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미는 올해도 연습만 하다 갔구나/ 윤제림(1960∼ )
텅 빈 합창단 연습실, 의상만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주인은 당장 방을 비우라고 했을 것이고
단장도 단원들도 불쌍한 얼굴로 방을 나섰을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으니, 울며 떠났을 것이다
나는 이 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
매미는 생각도 못 했겠지만 그는 종종 시의 주인공이 되어 왔다. 매미는 결코 바라지 않았을 텐데 많은 시인들이 그를 퍽 좋아했다. 예뻐서는 아니었다. 예로부터 매미는 환생의 상징이거나, 청백리의 상징이었다. 그 소리가 시원하여 더위가 가신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괴롭게 읊조리는 이가 마치 매미 같다는 표현도 있었다. 매미가 느긋하게 태어나 행복하게 즐긴다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반대로 오래 기다리고 짧게 허물어지는 인생이어서 주목받았다. 한철의 인생 내내 절절하게 울어서 사랑받았다.
쓰르르 쓰르르, 인생이 쓰다는 듯 우는 매미를 쓰르라미라고 한다. 쓰르라미가 스러지면 귀뚜라미가 온다. 딱 요맘때다. 철 늦은 매미도 생을 거의 다하고 초저녁이면 귀뚜라미들이 자르르 울어댄다. 말하자면 지금은 쓰르라미와 귀뚜라미 사이의 시간이다. 윤제림의 제목도 긴, 이 작품이 생각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아주 무서운 시다. 주인이 방을 비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당장 말이다. 누구라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것이다. 게다가 쫓겨나는 이들은 말미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저 울면서 떠나갔다고 한다. 이 매미들의 사연을 슬퍼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게다가, 이 매미가 실은 매미만은 아님을 우리는 직감하고 있지 않은가.
❁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 윤제림 시집(문학동네)
✵ 책소개
우리의 평범한 얼굴에 새겨진
비범한 단단함, 그 떳떳한 슬픔
―윤제림 일곱 번째 시집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윤제림 시인이 『새의 얼굴』 이후 6년 만에 찾아왔다. 63편의 시가 담긴,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인간다움에 대하여, 상생(相生)에 대하여, 그것을 담을 언어에 대하여 30년 넘게 천착해온 그. 눈에는 눈물방울이 살짝 맺혀 있고, 입가엔 미소가 흐르는 듯한 표정의 윤제림 시 화자들은 이번 시집에서도 인간사 세상사의 틈바구니를 진중히 들여다본다.
✵ 목차
시인의 말
1부 바위에 시도 썼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꽃/ 새벽 산/ 설희/ 억새-금강의 가을/ 이명(耳鳴)/ 행성입문(行星入門)/ 면민회(面民會)/ 시의 기원/ 오래된 가을날/ 겨울 강을 지날 때는 조용히/ 달은 즈믄 사람에/ 수태고지/ 일행/ 제주 풍경
2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
가난 타령-명창 김연수를 생각함/ 가위-효봉 약전/ 윤용하, 당신 생각/ 저(猪)씨 문중에 보내는 사과 서한/ 전원교향곡/ 좋은 친구들/ 오래오래 학생이신,-육주 홍기삼 선생님 고희에/ 타격왕/ 현암사-강우식 시집 『사행시초(四行詩抄)』/ 만공 약전/ 자화상/ 아름다움에 대하여/ 1972년, 발행인 이병철, 삼성문화문고-, 조선불교유신론/님의 침묵/ 길 떠나는 가족-이중섭 그림/ 벌꿀비누 3000번/ 박녹주를 듣는 밤/ 방산몽유록(芳山夢遊錄)/ 설산 위의 남산 코끼리에게-산악인 박영석을 보내는 노래
3부 불온한 생각도 아직은 더러 있는데
나쁜 상상/ 바다엔 불공정 거래가 많다/ 그날/ 슬픈 날의 제화공/ 그때에 저것들이/ 홍어를 먹다가/ 화물의 종류에 대하여/ 거의 격추되고, 겨우 몇 대만/ 잠만 잘 사람/ 장편(掌篇)/ 나는 악당이다/ 근황/ 푸른 꽃/ 매미는 올해도 연습만 하다 갔구나/ 설렁탕집에서/ 용산역 앞에서
4부 나만 못 본 게 아니라 아무도 못 봤다
마리아와 카타리나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봄은 길게 눕는다/ 우주의 관객/ 식인 사건 피의자에 대한 검사의 구형/ 피리는 치마 속에 들었네/ 할미꽃/ 그럴 수도 있겠다/ 신동/ 절 받으시오, 젊은이/ 한 남자와 두 여자/ 이발소 앞을 지나며/ 권학문(勸學文)/ 이산/ 화장(火葬)
해설|떳떳한 슬픔의 얼굴
송종원(문학평론가)
✵ 출판사 서평
사람으로 최상의 배역을 맡은 사람들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_「저(猪)씨 문중에 보내는 사과 서한」에서
생의 윤리나 진실 혹은 비의에 복잡한 수식도, 화려한 미사여구도 사실은 불필요한지 모른다. 윤제림 시에는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진술만으로 오랜 시력(詩歷)의 은근한 힘이 드러나고, 우리는 그가 부러 비워둔 침묵의 자리마다에서 가만히 멈추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비슷하게 한세상 살아온 사람들이
비슷비슷 뜨고 붓고 눋고 타고
그을린 얼굴로
솔밭에 차일을 치고 막걸리 여러 말 받아놓고
오래전에 이고 살던
구름의 안색과 하늘 낯의 인상을
대조하며
서로의 잔을 채우고 있었다
넘치게
_「면민회(面民會)」 전문
“뜨고 붓고 눋고 타고” 네 어절로 요약되는 “이고 살던” 삶의 굴곡들. 서로의 그것을 아는 ‘면민회’이기에 서로의 잔을 넘치게 채워도 좋은 것이리라. 내 삶을 네가, 네 삶을 내가 알아주는 일. 그것이 결국 너와 나를 ‘계속 살아감’으로 이끄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시집 곳곳에서 눈물 흘리는 이를 마주하게 되는 것은. 그 시들이 유독 빛나는 것은.
