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 내 나이 40대 중반, 열살도 안된 아들 둘과 아내와 함께 캐나다로 왔습니다.
고백하건데 그저 자식들만의 미래를 생각하고 이민을 결심한것은 아니었습니다.
비행기가 캐나다에 도착하고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는데 내 짧은 영어로 저걸 어떻게 해내지 하는 두려움이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장이었고 네식구중 그래도 영어로 몇마디 할수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짧은 영어로 무사히 통과했고 그때 내 아이들의 눈빛에서 아버지에대한 존경과 믿음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영어로 인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집을 얻는일, 은행, 애들 학교, 전화개통... 두려움속에 엉터리 영어로 어쩄든 해 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아버지가 영어를 엄청 잘하는 줄 알았지요.
ESL을 삼개월쯤 다녔고 비지니스를 하게되면서 영어공부는 거기서 접었습니다.
마음은 ESL을 일년쯤하고 칼리지라도 가서 한국에서처럼 직장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당장 돈을 버는일이 더 급했습니다.
애들이 점점 자라면서 당연히 아비와 자식간의 영어 실력은 역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애들도 우리 아버지의 영어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게 되었고 영어로 뭔가 해결해야하는 일이 생기면 알아서 먼저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자식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 시작했지요.
내가 해결하려면 미리 마음속으로 몇번씩 할말을 되뇌어보고 상대방의 답변이나 질문을 예상해보고 마음속으로 또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오면 얼굴이 벌개져 다 알이듣지도 못하고 YES, OK 해놓고 찜찜해 했는데 애들이 나서면 모든게 쉽게, 정확하게 해결되었으니까요.
애들이 장성하고 각자의 일도 생기고 연애도시작하고 하면서 많이 바빠지더군요. 슬슬 짜증이 묻어나는게 느껴집니다.
서글프긴했지만 자식들에대한 원망보다는 못난 스스로에대한 자책이 더 컸습니다.
60중반의 지금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먼지쌓인 영어책도 꺼내보고 유투브도 보지만 하루아침에 그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또 포기하게됩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자식들일까지 내가 영어로 해결해야하는 일은 없으니 20년전 이민올때보다는 그래도 부담이 덜하고 그간 눈치가 늘어 알아듣는것도 조금 나아졌을테고 백인 울렁증도 좀 덜해져 뻔뻔스러워 졌습니다. '내 영어가 좀 틀려도 네가 좀 알아들어줘라' 하는 배짱도 생겼지요.
컴퓨터나 전화기로 번역, 통역을 할수있다는 것을 알고는 더 큰 용기가 생겼습니다.
돈 문제나 법과 관련된 일들만 아이들의 도움을 받고 그 이외의 것들은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어려운 전화 받아 못 알아듣겠으면 무조건 이메일로 보내라고 합니다. 번역프로그램 돌려보고, 번역프로그램으로 답장도 쓸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안되면 이메일을 아이들에게 보내 도와 달라고 합니다.
젊은이 여러분, 당신들의 부모님이 오늘의 여러분들이 있기까지 많은 귀찮음, 부족함, 쪽팔림 모두 무릅쓰고 희생하셨습니다.
내 자식이니까 당연했습니다. 여러분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고 그 과정을 그대로 부모님께 돌려 드리면 어떨까요?
부모가 자식을 한사람의 완성된 인격체로 키우기위해 아기때부터 성인이 될때까지 모든것을 다 해주지는 않습니다.
어릴때는 다 해주다가 점차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요. 그렇게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요.
부모님 전화기에 번역 앱을 깔아드리고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부모님 수준에 맞을만한 유튜브 영어 프로그램도 찾아 드리고요.
부모님 돌아가실때까지 곁에서 모든일을 도와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진정성있게 알게 해 드리세요.
부모님이 서툰 영어로 뭔가를 스스로 해결하신다면 부모님이 당신에게 그랬듯이 좀 과장해서 창찬도 해드리고 격려 해 드리고.
