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재수하면서 마음속에 남들보다 늦었다는 조급함이 생겼던 거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군대, 대학원까지 8년 정도를 허둥지둥 뛰어왔네요. 그런데 점점 숨이 찹니다. 나름 멀리 뛰어왔는데 내가 왔던 길이 맞는 길인지 모든 게 불분명합니다. 이제 저의 원동력이 돼줄 힘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늦은 밤 연구실에서 몇 자 끄적여 봤습니다."
지난달 20일 밤 10시,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 TV. 미래 불확실성에 대해 고민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심쩍은 청춘 상담소'가 방송됐다. 늦은 시간 시작된 방송이었지만 시청자 반응은 뜨거웠다. 평균 시청자 1700명, 누적 시청자 2만5000명을 넘기며 일회성이 아닌 정기 방송으로 방영해 달라는 의견도 줄을 이었다.
진로와 학업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소소한 연애 상담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고민들이 접수됐는데 이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은 '나의 이야기인 것 같아 공감된다'는 반응이다.
"제가 지금 서른 살인데 그런 상황입니다. 저랑 비슷해서 고민을 같이 나누는 게 도움이 되네요" "그게 가장 큰 고민인 듯합니다. 그런데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면 결국에 그만두게 되더라고요" 등과 같은 공감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채팅방에 올라왔다.
■ 소비자와 접촉 적은 B2B기업일수록 소통통로로 SNS 효과좋아
그런데 해당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방송한 곳이 조금 생소하다. 세계 2위 메모리반도체 제조기업인 SK하이닉스가 젊은 세대들 고민 상담에 나선 것이다. 전형적인 B2B 회사인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고민 상담 방송을 기획했던 의도는 무엇일까? '더 비즈 타임스'는 SK하이닉스 사례를 중심으로 B2B 기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에 대한 목적과 효과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SK하이닉스는 △젊은 인재 확보 △인지도 제고 △올바른 정보전달 창구 등 3대 목적을 가지고 활발히 SNS 활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 상당한 수준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 SNS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는 젊은 인재를 유입하는 것이다.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회사라는 위상을 지닌 SK하이닉스지만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인재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기업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 기업 블로그에는 '채용 정복하기'라는 메뉴가 따로 개설돼 있다. 임직원 인터뷰를 통해 직접 업무 모습을 공개하며 반도체 산업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하는 '오! 드림 멘토' 시리즈는 쉽게 알기 힘든 반도체 산업의 속살을 보여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연구개발(R&D), 제조, 마케팅 등 회사 내 주요 조직을 임직원이 직접 소개하는 '채용 직무소개 영상'은 회사를 지원하는 취업 준비생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콘텐츠로 인기를 끌었다.
젊은 인재들을 유입하고 진로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SK하이닉스의 활동이 SNS라는 가상 공간을 넘어 실제 소통의 자리로까지 이어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젊은 세대와 그들의 멘토가 돼줄 수 있는 연사를 초청해 소통의 자리를 갖는 '청춘 브런치'를 진행했다. 진로 고민이 많은 20대 학생들과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청년멘토위원을 맡고 있는 김윤규 대표가 만나는가 하면, SK하이닉스 디램개발부문장 이석희 부사장, 노사협력실장 문유진 수석 등과 이야기를 나누며 색다른 채용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SK하이닉스의 SNS 활동은 기업 인지도 제고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메모리 반도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의 기업이지만 SNS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있어 B2C 기업 같이 친숙한 이미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한편 늘어나는 소셜미디어 채널과 기하급수적인 정보량 증가는 기업 경영에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검증되지 않은 루머나 악의적인 비방글 등이 SNS를 통해 확산되기 시작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차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자사의 소셜미디어 채널이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도록 창구 역할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기업들이 검증된 사실과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미디어 영역상 전달 통로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SNS 채널을 담당하고 있는 PR팀 김동미 책임은 "기업 SNS 활동의 성과는 방문자 숫자, 콘텐츠 양과 같은 정량적 지표만으로는 측정하기 어렵다"며 "필요한 정보를 타깃 수용자의 눈높이에 맞춰 적시에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진정성 있는 소통 유무가 SNS 성패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이 같은 SNS 활동은 최근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졸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SK하이닉스의 정보를 접하게 된 경로"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회사 블로그가 49%로 1위를 차지하며 가장 비중 있는 채널로 자리 잡았다. 또 "SK하이닉스에 지원하게 된 이유와 매력적인 기업 이미지"를 묻는 설문에 즐겁게 일하는 기업문화가 42%, 회사의 밝은 비전이 61%를 기록했다. 이는 임직원 출연 영상 등 다양한 기업 관련 콘텐츠를 통해 회사 비전과 문화를 소개한 SNS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자체 평가됐다.
■
SK하이닉스의 성공 포인트…꿈·도전·혁신·응원 4가지 소재로 청년 눈높이 맞춰 최근 기업들의 대외 소통 방식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소셜미디어인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터를 넘어 인터넷방송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기업 위기관리·소셜미디어 전문 컨설팅사 '아그네스+데이(Agnes+Day)' 대표인 멜리사 아그네스는 "뉴미디어 시대에서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성패는 기업이 얼마나 소셜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지에 달려 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터치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줄 매개체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꿈 △도전 △혁신 △응원 등 네 가지 테마를 바탕으로 기업 중심의 일방향 메시지 전달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대한민국 청춘들이 알고 싶고, 공감하는 유익한 메시지를 공유하는 SNS 운영 전략을 짰다. 젊은 세대가 활발하게 사용하는 SNS 공간의 접점을 넓히고 회사 관련 최신 정보를 더 쉽고 빠르게 공유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B2B 기업이라는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어 대중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SK하이닉스의 SNS 활동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네 가지 원칙을 기반해서 추진된 것을 알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기업 공식 블로그인 '하이라이트'를 개설해 대학생 기자단 '영하이라이터'를 발족했다. 2014년에는 블로그 운영 노하우를 축적해 공식 페이스북 채널을 개설하며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접점을 넓혔다.
아울러 '반도체라는 생소한 분야를 대중에게 어떻게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것이 SK하이닉스 SNS 활동의 방향이다. 반도체 기업답게 '반도체 인명사전' '반도체 지식 O/X 퀴즈' 등 자칫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반도체 관련 지식을 젊은 층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개발했다.
특히 'Back in Memory'는 기술 혁신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되짚어 봄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중요성과 혁신의 의미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격주로 발행되고 있는 웹툰 '당신과 나의 Life'는 2030세대에 맞춘 유머코드를 접목해 '본격 공대 만화'로 불리며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
기업 블로그를 젊은 세대 눈높이에 맞춰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은 대학생 기자단 영하이라이터들이 담당한다.
미래 반도체 소재 중 하나로 꼽히는 '그래핀'에 대한 기사를 특별한 과학지식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가 하면, 최근 국내 여행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부산의 숨겨진 명소를 소개하며 반도체 분야에 치우칠 수 있는 블로그 콘텐츠에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SK하이닉스의 다양한 소식들을 2030세대의 트렌디한 시각에서 수용자 중심 콘텐츠로 제작함으로써 회사와 젊은 세대 간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블로그가 개설된 2013년 3월 이후 현재까지 누적 방문객 수가 330만명을 넘어서며 SK하이닉스 대표 소통 채널로서 입지를 굳혔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SNS 채널은 회사의 현황, 주요 행사와 활동뿐만 아니라 반도체 전체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함으로써 회사의 모든 정보가 집대성된 '믿을 수 있는 소통 창구'로 발돋움하고, 젊은 세대와 일반 대중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신속한 전달자'로서 기능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