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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8년 갑오년(甲午年) 정월 성지순례
서울 강남 수도산 봉은사(修道山 奉恩寺)를 찾아서 ⑥
-그 밖의 이모저모 그리고 회향-
지난 2월 23일 판전을 거쳐서 비각을 감상하고, 추사 김정희 선생 기적비를 돌아보고, 다 래헌 옆길을 내려오면서 법정스님을 추억하고 내려와, 날물곳에서 목을 축인 후 종각과 운하당을 사진에 담고 있노라니 시간은 벌써 4시를 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봉은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선불당이었습니다. 부랴부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다시 한번 미륵전 옆모습을 봅니다.
선불당(選佛堂)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4호-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왼쪽(북쪽)으로 선불당(選佛堂)이 있습니다. 선불당은 말 그대 로 부처를 뽑는 곳입니다. 선법(禪法)과 교법(敎法)을 닦아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하는 곳 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선종(禪宗) 수사찰(首寺刹)로서 승과고시가 봉 은사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며 선불당은 승과(僧科)를 실시하던 곳의 표현입니다. 이곳 에서 조선시대 불교를 대표할 만한 서산, 사명대사가 장원급제하였던 것입니다.
이곳에 보우, 서산, 사명대사께서 불교의 중흥을 꾀하던 곳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깊었습니 다. 그 어려운 시절 봉은사는 조선불교의 중흥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것입니다.
선불당(選佛堂) 편액
선불당의 기둥
여러 장애물이 많아 이 선불장을 온전하게 담기가 어렵네요.
정면 8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초익공양식을 이루고 있고 특히 팔작지붕 네 곳에 작은 합각(合閣)을 이루고 있음이 특이합니다. 이 건물은 1941년에 건립되었는데 이곳은 원래 심검당이 있던 자리라 합니다.
마치 고방의 문처럼 대문이 있는데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네요.
세청소(洗淸所) 해우소(解憂所)
선불당을 부랴부랴 찍고 내려오니 다들 내려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일부 법우님들은 배 고프다고 노래도 하시고... 그런 중에 두 분이 내려가셨다고 하네요. 황심행님은 아기가 걱정되어서, 대각화님은 몸살이 나서... 벌써 시간이 오후 4시가 훌쩍 넘었더군요. 제가 숨가쁘게 뛰어다니며 전각을 담아 보려 했으나 그래도 못 담은 것이 많더군요. 심검당, 보우당, 교육관 등등... 사실은 해수관음상도 담을 시간이 없더군요. ㅎㅎㅎ ^^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 -미소님 사진-
관세음보살님은 보타락가에 주석하시면서 중생이 부르면 소리를 관하여 구제해 주시는 대 자대비하신 보살님이시죠. 해안고절처(海岸孤絶處)에 계시면서 "중생이 부르면 어제든지 달려갈 거야." 하시는 보살님입니다. 바닷가에 계시는 보살님이라 하여 해수관음(海水觀 音)이라 합니다. 바다에 달이 떴으면 수월관음(水月觀音)이라고도 하지요. 이름은 이름일 뿐입니다. 여기에 해수관음을 모신 뜻은 여기가 육지여서 바닷가에 늘 가지 못하는 분들 을 위하여 특별히 친견하라고 모신 것일 것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낙산사의 해수관음을 빼닮았음을 봅니다. 연화대만 조금 다를 뿐 완전히 동일합니다. ^^
해수관음상을 배경으로 묘법(妙法)님 좋아요.
도안을 활짝 여시고 도안(道眼)님 참 좋습니다.
염화(拈華)님, 여기가 해수관음보살을 배경으로 하는 명당이네요.
영암당임성대종사지비(映巖堂任性大宗師之碑)
영암당임성대종사 부도탑(映巖堂任性大宗 浮屠塔)
허응당 보우대사 봉은탑
꺼져가는 조선불교의 법맥을 잇고 승과를 통해 인재를 양성한 한국불교의 중흥조 허응당 보우대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허응당 보우대사 봉은탑이 당시 주지인 진화스님에 의 해 불기 2556년(2013) 10월 5일 부도전에 조성되었습니다. 이 해는 봉은사 개산 1219년 이며 보우대사 순교 488주년이라 합니다.
