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6. 7. 13. 월요일
인터넷 뉴스가 떴다.
장동혁 또 "재명아, 봤지?" 반말…
박지원 "인격 파탄자"
2026. 7. 13. 뉴스 제목
이런 행위도 <표현의 자유>일까?
뉴스 .......
장 대표는 그제(2026. 7.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열린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재명아 봤지? 들었지? 그럼 국민특검 받아야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지난 7일 같은 장소에서 "재명아, 고등학생 말고 나랑 싸우자"라는 문구를 선보인 지 나흘 만이다.
장 대표는 취임 이후 공식 석상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을 '이재명'이라고 지칭하며 대통령 호칭을 생략한 바 있다.
이에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제(12일) 페이스북을 통해 "장동혁 대표의 패악질 언어는 언제까지 계속되고, 언제 끝날까"라며 "점입가경"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참으로 입과 인격 파탄자로 여길 수밖에 없다"며 "이 정도면 패륜이다. '아이들 볼까 두렵다'라는 말이 떠오른다"고 꼬집었다.
2.
1) 장동혁 정치인
- 1969년 6월 2일 생
충남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한내 출신.
무척이나 가난한 마을이다.
* 내 시골집에서 5 ~6Km 떨어진 곳.
위 마을에는 내 큰대고모네가 사셨고, 대고모부의 큰아들네, 작은아들네도 사셨다.
대고모네 집 뒤 산은 대고모의 친정인 최씨네 소유의 산. 내 증조부 산소가 있었다.
최씨(종조부, 우리집, 숙부네)는 읍내 철도 역전 뒷편 마을, 읍내 장터 뒷편 마을에 있는 대고모네 집에 이따금씩 들렀으며, 내 어린시절에도 나도 방죽굴에 가서 증조부 묘소에서 절을 올렸다.
이농시절에 그들이 객지인 서울로 떠난 뒤. 내 부친 사후에 나는 종산(부친 숙부 공동명의)을 팔았고, 증조부 묘소를 파묘하여 웅천읍 죽청리 내 소유의 산으로 이장했다(집단 산소화).
나한테는 웅천읍 대창리 소재 장동혁 정치가의 고향마을이 눈에 훤하게 그려진다.
장동혁은 판사 출신
소속 : 국민의힘 당대표
지역구 : 충남 보령시 서천군
학력 : 웅천읍 대창국민학교, 웅천중학교, 대천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졸업
경력 : 2025. 08. ~ 국민의힘 당대표
2) 김태흠 정치인
- 1963년 1월 생
충남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 출신.
보령서천 지역 국회의원 역임, 충남 도지사 역임.
* 국민의힘당 당원
학력 :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 수부국민학교, 웅천중학교, 공주고등학교, 건국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정치경력 : 2012년 제19대 보령서천 국회의원 당선,
2016년, 2020년 국회의원 3회 연속 당선
2022년 충남도지사 당선
2026년 충남도지사 출마, 낙선
* 내 시골집 (웅천읍 구룡리 화망)에서 5 ~ 6km 떨어진 곳, 부여 방면으로 가는 내륙 도로변.
3) 남희석 방송가, 연예인
-- 1971년 7월 생
충남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출신(웅천읍 소재지)
그의 모친은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장마 태생.
전국 노래자랑 사회자 : 송해선생 작고 뒤에 남희석 씨가 2024년부터 뒤를 잇고 있다.
남희석, 그의 부친( 오른쪽)
남희석 씨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 출신이다.
나는 그의 부모님 두 분을 안다. 고향사람이기에.
나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 출신.
그의 모친은 내 시골집에서 3km 떨어진 이모네 마을 출신
그의 모친은 백영숙 씨, 바로 이웃마을(구룡리 장마마을)에 사시던 내 이모네(남포백씨) 일가이다.
님희석 씨 외할머니는 우리 동네 구룡리 화망마을 4반(정굴)에서 사셨다.
* 화망마을은 1 ~ 4반으로 구성.
남희석 씨와 부친(남성우)은 얼굴이 고스란히 빼닮았다!
* 남희석 외할머니 장례식에 나는 문상 갔고,
2015년 2월 내 어머니 초상 때에는 남희석 부친이 나한테로 문상 오셨다.
남희석 부친은 웅천면 대창리 읍내 시장 도로변에서 중화요리점을 경영하시다가 ..... 다른 곳으로 떠나셨다.
3.
이런 행위도 <표현의 자유>인가?
서울 송파구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서 연습용 수류탄 발견…경찰 수사 착수(2026. 6. 20)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대한민국 헌법 상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없으나,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의 언론·출판 및 집회·결사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이 되는 자유권적 기본권인 동시에, 그 범위에 대한 가장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는 기본권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③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④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2조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2항은 표현의 자유와 직접적으로는 무관하므로 생략)
‘표현의 자유’(네티즌 의견) :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과 하위법령, 각종 제도 등을 통해 여러 형태로 보장받는 기본권이다. 하지만 어떤 권리든 ‘절대선’화 되면 폭주를 유도하고, 폭주는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무조건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집착이 무고한 피해자를 만드는 상황이 잇따르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현실과 가상공간을 가리지 않고 개인이나 단체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사실 왜곡과 혐오 표현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처벌을 피해간다. 나아가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가해 행위를 지속할 권리를 보장받는다.
