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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지향과 열정의 시인, 曺 純
- 치열했던 삶과 사랑의 無垢性
변 종 환 (부산광역시문인협회 회장)
신념과 의리의 시인 조 순
시인 조 순 선생님은 문단사회에서 의리가 깊었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끊고 맺는 것이 분명하기도 했지만 한 번 맺은 의리는 아주 굳게 지켰다고 한다. 청마 유치환 선생님과 향파 이주홍 선생님과의 인간관계에서 보여주었듯이 한 번 모시면 평생을 모신다는 그의 신념과 의리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성품이 다혈질이었고 고집 또한 보통이 아니어서 자신의 문학에 대한 소신만큼은 확실해 누구든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세계는 누구보다 연하고 따뜻하였으며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지니고 있었다.
문학의 홍수시대에 약삭빠르게 부화뇌동하는 요즘 문단세태에 비하면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경남 통영시의 <청마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청마 선생님의 유품 가운데 조순 선생님의 시화 한 폭이 포함되어 있어, 청마 선생님과 조순 선생님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연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2. 조 순 선생님과의 인연
조 순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가진 것은 1967년 내가 부산상고(현, 개성고교)에 다닐 때였고, 그 때 선생님은 국어담당 교사로 문예반을 지도하셨다. 그때 나는 문예반장을 맡고 있었고 학생 문단에서는 나름대로 활발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부산상고 문예반은 서울지역 대학마다 열렸던 전국고교생 문학콩쿠르와 전국의 각종 백일장을 휩쓸고 있었다. 생각하면 그러한 성과도 선생님의 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시를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보여주신 문학적이고 인간적인 영향력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부산상고 문예반뿐만 아니라, 부산지역 고등학교 문예반의 연합 서클인 <부산문우회釜山文友會>에서 내노라 뽐내던 학생 문사들에게까지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실질적으로 <부산문우회>를 지도하시는 스승이셨다.
당시 부산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의 문학 동아리인 <부산문우회>는 우리들의 1960년대, 그 빛나던 감성 시대의 활동 무대였고 희망과 우정의 터전이었다.
위로는 신태범, 유익서, 이석호, 양인자, 최화수, 이복구 씨 등 소설가들이 당시 <부산문우회> 회원들이었고, 김종해, 하 일, 임종찬, 진경옥, 진경선, 나영자, 황양미, 김종철, 김수경, 정영태, 유자효, 변종환, 신 진, 양은순 씨 등 시인들이 또한 <부산문우회> 식구였고, 평론을 하는 김선학 씨와 이제는 한국 최고의 편집전문회사의 대표이며, 편집전문가로 또 문화비평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형윤, 김한규 씨도 당시 <부산문우회> 회원이었다.
1961년에 시작된 이 <부산문우회>라는 문학 동아리는 10년 가까이 대를 이어 활동을 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별로 볼거리가 없던 1960년대의 고등학생들에게 이들이 부산 광복동 미화당백화점 ‘음악실’과 중앙동 부산일보사 5층 ‘부일 프레스 홀’을 빌려 매년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열었던 『밤, 시, 젊음의 초대』라는 시와 산문 낭송회와 시화전은 그야 말로 최고의 볼거리였으며 신선하고 젊음의 패기가 넘치는 인기프로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낭송회는 사실 단순한 시나 산문을 낭송하는 문학 행사가 아니었다. 무용과 노래와 관현악 합주가 어우러지는 일종의 종합 예술제였고, 그런 대규모 행사가 10년 가까이 대를 이어 고등학생들의 손에 의해 기획되고 알차게 운영되었다.
우리들의 10대는 그래서 해마다 풍성했고, 해마다 학생 문사 몇 명을 우상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랑과 시샘을 교차시키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 전국적인 고교생 문학콩쿠르에서의 수상은 거의 우리 몫이었고,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우리는 또래의 학생 문사들에 둘러싸여 시를 이야기하고 문학적인 우정과 교류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1960년대는 조 순 선생님의 애정과 배려에 힘입어 그렇게 빛나는 감성과 더불어 문학과 시의 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3. 戰後에 비는 내리는데
조 순 선생님은 1926년 10월 16일 경남 의령군 화정면에서 태어나 진주사범과 중앙대학교를 거쳐 경남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셨다. 서른이 되시던 1958년 그 당시 《현대문학》과 함께 한국문단의 양대 문학 전문지였던 《자유문학》에 시「해녀」 「5월의 소녀」「항아리」등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셨다. 이 시절 선생님을 남다르게 사랑하고 지도하셨던 분은「남해 찬가」등의 대 서사시적인 시들을 발표하였던 김용호 선생님이셨다. 그 후 <시단> <한국시> 동인으로 활동하셨고 만년에는 향파 이주홍 선생님과 함께 <갈 숲> 동인을 이끌어 가셨으며 일본의 시인들과 함께하는 〈지축地軸〉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셨다.
