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관과 유식>
냉정하게 살펴보면, 붓다시대의 빔비사라 왕과 붓다 입멸 후의 나가르주나Nagarjuna(기원 전 2~3세기, 인도 중부 출신의 승려) 한자로는 용수龍樹라는 걸출한 사상가가 없었다면 현재와 같이 체계화된 불법을 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도에서 용수가 태어난 시기는 부파불교가 한창 분파를 거듭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흔히 불교 공부를 하며 근본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의 순서로 전개되는 것으로 배우는데, 맞습니다.
다만 각 사상의 발생과 소멸이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100~200년이라는 짧지 않은 사이에 변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파불교는 붓다 입멸 후 100~400년 사이에 분열을 거듭했지만, 기원 전후의 대승불교 흥기 이후에도 무려 700년 정도를 건재했습니다.
용수가 본격적인 대승 사상을 전개한 시기는 부파시대의 종말이 시작된 시점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인도에서의 불교 사상의 다양화는 서로 교류하기 어려울 정도의 지리적 환경에서 자생으로 형성되는 경향을 보였다는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워낙 대륙이 넓다 보니 중국의 제자백가諸子百家 같은 다양한 사상이 독자적으로 구축될 수 있는 여건이 인도에서도 마찬 가지로 적용된다는 말입니다. 공교롭게 중국의 제자백가 시대도 대체로 기원 전 550년에서 기원 전 250년쯤으로, 인도에서 붓다의 시대를 거쳐 부파불교 그리고 용수의 시대로 접어드는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제2의 붓다라고까지 칭송받는 용수는 부파불교의 소아적 관점을 넘어, 단숨에 세계적 종교로 도약할 수 있는 대승 사상을 정립하게 됩니다. 우리가 현재 쉽게 대하는 대승의 핵심 용어인 연기·공 등을 처음 사용한 논사가 바로 용수입니다.
용수의 불교 철학은 그가 저술한 중론中論의 중관사상으로 대표됩니다. 용수는 중론이라는 길지 않은 저서로 대승사상의 근본을 차원 높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중관사상이라고 하는데 “연기緣起는 공성空性이고 중도中道다”라는 표현이 용수의 중론에 이미 있다면 놀라실 것입니다.
용수는 중론의 삼제게三諦偈로 일컬어지는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합니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인연이 생기는 진리는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 공空이라 하며
역위시가명亦爲是假名 또한 가假라고도 하며 역시중도의亦是中道義 또한 이를 중도라 한다.
이는 공空·가假·중中의 삼제사상三諦思想으로 발전하여 먼 훗날 천태교학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용수의 사상은 지금 분석해 보아도 거의 완벽한 대승불교를 구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용수가 말하는 공空의 개념을 연기의 성품을 해석한 것으로 인식 하지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공空을 ‘허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하며 내세운 논리가 무착과 세친이 주창한 유식有識사상 입니다.
무착無着과 더불어 바수반두Vasubanhu(바라문 족으로 설일체유부로 출가 후에 대승으로 전환)라고, 한역으로는 세친世親 혹은 천친天親으로 불리는 이 천재적인 논사는 북인도 브라만 출신입니다. 유식학을 완성한 무착과 세친은 용수보다 무려 500년 후대의 대승논사들입니다.
불교 시대별로 본다면 붓다 입멸 후 용수가 붓다의 정신을 계승 하기까지 걸린 시간(약 300~400년)보다 더 긴 세월이 흐른후 ‘공성空性의 오해’를 들고 나온 사상이 유식사상입니다. 사실 공空의 개념을 무착과 세친이 염려했듯이 ‘허무’나 ‘없음’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불자 중에는 거의 없습니다.
