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나는 역사가 사마천을 참 좋아했다.
가방끈이 짧아 선생님이 칠판에 써 주는 것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순전히 책에서 배운 것들이다.
서정주 시인은 자기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 했지만 내 정신 건강을 키운 것의 3할은 사마천의 사기(史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문이랄 것도 없이 나는 사기를 읽으면서 오랜 기간 일종의 사숙(私淑)을 한 셈이다.
비록 수박 겉핥기 식이었지만 사기를 읽으면 나의 독서 영역 또한 조금씩 넓어져 갔다.
사기라는 책이 다루고 있는 분야와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감히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마천의 일생은 확실히 기억한다.
사마천은 왕에게 바른 말을 했다가 노여움을 사서 궁형이라는 처벌을 받는데 바로 성기가 잘리는 형벌이다.
성기 잘린 남성은 곧 죽은 목숨이었을 터, 그럼에도 사마천은 그런 치욕을 딛고 위대한 역사서를 남겼으니 그것이 바로 사기다.
사마천은 궁형을 받고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글을 남긴다.
<고향에서는 비웃음거리가 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무슨 염치가 있어 부모님 산소에나 찾아뵐 수 있겠습니까.
하루에도 아홉 번씩 장이 끊어지는 듯하고 집 안에서는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으며 집 밖에서도 갈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성기가 잘린 곳에서는 연신 고름이 생기고 소변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는 살아야만 했다.
사마천은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진 목숨을 이어간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단 한 번 죽을 뿐이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습니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입니다>.
사마천에게 목숨이나 명예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사기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동양문화의 보고이자 인간학의 교과서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등장 인물도 다양하다. 황제나 고위관리, 영웅호걸, 상인과 농사꾼, 자객과 심지어 도굴꾼까지 등장한다.
이런 사기를 어찌 인간학의 교과서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삼국지와 함께 사기를 읽으며 나의 결핍을 위안 받았는데 읽을수록 흥미로운 책이 사기였다.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는 뜻의 사필소세(史筆昭世)는 바로 사마천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루쉰도 사기를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문장이라고 했다.
어떤 책에선가 이런 문구를 읽은 적도 있다.
<사기를 읽은 사람은 절대 적으로 돌리지 마라>.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을 돌아 보면 나 또한 숱한 수모의 연속이었다.
"너는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냐?"
나라고 왜 자존심이 없겠는가. 밑바닥 생활이라 더 내려갈 데가 없으니 참는 수밖에 없었다.
재주 없는 사람이 선택할 것은 인내심이 가장 우선이다.
인력 감축으로 밀려나기도 했고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하기도 했지만 용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인내심 강하다는 평판 때문이다.
"저 사람은 웬만한 것은 다 참아요."
그렇다고 내가 항상 참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래전 사사건건 부딪혔던 상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 사표를 던진 적이 있다.
중이 절 보기 싫으면 떠난다는 말처럼 조용히 나오면 좋았으련만 상처 주는 한마디를 보태고 나왔다.
"그래, 이 코딱지 만한 회사에서 평생 빈대처럼 빌붙어서 살아라."
b급 인생을 살았던 나는 열등감을 이런 식으로 표출했다. 태생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살아 보니 참았을 때보다 참지 못했을 때 후회를 더 많이 했다.
나는 오늘도 참을 준비가 되어 있다. 수모를 견딘 끝판왕 사마천의 일생을 알기 때문이다.
첫댓글 사기를 읽고 깨달음 얻으신 당신, 결코 적으로 두지 않겠습니다
위험천만한 일이겠으니
ㅎㅎㅎ
건강하시죠?
건필 하시구요~^
ㅎㅎ 함박산님 올만이네요.
적은 밖에서보다 대부분 내 안에 있어서 저만 관리하면 큰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제쯤 함박산에 올라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며 풍월 읊을 때가 올려나 모르겠습니다.
내 사는 일이 하도 불온하여 요즘의 함박산님 글을 제대로 읽질 못했습니다.
짬을 내도록 하지요.
글벗님도 건필하시길요.ㅎ
현덕이 동생 화이팅 이요
사마천은 중국을. 대표로 하는 역사 적인 인물 아버지 유언이 삼천년. 역사를 기록 하라는 아버지. 유언.
남편이 책을 읽고 이야기 해준거라 ㅡㅡ희미 하게 남이 있네 범방에. 작가라고 챙 할만 해요
본래 태생은 고치는게 잘 안됩니다
그러나
고치려고. 노력은 해봐야 돌듯 ㅡㅡ
현덕아우 대단해요.
오래전에 전해 들었던 사마천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어서 ㅡㅡ
감사 합니다
마야 누이께서 여기까지 오셨군요.ㅎ
오랫동안 사기를 읽은 탓에 발뒤꿈치까지 인이 박혔답니다.
그래도 지적 갈증을 풀기에는 여전히 사기만한 책이 없더군요.
