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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れ以上失うものは何もない」いじめで病院送り、両親の離婚、長男の死…イーロン・マスクが“倒産寸前”でもスペースXとテスラを見捨てなかった“納得の理由” / 10/26(月) 20:00配信 / 文春オンライン
「これ以上失うものは何もない」いじめで病院送り、両親の離婚、長男の死…イーロン・マスクが“倒産寸前”でもスペースXとテスラを見捨てなかった“納得の理由”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괴롭힘으로 병원에 실려가고, 부모의 이혼, 장남의 죽음… 일론 머스크가 ‘파산 직전’임에도 스페이스X와 테슬라를 버리지 않은 ‘납득할 만한 이유’ / 10월 26일(월) / 문춘 온라인
얼굴에 캔을 던지는 심한 괴롭힘,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생후 겨우 10주에 잃은 장남――. 세계 최고의 부호 일론 머스크의 ‘꺾이지 않는 정신’ 뒤에는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격렬한 ‘상실 경험’이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외로운 천재는 왜 정치라는 진흙탕에 발을 들여 국민의 '증오의 표적'으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닛케이BP의 신간 『데이터로 철저 해부 일론 머스크 제국』(닛케이BP)에서, 그를 움직이게 한 트라우마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일어난 ‘DOGE(정부 효율화 부처)의 실패’의 진상을 일부 발췌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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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프리카의 외로운 소년
1971년, 남아프리카 북동부 프레토리아에서 영국계 남아프리카인 아버지 에롤 씨와 캐나다인 어머니 메이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밑으로는 동생 킨발과 여동생 토스카가 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원활히 교류하지 못하고, 캔을 얼굴에 던지는 등 괴롭힘을 당해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다. 1979년에 부모가 이혼하고, 그 후 형제 두 사람은 아버지 곁으로 갔다. 아버지 에롤 씨는 자녀에게 엄격하게 대했다고 전해지며, 머스크는 성인이 된 뒤에도 모든 상황에서 아버지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악한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점점 집에 틀어박혀 SF 소설을 읽거나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었다. 12세 때 게임 소프트웨어 '블래스터'를 개발해 판매했다. SF소설은 나중에 우주 개발에 대한 꿈으로, 프로그래밍 기술은 나중에 창업으로 이어졌다. 1989년, 어머니의 출생지인 캐나다로 이주했다. 대학에서 경제와 물리를 공부한 뒤, 1995년 스탠포드 대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지만 단 2일 만에 중퇴하고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 상실이 북극성을 만들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의 조직심리학자 서 캐리 쿠퍼 교수는 수십 명의 창업가와 기존 기업의 CEO를 비교 인터뷰한 연구에서 한 가지 공통된 패턴을 발견했다. 많은 창업자들이 8~10세 때 부모의 이혼이나 사별, 심각한 괴롭힘 등 ‘손실 경험’을 겪었다고 한다.
"손실을 경험한 사람은 어른이 된 뒤에 일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권력과는 다르다. 어린 시절에 인생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만큼, 그것을 되찾으려는 것이다”라고 쿠퍼 교수는 말한다. "창업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최적의 수단이다"
머스크의 경우는 여기에 더해, 2021년 5월 미국 코미디 프로그램 ‘Saturday Night Live(SNL)’에 진행자(호스트)로 출연했을 때, “저는 아스퍼거 증후군(현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라고 불리는)을 가진 최초의 진행자다. 적어도 그렇게 공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진행자라고 밝히며 대중을 놀라게 했다.
ASD인 사람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등 사회적 의사소통에 능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한편, 흥미를 가진 일에 끝까지 파고드는 집중력을 지닌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
2022년 스피치 행사 ‘TED’에서 머스크는 이렇게 회고했다.
