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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sody…….
바람에게 당신을 위한 곡을 연주하라 이르겠으니,
당신은 그저 조용히, 아무런 걱정 말고 들어주세요.
바다에게 당신을 위한 곡을 연주하라 이르겠으니,
당신은 그저 조용히, 밝게 웃어보이며 들어주세요.
들판에게 당신을 위한 곡을 연주하라 이르겠으니,
당신은 그저 조용히, 눈물을 그치고 들어주세요.
하늘에게 당신을 위한 곡을 연주하라 이르겠으니,
당신은 그저 조용히, 나의 사랑을 들어주세요.
당신을 위해서만 조용히 울리는,
자연의 랩소디…….-
바람이 소녀의 시야에 간신히 닿은 먼 나무에서 시작해서 소녀에게까지 다가왔다.
아니, 소녀가 본 것이 거기서부터일 뿐, 사실은 더 멀리 산 너머에 있는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바람이 어디서 시작했든 간에, 바람은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와 소녀의 어린아이
특유의 살짝 통통해 귀여움을 자아내는 볼을 스치고, 예쁘게 정리된,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나는 새하얀 앞머리를 살포시 쓸고 지나갔다.
"헤에-."
소녀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방금 스쳐지나간 바람에서 요정을 보기라도 한 것일까…….
아쉽게도 그것은 아니었다.
소녀는 아직 어리지만, 요정이라는 존재를 믿기에는 너무 커버린 것 또한 사실이었다.
소녀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온 이유는 저 아래에서 소녀가 있는 곳으로 들어오려는
다섯 남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루인, 루인!"
소녀는 밝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저 편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소년을 불렀다.
소녀의 표정에서 아까 전과 같은 무료함, 따분함 등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소년이 읽던 책을 덮어 옆에 있는 탁자에 올려놓고 소녀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밝게 한 마디만 했을 뿐이었다.
"언니, 오빠들이 왔어!"
똑똑-.
어떻게 맞추기라도 했을까, 소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소녀의 표정에서 문을 두드린 사람-아마도 사람들이겠지만-이 누군지 알아내고는
피식 웃더니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두드린 사람은 메리였지만 그 뒤에 서 있는 다섯 남녀는 루인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와아-, 언니!"
소녀가 안에서 뛰어나와 가장 앞에 있던 연한 갈색 머리와 케리틴 황가의 전통이라는
푸른 눈을 지닌 소녀에게 안겼다.
초대 황제가 블루드래곤이어서 그 피를 이어받아 내려졌다는 푸른 눈, 아무리 적통의
왕자라해도 푸른 눈이 아니면 황위에 오를 수 없다는 그런 고귀한 푸른 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케리틴 황가의 푸른 눈은 다른 눈들과는 다르게 맑아보이지만 계속
쳐다보면 깊어져 진한 청남색을 띄고 있는 바다같은 눈이었다.
"엘라 너는 벨라만 보이고 우리는 보이지도 않지?"
그러자 웃음기를 머금은 듯한, 소녀가 안긴 벨라라고 불린 소녀와 똑같이 생긴 소년이
물었다. 그러자 새하얀 백발의 소녀는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내젓고 모두를 안으로
안내했다.
갈색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1왕자 페른은 방금 전까지 루인이 앉아있던 의자에,
금발보다는 백발에 가까운 백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1공주 샤란은 페른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고, 약간 어두운 금발에 푸른 눈인 2왕자 아르는 테라스에 나가있을 때
엘라가 쓰는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햇살을 그대로 받은 듯한 금발과 푸른 눈을 지닌 2공주 벨라와 유일하게 현 황후의
머리색을 닮아 묵빛이 은은히 도는 검은 색의 머리와 역시 푸른 눈을 가진 3왕자
타렌은 침대 위에 걸터앉았고, 엘라는 벨라의 무릎 위에 앉았으며 그 옆에 루인이
서 있는 것으로 대강 자리잡기는 끝이 났다.
"에-, 근데 다들 왜 온 거야?"