제 태생은 크게 써먹을 데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ㅋ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나 또한 그 책에 관한 경위는 자주 접해도 본격적으로 책을 들여다 본적이 없었지요 간혹 사기에 나오는 일화들을 단편적으로 접했는데 확실히 알고 싶어요 시간 핑계로 늘 좋은 것을 건너 뜁니다
운선님이 쌓은 지금까지의 독서 편력만으로도 운선님은 백과사전입니다.
사기가 끼친 영향력 때문에 우리 문화 곳곳에도 출전이 그곳인 경우가 많더군요.
만화로도 나와 있다고 하니 사기의 줄거리 짚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만학도 운선님의 일상을 응원합니다.ㅎ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자에게 직언이란
진정 큰 용기가 필요한거였네요
어쩌면 지금도 다를바 없겠죠?ㅠ.ㅠ
채워도 채워도
결핍을 말하는 현덕님
정말 부끄럽게 하십니다만
적으로 두지않아야지 합니다 ㅎ
[맞서 싸우지 않을
용기를 가졌는가]
좋아하는 영화대사가
생각나게 합니다
정아님 댓글을 보면 문장 읽어내는 내공을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긴 글을 잘 읽는 사람일수록 인내심 또한 저절로 길러진다고 봅니다.
요즘 아이들 인내심이 약한 것도 영상 위주에다 짧은 문구에 길들여져서 그렇다는군요.
그런 면에서 긴 글에서 문맥을 잡아내는 정아님 센스는 대단합니다.
치매 걸릴 일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저는 외로움과 수모를 견디는 힘을 사마천의 일생에서 배웠습니다.ㅎ
"사기"를 그저 재미로만 읽었었는데..
사마천의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닉네임도 아마 그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일이 자신의 뜻대로 굴러 가지 않을 때..
좌절도 하고 화도 나고 하지만..
여태 잘 견뎌 왔으니 이제 좋은 마음으로만 세상을 보며 살자고요.
오늘도 멋진 글 읽었으니 고마운 마음입니다.
ㅎ 점잖고 교양 있는 김포인 선배님 앞에서 변변치 않는 글로 제가 주름 잡는 꼴이 되었습니다.
사기는 내용에서도 배울 점이 많지만 저는 사마천 일생에 오랫동안 마음을 두었답니다.
그가 말하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법이 저를 살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결핍을 메꾸는 데도 사기 만한 내용이 없더군요.
여건이 되는 대로 가끔 사마천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꽃이 피어도 선배님을 닮고 싶은 제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ㅎㅎ
사기와 삼국지는 생애별로
읽고 또 읽어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외톨박이로 지낼적에 오직 저의 위안이 되고 길이 되어 준것은 독서였지요 특히 중국책뿐 아니라 일본의 대망. 우리의 토지와 혼불 등~
지금은 세월과 더불어 다 까먹어가는 중이라 손주돌보미시간이 지나면
다시 잡아볼 책이기도 합니다
저처럼 잘 안까묵는 현덕님이
부럽네요~^^
아하~ 예전부터 평화님 글을 읽으면 방대한 독서력을 감지했습니다.
독서력의 효과는 입에서도 나오지만 손가락으로도 나오게 되어 있지요.
대망과 혼불에서 다져진 평화님 내공은 분명 손주님께 전해져서 훌륭한 정신자산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희한하게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은 금방 잊는데 오래전의 기억은 까먹지를 않더군요.ㅎ
모쪼록 귀여운 손주님과 건강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마천하면 그냥 한가지 생각만한다.
그런 형벌을 받고서도 그 고통을 극복하고
"사기"라는 명저를 만들어낸 정신력...
지금껏 살아오면서 힘든 과정이나 육체적
아픔이 있을때면 사마천의 정신력을 교훈삼아
나 자신을 다스리고 추스린다.
사마천을 생각하는 마음이 적토마 형과 제가 꼭 같습니다.
글도 그 사람의 정체성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사기에는 사마천의 사상이 녹아 있습니다.
기막힌 운명을 잘 이겨낸 사마천의 일생이 제가 2천 년 전의 한 사람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적토마 형도 살아온 삶에서 사마천을 충분히 형 마음에 새길 만합니다.ㅎ
@유현덕
자잘한 세파에 흔들리거나 굽히지말고 강하게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가자고라 ~
건강 잘 지키면서 유머는 잃지말고....앗싸~!!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사마천을 생각했지만 아직 사기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유현덕 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사마천을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이베리아님, 사기는 지금 읽어도 괜찮습니다.
2천 년 전 이야기인데도 전혀 올드하지 않습니다.
사기를 읽고 나면 저절로 역사 인식도 생기고 처세술도 떠올리게 되더군요.