"상대가 말한 것을 겉으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인식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된다. 모두가 전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머스크는 2002년 첫 번째 아내 저스틴 씨와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네바다 군을 생후 겨우 10주 만에 잃었다. 이 개인적인 비극이 머스크의 북극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 북극성으로 이어지는 창업 연쇄
머스크의 기업가로서의 궤적은 매각 자금을 다음 꿈에 쏟아붓는 연쇄다. 1995년에 동생 킨발 씨와 함께 온라인 출판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Zip2’를 설립했으며, 99년에 컴팩에 매각했다. 그곳에서 얻은 자금으로 온라인 결제 서비스 ‘X닷컴’을 설립했고, 이후 페이팔이 될 회사와의 합병을 거쳐 그 회사가 이베이에 인수되면서 약 1억 8,000만 달러를 손에 넣었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2002년에 스페이스X를 설립하고, 2004년에는 테슬라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기술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다. 대기업에 매각하면 다음 꿈에 투자할 수 있다는 논리를 머스크는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
하지만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스페이스X는 2006년 첫 발사부터 3회 연속 실패했다. 테슬라도 양산 체제로 전환하지 못해 2008년에 양사가 동시에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2008년 12월 24일 오후 6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날, 이 시간까지라는 아슬아슬한 시점이었다고 머스크는 나중에 회상했다. 보유 자금은 수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어느 한쪽을 살리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머스크는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머스크는 왜 몇 번이나 쓰러져도 일어설 수 있는 것인가. 쿠퍼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창업가는 이미 젊은 시절에 무언가를 잃었다. 그래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 일반인보다 훨씬 큰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게다가 역경을 극복하는 열쇠로 교수가 꼽은 것이 ‘레질리언스’다. ‘실패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목표 의식을 갖는 것. 머스크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실 경험이 아이러니하게도 위험에 대한 내성과 꺾이지 않는 정신을 길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머스크의 머릿속은 매우 단순하다.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상대에게 '재미없다'고 말해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고, 재미있다면 이름 없는 청년이라도 끝까지 사귄다. 겉으로 보기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전부다.
그렇다면, 그런 남자가 왜 정치라는 무대에 발을 들였을까.
◇ 트럼프와의 밀월과 이탈—‘어느 쪽도 아닌’ 국민이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뉴욕 지국에 파견된 2019년, 필자가 처음으로 놀란 것은 미국 사회에 떠도는 헤아릴 수 없는 침체감이었다. 미국에서는 양대 정당제(양당제)가 시행되고 있다.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에 따라 대통령 선거 전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 관계조차 무너질 정도로 논쟁이 격화된다. 총기 소지를 허용할지 여부, 낙태를 합법화할지 여부, 이민을 받아들일지 여부—이러한 질문에 대해 공화당과 민주당은 거의 정반대 입장을 취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의 가치관을 부정하게 된다. 그레이존은 기본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한편,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이 입을 모은 말은 '두 정치인 모두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불신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하려면 미국의 양당제 역사를 알아야 한다.
◇ 양대 정당제의 토양
미국의 양당제 균열은 1850년대의 '노예제를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노예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남부 상인들은 제도의 지속을 주장했고, 제도에 반대하는 북부 세력과 대립하면서 남북 전쟁으로 번졌다.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결성된 것이 공화당이며, 국가 예산을 가능한 한 작게 억제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판단과 경제 활동에 맡기는 '작은 정부'를 신조로 삼는 토대를 마련했다. 즉, 원래 공화당은 노예제 반대 입장이었으며 지지층에는 흑인 등 유색 인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시기에 민주당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 정책이 흑인층의 지지를 얻어 흑인의 영향력이 커졌다. 1950년대에 시민권 운동이 일어나고, 1964년 민주당의 존슨 대통령이 시민권법에 서명하면서 흑인 표가 한꺼번에 민주당으로 몰렸다. 1980년대 이후 중남미계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이민 수용을 지지하는 민주당에 그 표도 집중되기 시작했다.