엘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어보자, 샤란이 살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일 너희도 너희 영지로 떠나겠지만 우리도, 아니 정확히는 나와 벨라, 그리고
아르만 아카데미로 떠나게 되거든. 저녁은 숙부께서 다같이 먹자고 하셨지만
그 전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같이 점심이라도 먹었으면 해서."
"와아-, 마침 점심시간이구나! 그래, 그러자 그럼! 메리~ 밖에 있어?"
엘라가 손뼉까지 치며 좋아하자 기별도 하지 않고 불쑥 찾아온 다섯왕족은 다행이라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 밖에서 문이 열리며 메리가 들어오자, 엘라는 7인분의 식사를 아래 식당에 차려달라고
했고, 메리는 알겠다는 듯 작게 웃으며 문을 닫고 나갔다.
"근데 아카데미라니? 벨라언니 아카데미 다녀?"
아카데미라 하면 엘라도 수도에 올라오기 전에 루인을 통해 베이스탄 공작성이 있는
도시 바로 옆에 있는 마을에 작은 아카데미를 하나 지으라고 하고 올라왔기 때문에
자연히 관심이 그리로 향했다.
그러자 벨라는 특유의 장난기가 가득 어린 눈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페른 오빠야 황위를 물려받을테고, 타렌은 아직 어리지만 언니와 나, 아르는
후에 한 영지를 이끌어야 하잖아? 그래서 미리 교육 중에 있어."
엘라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자 벨라가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자랑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구 우리 샤란언니는 무려 4클래스의 마법사란 말이지!"
하지만 정작 놀래키려던 상대인 엘라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가만히 있는데, 옆에 있는
루인이 살짝 놀라하며 입을 열었다.
"마법에 특출난 재능이 있으신가 봅니다."
"응? 그치만 루인, 촌장 할아버지는 만날 자기가 7클래스라고 나한테 자랑했는걸?"
그러자 오히려 놀라는 것은 왕족들이었다.
7클래스라고 하면 지금 황실에 있는 수석마법사와 같은 클래스였다.
그런 마법사가 넓은 땅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수도에 저택도 없는-사실은 엘라의
아버지인 전 베이스탄 공작이 수도에서 살고싶지 않다며 수도의 저택을 팔아버리고
영지로 내려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베이스탄 공작의 영지에서 촌장 따위나
하면서 있다니!
"엘라- 그런 건 함부로 말하면 안되요. 그분께서는 그것을 숨기고 싶어 하시잖아요?"
"그치만 나한테 맨날 자랑하니까…, 나 잘못한거야?"
혹시나 자신이 또 해서는 안될 말을 했을까봐 불안한 얼굴로 루인을 올려다보는 엘라에게
루인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은 아기가 아니라 주장하며 머리 위에 얹어진 손을 치우려고 낑낑대는
엘라에게 잠시 시선을 준 페른은 루인을 보면서 물었다.
"그럼 베이스탄 영지의 그 마법사께서는……."
하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바깥에서 시녀가 문을 두드려 기척을 내면서
식사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렸기 때문이었다.
식사는 만족스럽게 잘 나왔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안에서 답답하게 먹는 것보다는
야외에서 먹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리타 덕분에, 다들 야외에 놓아진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먹으면서 이런저런 잡담들이 나왔지만, 대부분 엘라의 영지에 대해서라던가, 페른과
타렌을 제외한 나머지 세 왕족들이 내일 돌아가는 이리엔 아카데미에 관한 것이었다.
거기서 엘라는 아카데미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중앙대륙-혹은 창조의 여신인 세르니에의 이름을 따 세르니에 대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에는 3개의 제국과 5개의 큰 왕국, 10개쯤의 군소 왕국, 그리고 한 달에도
몇번씩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여러개의 작은 왕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리엔 아카데미는 일명 아카데미 에어리어-혹은 아카데미 지역이나 아카데미 영지라고
부르기도 한다.-에 위치하고 있는데,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드래곤 산맥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드래곤 산맥은 드래곤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험한 산맥이
세르니에 대륙의 동서를 가로지르고 있고, 동쪽의 끝에서 뻗어나온 산맥이 위아래로
갈라져 전체적으로 보면 큰 산맥 세 개가 활모양을 이루고 있는 형태였다.