짜증은 내지 마세요. 내가 못하는 것을 자식에게 부탁했는데 짜증으로 답한다면 정말 슬퍼집니다. 자식에 대한 원망보다 무능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서글픔이지요.
부모님이 당신들이 이렇게 성장하도록 한단계 한단계 오랜 시간을 공을 들이셨습니다.
여러분도 서두르지 마시고 부모님이 여러분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리고 천천히 도와 드리면 어떨까요.
제 연배의 부모님 여러분,
솔직히 얘기합시다.
정말 100% 자식만을 위해서 이민을 결심하신건가요?
'너 위해서 이민와서 내가 이 고생인데 너는 왜 그걸 몰라 줘?' 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아이들도 그게 거짓이라는 거 다 알걸요?
자식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내 인생을 좀더 멋지고 보람되게 살기 위해서 자식들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녀석들 우리 품안에 있을때는 말도 잘듣고 시키는 대로 잘 하더니 좀 컸다고 제 멋대로 하잖아요?
우리도 자식놈들 눈치 안보고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그놈들 처음 학교갔을때 영어 한마디 못하고 교실에 덜렁 남겨지면서부터 겪었던 그 과정을 우리도 겪어 내야 해요.
컴퓨터, 이 놈들 지들만 뭐 대단한거 알고 있는것 처럼 뻐기지만 해보면 별거 아니더라고요.
좀 잘못건드렸다고 내 재산이 다 날라가는거 아니더라고요.
까짓거 망가지면 다시 하나 사지요 뭐. 요즘 컴퓨터 얼마 하지도 않습디다.
이거 해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없는게 없더라고요. 드라마보고 영화보는거 말고도 우리도 할 수 있는거 엄청 많아요.
내 친구는 골프장 부킹하는것도 자식에게 부탁하던데 저도 처음엔 그러다가 혼자 해 보니까 할만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친구들 골프장 부킹은 제가 도맡아 하는데 그러다보니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컴도사로 불려요.
요즘은 전화기로 영어 번역 프로그램 쓰는데 이거 참 물건이예요.
애들한테 이것 좀 전화기에 설치 해 달라고 하고 사용법 좀 가르쳐 달라고 하세요. 프로그램 설치 하는것도 그냥 해 달라고 하지 말고 천천히 하면서 가르쳐 달라고 하세요. 그것도 해보면 별거 아니더라고요.
전화기에 번역 프로그램 하나 설치 해 놓고 있으면 우리도 애들처럼 베낭하나 달랑메고 해외 여행 떠날 수 있어요.
우리 맨날 한국인 가이드 있는 단체 여행 다니면서 속으로는 혼자서 또는 단짝 친구와 둘이서 베낭여행 다니는거 은근 부러웠잖아요? 애들로 부터 자립해야 이게 가능해요.
이제 애들 지들 인생 살라하고 우리도 우리 인생 삽시다. 까짓거 지금 이 나이에 혹시 영어 한마디 실수한다고 내 인생 다 망칠일 없어요. 뭐 취업 면접 보는것도 아니고...
아, 그런데 조심할것 하나 있어요. 은행관련, 세금 관련, 부동산 관련 등 실수하면 큰 일 벌어지는건 애들 도움 받는게 좋아요.
애들한테 부담주기 싫어서 잘 모르면서 대충 했다가 사후 수습이 안되거나 수습을 위해서 애들한테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어요.
애 들도 그런 중요한 일에 도와 달라면 좀 나서 주겠지요. 그런것도 짜증내고 안 도와주면 그눔시키한테 애기때 우유값부터 기저귀값, 이민올때 탔던 비행기 요금까지 다 적어서 청구서 디밀어 돈 받아내고 호적에서 파 버리세요. 아참, 이나라는 호적이 없네.
첫댓글 근 몇년간 읽은 글중에 제일 가슴에 와 닿는 글입니다.
멀리서지만 응원합니다.선배님.
