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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라 했나?
콱 쳐박힌 영동선 철로변이 관광지가 될 줄이야?
<철암역으로 가는 길목, 탄광이 폐광되어 이젠 물도 모두 맑은 물이 되었다.>
봉화군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철도공사에서 열차를 개조해서 만든 게 협곡열차.
이름하여 백두대간 협곡을 달린다 하여 그렇게 이름 지은 모양이다.
우리 직원들이 한 번 타보고 뭘 한다고 체육의 날 행사에 한번 타란다.
<동점 입구 구문소를 지나면서>
그냥 열차를 타거나 승용차로는 가기 힘든 간이정거장 비동역에서 내려
(비동역은 철도지도에도 없는 역이다.)
분천역까지 걸었다.
이것도 유식하게 트래킹이라 한다.
그냥 걷기라고 하면 되지 꼭 영어를 써서
트래킹이라 해야 걷는가? 거참~~!!!
<영풍제련소 공장, 환경문제에서 많이 깨끗해졌다. 그래도 아직 주변에 식물을 잘 자라지 못한다. 아마 황산증기 때문이 아닐까? 석포역 공기는 흐린 날 새콤한 냄새가 난다.>
<승부역 가는 길, 이젠 차가 간다.>
우리가 10년을 더 배워도 어눌하긴 마찬가지인 영어가
언어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의 완성도로 본다면
이미 사어가 되어 신학대학에서나 배우는 라틴어나
사랑을 위해 배우는 프랑스어, 철학을 위한 독일어에 비해 한참 떨어지고
우리말에 비하면 그 어미의 활용의 다양성을 말하자면 영어는 활용이라 할 것도 없다는데
그런 완성도 떨어지는 영어로 해야만 유식해보인다고 하니
이 또한 무슨 역설적인 말인가?
같이 가는 직원들도 왜 꼭 영어로만 이름을 짓느냐고 투덜~
나는 영어는 부드럽게 넘어가니 부드럽게 불러보라고 그런 것 같다고했다.
협곡열차보다는 v - train, o - train 이 부드럽지 않으냐고....?
<거북바위 - 지금은 한마리로 보이는데 터널을 지나면 두마리로 보인다. - 아래 사진>
<거북바위 2 - 두마리 거북이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날 "트래킹"을 했다.
물 속의 고기도 들여다보고
산 위 소나무도 보고
<나무 뿌리가 바위를 가르다. 나무뿌리가 자라면서 바위를 밀어내 바위가 갈라진 것....저렇게 갈라진 바위를 가지고 피라밋도 지었으리라.>
'라틴어를 쓰던 기원전 1세기 시대의 로마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영어로 말해서 줄리어스 시이저.
그리스 지방으로 출병하여
승리하고 왔노라. 봤노라. 이겼노라 하는 말과
자신을 반란자로 몰았던 로마 원로원에
선전포고하는 말, 루비콘 강은 이미 건넜다는 말로 유명하다지만
사실 그는 수 많은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5만 병력으로 30만 병력과 싸워서 단 한번의 전투로 그 30만 병력을 무력화 시키고
적 총사령관을 포로로 삼아 귀환한 적도 있었다.
(양쪽 다 정예화된 정병이었고 적 사령관도 뛰어났다 한다.)
그보다 더한 경우도 많았다 한다.
또 그로 인해 세계가 변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해야 맞는 말이리라.
<자동차가 들어가지 않고 유일한 교통수단은 열차, 울진서 흐르는 물과 봉화에서 흐르는 물이 만나는 양원마을, 그 마을 주민들이 직접 승강장을 만들고 역을 만들어 열차를 세워달라고 한 양원역>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을 그가 개량한 것이
교황 그레고리 10세가 고칠 때까지 1년 365일 14시간 14분 14초 중
겨우 14초만 틀린 것이라든지
그로 인해 윤년이 제대로 자리 잡은 책력.
현대 우리의 민법체계가 카이사르 민법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것이라든지,
형법체계와 형사소송법체계가 합리적인 것이라든지
재판제도의 항소심 제도, 배심원 제도, 현대시대의 동맹제도의 외교관계,
사형폐지 개념(국가 배신자에 대한 처벌은 예외였다.)