1961년 12월 발간된 첫 시집『戰後에 비는 내리는데』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현대식 호화 양장판이었는데, 이 시집 후기에서 “참으로 수 없는 未知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나 자신도 미지다. 다만 나는 나를 잃어가며 산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상실하는 나를 회복할 권리,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 따름이다. 이 권리 행사가 詩의 수단을 빌린 것뿐이다. 부정은 긍정의 단계이니까.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쓰고 있다. 이렇게 시를 쓰는 일은 나를 지키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비록 獨樂으로 끝날망정…”이라고 밝히신다.
첫 시집『戰後에 비는 내리는데』는 전후의 여러 상황과 슬픔의 빛깔을 재료로 선생님만의 슬픔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서정과 현대 감각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그윽한 감동의 울림을 주는 시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첫 시집은 선생님의 시집 가운데서 가장 열정이 넘치는 것일 뿐 아니라, 젊음의 방황과 아픔과 사랑이 넘쳐 나고, 역사와 사회의 현장을 치열하게 바라보고 비판하는 정신이 들끓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전후에 비는 내리는데
구름의 무게 같은 생활을
생각하는 갈대.
―그리하여 나는
나의 태양、지구、그리고 사랑의 깃발을 꽂기 위한
내 조국의 의용병.
나를 전송하는 바람 목메인
아우성이 주름잡기 전에
너를 입맞춤하고/햇빛이 문을 여는 광장에 섰다.
독사의 눈이 번득이는 덤불 속에는
사슴이 목을 추기는가
적적한 목숨의 부동산은 過失과
추억의 배낭 속에 꾸려、메고.
꽃씨가 눈을 뜨는
식민지 벼랑 밑으로
무수히 밟아 온 발자욱에는
수 없는 계절의 볕살이 열병을 했다.
나는 보았다.
역사를 가로 막는 無爲와 허망의
斷崖사이를 가설한 다리
갓 쓴 여우가 건너 다니며
밤은 살이 쪘다.
한사ㅎ고 凡節을 고집하던
神柱는 거미줄에 부딛친 곤충일까
레이숑 상자가 남루한 공간
고개 숙인 어머니가 손을 벌린다.
이렇게 불가사의한 물질의 범람인데
가난은 목숨따라 중량이 는다.
유언같은 시간을 가불하고 그래도 채무가
더 많은 나의 역사、다시 미래로 유산할 관념이 조각조각 자살하면
너의 빈 방에서는 5월을 핀 나무 이파리
무성한 潤이 눈부실 일이다.
영혼의 內室에서
나의 혈관에서 눈뜬 꽃이파리
이슬방울은 지구가 고단한 배설물
쓸모없는 나의 詩.
패전하고 돌아온 병정의 가슴에서
외로운 훈장 같은 것.
그러나 나의 표정은 3월
물오르는 樹皮.
깃발처럼 청춘이 너의 영토 안에서 펄럭거린다.
나의 결의.
바다의 중량보다 무거운 한밤의 침묵은
무한량으로 쏟아지는 역광선에 눈이 흐렸다.
강물처럼 흐르는 지붕 밑에서
세월을 도사리는 <시지프스>의 발목、
그걸 염세하는 철학자
나의 로오타리를 돌아서 갔는데
너의 쓸모없는 비애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하여 지금、나의 전부와 비례하는、
나 이외의 전부와 서로 대결하는
현장. 곧 불을 뿜을
두개의 총구가、떨리는 것조차
멈춘 긴장한 표정으로
세계는 시간과 공간으로 팽창했다.
저렇게 무서운 폐허. 나의 지구. 무서운 얼굴
안전장치가 풀린 얼굴들.
쉴 새 없이 하늘을 날으는 라디움의 새를 노려 보았다.