백인 지지에만 의존해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공화당 일부가 2013년 민주당과 손잡고 이민 수용 법안을 추진했다. 상원을 통과해 하원에서 폐기되었지만, 이 움직임에 백인 지지자들이 격렬히 반발했다. 이 흐름은 2016년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한다’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역사는 노예 제도와 이민 수용 등을 둘러싼 분열이 미국의 형성 자체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제도에도 숨어 있다. 예일 대학의 이언 샤피로 교수는 미국 선거 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을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 선거 후보를 결정하는 예비선거의 투표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2016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투표한 사람은 미국 전체 유권자 중 겨우 5% 정도에 불과했다. 그 결과, 선택된 사람이 트럼프 씨라고 2021년 인터뷰에서 말했다. 예비선거에서는 선거에 열성적인 극우·극좌 유권자들이 많이 투표하기 때문에, 국민 전체의 여론이 반영되기 어렵다. 그 결과 ‘반드시 민의를 반영하지 않는 약한 대통령’이 탄생하는 구조가 된다.
이러한 침체 속에서 머스크는 '어느 쪽도 아닌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는 존재로 부상한다. 기존 정치인과는 달리, 부패한 정부를 기술로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들의 눈에 비쳤다. 앞서 언급한 쿠퍼 교수는 머스크와 트럼프의 차이를 이렇게 분석한다. 트럼프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만 비추면 뭐든 괜찮다. 머스크는 다르다. 무언가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
◇ DOGE라는 실험
머스크와 정치의 관계가 변한 것은 24년 후반이다. 머스크 전용기가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저택 ‘말아르고’로 향하는 빈도가 급증했다. 그리고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거쳐 머스크는 DOGE의 특별 정부 직원으로 임명되었다.
‘가능한 한 성공한다는 전제하에’라고 머스크가 서두에 제시한 목표는 2조 달러 규모의 지출 삭감이었다. DOGE가 보낸 멤버 구성은 머스크 제국 그 자체다. 스페이스X, 테슬라, X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들이 눈에 띄었으며, 19~25세의 젊은이들이 재무부의 결제 시스템 접근을 허가받은 사례도 있었다. 도청 직원들로부터 ‘DOGE 키즈’라고 빈정거릴 정도였다.
진정한 목표는 비용 절감에 그치지 않았다.
사회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가나자와공업대학 교수 노무라 야스히코 씨는 “머스크가 노리는 것은 ‘행정의 해시태그화’다”라고 지적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정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관리하고, X 해시태그처럼 자동으로 집약·처리하는—기존 행정 업무를 근본부터 재구성하는 궁극의 디지털 정부 구상이다.
하지만 수치는 가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DOGE는 당초 예정대로 26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끝으로 활동을 마쳤다. 달성한 절감액은 도표 6-02에 나와 있다.
약속한 2조 달러의 절감액에 비해, DOGE 공식 발표의 절감액은 2,150억 달러였다. 또한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Politico)』의 제3자 검증에 따르면, 확인된 계약 절감액은 약 14억 달러에 그쳤다. 같은 기간에 국채는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거대한 실험은 뜻과는 동떨어진 결과로 끝났다.
◇ 지지에서 증오로
머스크는 DOGE를 공식적으로 탈퇴한 2025년 5월 이전부터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테슬라 차량이 시위대에 불태워지고, 판매점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스페이스X 진출로 자택을 처분한 마리아 포인터 씨도 분노를 드러낸 인물 중 한 명이다.
"고향인 알래스카에서 연방 정부의 다양한 지원금이 중단되고 있다. 억만장자 일론에게는 억압받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한때 머스크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그를 비난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팬과 반대자 사이의 경계선이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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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힘으로 바꿔온 그 남자는, 지지자를 잃는 '새로운 상실'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이어서 『 데이터로 철저 해부 일론 머스크 제국』(닛케이 BP)에서 읽어 주세요.
