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사상, 미륵사상>
“신앙 깊다” 7년새 9%P↓ 무신론자 3%p↑
종교 신자는 줄어들고 무신론자는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윈 갤럽이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57개국 5만 1,927명 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8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신앙심이 깊다(I’m religious)”고 응답한 사람은 59%로 나 타났다. 이는 지난 2005년 같은 조사 당시 68%에서 9% 포인트 급락한 수치다.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답한 사람은 2005년에 비해 3% 포인트 상승한 13%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갤럽은 종교계의 잇단 스캔들과 경제 성장에 따른 물질적 풍요가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가장 종교적인 국가는 가나로 96%가 ‘신앙심이 깊다’고 답했다. 이어 나이지리아(93%), 피지·아르메니아(92%), 마케도니아(90%) 순으로 나타났다.
대륙별로는 아프리카가 가장 종교적이었다. 응답자의 89%가 신앙심이 깊다고 답해 1위에 올랐고, 이어 라틴아메리카(84%), 남아시아 (83%), 아랍(77%), 동유럽(66%), 북아메리카(57%), 서유럽(51%), 동아시아(39%), 북아시아(17%) 순으로 조사됐다.
무신론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47%를 차지한 중국이다. 이어 일본(31%), 체코(30%), 프랑스(29%) 순이었고 한국도 15%로 독일과 함께5위에 올랐다. 한국 응답자 중 신앙심이 깊다고 답한 사람은 52%,그렇지 않다는 31%로 나타났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이상세계가 정토사상과 미륵사상이라고 여겨집니다. 현재의 우리는 일상 속에서 극락정토를 염원하는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정토는 현실이 지옥과 같고 도무지 나아질 것 같은 희망이 없을 때 그리는 보편적 ‘희망사항’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정토 사상이 번영했던 시절은 대개 극단적 변화와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이상향인 그곳 정토에 가면 고통은 사라지고 지극한 낙樂〔極樂〕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보다 더 현재의 고통에 위안이 되는 사상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더욱이 불교는 삶을 고해의 바다라고 했고 생각 자체를 번뇌로 여겼으니, 현생에서는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생각을 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세계가 정토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불교의 종착인 깨달음을 극락정토에만 가면 저절로 이룰 수 있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많은 논사들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극락정토를 거론했고, 현실에 고통 받는 중생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번창해 나갔을 것입니다.
앞의 자료를 보면 예상을 벗어나는 점들이 있습니다. 오차를 염두에 둔다 해도 아프리카인들이 가장 종교적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90%를 상회하는 종교성은 단순히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와 선교의 결과라고만 단정하기에는 곤란한 측면이 보입니다.
아마 이 조사에서 말하는 ‘종교’가 그들의 토속 신앙을 포함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경우 그들은 정신적으로 아직 샤머니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가정해야 하는데, 이 가정 역시 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가장 고통의 대륙인 아프리카에서는 정토와 같은 종교적 신념이 ‘보편성’을 띠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사 결과 중 수긍이 가는 부분은 무신론자의 증가세입니다. 종교의 타락이 큰 몫을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교육을 받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드니 그 역시 한 몫을 했을 것이고, 인간의 지적 발달과 과학적 성과가 무신론의 보편적 가치를 높여 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불교는 사실 엄청난 호시절을 만났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무신론자, 무종교인은 분명히 불교적 성향을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무신론적 종교이며 인간의 본성을 탐미하는 품격 높은 종교로서가 아니라, 그저 ‘종교는 다 마찬가지다’라는 왜곡된 확신만 심어주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익집단으로 타락한 승가와 그 구성원의 수준 미달 에 전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불교는 ‘지금’, ‘나와 우리’의 문제를 논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실시간의 종교여야 합니다.
붓다께서도 바로 이 당위성 때문에 평생을 길에서 사시며 길에서 열반하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정토의 개념은 붓다의 의도 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미륵사상은 구세주 사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 어원도 마이트 레야Maitreya로 기독교와 불교가 공유하는 단어입니다. 정토가 지긋 지긋한 현세에서 벗어나 다음에 가고 싶은 곳이라면, 미륵과 구세주는 세상의 종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그 차이입니다. 문제는 인류는 세상의 종말을 2천 년 이상 외쳐왔으나 아직 종말의 징후는 보이지 않고, 앞으로도 정말 종말이 올 때까지 구세주의 개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토는 내가 능동적으로 찾아가야 할 곳이라면, 미륵은 내가 무한한 인내심으로 기다리면 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둘 중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인간의 수명을 생각해서 저라면 정토를 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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