4.
<표현의 자유>의 한 모습이다.
2026. 7. 11.
나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남쪽 도로편에서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들고 시위(데모)하는 집단현장을 직접 보았다.
100명도 훨씬 넘는 시위자들이 대형 성조기와 태극기 깃대를 높이 쳐들고, 크게 외치면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멀리서 쳐다보는 것도, 바라보는 것으로도 겁이 났다.
"윤어게인'이란 글씨가 선명한 깃발에 섬뜩하게 보았다.
'윤어게인'이 무슨 뜻일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용어이다.
국가공무원으로서 정치와 무관하게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헸다.
2008년 7월 초에 고향으로 내려가 텃밭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모자간 둘이서 함께 살던 어머니가 집나이 아흔일곱살 만나이 95샬이 된 지 며칠 뒤인 2015년 2워 말에 저너머 세상으로 떠나셨다.
고향 선산 즉청리 서낭댕이에 있는 아버지 무덤을 파서 합장해 드린 뒤 나는 그참 고향을 떠나서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에서 산다.
자꾸만 등허리뼈 아파서, 걷기운동하려고 석촌호수로 나가 한 바퀴를 천천히 돈다.
이따금 석촌호수 서호쉼터 입구에서 대한민국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들고 시위 데모하는 사람들을 본다.
겁이 나며, 섬뜩한 현장이다.
저들한테는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보장되는가? 의문스럽다.
나는 학창시절에 헌법학을 공부했고, 공무 수행 중에 필요한 대한민국 헌법 조문을 깡그리, 달달달 외우면서 실천헸다.
국가안보기관에 근무했기에 법과 행정이 무엇인지, 국민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얼추 알 것 같다.
그런데도 2026년 지금 대한민국에서 보도되는 숱한 뉴스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현행 대한민국에서 언론기관은 아마도 300곳 가까울 것이다. 신문과 텔레비전,사설 보도기관 등이 엄청나게 많아서 사주의 이익에 따라서 보도하는 내용이 조금씩 각각 다를 것이다.
국민 또한 표현하는 방법도 각각 다를 것이다.
제각각으로 보도하기에 정치에 별로 관심없이 사는 국민한테는. 더러는 헷갈릴 것이다.
만77설 눍은이, 기억력이 까무락거리는 나같은 늙다리들은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벙벙할 것이다.
5.
무더운 여름철인 오늘(7월 13일).
나는 화분 속의 흙을 뜨겁게 삶아서 <극단적인 표현의 자유>를 실천한다.
일전 서울 송파구 삼전동 인근에 있는 식물 가게에서 부추 모종 3덩어리, 상추 모종 4포기를 사다가 화분에 심었다.
상추모종은 나중에 크게 높게 자랄 것을 예상하여, 화분 2개에 나눠서 심었다.
오늘 아침에 보니 화분 속의 상추 2포기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심었더라?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다가 화분 흙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벌레를 잔뜩 발견했다.
빈대를 닮은 벌레들이 무척이나 많이 기어다닌다. 이들이 상추 모종을 깡그리 긁어 먹었다는 뜻.
나는 화가 나서 헌 냄비 안에 화분 흙을 꽃삽으로 퍼서, 반반씩 덜어 담고는 물 부은 뒤 가스렌지 불을 켜서 냄비 안을 뜨겁게 삶았다.
뜨거운 물을 쏟아서 다른 그릇 안에 있는 화분흙에도 붓고는, 또다시 가스렌지 불을 켜서 삶았다.
화분 속의 흙탕물을 뜨겁게 삶았으니, 흙속에 들어있는 벌레, 병균들은 뜨겁게 데워져서 극락세계로 여행 떠났을 것이다.
나도 <표현의 자유>를 내 방식대로 실천한다.
내가 실현하는 자유의 방법은 여러 가지일 터. 그 가운데에는 <극단적인 행동의 자유>를 포함한다.
비좁은 아파트 실내에 크고 작은 화분 160개 쯤을 올려놓고는 여러 종류의 식물을 가꾸는 나.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화분이라서 그럴까? 화분 속에는 이따금씩 벌레가 발견된다.
한 두 마리야 용서해 줄 것이지만 집단으로 떼지어 다니면서 화분 속의 식물을 갉아먹는 해충이라면....
관용의 범위를 넘어서 살충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농약을 사다가 뿌릴 수도 없을 터.
이따금씩 화분흙을 덜어서 헌 냄비 안에 넣고는 물 부어서, 가스렌지 불로 뜨겁게 삶는다.
흙속의 벌레, 세균들도 뜨겁게 데워져서 결국에는 극락세계로 떠날 것이다.
모든 것은 조화롭게 순환해야 한다.
어느 한편으로 지나치게 기울지 않았으면 싶다.
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처럼 좌우로, 앞뒤로 기우뚱 기우뚱하면서 물살에 따라서 안전하게 항해를 했으면 싶다.
지나치게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진다면 나도 억지스럽게 <표현의 자유>를 실천한다. 그것도 <극단적인 표현의 방식>이다.
개인과 집단이 누리는 <표현의 자유>이라도 어느 정도껏은 조율조정되고, 규제되고,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무한정의 자유는 없다'라고 본다.
나중에 보탠다.
자료와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