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체험·유품정리·추모 사진앨범 각광
웰 다잉(well-dying) 열풍에 다양한 사업 등장
영세 사업자 난립은 문제
“바쁜데 이런 건 왜 하는지 모르겠네” “가짜라도 죽는다 생각하니 영 찝찝해”.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열린 한 임종체험행사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한 전자회사의 영등포지점 임직원 30여명이 임종체험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잡담과 볼멘소리,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진지한 느낌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 우선 영정사진부터 찍겠습니다.” 행사 진행자의 한 마디에 갑작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한 명씩 사진기 앞으로 서는데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바로 옆 강의실로 자리를 옮겨 ‘삶과 죽음’에 관한 강의를 듣는다.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수업을 들으며 점차 죽음에 가까워진다. 물론 잠깐씩 조는 사람도 있다. 수업이 끝나자 강의실로 저승사자 복장과 화장을 한 사람이 들어와 낮고 묵직한 소리로 사람들을 이끈다. 또 다른 방에는 30여개의 오동나무 관이 가지런히 줄을 지어 있다. 관 옆으로 놓인 앉은뱅이 책상에 아까 찍은 영정사진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찾아 옆에 섰다. 준비한 수의를 입는다. 어색한 손을 둘 곳을 찾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삶이다. 이제는 유언장 작성의 시간이다. “글을 쓰고 날짜와 서명을 하면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이 발생합니다”라는 진행자의 말에 한동안 침묵했다.
다시 하나 둘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몇몇은 여전히 하얀종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15분쯤 흘렀을까. 갑자기 한 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50대쯤으로 보이는 큰 어깨가 힘 없이 들썩인다. 이 흐느낌은 유언장 작성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돌림노래처럼 반복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입니다”라는 진행자의 무심한 목소리가 방안을 무겁게 울린다. 1m90㎝×50㎝×35㎝의 관은 사람 하나가 들어가니 꽉 찼다. 좁은 공간에서 하염없이 보낼 세월이 막막하다. 생각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뚜껑이 덥히고 얼마 남지 않은 틈마저 어둠이 채운다. 이어 못질하는 소리와 관 위로 흙이 뿌려지는 소리가 들리고 장 내는 고요해졌다. 20분쯤 흘렀을까. 관을 열어주자 나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행사는 끝이 났다.
영정사진 촬영에 분위기 숙연
이날 행사를 주관한 사람은 김기호 아름다운 삶 수련원 대표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한 선구자격인 사람이다. 1990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97년 호스피스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거쳤다. 그러다 죽음에 직면했거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가 산 사람들이 내·외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것을 자주 보게 됐다. 아이디어를 얻은 김 대표는 2001년부터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명상으로 죽음에 관한 간접 체험을 하는 방식이었고 차츰 지금의 형태로 진화하며 프로그램을 다듬었다.
현재는 다양한 임종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사설기관에서 1인당 5만~7만원을 받고 하기도 하고, 시나 구청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개인 참가자도 많고 회사나 학교에서 단체로 체험을 하는 등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다. 문제는 원래의 취지를 무시한 채 상업성만을 내세운 프로그램이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임종체험이 좋은 반응을 얻자 여기저기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죽음을 생각해보면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만든 것이다. 5~6시간 동안 강연과 대화, 유언장 쓰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야 효과가 있다. 그런데 최근 다른 곳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1~2시간 만에 속성으로 끝낸다.
고객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따로 영업사원을 두고 회사나 단체에 찾아가 고객을 모집하는 등 시장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 대표의 말이다. 그는 최근 임종체험 프로그램의 저작권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돈도 중요하지만 조금은 공적인 영역에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임종체험이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나은 삶을 살자는 취지에서 등장한 비즈니스라면,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비즈니스도 있다. 유품정리 사업이다. 인터넷에 유품정리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많은 업체의 사이트가 뜬다. 막상 들어가보면 청소업체, 재활용업체, 폐기물처리 업체인 경우가 많다. 정리라기보다는 버리고 치우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곳이 키퍼스코리아다. 키퍼스는 일본의 유명한 유품정리 업체다. 2007년 일본 NHK에서 ‘천국으로 이사를 도와드립니다’는 다큐멘터리로 소개돼 화제가 됐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한국인이 일본을 찾았다. 3년 간 키퍼스의 현장을 따라다니며 유품정리의 의미를 배웠다. 2010년 한국에 돌아와 키퍼스코리아를 만들었다. 그가 김석중 대표다.
“유품정리는 버리고 청소하는 게 아닙니다. 가장 먼저 고인이 쓰던 유품 중 어떤 것을 어떻게 남길까를 고민합니다. 사소한 물건 하나도 고인이나 그 가족에겐 소중할 수 있어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버리고 재활용할 것을 고르죠. 모든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문제나 법적인 문제까지도 대리해서 처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유품정리입니다.” 김 대표의 말이다.
일단 의뢰가 들어오면 전문교육을 받은 유품 정리인이 현장을 방문해 모든 작업에 필요한 견적을 낸다. 어떤 경우는 방 하나에 해당하고, 어떤 경우는 건물 전체를 철거해야 할 수도 있어 비용은 건 마다 차이가 크다.