슬퍼서,
온종일
구두 한 켤레도 완성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동료 곁에서
눈물쯤은 그냥 흐르게 놔두고
바늘 끝에 떨어지게 내버려두고
콧물이나 가끔
토시 낀 소매로 훔치며
결국은
오늘의 구두를 다 짓고 있는 사람
_「슬픈 날의 제화공」에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다 짐승처럼 운다
17호실에…… 가면
울지 않으려고
백주대로에서 통곡을 한다
이 광경을
김종삼 시인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길을 건너려다 말고
_「장편(掌篇)」에서
저것은,
두보가 강변 주막에다
조복(朝服)을 저당잡히고
아침부터 취해 울던 날에
그의 술잔 속을 들락거리던 허연 수염이거나,
거기 매달려 흔들리던
그 무엇이다
그것이, 지금
짜장면을 먹다가 느닷없이 엉엉 울기에
왜 우느냐 했더니
“단무지가 너무 맛있어서”라고 하고는
다시 또 울더라는 이 고장 시인
박용래처럼
내 앞에서
울고 있다
_「억새―금강의 가을」 전문
우는 사람과 그를 바라보는 사람. 슬픔의 이유를 쉽게 묻지 않고 또 쉽게 연민하거나 이해했다 말하지 않는 자세는 윤제림 시에 한결같이 흐르는 정서이기도 하다. 두보나 박용래, 김종삼, 강우식 등과 같은 시인이나 화가 이중섭, 효봉 스님, 명창 김연수, 산악인 박영석 실존 인물을 호명하고 기리는 것 역시 지난 시집과 맥이 통한다. 실존했던 이의 삶이 소재가 되었을 때 생기는 또렷하고 구체적인 감정과 감각들이 그에게 중요했으리라. “이 땅의 시는 이 땅의 굴곡진 역사만큼 개개인의 삶에 작용한 압력과 그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기록했다. 이 기록에 깊음이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윤제림 시의 깊이는 좀 다른 데서 출현한다. 가령, 우리의 평범한 얼굴에 새겨진, 비범한 단단함 같은 것.”(문학평론가 송종원, 해설에서)
불온한 생각도 아직은 더러 있는데
꺼내놓을 용기가 없다,
대부분 옛사람 옛글이 시키는 대로
다소곳이
상부의 명령과 지시에
고분고분
고향에 보내는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_「근황」 전문
떠나보내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시인은 자신이 선 자리를, 자신의 쓸모를 돌아본다. “또 벌레가 되더라도 책벌레는 되고 싶지 않”으며, “무당벌레나 자벌레만 되어도 당신을 위해/ 할 일이 있을 것 같”다고(「다음번에는」). 모종의 허허로움을 품은 시인에게 지난 시간들은 어떤 의미가 되었을지. 다가올 시간은 또 그에게 어떻게 새겨질지. 뭉근한 화롯불처럼 지긋이 타오를 그의 시세계가, 어디로 어떻게 이어갈지 또한 기대하며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 저자소개
윤제림 시인은 충북 제천에서 나고 인천에서 자랐다.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동시집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동아일보 2021년 10월 9일(토), 〈나민애(문학평론가)의 詩가 깃든 삶〉, 《Daum, Naver 지식백과》/ 생태사진과 글: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무원 김명희 교장선생님
'주인이 방을 비우라고 한다~' 제 젊은 날 전세로 전전할 때, 제일 무서운 말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추억이네요.
**
홍천의 아침, 호박잎 따러 나갔다가 얻은 수확이랍니다. 다람쥐가 주인장 위해 남겨둔 밤송이들, 가을향 그윽한 들국화(국화차로 쓰는 감국), 호박잎 등등~ 우선 항아리에 유리잔에 듬뿍 꽂아놓고 나서 기분좋게 아침식사준비를 합니다. ㅎㅎ
고봉산 정현욱 님
쓰르라미와 귀뚜라미 이야기를 이토록 실감나게 엮은 시가 참 독특하고 멋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쓰르라미는 스스로 방을 비웠고 귀뚜라미들이 찾아와 ''우리들 왔어요'' 하며 소리처 외치는 계절
때묻지 않은 순수한 언어이고 한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10월이 지나면 귀뚜라미도 방을 비울텐데 그자리에 어떤 정겨운 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날까 궁금해진다
그들은 소리로 말하는 시인이었고 우리는 그들소리에 영감을 얻어 글로 표현하는 시를 쓰는것 같아요
🇰🇷韓國 作品
最初 全世界 1位
[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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