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제에 이은 우리말 백(白)의 사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철저히 실패했다. 그 원인이 이번 회고록에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지난달 나온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일파만파 논란을 일으켰지요.
내용은 다 제외하고 우리 관심은 이 문장에 쓰인 ‘백일하’라는 말에 두려도 합니다.
‘백일하(白日下)’는 주로 ‘백일하에~’ 꼴로 쓰여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도록 뚜렷하게’란 뜻입니다.
‘백(白)’은 다양한 의미로 우리말 곳곳에 자리 잡아 풍성한 단어군을 이루는 데 기여합니다.
한자 白은 어원적으로 촛불을 그린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지요.
그래서 본래 ‘밝다, 빛나다’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가 담긴 말이 ‘백일(白日)’이고, ‘환히 밝은 낮’을 나타내니까
순우리말로는 ‘대낮’ 또는 ‘한낮’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일’은 요즘 단독으로 잘 쓰이지 않지만 ‘청천백일(靑天白日)’에서 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지요.
‘하늘이 맑게 갠 대낮’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백일하’에도 그 쓰임이 남아 있으니, ‘아래 하(下)’와 어울려 밝은 대낮 아래,
즉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분명하게’란 뜻으로 확장됐습니다.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와 관련해 항간에
“백주대낮에 쓰레기 더미와 삐라가 떨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때의 ‘백주(白晝)’도 ‘백일’과 같은 말입니다.
원래 “백주에 대로(大路)에서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처럼 쓰이는 이 말은
순우리말로 하면 ‘대낮에 큰길에서~’가 됩니다.
이를 줄여 “백주대로에서~”처럼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착각해 사람들이 ‘대로’ 대신에 ‘대낮’을 넣어 “백주대낮에~”로 말합니다.
‘백주’나 ‘대낮’이나 같은 말이니 겹말, 즉 ‘역전앞’과 같은 꼴이 되는 것입니다.
말은 필요에 따라 겹말도 흔히 쓰니 이를 탓할 수는 없으나, 그 유래는 알고 써야지요.
‘백일’이 쓰인 우리말로는 백일몽, 백일장도 알아둘 만합니다.
‘백일몽(白日夢)’은 직역하면 ‘대낮에 꾸는 꿈’이니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이릅니다.
‘백일장(白日場)’은 국가나 단체에서, 글짓기를 장려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글짓기 대회를 말합니다.
이는 조선 시대에,
각 지방에서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글짓기 시험을 치르던 일에서 유래했습니다.
‘백(白)’은 어원적으로 ‘밝다, 빛나다’에서 시작해 ‘희다’나 ‘깨끗하다’, ‘진솔하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고백(告白)’이나 ‘자백(自白)’할 때 이 글자가 들어있잖아요.
‘담백(淡白)하다’란 말에는 깨끗하다, 순수하다, 맑다는 뜻이 담겨 있고요.
고기나 생선 따위를 양념하지 않고 맹물에 푹 삶아 익힌 것,
또는 그렇게 만든 음식을 가리켜 ‘백숙(白熟)’이라 합니다.
‘숙(熟)’이 ‘익다’라는 뜻이니 백숙은 ‘맑게 삶아낸 것’이 됩니다.
‘공백(空白)’ ‘여백(餘白)’이란 말도 살펴볼 만합니다.
이때의 백(白)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백수(白手)’가 나왔으니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손, 즉 ‘빈손’을 나타냅니다.
이게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사람을 상징하는 말로 진화했네요.
요즘은 특히 직업이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白의 대표적인 의미는 ‘희다’인데요. 많은 말이 여기서 가지를 뻗어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백미’와 ‘백안’, ‘백병’을 알아둘 만하지요.
‘백미(白眉)’는 흰 눈썹으로,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 또는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중국 촉한 때 마씨(馬氏) 다섯 형제가 모두 재주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눈썹 속에 흰 털이 난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백안(白眼)’은 직역하면 눈의 흰자위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백안시(白眼視)’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이는 흰자위를 드러내며 흘겨본다는 뜻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행동 또는 눈빛입니다.
‘백병(白兵)’이라 하면 적과 직접 몸으로 맞붙어 싸울 때,
적을 베고 찌를 수 있는 칼이나 창 따위의 무기를 말합니다.
도검류의 칼날이 백색으로 빛난다는 점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백병으로 무장한 채 싸우는 전투가 ‘백병전(白兵戰)’입니다.
그러니 백병전은 ‘적과 직접 맞붙어서 총검으로 치고받는 싸움’을 가리키니 곧 ‘육박전(肉薄戰)’인 것입니다.
작금의 정치 현실이 언젠가는 백서로 나타날 것이고,
기세등등한 의원들 중에서도 뒷전으로 물러나 입만 동동 뜨는 백수건달이 되어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