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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의 나팔소리 [메시지] 목사의 소명(召命)과,장로의 설교권에 대하여
朴大山 牧師 추천 0 조회 271 09.11.13 19:48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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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2.02 01:23

    첫댓글 성경대로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디모데전서 3장 2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에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 09.12.02 01:31

    ...라고 기록한대로 모범적인 삶을 살며,그래서 이런 사람들만 교회에서 선출하여 감독자를 삼고 설교권을 주어야 한다면,극악무도한 깡패를 변화시켜 목사로 쓰신 하나님의 강권 역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故) 김익두 목사(1874-1950)는 1874년 황해도 안악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신 가정을 일찍부터 돌봐 왔던 그가 사기를 당해 모든 재산을 잃게 된 것이 그로 하여금 타락의 생활을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는 날마다 주색잡기에 빠져 방탕했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량배가 되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악행하였는지 사람들이

  • 09.12.02 01:26

    '오늘 호랑이 익두인지 억두인지 만나지 않게 해 줍소서'라고 성황당(城隍堂)에 빌었고,만나는 사람마다 강제로 돈을 빼앗아 "김내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깡패였던 그는 그러나 1900년 미국인 선교사 W.L.스왈렌의 설교에 감동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1년 후 세례를 받았는데 1910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때 이미 성서를 100번 읽었습니다. 이윽고, 예수교장로회 제9대 총회장이 되고, 서울 남대문교회 명예목사로 초빙 받았습니다. 그 후부터 전국 각지의 부흥회 청탁이 빗발치듯하였습니다.

  • 09.12.02 01:30

    그가 다닌 집회 수는 776회에 이르렀고, 설교 횟수는 2만 8000회, 교회 신축 150처,병자 치유 1만 여 명, 그의 감화로 목사가 된 사람이 200명에 달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신사참배(神社參拜) 거부로 모진 고문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유명한 부흥사이자 병자를 치유하는 목사로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8·15광복 이후 북한에 남아서 교회활동도 제대로 못하던 그는, 6·25전쟁이 일어나고 국군이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자 교회로 돌아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50년 10월 14일 50여 명의 신도와 함께 새벽기도를 하다가 일부 신도와 함께 공산군에게 총살당해 순교하였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소망없던

  • 09.12.02 01:30

    깡패를 목사로써 한국을 살린 신앙의 위인으로 바꿨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키며,복음은 어떤 문제도 해결하며,복음은 어떤 환경도 이깁니다. 깡패를 목사로써 한국을 살린 신앙의 위인으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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