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추수가 끝나고 입동이 지나면 집집마다 메주 쑤는 냄새가
풍겨왔었습니다. 그 어릴 적 생각하며 허굴산방에서도 메주 쑤기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꾸물해서 행여 비가 오려나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봄날같이 햇살이 따사로웠습니다. 메주 쑤는 날은 좀 추워야 제 맛인데 말입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보니 하늘과 솥이 너무 잘 어우러져 놀랐습니다.ㅎㅎ
콩은 전날 밤에 씻어서 불려 놓았습니다.
그래야 삶는 시간도 단축되고 잘 삶기니까요.
백 프로 국산 토종 콩입니다. 전자 변형하지 않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옵니다. 옆에서 지키고 앉아 넘치려고 할 때 마다 찬 물 한바가지씩
솥뚜껑에 부어 주었더니 넘치지 않고 잘 삶기고 있습니다.
삶아서 뜸까지 들인 콩을 깨끗한 쌀자루에 넣고 한 도 신지 않은 하얀 고무신을 신고
올라서서 밟았습니다. 예전에는 디딜방아나 절구를 이용해서 찧었지요.
그렇게 하자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 드는데 이렇게 현대식으로 하니 아주 편했습니다.
빻아진 콩을 틀에 넣고 꽁꽁 밞아야 메주 덩이가 야물어 잘 깨지지 않지요.
비위생적이라고요? 에이.....예전 우리 어머님들도 다 저렇게 만들었어요 뭐!!!
허굴 발 무좀 없습니데이~ 양말도 새 양말 신었고요.ㅋㅋ
솥이 좀 작아 몇 번을 삶아 내야 했지만
하나하나 만들어져 착착 들어 눕는 메주를 보니 만드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세 솥 째 안쳐놓고 얼큰한 것이 생각나 합천호 주변에 있는 유명한 해물 짬뽕집에 가서
뜨끈한 짬뽕 한 그릇 먹고 왔더니 메주콩 밟던 흰 고무신이 사라졌습니다.
누구 짓인지 안 봐도 뻔합니다. 허굴산방에 자주 오던 요놈의 고양이 짓이지요.
집을 두 바퀴나 돌아도 못 찾고있다가 한 참 후에 찾았습니다.
어디서요? 산방 옆 밤나무 밭에서요.
고양이도 메주콩 냄새가 아주 좋았나 봅니다.ㅎㅎ
누가 묻더군요. 왜 메주 가운데를 들어가게 했냐고.....
어릴 적 엄마가 저렇게 만들던 기억이 나서 저도 그렇게 만들어봤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 메주를 만들어 놓으면 가운데가 늦게 마르니
가장자리와 비슷하게 마르라고 좀 들어가게 하시 않았나 하는 생각과
그곳에 좋은 균들이 모이라고 그렇게 한 것도 있을 것 같고, 또 직접 저렇게 만들어보니
가운데를 밟지 않은 메주보다 더 단단해서 계속 저렇게 만들었습니다.
그 외 다른 이유 아시는 분들 답주세요. ㅎㅎ
메주가 어느 정도 만들어 질 즈음 지인께서 위로차 고기를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루 종일 앉았다 섰다 했더니 힘들었는데 어찌나 반갑던지요.
고기도 모자라 오카리나 연주까지 해주셨습니다.
오카리나 연주들으며 구워지는 숯불 삼겹살 맛은 어떨까요?
님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이렇게 불량농부의 하루가 또 저물었습니다.
토요일 밤부터 시작된 메주쑤기는 일요일 저녁 늦게야 끝이 났습니다.
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거실에 가득해진 메주를 보니 그냥 든든했습니다.
구수하게 잘 띄워 내년 정월에 맛난 된장 담가야지요.
메주 쑨 불량농부 허굴(분디미)
첫댓글 아주 흐믓한 1박2일이셨겠군요...
보기만해도 배가 부르실듯~~
허굴산방 마당에 피워오르는 콩삶는 솥단지가 예술이네요.^^
그리고 이리 올려놓으시니
노동이 예술로 승화된 느낌!!!
참 좋습니다.^^
솥에 삶겨지는 메주콩이 얼마나 이쁜지요~^^
꼬소한 콩 냄새가.. 절로 나는것만 같습니다. 가지런한 메주콩도 야무지게 만들어서 너무 이쁘구요. 다 쥔장의 노고가 묻어납니다..
허굴산방에 메주 쑤는 날, 저도 행사가 있어서 날이 겹쳤었는데.
내년엔.. 콩 삶을 때, 바가지에 물이라도 떠서 솥단지 옆을 지킬까.. 싶습니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