이케마츠 유카/Web 오리지널(외부 전재)
「これ以上失うものは何もない」いじめで病院送り、両親の離婚、長男の死…イーロン・マスクが“倒産寸前”でもスペースXとテスラを見捨てなかった“納得の理由”
「これ以上失うものは何もない」いじめで病院送り、両親の離婚、長男の死…イーロン・マスクが“倒産寸前”でもスペースXとテスラを見捨てなかった“納得の理由” / 10/26(月) 20:00配信 / 文春オンライン
顔に缶を投げつけられる激しいいじめ、親の離婚、そして生後わずか10週で亡くした長男――。世界一の大富豪イーロン・マスク氏の「折れない精神」の裏には、幼少期から積み重なった壮絶な“喪失体験”があった。傷だらけの孤独な天才は、なぜ政治という泥沼に足を踏み入れ、国民の「憎悪の標的」へと転落していったのか。
日経BPの新刊『 データで徹底解剖 イーロン・マスク帝国 』(日経BP)より、彼を突き動かしたトラウマと、トランプ政権下で起きた「DOGE(政府効率化省)の失敗」の真相を一部抜粋してお届け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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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アフリカの孤独な少年
1971年、南アフリカ北東部のプレトリアで、英国系南アフリカ人の父エロールさんとカナダ人の母メイさんの間に生まれた。下に弟キンバル氏と妹トスカさんがいる。学校ではうまく友達と交流できず、缶を顔に投げられるなどいじめに遭い、病院に運ばれたこともある。79年に両親が離婚し、その後、兄弟2人は父の元へ。父エロールさんは子どもに厳しく接していたとされ、マスク氏は成人してからもあらゆる場面で父を「信じがたいほどの悪人」と非難している。
いじめから逃れるため、次第に家に閉じこもってSF小説を読んだり、コンピューターでプログラミングをしたりするようになった。12歳の時にはゲームソフト「ブラスター」を開発して販売している。SF小説は後に宇宙開発への夢に、プログラミング技術は後の起業へとつながった。89年、母の出身地カナダへ移住。大学で経済と物理を学んだ後、95年にスタンフォード大学の博士課程に進学するが、わずか2日で退学して起業の道へ踏み出した。
喪失が北極星を作った
英マンチェスター大学の組織心理学者、サー・キャリー・クーパー教授は、数十人の起業家と既存企業のCEOを比較インタビューした研究の中で、ある共通パターンを見いだした。起業家の多くが、8〜10歳の頃に親の離婚や死別、深刻ないじめといった「損失体験」を経験していたというのだ。
「損失体験をした人は、大人になってから物事を自分の意のままにコントロールしようとする傾向がある。それは権力とは違う。子ども時代に人生を思うようにコントロールできなかった分、それを取り戻そうとするのだ」とクーパー教授は言う。「起業は、これらの欲求を満たす格好の手段だ」(同氏)
マスク氏の場合はこれに加え、2021年5月に米コメディー番組「サタデー・ナイト・ライブ(SNL)」に司会者(ホスト)として出演した際、「私はアスペルガー症候群(現在は自閉スペクトラム症=ASDと呼ばれる)を持つ最初の司会者だ。少なくともそう公言した最初の司会者だ」と公表して世間を驚かせた。
ASDの人は、相手の意図をくみ取るなどの社会性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得意ではないとされる一方で、興味を持った物事をトコトン突き詰める集中力を持つ傾向があるとも言われる。
22年のスピーチイベント「TED」でマスク氏はこう振り返っている。
「相手の言ったことを額面通りに受け取る傾向があった。でも後で、その認識が間違っていたと分かる。みんなは、必ずしも伝えたいことをそのまま口に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のだと理解するまで、しばらくかかった」