지구가 뉴우스에 얽힌 아픔으로
화보가 눈을 멀게 한다.
들어 보아라.
자궁 밖에서 무상으로 死滅한 수억의 정충처럼.
역사 속에서 사망한 전쟁의
목숨의 다리들을.
저 1950年의 살기가 6월의 하늘에 퍼져
동해바다로 흐르는、
강원도 눈밭에 묻힌 소리
무서운 소리를.
항가리 소녀들의 자유가 타살되는 소리.
나의 정원、꽃잎이
4월의 창에서 흩어지는
밝은 밤의 아우성을.
이렇듯 지구의 소리
무서운 소리를 듣는 나는 이방의 손님일까
전후에 비는 내리는데
구름의 무게 같은 생활을
생각하는 갈대.
분명히 무대는 아니었다.
골목에서 나비의 파닥거림 같은
가난을 쫓는 소년. 나의 왕자
바람 부는 광장에서 휴지처럼 뒹구는 생명. 내 지도의 갈증.
보석보다 소중한 몸을 파는 무허가의 딸、나의 공주.
하수도에는 고향 사람들의 체온이 흐르지도 않고 범람한 풍경.
피곤한 가로수에 아침이 걸려 이렇게 한량없는
풍경이 나자빠진 채로、발밑에서
수없이 밟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노래하는 의용군.
대리석을 베고 가로눕던 나의 노래
독한 모란의 빛깔에 취한 나의 노래
구름의 무게 같은 생활 속에서 나는 노래하는 의용군. 마치 그것은
역사 안에 있는 혁명아 처럼 나의 결의는 대낮보다 밝은 것.
전후에 비는 내리는데 日暮의 품에서
지구의 고독이 이불처럼 밀려오는데 나의 조국. 사랑의
광장을 파수하는 나는
노래하는 의용병.
- 조 순 시, 「戰後에 비는 내리는데」전문
무려 95행에 이르는 이 긴 시는 초기 작품에 속하지만 그의 시세계를 함축적으로 엿볼 수 있는 선생님의 대표작으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시이다.
시집『戰後에 비는 내리는데』에 서문을 쓰신 金容浩 시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술가의 희열은 창조에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생명에 조각하는 영원한 향수다. 갈망이다. 절규다. 한 편의 시가 그 압축된 상황 가운데서 全一을 포괄하고 고도한 지향을 가질 때, 그것은 인생의 꽃이다. 寶玉이다. 完美다. 이제、조 순은 오랫동안 각고한 시편들을 엮어 한 권의 시집으로 이룩했다. 어찌 나 혼자만의 기쁨이랴. 이 즐겁고도 기쁜 향연에서 독자는 도취하고 한편 보람을 얻으리라 믿는다. 그렇다. 한 시인의 향수와 갈망과 절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곰곰 되살리며、그곳에서 스스로의 인생의 꽃송이와 보옥과 완미를 찾을 수 있다면 독자는 그지없이 행복하리라.”
1961년『전후에 비는 내리는데』를 상재한 이후 22년만인 1983년 두 번째 시집인『村』을, 1987년에 세 번째 시집인『눈물 씻은 눈으로』를, 1994년에 네 번째 시집『작은 행복』을 상재했는데 1982년에는 <눌원 문화상>을 수상하셨다.
첫 시집에 나타난 서구적인 낭만에서 시작된 기교와 상징에 비해 그 이후의 시집들은 동양적 사고와 윤리적 의지, 삶에 바라보는 조용한 성찰과 자연에 동화되는 시적 지향을 보여 준다.
시작 생활 40년간 네 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으신 선생님은 1995년 10월 10일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스스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외롭고 긴 詩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다. 선생님의 시집『村』의 후기에서 “……깨어진 사금파리 한 쪽、풀꽃 한 송이、병든 보리 한 이삭에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고 싶었다. 내 주위의 어둡고 외롭고 슬픈 것들 속에서 함께 부대끼면서、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반성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싶었다……”고 밝히신 것처럼 오늘보다는 값진 내일을, 밝고 환하고 자유로운 내일로 인생도 시도 그렇게 발전하고 이어져나가야 한다는 믿음을 실천하며 사신 분이다.