한 부분만 읽어도 무지 흥미롭답니다.ㅎ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했던 수피는 64년 도에 고향인 공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인 국민학교 5학년 때 하교 후 도서관 책에 묻혀 집으로 가는 시간을 잊은 수피를 엄청 사랑해 주셨던 울아버지가 절 찿으러 학교 도서관으로 자주 오시곤 하셨더랬지요. ^^
그 당시 제 손을 꼭 잡으시고 제게 "책이 그렇게도 좋으냐?" 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으시던 울아버지 음성이 지금도 생생하게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결혼 후에는 이동문고 책을 읽었었는데 이주일에 세 권씩 대여해 주는 책을 수피에게는 여섯권씩 빌려주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읽었던 책들이 제 삶에 지침서가 되어 어두운 밤 등불 밝히듯 깨달음을 얻는 삶을 살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유현덕님도 독서를 좋아하시는 수많은 분들 중 한 분이시로군요. ^^~
ㅎ 수피님이 책을 좋아하는 동지였군요.
독서도 누가 강요해서 하기보다 스스로 찾아 읽을 때가 더 기억에 남더라구요.
도서관으로 딸을 찾으러 갔던 아버지는 얼마나 흐뭇했을까요.
일생에서 삶의 지침서가 된 책이 있는 사람은 그만큼 인생이 풍요로울 겁니다.
여전히 독서로 마음의 등불을 밝히며 사시는 순수한 수피님께 박수를 보냅니다.ㅎ
죽음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ssg 미칩니다.
개인적으론 사전연명 거부도 신청해놓고
장기기증도 해놨고
자식들에게 사후 적어도 1년에 한 번
맛난거 먹으면서 10번은 엄마생각좀
해달라고 제사+추모비 나오는 보험을
들어놔놓곤 죽을준비 끝 했는데...
오늘 또 할 일이 생겼으니 언제 죽으려나
요원합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 사기 읽었어요
말 건네려고 서점으로 가렵니다.
한때 저도 최명희님의 혼불에 매료돼
사람들을 혼불 읽은사람과 안읽은 사람으로
이분법을 들이댄적도 있었지요~
참...살만한 날들입니다~
삶방의 격조높은 글들에 뿅~~~가는
하루의 시작이 엄지척이야요~
ㅎㅎ 이 댓글이 주는 감동을 어찌 감당할까요.
읽다가 최명희 선생 혼불에서 제 눈이 딱 멈췄습니다.
날도 점점 따뜻해지는데 마음 데우는 데는 책만한 것이 없지요.
그래도 제가 몽연님 건강수명을 최소 10년은 넘게 연장해준 것 같아 글 쓴 보람이 있네요.ㅋ
몽연님은 분명 책방 들르면 한 권 사러 갔는데 다섯 권을 사서 나올 분입니다.
저도 격조 높은 몽연님 댓글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ㅎ
도전과 참음~
그저 가만히 읽고 갑니다.
넵! 가만히 읽으셨어도 제대로 읽은 겁니다.
늘 젊게 사시는 석촌 선배님의 일상을 부러운 눈으로 응원합니다.ㅎ
저는 특히 윗사람의 부당한 행위를 보면은 욱~~들이박는 성질이라서,,,,아고 말도 말아요 ㅎㅎ
미운털 박혀서 죽다가 살아나기를 수차례 ,,,그래도 미련도 후회도 없습니다
그냥 생긴대로 이제껏 살고있답니다.ㅎ^^
ㅎㅎ 생긴 대로 산다는 섭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제가 그렇게 살거든요.
아는 것만큼 아는 체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참을 때는 꾹 참고, 하기 싫은 것은 싫다고 하고,,
우리 계속 생긴 대로 삽시다.^^
역시 멋져요. 역사에 배웁점이 많아요.
아~ 읽으셨군요.
저도 자연님한테 배울 점이 많답니다.ㅎ
저도 독서가 취미인적이
있었어요.
아직도 책을 좋아 하지만 눈수술하고는
눈앞에 항상 잠자리가
있네요.
전 조정래씨
아리랑 12권 두번
읽었어요.
넘 재미있어요.
태백산맥 한강도
재미있고 독서를 하면
행복해 하던 지난날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스포츠댄스를
배우고있어요.
좋은 글 덕분에 잘
읽고갑니다.
사기에 대해 가끔씩 글
올려주시면 열심히
읽을께요.
감사합니다.^^
ㅎ 파란여우님 대단합니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등,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은 정말 좋은 글이지요.
그런 글을 읽어냈다는 것만으로 파란여우님은 풍요로운 삶을 보낸 겁니다.
많은 돈 안 들이고 지적 여행을 하는 데는 독서 만한 것이 없지요.
눈 앞에서 모기가 날라다니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건 누구나 나이 들면서 겪는 통과 의례랍니다.ㅎㅎ
저도 가끔 그럴 때가 있는데 무시하고 사네요.
사기 이야기는 상황 되면 제 삶과 연결시켜 쓸 기회가 있을 겁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