방위세, 퇴직금, 상여금, 국세청 설치, 관세청 설치,
영세민에 대한 무상식량제공.....
시민권은 태어나면 시민이 아니라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시민의 자격을 주는 것이라는 등등
예를 들자면 세계가 그로 인해 바뀐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양원역 앞집, 전에 내가 통근할 땐 저 넓은 밭에 당두충 나무가 가득했는데 돈이 안되니 다 캐냈다. 지금은 꽃을 심고 있다. 관광객을 위해서>
<양원역의 간이 화장실, 푸세식이다. 머리 안다치려면 잘 봐야 한다.>
시민의 자격? 나로서도 참 생소한 자격이다 싶었으니....
그럼 로마시대 로마시민의 자격은 무엇인가?
처음에 고수하던 로마본국 출신 혈통주의를 벗어나
카이사르는 능력이 되는 자에게 시민권을 주었다.
첫째, 혈세(병역을 치뤄서 피로 국가에 세금을 내기에 혈세라 한 것이다.
혈세의 유래가 여기에 있다. 세금이라고 다 혈세가 아니다.
피로써 내는 세금만 혈세이다.
따라서 혈세의 가치는 그냥 세금과는 차원이 다른 세금이다.)를 내고
둘째, 5살 이상 아들이 있어서 로마 인구 감소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세째, 자기가 군단병(보조병도 있다.
지금 우리의 방위병 개념으로 방위병은 군단병과 다르다)으로 입대해도
남은 가족이 생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 기본재산이 있어야 한다.
(로마의 군단은 6400명으로 10개 대대가 1개 군단이며,
1개 대대는 640명, 각 대대는 100명씩의 구성으로 백인대장이 지휘했다.
군단에 대해 절대지휘권을 가지는 집정관, 총독 등은 2개 군단을 지휘한다.
각 군단에는 군단장이 있고, 군단장은 대대장을 뽑았다.)
<양원역 옆에 집, 아직도 담배건조실이 남아 있다.>
이 로마 시민권을 지니면 위의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노동을 팔아서 자기 생계를 유지하는 무산계급자(프로레타라아,
가장이 프로레탈리아인 경우 입대하면 가족들이 생계유지가 불가능하니까 당연히 시민권이 없는 것이다.)
국가경제에 기여함이 없는 여자
(남존여비라서 시민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여자는 칼을 들고 창을 들고
남자들과 함께 병역을 치를 수 없으니
또 직접 생계를 위한 생산에 종사하지 못하니 자연히 시민권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남자라도 경제능력이 없는 자
전쟁포로로 노예가 된 자.
이런 자들은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 없기에 당연히 시민권이 없었다.
국가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 시민권자는
시민권자로 구성된 유권자 회의(민회라고 했다.)의 구성원이 되고
민회에서 원로원을 뽑아 구성하고,
원로원에서 임기 1년의 집정관을 2명 선출했다.
위급상황에서는 1명의 독재관을 뽑아 대처했다.
이 독재관이 나중에 원로원의 약점을 보완하여 황제체제로 갔다.
따라서 황제는 선출된 집정관의 무한임기였을 뿐 세습 황제가 아니었다.
공직자는 국세청, 관세청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무급봉사직이었다.
<비동역에서 분천역으로 가는 길에 만난 놓아 기르는 소. 송아지>
이런 생각하면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실질적으로 자기책임하에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시민권을 준 로마제국은
엄청난 합리주의의 합체였다고만 말할 수 있으리라.
여자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은 것은 남녀평등에 어긋 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나의 생각은 짧은 소견이었다.
당시는 농경사회로 남자가 아니면 생계유지가 되지 않았으니
그런 관점에서 병역과 생산, 부역과 전쟁과 생계를 위한 관점에서
여자가 시민권을 갖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또한 가족제도도 여자에게 재혼이 당연히 허용되어
남자위주의 사회도 아니었고 다민족, 다국가, 다종교를 다 포함하여
합리적인 로마인이란 말이 허명이 아니었다.