김 대표는 “최근 1~2년 간 재활용 업체나 청소업체가 유품정리라는 타이틀을 걸고 시장에 많이 뛰어들었다”며 “원래 의미의 유품정리와는 따로 구분하는 단어가 없어 소비자들도 잘못 오해하고 의뢰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부분 고독사의 사례와 함께 끔찍한 죽음의 현장을 치우는 것으로 유품정리업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 올바른 시장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유품정리와 청소·철거는 달라
김 대표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유품정리는 특수청소업에 가깝다. 죽음 전문 특수청소 업체로 바이오 에코(Bio Eco)가 있다. 누군가가 죽고 시체가 늦게 발견된 경우에는 심각한 악취와 오염물질, 벌레가 발생한다. 이런 흔적을 깔끔하게 없애는 것이 특수청소다. 바이오 에코는 특허를 받은 기술로 흔적을 말끔하게 없애준다. 사체의 부패 정도나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평당으로 계산해 돈을 받는다.
바이오 에코 박연문 이사도 김석중 대표와 비슷한 불만을 털어놨다. 박 이사는 “시체의 흔적을 없애는 것은 고도의 기술과 경험을 요하는 작업인데, 고물상이나 폐기물 업체에서 유품정리라는 타이틀을 걸고 청소를 한다”며 “심지어는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사람 ‘유품정리 합니다’는 명함을 만들어 영업을 한다”고 말했다. 유품정리업이 국내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조금 특별한 형태의 화장(火葬)을 해주는 비즈니스도 등장했다. 죽은 사람의 뼈를 유골사리 보석으로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5~6년 전부터 이런 업체가 한 두 개씩 등장했다. 이 가운데 프라임하우스는 특허를 받은 나노물질을 첨가해 화장을 한다. 이 작업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녹은 뼈가 수정처럼 아름다운 보석의 형태가 된다.
보통의 화장은 섭씨 2000도 정도의 고열에서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뼈가 타거나 환경오염 물질이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프라임하우스의 기술을 이용하면 섭씨 700도 미만의 불로 뼈를 녹일 수 있다. 환경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고, 결과물로 나온 청미안이라는 보석은 썩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인터넷 추모 사이트 이용자 늘어
유골사리 보석을 만든 사람들은 세 가지 형태로 보관한다. 가장 많이 택하는 방식은 업체가 제공하는 함에 담아 가정에서 보관하는 것이다. 유골사리 보석을 다시 봉안함에 담아서 납골당에 두기도 한다. 드물게는 이 보석을 목걸이나 반지 형태로 가공해 착용하는 사람도 있다.
전범주 프라임하우스 대표는 “최근 4년 사이 유골사리 보석을 만들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고 꾸준히 인기가 오르는 추세”라며 “아직 유골사리 보석을 하지 않은 사람은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다수의 사람과 유골사리 보석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프라임하우스에서 유골 사리 보석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143만원이다.
보통 화장을 하고 뼛가루를 보관하는 봉안함의 경우 작게는 수십 만원에서 비싼 건 1000만원이 넘는다. 특수진공포장 기능을 갖춘 봉안함도 있지만 소비자가 제대로 그 기능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유골사리 보석은 따로 봉안함을 살 필요도 없고, 납골당에 안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라는 것이 전 대표의 주장이다.
죽음을 콘텐트로 다루는 사업도 있다. 죽음은 영화·드라마·음악에서 자주 다루는 콘텐트다. 보는 이의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극대화하기에 좋은 장치다. 최근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죽음이란 콘텐트를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띄는 연극으로 ‘염쟁이 유씨’가 있다. 2006년 처음 소개된 이후로 좋은 반응을 얻어 지금까지 전국을 돌며 수많은 공연을 했다. 누적 관객 30만 명을 넘어섰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관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고, 연극의 유일한 등장인물 한 사람이 서 있다. 염쟁이 유씨다. 60년간 염을 해온 유씨는 “오늘이 제가 마지막으로 염을 하는 날”이라고 말하며 염을 시작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장면을 보여주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인터넷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비즈니스도 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추모관을 만들어주는 비즈니스다. 일종의 홈페이지에 고인의 사진과 글을 게시해 추억할 수 있도록 만들고, 방문자들이 간단한 메시지를 글로 남기는 것이다. 과거 유명 연예인의 추모사이트를 만드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최근에는 일반인 중에서 이 같은 수요가 늘고 있다. 디지털 파일로 된 사진을 모아 추모사진앨범을 제작해주는 곳도 있다. 아직 추모 사진앨범만 전문으로 제작해주는 곳은 없다. 보통 결혼·여행·돌과 같은 기념 행사 포토북을 만드는 업체에서 추모 사진앨범 형태로도 제작을 하는 정도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죽음과 관련한 비즈니스는 막 꽃을 피우는 단계다. 영세 사업자도 적지 않지만 앞으로는 더 다양한 형태의 사업이 등장할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사회적으로 웰 다잉이 유행입니다. 잘 죽자는 말은 결국에는 잘 살자는 말과 같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죽음을 금기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어요. 누군가 죽음을 입에 담으면 ‘재수없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죠. 죽음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깨달음을 얻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더 잘 살기 위해 더 잘 죽는 것을 고민하는 사업이 계속 등장하지 않을까요?” 김기호 대표의 말이다.
호스피스(hospice):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연명보다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활동 혹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임사체험(臨死體驗):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경험.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거나 번개를 맞아서 모두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 임사체험을 겪었다고 자주 보고된다.
염(殮): 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힌 다음, 베나 이불 따위로 싸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