あまり知られていないが、マスク氏は02年、1人目の妻ジャスティンさんとの間に生まれた長男ネバダ君を、生後わずか10週で亡くしている。この個人的な悲劇が、マスク氏の北極星をより強固なものにした可能性は十分にある。
北極星へと続く起業の連鎖
マスク氏の起業家としての軌跡は、売却資金を次の夢に注ぎ込む連鎖だ。1995年に弟キンバル氏とオンライン出版ソフト開発会社「Zip2」を立ち上げ、99年にコンパックに売却。そこで得た資金でオンライン決済「Xドットコム」を設立し、後のペイパルとなる会社との合併を経て、その会社がイーベイに買収されたことでおよそ1億8000万ドルを手にした。この資金を元手に、2002年にスペースXを設立し、04年にはテスラへの出資を決めた。技術があれば起業できる。大手に売却すれば、次の夢に投資できる―この論理を、マスク氏は一貫して実践してきた。
だが、道は平坦ではなかった。スペースXは06年の初号機打ち上げから3回連続で失敗。テスラも量産体制に入れず、08年には両社が同時に倒産寸前に追い込まれた。「08年12月24日午後6時。資金を調達できたのは、この日、この時間までというギリギリの時刻だった」―マスク氏は後にこう振り返っている。手元資金は残り数千万ドル。どちらか一方を生かす選択肢もあったが、マスク氏は両方とも見捨てなかった。
では、マスク氏はなぜ何度、倒れても立ち上がれるのか。クーパー教授はこう分析する。
「起業家はすでに若い頃に何かを失っている。だから、これ以上失うものは何もないという感覚があり、普通の人よりはるかに大きなリスクを取れる」
さらに、逆境から這い上がる鍵として教授が挙げるのが「レジリエンス」だ。「失敗や環境の変化に柔軟に対応する力を持ち、目的意識を持つこと。マスク氏はその両方を備えている」。幼少期の喪失体験が、皮肉にもリスクへの耐性と折れない精神を鍛え上げたと見ることができる。
マスク氏の頭の中は至極シンプルだ。面白くないと思えば相手に「つまらない」と告げて場を凍らせるし、面白ければ名もなき青年でもトコトン付き合う。はた目には天使と悪魔が共存しているように見えるが、ただそれだけのことだ。
では、そんな男が、なぜ政治という舞台に踏み込んでいったのか。
トランプ氏との蜜月と離反――「どちらでもない」国民が求めたもの
ニューヨーク支局に赴任した19年、筆者が最初に驚いたのは、米国社会に漂う底知れない閉塞感だった。米国では二大政党制(二党制)が敷かれている。共和党か民主党かで、大統領選前になると家族や友人関係すら壊しかねないほど議論が白熱する。銃の所持を認めるか否か、中絶を合法とするか否か、移民を受け入れるか否か―こうした問いに対し、共和党と民主党はほぼ正反対の立場を取る。どちらかを選べば、もう一方の価値観を否定することになる。グレーゾーンは基本的に許されない。
一方で、共和党でも民主党でもない人たちも、思いの外、多かった。彼らが口をそろえるのは、「どちらの政治家も信用できない」という言葉だった。
この不信感がどこから来るのかを理解するには、米国の二党制の歴史を知る必要がある。
二大政党制の土壌
米国の二党制の亀裂は、1850年代の「奴隷制度を受け入れるか否か」という問いに端を発する。奴隷貿易で富を築いた南部の商人は継続を主張し、制度に反対する北部の勢力と対立して南北戦争に発展した。奴隷制度に反対する勢力を中心に結成されたのが共和党で、国家予算をできるだけ小さく抑えて国民一人ひとりの判断や経済活動に委ねる「小さな政府」を信条とする礎を築いた。つまり、もともと共和党は奴隷制度反対の側で支持層には黒人など有色人種が含まれた。
その後、1930年代の世界恐慌下、民主党のルーズベルト大統領のニューディール政策が黒人層の支持を集めて黒人の影響力が増した。50年代に公民権運動が起き、64年に民主党のジョンソン大統領が公民権法に署名したことで、黒人票が一気に民主党へ流れた。80 年代以降は中南米系移民が増加し、移民受け入れを支持する民主党にその票も集中するようになった。
白人支持だけでは足りないと考えた共和党の一部が2013年、民主党と組んで移民受け入れ法案を推進した。上院を通過して下院で廃案に終わったが、この動きに白人支持者が猛反発した。この流れは16年、「メキシコ国境に壁を建設する」と訴えたトランプ氏の大統領選勝利につながっている。歴史は、奴隷制度や移民受け入れなどを巡る分断が米国の成り立ちそのものに深く刻まれていることを示している。