와.. 글 잘 쓰셨네요 마음까지 전해져서 찡한 글이예요 윗글 보고 자식 입장에서 뭐 그렇게 느낄수도 있겠지했는데 한편으로 씁쓸했거든요 그 부모님 맘도 이해가 갔거든요 그런데 이 글 보니 양쪽 입장에서 대변이 잘 된 것 같아요
영어는 제2의 언어입니다. 영어 안되셔도 자신있게 사시는 모습 멋지십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언어 번역 앱도 앞으로 더 좋아질겁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여행도 많이 다니시면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
너무 공감가는 글이라 댓글 남기고 갑니다. 응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실 도와드리고싶지 않은 것도 아니고...투정하다가도 그저 옛날 내가 어릴 적 세상 모든 걸 다 알고있는 것 같던 부모님이다가 이제 내가 보살필 차례가 되보니, 부모님이 나를 키운 것도 처음이지만 나도 부모님을 부양하는 일이 처음이라고 깨닫는거죠...단지 일방적일 때 힘에 부친다는거죠. 이렇게 멋진 부모님이면 말할 필요도 없어요! 정말 멋지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세대가 꼭 읽어봤음 좋겠네요.
마음에 와 닿는 글이네요. 부모든 자식이든 서로가 이해하며 배려한다면 전혀 문제될게 없을겁니다.
제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짐을 주지 않도록 앞으로 많은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되네요... 좋은 글 감사드리며, 고생하신만큼 캐나다에서 행복한 삶만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좋은글입니다. 조금만 시간내서 영어 잘하는 자식들이 부모님 도와드리는건 이나라에서는 큰효도랍니다.
부모님 살아계실때 잘 해드리세요...
너무 감명깊어서 몇번을 읽었어요... 저도 현명하게 살아야겠다 라고 다짐하게 되네요. 너무 현명하세요!
좋아요 단추를 몇번이고 누르고 싶은 좋은 글입니다.
공감되고 감동되고 배움도 있는 시간이 였습니다.
좋은 글이라 저도 몇번을 읽었습니다.
이런 생각 진짜 존경받아 마땅한 어른!!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
처음으로 캐스모에서 가슴에 울림받고
감탄하고 갑니다!!👍 늘 항상 건강하세요.
연필로 그림그리다 포토샾으로 그림그리면서 아들의 도움을 엄청 받았어요.
.새로운 프로그램도 제가 헤메면 애들은 마지못해 달려와서 금방 해결해놓고 가요.
우리 아이들은 예전의 저보다 더 똑똑하답니다
아이들 없으면 캐나다 생활 곤란합니다 재미도 없구요 ....
자식들도 하루빨리 안정된 직장을 얻기바래요
부모들이 자랑하며 다닐수 있게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본문내용을 읽고 마음이 아팠어요.
저의 아이들이 쓴것같은느낌이었어요.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한국말을 잘해도 쓰는것은 좀 서툰편이라 이런글을 올릴수가 없죠.
마음은 글쓴님과 똑같을거라 생각이 드네요.
왠지 허무하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씁쓸했어요.
뭐라고 답을해줘야할까 고민하던중 답글을 쓰신분의 글을읽고 너무 공감이가는글이라 눈시울이 붉어졌네요. 아이들의 미래에 앞서 나자신이 다른세계에 도전해보고싶었던게 사실이니까요.
한국에서의 삶이 힘들어질때쯤 왠지 다른곳으로 도피하고픈 마음으로 왔으니까요.
수많은 시행착오도 수없이 겪으면서 살다보니 핑계아닌 핑계로 영어학교에 가서 앉아본 기억이 없네요. 독학으로 영어공부도 시도했지만 실패의 연속이더라구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 머리가 나빠서 안돼는것 같아요. 지금의 저는 그저 일상생활하는정도만 하는 수준이죠.
하지만 답글쓰신분 말씀처럼 중요한거는 어쩔수 없더라도 부모가 할수있는 기본은 해야죠.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살께요.
본문과 해당글 모두 읽어보았는데 눈물이 핑도네요. 양쪽의 입장이 다 이해가 가면서, 얼마나 멋지신 분일지 글에서부터 느껴지네요..! 사실 이 글은 꼭 캐나다 이민자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모두 해당되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