어쨌든 두 논사는 공의 논리 대신에, 마음의 인식작용인 식識을 주체로 모든 불법을 설명하려 시도합니다. 간명하게 말하면 용수의 중론은 한 마디로 공空으로 대변되고, 세친의 유식은 식識으로 대변 됩니다. 유식은 그 출발이 중관을 비판하기 위한 사상이니 태생적으로 중관과 절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자, 이제 두 뛰어난 사상에 붓다의 깨달음인 연기를 결부시켜 보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연기는, 업이 연기의 주체라는 근본불교의 업감연기業感緣起에서 시작해서 유식학에 이르러 8식인 아뢰야식이 주체라는 아뢰야식연기阿賴耶識緣起를 거쳐, 대승사상의 최고봉인 화엄 사상의 법계 자체가 모두 연기의 주체라는 법계연기法界緣起 혹은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 순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세친이 유식학에서 말하는 아뢰야식 연기가 붓다께서 깨달으신 연기에 부합이 된다면, 후대에 더 깊은 식인 8, 9, 10, 11식까지 고려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붓다의 사상을 후대에 보충할 필요가 없듯이 말입니다. 곧, 무착과 세친의 유식학은 용수의 중관사상에 비견될 수 없을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의 외형을 보면 수행의 목적지는 중관의 공空으로 하는데, 수행의 방법론에 있어서는 유식을 들어 설명을 하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유식학을 완성한 세친은 굳이 ‘족보’를 쫓자면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부파는 대승의 최상승법인 ‘아공법공我空法空’이 아닌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주장해서 유부有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친은 이 부파에서 대승으로 건너오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시작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유부의 견해인 “나는 공空해도, 법은 공空하지 않고 실체가 있다”가 세친의 사상의 출발이자 종착지이기도 한 것입니다. 유부의 법유法有가 유식학의 유식唯識으로 변한 것이 다를 뿐입니다.
유식학 지지자들이 제 논리가 과장됐다고 주장할 것에 대비해 너무나도 뻔한 사실을 추가로 언급하겠습니다. 세친은 유식학 이전에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집필한 사람입니다. 논서의 제목대로 법의 실체를 갈래갈래 분류하여, 오위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으로 정리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부파불교의 대표적 논서입니다.
간략히 구사론으로 불리는 이 논서는 산스크리트 본, 티베트 본, 한역 본 2종이 현존하고 구사종이라는 단일 종파의 소의경전이 될 정도로 비중 있는 저술입니다. 그럼에도 이 논서의 한계는 법은 실체가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해야 75법으로 분류가 가능하다는 소승의 법유法有 논리에 묶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 주장과 관계없이 중국에서 시작된 법상종法相宗 계열은 다 유식사상을 축으로 하고 있 습니다.
유식학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유식사상도 공空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건 앞에서 강조했듯이 애초에 공 자체를 부정한 유식학이 다시 공의 논리로 말한다는 해석 자체가 접근의 방식에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설령 그 주장을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해도 마음의 작용인 식識을 단계로 나누는 것은 유연해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유식학을 처음 접하면 마음을 해부하듯 해놓은 작업에 매료돼 꽤 정교한 체계라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마음의 겹겹에 직접 부닥쳐 보니, 유식의 체계가 상당 부분 인위적이고 이론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묘해 식識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유식학의 제7식〔분별, 사량식〕과 8식인 아뢰야식〔함 장식〕의 경계는 구별이 아주 어렵습니다. 마치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 중 미세하게 ‘중간 색’이 존재하듯, 7식이나 8식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그리고 8식이 전변轉變하여 깨달음의 식이 된다는 유식학의 논리 역시, 그럴 경우 본래 더럽지도 않고 청정하지도 않은 근본 마음인 8식의 정체에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 의문이 바로 여래장如來藏(8식 같이 여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마음)이라는 사상으로 그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게 만드는 요소로도 작용하게 됩니다.
용수의 중론과 세친의 유식을 최종 정리하자면, 중론은 연기의 본질인 공을 추구하니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을 설한 것이지만, 오히려 한참 후대의 사상인 세친의 유식은 부파불교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로 유식학을 전공한 많은 학자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중관사상은 어려워서 전공학자가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해설서도 몇 권 안되지만, 유식학 해설서는 수십 권 이상이 됩니다.
해설서를 낸 유식학자들에게 집중한 질문은, 유식학자들은 유식唯識(오직 안다는 것, 오직 인식뿐)과 유심唯心(오직 마음뿐)을 같은 격으로 사 용하는데, 그렇다면 유식의 ‘식識’과 화엄경의 일체유심조의 ‘심心’이 같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후대에 유식의 법상종과 화엄경의 화엄종이 분파될 명분이 없지 않은지를 질문해 봐야 합니다.
놀랍게도 일부 유식학자들은 유식학의 식과 화엄경의 심을 같은 마음의 작용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와 연관되는 종파에 대해서는 실망스럽게도 ‘종파는 별개의 문제’라는 주장뿐이었습니다. 너무나 자주 한국불교의 문제점이라고 핏대를 올리고 있지만, “현재에 전해지는 모든 경론은 내용과 당위성을 다 인정해야 한다” 는 대범한 논리는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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