問題は制度にも潜む。イエール大学のイアン・シャピロ教授は、米国の選挙制度が抱える構造的な欠陥を長年指摘してきた。最大の問題は、大統領選の候補を決める予備選の投票率が極めて低い点だ。「16年の共和党予備選で投票したのは、米国の全有権者のうちわずか5%程度だった。その結果、選ばれたのがトランプ氏だ」と21年の取材時に話していた。予備選では選挙に熱心な極右・極左の有権者が多く投票するため、国民全体の民意が反映されにくい。必然的に「必ずしも民意を反映していない『弱い大統領』」が生まれる構造だ。
こうした閉塞感の中で、マスク氏は「どちらでもない人たち」の期待を一身に集める存在として浮上する。既存の政治家とは異なる、腐敗した政府をテクノロジーで刷新できる人間だと彼らの目には映った。前出のクーパー教授は、マスク氏とトランプ氏の違いをこう分析する。「トランプ氏は自分のため。スポットライトさえ当たれば何でもいい。マスク氏は違う。何かを達成しようとしている」
DOGEという実験
マスク氏と政治の関係が変化したのは24年後半だ。マスク氏の専用機がフロリダ州パームビーチのトランプ氏の邸宅「マール・ア・ラゴ」へ向かう頻度が急増した。そして、25年1月のトランプ大統領の就任式を経て、マスク氏はDOGEの特別政府職員に就任した。
「最大限うまくいけばの話だが」とマスク氏が前置きして掲げた目標は、2兆ドルの歳出削減だった。DOGEが送り込んだメンバーの顔ぶれは、マスク帝国そのもの。スペースX、テスラ、Xで働いた経験を持つエンジニアが目立ち、19〜25歳の若者が財務省の決済システムへのアクセスを許可されるケースもあった。省の職員から「DOGEキッズ」と揶揄されたほどだ。
真の狙いはコスト削減にとどまらなかった。
社会で革新が生まれる仕組みを研究する金沢工業大学教授の野村恭彦氏は「マスク氏が狙うのは『行政のハッシュタグ化』だ」と指摘する。国民一人ひとりの行政情報をデジタルデータで管理し、Xのハッシュタグのように自動で集約・処理する―既存の行政業務を根本から作り直す、究極のデジタル政府構想だ。
だが数字は厳しい現実を突きつけた。DOGEは当初の予定通り、26年7月4日の米国独立記念日をもって活動を終えた。達成した節約額が図表6-02だ。
約束した2兆ドルの節約額に対し、DOGE公式発表の節約額は2150億ドル。さらに米政治メディア『ポリティコ(Politico)』による第三者検証では、確認できた契約節約額は約14億ドルにとどまった。同期間に国債は増加を続けている。壮大な実験は、志とかけ離れた結果に終わった。
支持から憎悪へ
マスク氏はDOGEを正式に離脱した25年5月よりも前から、その代償を払っていた。テスラ車が抗議者に燃やされ、販売店前でデモが繰り広げられた。スペースXの進出で自宅を手放したマリア・ポインターさんも、怒りをあらわにした一人だ。
「故郷のアラスカで連邦政府からの様々な支援金が打ち切られている。億万長者のイーロンには虐げられている人の気持ちは分からない」
かつてマスク氏を好きだった人たちが、いつの間にか彼を非難する側に回っていた。ファンとアンチの境界線が、政治という舞台の上でかき消されていった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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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失を力に変えてきた男は、支持者を失うという“新たな喪失”からも、再び立ち上がれるのか。この続きは『 データで徹底解剖 イーロン・マスク帝国 』(日経BP)よりお読みください。
池松 由香/Webオリジナル(外部転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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