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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방언으로 효과적으로 기도할까요?
※ 주님과 함께 세 시간을 보내는 방법
나는 가끔 어떤 사람이 한 주간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서너 시간이 전부라면 그 서너 시간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가장 능력 있게 보내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많은 해 동안 기도하고 하나님의 시중을 들은 후에 나의 대답은 이 세 가지로 압축되었습니다.
1. 경배와 찬양하기(이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그리스도의 힘으로 맞바꿈으로써 시련의 기간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버티는 힘을 제공해 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기(질병이나 아픔, 재정이나 고통, 염려나 두려움 등과 같이 제거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우리 삶의 '산들' 에게 말하는 것)
3. 방언으로 기도하기(세워줄 뿐만 아니라 계시의 지식을 제공하는 초자연적인 언어)
보다시피 당신이 매주 한 시간씩 목사님을 통해 듣는 일반적인 메시지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름부음이 있는 교사나 목사는 변화에 필요한 약간의 정보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집에서 당신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말씀을 적용함으로써 개인적으로 갖는 시간을 통해 옵니다. 당신이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고백하며 경배하면서 시간을 드리는 것에 정비례해서 당신의 삶은 변화 받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들은 단지 지침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아버지와 교제를 즐기기 위해서 문자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하나님의 공식이 아닙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이 세 분야에서 발전을 하면서 그냥 성령의 인도를 따르십시오. 당신이 이렇게 함에 따라 당신은 새로운 차원의 기도 응답과 강하고 지속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 첫 시간 : 경배
첫 시간에 나는 경배와 찬양과 감사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아버지,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의 모든 필요는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다 충족되었기 때문에 어떤 부족함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고 나는 자녀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과 단지 교제하려고 여기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거룩한 언덕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내가 찬양을 드리고 경배를 하면서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 지켜보십시오." 나의 목표는 나의 필요 대신에 교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신자들은 그들이 무엇이 필요하거나 교회에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받을 때만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가장 높은 예배의 형태 중의 하나는 단지 우리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 때문에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개인적인 삶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들이며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너무나도 기뻐하십니다. 자녀들을 즐기는 아버지로서 그분은 보좌 가까이에서 우리들과 교제하시면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거룩한 손을 높이 쳐들고 순수한 교제 가운데 그냥 얼마나 그분을 사랑하는지 말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성령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요16:14). 그분의 모든 사역은 당신을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어서 당신을 아버지의 임재 가운데로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에 관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똑같은 원칙들이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 데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여라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마6:9) '거룩하게 하다(hallowed)' 라는 단어는 다른 모든 것보다 더 높이 올림으로써 우리의 삶에서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sanctify)는 뜻입니다. 경외하는 경배를 드리면서 그분의 임재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의 어떤 순간에든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을 갖추고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갈 시간이 있을 때에는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인 경배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분 앞에 내가 드려야 하는 첫 부분은 나의 혼, 즉 나의 지성, 의지, 감정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나의 혼을 드리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그렇게 하도록 이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경배의 분위기를 만들면서 어떤 악단이 나를 따라 다니지도 않습니다. 나를 위해 예배 음악을 연주할 카세트나 CD가 항상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나의 혼을 드리며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때면 나는 거의 항상 그분을 영으로 경배 드리게 됩니다.
두 번째로 그분 앞에 나올 때 나는 그분을 존경합니다. 대사는 왕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선물을 드림으로써 지상의 왕에게 경의를 표현할 것입니다. 내가 나의 혼을 드림으로써 왕 중의 왕의 임재에 들어갈 때는 얼마나 더 많은 경의를 표현해야 하겠습니까?
가끔 우리들은 어느 분이 계신 곳에 우리가 들어가고 있는지 잊어버립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들의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아주 막역한 친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구를 가지고서 혹은 경배 드리려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갈 때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므로 그분은 우리의 최고의 경의와 존경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왕 중의 왕을 경배 드려야 마땅할 때 어떤 문제를 푸느라고 우리의 혼이 거리를 방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혼이 왕으로부터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혼을 왕의 임재 안에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딴 짓을 하는 것은 아무리 낮추어 말해도 매우 불경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두 번째 시간 :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기
그 다음에 주님과 보내는 두 번째 시간은 내가 지금 당면한 문제를 가지고 십자가에 가지고 나가 푸는 데 보냅니다. 어떻게 하냐구요? 마귀가 나의 길에 보내준 문제에 대한 이미지를 말씀에 있는 이미지와 나의 입의 말로 대체합니다. 신자로서 이것은 나의 권리이며 나의 유산입니다.
두 번째 시간에 들어가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마귀가 내게 복종하는 것에 대하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귀신들의 의해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생기는 질병이 당신의 이름으로 내게 복종하는 것에 대해서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가난으로부터 구원받은 것과 가난이 당신의 이름으로 내게 복종하는 것에 대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인하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마귀가 나의 영토를 침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침략을 고백의 능력으로 정면에서 무찌르라고 당신이 내게 주신 말씀과 믿음을 나는 사용하려고 합니다."
"내가 나의 마음으로 당신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내 입으로 고백하면 모든 기적 중에 가장 경이적인 거듭나게 하는 바로 그 엄청난 능력이 나의 산을 움직이는 데에도 역시 똑같이 작용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 시간은 하나님 말씀의 고백을 나의 문제에다 퍼부으면서 보냅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1장 14절에서 무화과나무에다 말씀하신 것과 같은 방법으로 나는 나의 산에게 말합니다. 예를 들면, 만일 내가 재정적인 부족을 다루고 있다면 나는 이와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고백합니다. "가난아, 너는 십자가에서 해결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은혜의 행위로 나의 가난을 짊어지셨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나를 위해서 내가 부요하도록 그는 가난하게 되셨다" (고후8:9).
