멀어집니다.
대표적인 죄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 때문에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분노도 있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인색이 있습니다.
부자라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유함에도 인색하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기가 있습니다.
시기 때문에 카인은 동생을 죽였고, 시기 때문에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나태도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한 처녀는 신랑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지만,
게으른 처녀들은 신랑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탐욕이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함께 살아야 할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있습니다.
탐욕은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 됩니다.
식탐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인병 중 대부분은 과식에서 시작됩니다.
음욕이 있습니다.
다윗은 음욕 때문에 충실한 부하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이 갈등은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이 갈등은 어쩌면 숙명처럼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유레카’는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회개와 겸손은 갈등을 풀어내는 열쇠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루카복음 15장은 ‘회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되찾은 동전, 되찾은 양 그리고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유다와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배반의 결과는 달랐습니다.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하였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이는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천사는 날개가 달린 생명체가 아닙니다.
천사는 이웃에게 ‘유레카’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얽히고설킨 갈등을 풀어주는 사람이 수호천사입니다.
주변을 보면 이웃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수호천사입니다.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수호천사입니다.
오늘 하루 이웃을 위해서 ‘유레카’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이웃을 위해서 ‘수호천사’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하느님께서는 ‘작은이들’ 하나라도 그지없이 존귀하게 여기신지라
그들의 수호천사들을 두어 당신과 함께 있도록 하셨음을 말해줍니다.
곧 천사들이 존귀한 존재인 것이라기보다 천사들을 붙여 보호해야 할 만큼
인간이 존귀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서로 송사하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1코린 6,2-3)
그렇습니다. 그날이 오면, 천사들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천사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이토록 인간은 존귀합니다.
이는 <시편> 8편을 떠 올려줍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시 8.5-6)
그렇습니다. 영광과 존귀의 관이 천사에게 씌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인간에게 씌워진 것입니다.
결국, 천사는 하느님이 되지 못하지만,
인간은 하느님이 되는 하느님 되는 영광과 존귀의 관이 씌워졌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참으로 존엄합니다. 그지없이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이 존귀함을 잘 보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귀함도 잘 보호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인간의 존귀함은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에서 오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인간의 존귀함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인간의 존엄을 평가하거나 도구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존귀한 존재로 존중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나가야 할 사명도 부여받고 있음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혹 우리의 관심이 ‘큰 사람’에게 있지는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볼 줄 아는 눈입니다.
곧 우리가 “큰 사람이냐 작은 사람이냐?”가 아니라,
하느님께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이냐?”를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내 형제가 나에게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또 내가 내 형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주님!
무엇을 하든 당신을 지향하여 일하게 하시고,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당신의 이름으로 하게 하소서!
모든 주어진 것을 당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드리는 감사가 되게 하소서!
오늘, 나의 모든 삶이 당신께 바치는 기도가 되게 하소서! 아멘.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라.
조욱현 토마스 신부
오늘 교회는 수호천사 기념일을 지내고 있다.
수호천사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파견되어
그를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선을 행하도록 이끌어 주는 사명이 있는 천사이다.
예수께서는 아무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신다.
“너희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10절).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1절)라고 묻는다.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는, 제자들처럼 자신을 높이지 말고
어린이들처럼 자신을 낮추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다.
오직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겸손을 촉구하신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4절).
예수께서는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자들을 예수님의 처신과 명령,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5절)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라 하신다.
예수께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 선행이
바로 당신 자신에게 베푼 선행으로 간주하신 최후의 심판(마태 25,31-46)을 연상케 한다.
물론 이 구절이 앞의 내용, 즉 겸손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아도 마태오는 여기에 수록하고 있다.
아마 그것은 이러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그만큼 낮추지 못하면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없으므로 여기에 수록하고 있을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10절)은 마르코 복음에서는 주님을 가까이 따르던 제자들이었다.
여기서는 마태오 교회의 미천한 교우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그리스도 신앙을 무너뜨려서도 안 되고 그들을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염려하는 천사들이(토비 5,6-7.22; 사도 12,15)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기”(10절) 때문이다.
이 천사들은 하느님 가까이서 시중드는 매우 높은 천사들이다.
이 천사들은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그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을 하느님께 고발하기도 하는 자들이다.
우리 자신을 우리 스스로 낮추어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우리가 우리 형제를 업신여김으로써
또한 그들을 창조하신 하느님까지 멸시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인간은 바로 보이는 하느님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나의 수호천사
박상대 마르코 신부
1983년 3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신학대학의 페르디난트 홀뵉 교수는
《천사론》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여기서 교수는 오늘날 가톨릭신자들의 日常에서
천사들에 대한 인식이나 의식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그렇다. 과거보다 현대에 들어 천사들에 대한 공경은커녕,
언급조차 회피하고 존재마저 의심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이런 현상은 성전 건축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중세기부터 근대 이전에 봉헌된 유럽의 성전들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천사들의 성상이나 성화들이 요즘 현대식 성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만 의존하려는 유행이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서에도 벌써 스며든 것인가?
홀뵉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副題로 ‘천사들과 성인들의 통공’을 언급하고 있는데,
천사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시다.”하고 외치면서(묵시 4,8)
성인들과 함께 천상 예배를 드리며, 지상에서도 수 많은 영혼들과 함께하여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하며, 그들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려바치고
때로는 영혼들의 눈에 보이게 나타나기까지 한다는 확고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또한 수많은 성인들이 천사, 특히 자신들의 수호천사와 함께 생활하였으며,
그들에 대한 공경과 사랑이 두드러졌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과 친교를 나누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성인들은 천사의 현존에 대한 啓示된 진리를 직접 생활로 보여준 사람들이다.