보우대사는 숭유억불정책으로 핍박받던 조선시대 불교중흥의 원력을 세우고 봉은사 중창 과 승과 부활로 불교 중흥의 초석을 다진 조선불교의 중흥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아, 이것을 보니 너무 아쉽네요.
부도전을 들어가지 못해서 부도탑과 탑비를 온전히 담을 수 없었습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비(碑)가 <주지나청호대선사수해구제공덕비(住持羅晴湖大禪師水害救濟功德碑)>입 니다.
실은 봉은사 하면 나청호대선사에 대하여 반드시 알고 지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나청호화상(羅晴湖和尙 1875~1934)
『청호(晴湖, 1875~1934)스님은 봉은사의 역사에 있어서 생생한 발자취를 남긴 스님이 다. 스님은 1875년(고종 12) 경기도 고양 뚝섬에서 아버지 나윤천과 어머니 원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가 뒤의 법명은 학밀(學密)이며, 법호는 청호(晴湖)이다. 호는 (五隱)이라는 아 호를 쓰기도 했지만 보통 '나청호화상' 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2세 되던 해에 출가하였으며, 15세 되던 1889년에 득도하여 23세 때 구족계를 받아 정진 하였다. 24세 때(1898)는 개당(開堂)하여 두루 경을 설하니 그를 찾아 학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스님은 이후 10년 동안을 하루같이 오직 후진 교육에 힘을 쏟 았다.
를 맡게 되었다. 이제 스님은 본격적으로 불교의 진리로써 세간을 구하는 갖가지 실천행을 펼쳐나갔다. 주권 상실이라는 암담한 현실에서 세간. 출세간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각성 해야 하고, 무엇보다 불교의 주체적인 부흥과 함께 자주적인 개혁 없이는 민족도, 불교도 올바로 설 수 없다는 일념이었다.
주지로 있으면서 스님은 절 부근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전답과 임야 20만평에 이르는 막대 한 토지를 확보하였고, 경내의 각종 전각을 중수. 창건하면서 전국의 30본산 중에서도 갑 찰대본사(甲刹大本寺)라 하였던 봉은사를 명실 공히 가꿔 나갔다. 스님의 노력과 감화력이 얼마나 컸던지 1917년에 열렸던 법회에서는 도량은 말할 것도 없고 한강의 남.북 강기슭 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어 10만 명에 달하는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에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들이 물에 휩싸였다. 물에 빠진 사람과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들 이 혹은 지붕을 타고 혹은 나무가지를 붙들고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스님은 지체할 겨 를이 없었다. 전 사중을 불러내 배를 내고, 물에 뛰어들어 하나, 둘 사람을 건져냈다. 이 에 의복과 음식을 주어 구호하고 따뜻한 말로써 위로하니 무릇 스님의 자비행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이 708명이나 되었다. 이에 감복한 당시의 석학대덕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예술 가, 기독교인들까지도 스님의 공덕을 기리는 각종 시와 글, 그림을 헌납하여 후세에 영원 히 전하도록 “불괴비첩”을 발간하였다. 또한 목숨을 구제받은 인근 주민들이 힘을 모아 스님을 '살아있는 부처'라고 칭송하며 수해구제 공덕비를 세우니 지금도 사람들이 이곳에 서 발을 멈추어 그 뜻을 기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곳 수도산에서 머무르며 곳곳에 발자취를 남긴 스님은 진정한 수도산인(修道山人)이었 다.』 -봉은사 홈피에서- ※ 일부의 내용은 전통사찰총서에서 보충했습니다.
비림(碑林)
이곳을 올라가 볼 시간이 없어 일일이 담지 못했네요. 아마도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들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진여문을 나섭니다.
오후 4시 30분, 진여문을 나섭니다. 순례를 다녀온지 열흘이 되었습니다. 열흘동안 8편 의 후기를 올려서 지루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썼습니다만 정 작 우리가 머문 시간은 오후 2시 5분부터 시작하여 4시 30분이니 2시간 25분 머물었던 것 입니다. 이 얼마나 짧은 시간입니까? ㅎㅎㅎ 이 짧은 시간에 봉은사를 이해하는 것은 어 려운 일입니다. 사전에 봉은사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갔습니다만 그래도 미처 살피지 못 한 곳도 많습니다.
