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이베리아에서 십자가 찾기
이베리아 반도에서 십자가 찾기는 기대만큼 성과가 없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두 예외가 아니다. 유럽에서 십자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해가 바뀔수록 십자가 가뭄이 심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고, 예술품 작가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다른 위기감이 들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십자가를 ‘줍줍’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런저런 선택을 고민하리라 싶었다. 대형 여행 가방을 따로 더 준비한 배경이다. 가방 속에 가방을 넣은 만큼 기대감도 부풀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로 빈 가방을 채우는 일은 뜬금없는 꿈이었다. 다만 바르셀로나에서 구한 포스터를 구김 없이 가져오고, 파티마에서 장만한 75cm 높이의 앤틱 십자고상(十字苦像)을 날아오는데 요긴한 도움이 되었다.
실망은 첫 방문지인 몬세라트 수도원에서부터 감지되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을 설계한 안토니오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만큼 영감있는 성물도 풍성하리라고 짐짓 판단하였다. 몬세라트의 봉긋봉긋한 바위들은 영락없이 성가족교회의 둥글둥글한 첨탑 모습을 닮았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검은 성모자상은 이미 내 수집품에도 있을만큼 유명했지만, 십자가는 전무한 셈이었다.
다만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녹색 예수상을 구한 것은 상상 밖의 수확이었다. 가우디 건축물로 유명한 까사 밀라와 까사 바티오를 연결하는 대로를 산책하던 중 길가에 줄지어 선 간이 책방들을 만나, 비록 스페인어로 된 고서들이지만 구경삼아 기웃거렸다. 얼마를 그렇게 반복하며 지나던 중에 놀랍게도 벽에 붙은 대형포스터 속 녹색 무늬 옷을 입은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거의 100년 전인 1929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국제미술전람회를 알리는 컬러판 광고였다.
고맙게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비록 산티아고 길의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를 보지 못했지만, 야고보 순례를 상징하는 조개껍질 십자가나, 산티아고 기사단 십자가, 십자가 아래 앉은 순례자의 모습은 영성순례의 의미를 더해주었다. 무엇보다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하는 아스트리아스 족의 문양을 담은 십자가를 구한 것은 최고의 선물이다. 십자가에 새긴 고유한 민족의 문양은 그리스도교 전파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성의 이미지와 같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는 눈에 띄는 십자가들이 많았다. 해안과 산 위, 도로를 따라 정류장에도 그들의 삶의 이정표처럼 십자가가 존재하였다. 몬세라트 바위산 꼭대기나, 대서양을 바라보는 두 땅끝인 스페인 피니스테레와 포르투갈 까보다로까 등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흩어진 십자가들은 그 땅의 오랜 신앙 내력을 증언하는 셈이다. 그런 경건한 문화는 도심 한가운데에도 남아 있었다.
포르투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풍광을 자랑하는데, 강변으로 내려오는 비싼 골목길에 자리 잡은 공방들마다 여전히 문화를 빚어내는 장인들이 있어, 명품도시와 함께 빛을 발하고 있었다. 탐문하듯 들린 작업실에서 철사를 꼬아서 만든 입식 십자고상을 구한 후 고마운 마음에 작가 사비나(Sabina Figueiredo)와 사진을 찍었다. 강변에 위치한 공방에서는 포르투의 명물 코르크 지붕 아래 밤을 배경으로 성 가족을 표현한 유리 구유상도 샀다.
파티마 성물집에서는 이미 십여 년 전에 구해 전시 중인 포르투갈 아기 십자가가 각각 남자 아기와 함께 여자 아기로 된 한 쌍임을 비로소 알게 되어 짝을 채웠다. 스페인의 십자가는 안달루시아 아랍 문양 십자가가 대표적이지만, 만만히 구하기가 보물찾기 수준일 만큼 희귀해졌다. 그라나다의 석양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들린 언덕 위 작은 성당의 성물가게에서 구한 알함브라 스타일의 십자고상은 스페인 십자가로선 내놓을 만한 유일한 작품이다.
포르투갈의 파두(Fado)는 대표적 장르음악이다. 젊어서 험한 바다로 나가는 것이 타고난 인생이라고 여겼던 포르투갈 사내를 그리면서 남은 여자들이 부른 슬픈 영혼의 노래이다. 세상 끝에 사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운명이었다. 그리움과 함께 한을 끌어안은 파두는 처음 듣는 귀에도 서럽게 넘실거린다. ‘검은 돛배’(Barco Negro)에 담긴 가사가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나서 전 바위에 걸린 십자가 하날 보았어요. 당신의 검은 돛배는 밝은 빛 속에 춤추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만난 십자가의 흔적 역시 속 깊은 아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