그 드래곤 산맥의 바로 위에 위치한 아카데미 에어리어는 그 어떤 나라의 간섭도 받지 않는
중립으로써, 그 곳에는 마탑도 존재하고, 용병길드의 본부도 거기 있었다.
한마디로 중립인 단체들은 모두 그곳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미 에어리어에는 단 세 개의 아카데미만이 있고 나머지는 가게나 여관, 식당,
옷가게 같은 상업을 위주로 하는 곳이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마탑과 용병길드의 본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세 아카데미 중에 가장 위상이 높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이리엔 아카데미였다.
이리엔 아카데미는 기사학부, 마법학부, 그리고 정치학부로 나뉘며, 기사학부는 각각의
무기에 따라 클래스가 나뉘고, 마법학부는 마법의 종류에 따라-여기에 정령술도 포함이
된다.-클래스가 따로 있으며, 마지막으로 정치학부는 따로 클래스를 나누지 않는다.
그리고 그 클래스 사이에서 성적에 따라 학년과 반이 나뉘며, 6년제이지만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오래 있어야 하고, 최초에 입학했을 때는 너나할 것 없이 전부 1학년이지만 그 다음
시험부터는 성적에 따라 월반도 가능하며, 진학이 불가능하거나 퇴학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두 신생 아카데미가 생긴 것도, 이리엔 아카데미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고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이 항상 탈락하자, 약간 기준을 낮추어 지어진 것이다.
학부를 여러개 선택하여 공부할 수 있으나 보통은 어려워서 잘 하지 않고, 한 학부를 선택하여
속해있으면서 강의를 다른 학부 쪽 몇 개를 넣어서 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이리엔 아카데미만 나왔다고 하면 출생을 따지지 않고 잘 대우해 주는 것이
세르니에 대륙에서의 암묵적인 관례였다.
티타임까지 즐기며 아카데미에 매우 관심있어하는 엘라를 위해 벨라와 아르가 번갈아가며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옆에서 샤란이 빠진 부분을 채워주며 대강의 설명을 끝내자,
그들은 저녁식사 때 또 만나자며 인사를 나누고는 각자 자신의 궁으로 돌아갔다.
"상당히 부럽다는 표정이신데요, 아가씨?"
그들을 배웅해주고 엘라와 함께 안으로 들어오던 루인이 엘라의 표정을 보더니 알겠다는 듯
웃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엘라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지만 얼굴에는 부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냐, 학원따위 가고 싶지 않아. 나한테는 해야 할 일이 많은걸."
"그렇지만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텐데요."
"내가 학원에 가버리면 영지는 누가 돌보겠어? 내가 얼른얼른 자라서 우리 영지 돌볼거야."
그 말을 들은 루인은 기특하다기보단, 아니, 기특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좀 서글펐다.
평범한 귀족 영애로 자랐으면 엘라도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아카데미에 가게 될텐데…….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도 엘라가 아카데미에 가겠다고 한다고 해서 영지민들이 싫어할 리는
없었다. 영지민들도 이 작디 작은 영주님이 그들을 위해 그 작은 머리를 얼마나 힘들게
혹사시켜가며 영지에 대한 일과 그 복잡한 예법 등을 배우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영지민들이 영주의 성에 올 때, 항상 밝은 모습으로 달려나와 귀엽게
매달리며 어디 힘든 일 없는지, 뭐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그렇게 묻는 모습에 역시 전
베이스탄 공작의 딸이라면서 영지민들 모두 영주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라도 된 듯 흐뭇해했었다.
하지만 루인은 그런 영지민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엘라에게 웃으며 선선히 대답해줬다.
"영지민들도 그걸 바랄 겁니다. 아가씨께선 어느 영주보다도 훌륭한 영주님이시니까요."
루인에게 칭찬받았다고 생각하자 자기 자신이 그리도 대견스러운 듯 얼굴 가득히 함박웃음을
짓고 얼른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며 앞으로 뛰어나가는 자신의 작은 아가씨를 보며,
루인은 그저 생긋 웃을 뿐이었다.
첫댓글 귀여운엘라ㅋㅋㅋ
잼있어요 담편이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