봉은사의 역사를 더듬어 보니 머물다 가신 고승이 얼마나 많으지 모릅니다. 그리고 봉은 사가 우리나라 역사에 끼친 위대한 일도 너무나 많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법우님들과 이곳을 찾아 순례한 것이 대단히 즐겁고 기뻤습니다. 동참 법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 립니다.
이번 순례에 동참하신 미소님, 묘법님, 염화님, 화광님, 덕명님, 대각화님, 황심행님, 청안 님, 도안님, 그리고 비니초님 감사합니다.
이번 순례에 향불교 현수막을 제작에 힘써 주신 운영진과 조언을 해 주신 염화님과, 비니 초님 감사합니다. 또한 이를 현실화하여 제작하여 보시해 주신 화광님, 감사합니다. 이번 순례에도 미소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이번 순례에 동참은 못했으나 보시해 주신 보화님과 여여님 감사합니다. 늘 순례 때마 다 보시해 주신 덕명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공덕으로 모든 향불교 회원 여러분의 가정에 불은이 은은하시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 시길 합장 기원합니다. 다음에 또 뵙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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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관세음보살 ()
봉은사 하면 기억해야 할 고승들이 많이 있지요. 보우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그리고 나청호대사... _()_
이번 순례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향불교 법우님들과 함께한 불광사와 봉은사 순례 사진글 감사합니다. _()_
염화님께서 찍으신 사진 이번 순례에 많이 활용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짧은시간 너무 많은것은 보았고 사진을보니 가보지 않은곳도 있네요. _()_
순례길 함께하신 백우님, 묘법님, 염화님, 화광님, 덕명님, 대각화님, 황심행님, 청안님, 도안님, 비니초님 감사합니다.
보시해주신 보화님, 여여님, 덕명님, 화광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백우님의 꼼꼼한 순례기를보면서 좋은공부 많이합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을 재촉하는 것이 玉兎와 金烏 뿐이 아닙니다. 또 무엇일까요 거웠습니다. _()_
이번에 여러 법우님들과 유서 깊은 사찰을 순례할 수 있어
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셔서 원만하게 회향하게 되었습니다.
미소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초 사찰순례가 이렇게 마무리(廻向) 되었내요.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나무묘법연화경()()()
사찰순례 때보다 다녀온 후가 더 바빴습니다. 순례를 다녀온 후 한 번도 안 들린 분도 계신데 감사합니다. _()_
알고보면 다 사정이 계시네요. 언제 사진을 선보이실 겁니까
다음에 봉은사에 가면 저도 꼭 저기서 독사진 찍어야 해요
수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순례에 오시면 독사진 잘 찍어드리겠습니다. 저녁까지 하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_()_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봉은사를 자세히 한바퀴 돈 것 같습니다. 선불당의 모습도 잘 보았습니다. _()_
봉은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분 중 한 분이 마지막에 소개하신 나청호 스님이네요.
봉은사를 위하여, 대중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신 스님이네요.
해수관음상을 배경으로 하신 분들이 남자분들 뿐인데 보살님들은 어디에 계셨을까요
자세한 후기를 올려 주신 백우님, 감사합니다.
정견님도 한 바퀴 도시는데 몇 일 걸리셨지요 _()_
나청호 스님 부도탑과 탑비를 못 담은 것이 아쉽습니다.
해수관음상 주변에 보살법우님들이 보이지 않아서 못 담았습니다. 진여문을 넘으셨으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기울이시고 동참해 주셔서 원만히 회향되었습니다.
후기가 올라오면 관심을 기울여 열어 보시고 한 줄의 글로 동참하는 것도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동참댓글도 무재보시 중의 하나라 생각합니다. 정견님 감사합니다.
봉은사에 대한 세세한 설명에 봉은사를 다시 갔다 온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_()_
시간을 내어 자세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례기를 한 번 읽으면 대강은 훝게 되지요. _()_
다시 한 번 간다면 내용이 훤하게 들어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백우법사님 봉은사에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_()_
아니 이제사 봉은사에....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