이미 1215년 제4차 라테란공의회와 1870년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천사의 현존을 교의상의 진리로 밝힌 바 있듯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도
천사에 관한 진리는 교의상 최우선적인 진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내려온 고귀한 신앙유산(Depositum fidei)임을 천명하였다.
이 신앙의 유산은 교회 스스로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聖書에 계시된 확고한 진리라는 것이다.
9월 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에 언급하였듯이,
천사의 존재는 하느님의 使者로서 하느님을 섬기는 靈的인 존재들이며,
결국은 구원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들이다.(마태 18,10; 히브 1,14)
신구약성서를 통틀어 볼 때 천사들은 하느님을 보필하는 천상에서의 역할 외에도
세상에 파견되어 인간을 도와주고 이끌고 지켜주는 등
하느님의 인간 세상에 대한 계획을 다양한 차원에서 수행한다.
특히 수호천사에 대한 공경과 신앙은 중세기 이후 급속히 성장하여 전례 속에 자리를 잡았고,
클레멘스 10세 교황(1670-1676)은 10월 2일을 수호천사 축일로 정하여 온 교회가 기념토록 하였다.
천사의 본성에 대한 신학적 견해는 천사가 하느님으로부터 이성과 자유의지를 부여받아
하느님을 보좌하고 인간을 위해 수고와 도움을 주도록 창조된 순수 영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천사들의 숫자는 대략 세상에 사는 인간의 수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다니 7,10; 묵시 5,11)
수많은 천사들이 다 같지 않고 서로 다르며, 그 가운데 등급이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토마스 아퀴나스)
실제로 천사들 사이에 계급이 있다는 것은, 성서에 언급된 상이한 명칭들에서 드러난다.
거룹(Kerub, Kerubim; 이사 6,2.6), 천사(창세 19,1; 묵시 5,2 등 321번),
대천사(1데살 4,16; 유다 1,9), 권세의 천신과 능력의 천신(로마 8,18),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천신(골로 1,16), 권세롸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천신(에페 1,21)
케루빔 천신(히브 9,5) 외에도 이름으로 명명된 미카엘(다니 10,13; 10,21; 12,1; 유다 1,9; 묵시 12,7),
가브리엘(다니 8,16; 루카 1,11. 19. 26), 라파엘(토비 5,4; 6,5; 6,7) 등이 그것이다.
이를 근거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오스(200-265년경)는
9品의 천사들을 3등급으로 나눈 천사 계급을 상상하였다.
소개하자면 1등급에 세라핌, 케루빔, 죄품천사가 속하고,
2등급에 권품천사, 능품천사, 역품천사가..
3등급에 주품천사, 대천사, 천사들이 속한다는 것이다.
천사들이 부여받은 이성은 인간의 것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고도의 인지능력을 구사하며 사물의 본성을 직관하여 통찰한다.
그들의 자유의지 또한 인간의 것보다 틀림없이 뛰어난 것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간에서와 마찬가지로, 또는 인간에서 보다 오용될 가능성이 높다.
성서에 등장하는 악마와 나쁜 영신들은 첫 인간(아담)의 경우와 같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오용하여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의 죄를 저지름으로써 타락한 천사들이다.
(이사 14,12; 2베드 2,4; 제4차 라테란 공의회)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예수회 신학자 프란츠 수아레즈(1548-1617)는
하느님께서 천사들로 하여금 사람이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과 똑같은 흠숭으로 섬기라고 했을 때,
자신들의 교만함으로 이를 거부한 천사들의 무리가 사탄과 악령들이 되었다고 추론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해 주신 것도 모자라 모든 인간에게 각자의 수호천사를 붙여주셨다.
수호천사들은 구원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들이다.(히브 1,14)
천사들은 하느님의 파견 명령을 절대적인 겸손과 순명으로 보필하면서,
그들이 섬겨야 할 인간을 보호하고 지켜준다.
수호천사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인간들을
① 위험과 화로부터 보호하며
② 악마의 害로부터 지켜주며
③ 선한 생각과 관심을 불어넣어 주며
④ 사람을 위해 스스로 기도하고, 사람의 기도를 하느님 대전에 올려준다.
따라서 이런 수호천사와 함께 사는 어떤 사람도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마태 18,10)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수호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모든 신자들은
이런 점들을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야 할 것이다.
[출처] ‘벨라수녀 영화방’ : 오늘의 말씀 묵상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한모금 / 수도자매일복음묵상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이다. 생각만해도 고마운 날이다.
가족과 친한 이웃을 제외하고도 나를 응원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살맛 나는 세상으로 변화하는 듯하다.
방황하던 20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에
훌쩍 떠나고 싶어 걸었던 산티아고길.
그 길의 수많은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그 화살표가 하느님의 손가락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길을 헤매일 때마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발을 물집이 잡혀 고생하는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음식을 만들었다며 나누는 사람들...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 길을 걸어 내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 나는 그들의 작은 관심과 친절이 하느님의 손길 같고, 천사를 만난 것 같았다.
아마 낯선 곳에서 나의 감각은 예민해져 있었기에 모든 것이 새롭고, 감사했었나 보다.
다시 돌아온 일상 속에서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하느님의 깊은 현존을...
우리가 깨닫지 못할지라도 수호천사는 우리의 앞길을 지키고, 이끌어 주시리라 믿는다.
“보라, 내가 너의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탈출 23,20)
[출처] 마태 18,1-5.10 수호천사 기념일|작성자 베네지기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