이러한 당시 로마의 국경은 도버해협, 라인강, 도나우강 터키,
흑해, 홍해, 이집트, 북아프리카, 지부롤터 해협,
오늘날 포르투칼, 에스파니아, 프랑스, 이탈리아를 다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인데
수도 로마에서 각 지역으로 가는 2차선 마차 포장도로가 건설되어 있었다.
그 도로에는 1482미터 마다 거리표가 세워져 있었다.
또 로마에는 대중탕, 상, 하수도 시설, 공공극장, 공연장, 도서관, 박물관 등이 건설되어 있었다.
또 그당시에 벌써 공공시설건설처가 설립되어 있었고
안찰관, 법무관, 호민관, 내각, 계엄령, 원로원 제정 법령에 대한 집정관의 거부권 등이 있었다.
지금 법리들도 모두 그때보다 낫다고 할 수도 없으리라.
그 로마는 무려 1200년이나 존속했다.
그럼 무엇으로 다스렸는가?
무엇으로 국가통치의 기본을 삼았는가?
그리스 - 철학자 통치 -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통치권자나 통치대상이나 그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유대인 - 유일신이 통치 -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유일신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집트인 - 신의 통치 - 신을 믿지 않는 자는 신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로마인 - 법에 의한 통치
중국인 - 요순시대의 덕치 - 덕이 없는 사람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통치 대상이나 통치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 덕으로 다스렸다는 것은 통치자가 백성들에게 넉넉하게 대했다는 것인데
결국은 통치자가 세금을 가혹하게 부과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중국보다 훨씬 더 세율이 낮았고
공평했고, 조사도 철저했다.
중국에서 세금을 생산량의 10%부과하면 그것은 요순시대라고 하는 기록이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그것에 비하면 로마는 세금이 요순시대보다 또 지금보다 훨씬 세율이 낮았다.
지금 우리는 유통세로 부가가치세를 10% 내고 있는데,
여기에 지방세를 세액의 10%를 내니까 11%인 셈인데,
로마는 당시 유통세가 1%, 관세가 1%, 사치품 관세가 25%였다.
지금 우리나라 사치품 관세는 350~400%를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지금 이탈리아 유통세는 19%이다.
로마제국 시대는 황제도 선거로 뽑았으니
가히 요순시대보다 더한 시대의 1200년이었다.
그동안 손자병법과 제갈량의 영향으로
중국의 병법이 훨씬 뛰어나다고 봤던 나도
이것은 로마, 특히 카이사르의 병법과 중국의 병법과는 연구를 해봐야
비교가 가능하리라 생각이 든다.
중국에만 있었다고 생각한 매복, 유인, 포위, 섬멸이 로마에도 흔하게 존재했으니
동서양의 병법이 다르다는 것은 지리와 사람의 차이지
근본적인 차이는 아니리라.
그렇다면 세계물결의 추세로보아 2012년이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을 추월했고
2017년부터는 핵무기를 제외한(핵전쟁은 누구나 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재래식 군사력도 중국이 앞서고
2018년에는 미국이 자랑하고 중국이 두려워한다는 원자력 항공모함도
중국이 단 한발로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대함 미사일의 실전배치가 끝난다 하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항모도 중국해안에서 1천 km 밖에 정박해야 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게 된다고 한다.
지금부터 20년 뒤에는 중국어, 그중에서도 북경어를 하지 못하면
땅을 칠 시기가 온다고들 하거늘...
그러면서 5km는 걸어야 한단다. 그래서 걸었다.
이런 합리성이 오랜 세월 로마제국이 국가로 존속하게 된 이유였으리라.....'
그렇게 걷다가 두릅도 따고 더덕 냄새도 맡고
어미소 젖 빠는 놓아 기르는 소도 보았다.
그렇게 하루가 갔고 봉화에 와서 한약우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공사하는 길 가에 핀 바위 틈의 꽃. 생명력이란 참.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네.
자네 글은 항상 온화하면서도 서정적이고 깊이가 있네 그랴.
아직 안잤어? 늦은 시간인데~나야 야간근무니라. 긴 글인데 끝까지 읽었다니 감사할 뿐이네.
좋은 글 자주 올려주게
며칠전 퇴근길에 마침 병원에 가시는 오준이 어머니 뵈었다. 인사드리니 밝은 얼굴이 건강해 보였다. 병원가시는 길이라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