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본질 본체 진리 이런것들에 대하여 우리가 현실에 맞다트린 수많은 실존의 문제가 더욱 切實히 있다는 것인데
맨날 무극태극을 주절대던 책상머리 서생이 현실의 복잡과 쓴맛, 회피할수없는 주색의 유혹을 대하고 실존의 험난과 장엄을 깨우친다는 것이니 그래서 실존주의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말하게 되었다 장애와 난관이 많으면 쉽게 실존주의자 된다 이차대전 이후로 시대정신의 발로처럼 실존주의가 나왔으니 세상의 부조리와 고통에 실존의 촛점이 맞춰졌는데
이는 四法印의 <일체개고> 사상과 비견되지만 화엄은 실존을 장엄(莊嚴) 이라 하였다 화엄의 관점에서 실존은 진리의 펼침 진리의 개화 이므로 이를 <장엄>이라 표할수밖에 없다 이처럼 실존의 관점이 하나가 아니다
실존주의에도 <시중 사상>이 들어있다 실존(일상의존재)이라함이 [時]이고 본질(진리의존재)이라함이 [중]이다 중이라는 형이상적 진실이 형이하적 실존에 작용함을 시중이라한다 그 모습은 락서 애성이 항상 <중>을 좇아 순역하는 모습과 같다
중이란 무엇인가? 곡신불사의 大坤엄마 그의 품 占士가 천지의 신명께 괘를 구할때 닿는바 대행스님의 주인공 자리이니
시중이란 화엄이 장엄이라 표하고 서양이 부조리라 표한 우리 비근한 실존 자리에서 락서 애성이 쉼없이 중을 찾아 동함이니
가령 우리의 실존에 상문과 사문을 피할 도리는 거의없다 그러니 상문과 사문 같은 대흉문이라도 그 쓰임을 찾아 행하는 지혜를 시중 이라고 한다 안회가 그경험을 가슴에 품고 소중히 했던 택호중용 시중의 지혜
중용21장, 자성명을 위지성이요 자명성을 위지교 이니 성즉명의요 명즉성의 라 하니 실존과 본질의 시중은 둘이 아니다
락서 애성이 쉼없이 중을찾아 순역하듯 격투가의 풋워크가 쉼없이 중을좇아 진퇴하듯 나와 나의 육친, 내 나라와 우리 천지의 유익함을 나의 실존과 일상에서 찾아 거하라함이 시중이다
잡물과 잡론 과도함이 넘쳐나는 대과의 시대 철벽을 마주한듯 급박한 문제들 시중의 지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