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품 시계시장 점유율 1위 그룹인 리치몬트그룹은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리치몬트는 까르띠에, 피아제, IWC 등 11개 시계 브랜드로 이뤄진 대표적인 스위스 시계 그룹이다. 리치몬트 매출은 2011년(68억9200만유로)부터 2014년(100억2300만유로)까지 45%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스위스 시계 수출업계 성장률 15%의 3배에 달한다.
매일경제 '더 비즈 타임스' 팀은 최근 홍콩에서 열린 시계 박람회 '워치스 앤드 원더스(Watches & Wonders)'에서 리치몬트그룹 소속 4개 시계 브랜드 수장들을 만났다. 알렉산더 슈미트 몽블랑 시계부문 총괄, 안젤로 보나티 파네라이 CEO,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CEO, 알랭 짐머만 보메 메르시에 CEO가 그들이다.
리치몬트 주관으로 열린 이 박람회는 그룹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비결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 100억원대 시계를 만든 바쉐론 콘스탄틴 같은 초호화 상품 전략을 쓰는 브랜드부터 자신들은 명품시계에 사람들이 입문하도록 돕는 브랜드라고 말하는 보메 메르시에처럼 접근성 높은 브랜드까지 저마다 독특한 전략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룹 내의 다양한 색깔로 저마다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것이다. 박람회는 약 700명의 취재진을 비롯해 2만여 명의 방문객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CEO들에게 높은 성장의 비결을 묻자 이구동성으로 "어떤 외부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추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그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각기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니콜라 보스 CEO는 "경제 리스크에 따라 전략을 6개월, 1년마다 수정하는 것이 더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최근 세계 경기 침체 영향으로 스위스 시계 산업 성장이 둔화되는 것에 즉각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근시안적이라는 얘기다. 보스 CEO는 "지난 100년간 세계 전쟁, 불황 등을 겪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가장 좋은 전략은 장기 비전과 지속성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메 메르시에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브랜드 정체성은 '뛰어난 접근성을 지닌 명품'이다. 보메 메르시에는 넓은 가격 범위(100만원대부터 시작)를 제공하는 스위스 명품 시계로 유명하다. 비교적 낮은 가격의 시장을 계속 공략해 가는 것이 명품시계로서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건 아니냐는 질문에 짐머만 CEO는 "누구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배제적인 게 명품의 정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시계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이고, 그래서 매력적인 가격대에 높은 퀄리티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 시계 부상에 대응하는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대답이 나와 브랜드별 정체성을 드러냈다. 보나티 CEO는 "스마트 시계는 시계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대응 전략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보더라도 파네라이의 긴 역사를 떠올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애플시계는 이와 달라서 유용한 도구이긴 하지만 감성을 전혀 느낄 수 없다. 3개월쯤 쓰다가 기능을 모두 알게 됐을 때 소비자들은 질려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니콜라 보스 CEO 역시 "우리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고 기술적인 데이터를 주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스마트 시계가 우리에게 어떤 역경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지속적인 혁신을 중시하는 브랜드인 몽블랑은 스마트 시계 모델을 출시하며 적극적으로 시대 변화에 대응해 나가고 있다. 시계 부문 총괄인 알렉산더 슈미트는 "최근 2년 동안 가장 강력한 기술적 개발은 웨어러블 기기에서 왔고, 소비자들은 우리가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몽블랑은 '타임워커 어반 스피드 이-스트랩'을 출시했다. 이 제품의 시계 부분은 전통적인 기계식이지만, 시곗줄에 스마트 시계 기능이 들어 있다. 그는 "이 방식으로 당신은 앞(시계 부분)에서는 럭셔리하고, 뒤(시곗줄)에서는 스마트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스마트 시계와 명품 기계식 시계, 둘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혁신은 스토리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공통적인 의견을 보였다. 2000년부터 반클리프 아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있으며 제품 혁신을 주도한 보스 CEO는 "혁신의 과정은 대단히 단순하다"고 말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연결시키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는 "우리의 모든 프로젝트는 스토리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복잡한 기술을 먼저 떠올려놓고 개발을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동화와 같은 스토리를 떠올려놓는다면 그 이후에는 그 스토리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 인재, 디자인의 연결만이 남는다"고 말했다. 슈미트 CEO는 "혁신의 타깃을 미리 설정해둔다면 창의성이 거기까지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