"가난아, 내 말을 듣고 있니? 나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너는 나의 삶에 머물 수 없다. 너는 저주받았다. 너는 나의 삶에서 떠나야한다!"
"그리고 너 부요함이여, 나는 북쪽, 남쪽, 동쪽, 서쪽으로부터 너를 부른다! 재정아, 내게 증가할 것을 명령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 즉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신자로서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시간 내내 이것이 내가 가난을 저주하며 나의 삶에서 나가라고 명령하면서 가난의 산에게 말하는 방법입니다.
내가 방금 묘사한 것과 똑같이 내 삶에서 한 때는 마귀만을 괴롭히면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보다 마귀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시간 동안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당신의 문제를 향하여 같은 것을 반복해서 고백하는 것은 일종의 구걸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애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나 당신을 속박했던 중독으로부터의 구원같이 하나님이 이미 마련해 주신 것 가운데 어떤 것을 하나님께 반복해서 요구하는 것은 애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문제에 관해서 그분이 이미 말씀하신 것을 집행하기 위해서 당신의 심령에 이미 두신 믿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문제에 대해서 믿음의 기도를 한 번 드렸으면 당신은 이제 그 문제에 관해서 하나님께 말해서는 안 되고 그 문제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 세 번째 시간 : 방언으로 기도하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간에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나는 그 문제를 십자가로 해결(reconcile)했습니다. 나는 공격적으로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휘둘렀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동안 성령 안에서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나는 응답을 받은 것을 인하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괜찮으시다면 나느 세움, 즉 나의 영의 사람을 좀 강하게 하는 것, 그리스도의 비밀을 기도하는 것이 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세 번째 시간은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보냅니다. 나는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써 나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면서 그냥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왔다갔다 걷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기만 하면 많은 경우에 당신은 너무나도 세움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해서 그만 두기가 싫어질 것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냥 이어서 한 시간 더 방언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이 세 번째 시간은 단지 내가 원해서 의도적으로 내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인데 그것은 의심하지 않게 되어 있는 내 안의 그 부분, 즉 나의 심령(heart)을 세워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고요? 대부분의 경우 내 마음은 열매 맺지 못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영은 하나님 앞에서 비밀을 교통하고 있다는 것과 나의 속사람, 즉 나의 심령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주간에 주님과 보낼 수 있는 세 시간의 시간만 있다면 나는 이렇게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어떤 주간에는 기도하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 밖에 없다면 나는 그 한 시간을 이십 분씩 셋으로 나누어서 경배와 말씀과 방언 기도를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기도는 모두 당신에게 유익이 되고 당신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완성된 사역에 대하여 수용적이 되도록 해 줄 것입니다.
※ 말씀을 묵상하는 것의 유익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비밀을 푸는 데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침 중의 하나입니다. 사분지 일 세기가 넘도록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 가운데서 가능한 한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려고 노력을 기울였으며 또한 풍성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내가 경험한 가장 위대한 유익들 중에 어떤 것들은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부터 나왔습니다.
묵상이란 무엇입니까?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혼과 영에 동화시키는 과정입니다(assimilating God's Word into your soul and spirit).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씀의 형태로 취하여서 그것을 당신의 통찰력과 지혜로운 의견이 되도록 하여서 당신의 영에다 재구성하여 줍니다.
묵상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말씀을 당신의 영 속에 심는 것까지 가능하게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이 당신의 일부가 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당신의 심령 속에 접붙여짐으로써 당신이 말씀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 말씀을 묵상하는 것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
나는 당신이 주님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세 시간 뿐일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을 당신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지침이 당신이 방언으로 더 많이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당신과 교통하시는 하나님의 의사소통 통로가 더욱 분명해지고 확실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써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는 것은 당신에게 영원한 유익이 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당신의 새로운 본성의 선생님은 당신 속에서 조명하는 과정을 시작하기 위하여 그분이 하늘로부터 여기까지 가져온 초자연적인 언어를 사용하십니다. 그 언어 속에는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의 비밀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에 대한 이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당신이 자신을 드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될 그날을 희망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성령님의 조명하는 사역을 훨씬 더 단순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서너 시간 동안 방언으로 기도할 때 나의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복이라고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내 영이 기도하는 동안에 나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법을 나는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이것이 자동적으로 되어집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려고 앉았을 때 나는 성경을 들고서 읽기 시작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갈라디아서나 에베소서나 빌립보서 같은 책을 들고서 여러 시간 방언으로 기도하는 동안에 그 책을 반복해서 그냥 읽는 것입니다. 자주 나는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누워서 한 두 시간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편리한 곳에 나의 성경을 그대로 펴 놓고 방 안을 걸어 다니면서 기도합니다.
성령님께서 의사소통의 통로를 통해서 무엇인가 말씀하실 경우에는 내 영은 들으면서 나는 얼마 동안 기도합니다. 이어서 나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방언으로 아직도 기도하는 가운데 책 전부를 다시 한 번 더 읽습니다.
나의 영과 나의 마음이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어서 나는 기쁩니다. 성령님은 내가 성경에 있는 어떤 것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내 마음에 두었던 모든 축적된 지식을 취하셔서 그것을 가지고 낮과 밤 묵상 과정에 활용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많은 계시 지식이 나온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