달력에 가을이 왔기에
갑자기 흙내가 부르길래
버스로 세 시간의 고향길을 갔다
일정 때 뚫린 길
사철 연막 치는
먼짓길을 차는 달리고 있다
논두렁 풀섶 길을 덮는
황금 물결을
어린 꿈 속 길을
찾아 갔으나 그리도 많던
메뚜기 한 마리도 반기지 않았다
봇도랑 맑은 물에
해를 빠뜨리던
미꾸라지 붕어 새끼
피라미 한 마리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밀서리 콩서리
콩잎 타는 연기
그림처럼 솟고
동심은 타는데
어린 그 냄새는 없었다
수입쌀 장리 먹고
야구하는 브라운관이
촌방을 쳐들어온 날로
초가삼간 흙내는
마을을 떠나고
옛날로 숨어버려
스레트 지붕 위의
박이
식은 땀을 흘리면서
미끄럼을 타고 있다
- 조 순 시, 「村 1」 전문
젊은 날의 열기와 뜨거운 갈망들은 20여 성상을 지나면서 질풍과 노도의 세월을 몰고 지나갔다. 시인은 도회지의 모더니즘에 대한 실의와 절망감을 안고, 유년의 꿈을 키웠던 촌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아름다운 유년의 꿈을 키워 주었던 봇도랑 맑은 물과 초가삼간 흙내는 스레트 지붕 위에서 시들은 박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촌에 대한 그리움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며, 원초적 삶에 대한 회귀 욕구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그리움의 촌은 이미 도회지 문명의 이기에 찌들고 인륜의 도리는 멍들기 시작했음을 안타까워한다.
이 작은 사회도
경로석에는
새파랗게 늙은 청년들이
파리떼처럼 앉아 있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시선 밖으로 밀려 난
서러운 세월의 도장이 찍힌 채
손잡이에 매달려 저승이라도 가는 길일까
졸고 섰다
이 작은 사회도
한 치 앞을 못 보면서
신이라도 들었는지
경로석을 빼앗은
젊은 장님처럼
겁도 없이
대로를 달리기만 한다
- 조 순 시, 「버스 1」 전문
촌에 대한 그리움은 버스라는 도회 문명의 작은 사회 속에서 아픔과 실망감으로 변한다. 사라진 경로 의식 앞에서 좌절하는 노인들은 손잡이에 매달려 저승에라도 가는 듯 졸고 있음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선생님은 시 속에서, 주변의 어둡고 외롭고 슬픈 것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그렇게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반성하고 비판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으셨다.
제 3시집 『눈물 씻은 눈으로』로 넘어 오면서, 시들은 더욱 치열하고 깊이 있는 삶의 세계를 드러낸다. 생에 대한 무한한 집념과 애착들에 부딪치면서 시는 더욱 단단하고 고독해진다. 그러한 고독의 문제들은 종국에는 죽음과 삶의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의 세계로 이어지게 된다.
( … )
피를 말리고
숨이 모이는 시간도 흘러
눈물의 불꽃이 핀
들 가운데서
목마르게 나부끼는 풀잎 풀잎
어둡고 외로운 골목
밟힌 풀벌레의 따가운 울음을
깨진 사금파리의 아픔을
언어의 치약을 짜내어
닦고 닦아
시집을 폈다
( … )
소중한 恥部에
惠存을 써서
직장 동료들에게 보냈더니
나날의 신문 한 장보다 가볍게 받는다
나는 아찔 현기증이 생겨
눈앞이 캄캄해졌다
답답한 바다 속을 빠져 나와
해녀의 큰 숨을 쉬었다
가을 하늘이 넓은 어깨로 나를 안는다
텅 빈 하늘에다
惠存을 써서
「村」을 팽개쳤다
공중에서 분해되어
『村」은 전신이 마비된다
-조 순 시, 「惠存」부분
시는 슬픔과 고뇌 속에서 오랜 인고의 시간과 함께 산출된 고귀한 체험의 산물이다. 또 그것은 자신의 치부를 보이는 간절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직장 동료들은 나날의 신문 한 장보다 가볍게 받는다. 시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는 세상 사람들에게 아픔과 분노를 느끼지만 결코 시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 시집에서 늙음과 죽음의 주제들을 다룬 글들이 많이 나타나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문제들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죽음에서 자유스러워지고자 하는 것이다.
제4시집『작은 행복』으로 넘어 오면서, 선생님은 슬픔과 고통과 허무의 늪을 견뎌 내며 시들을 쓰고 있음을 본다.
시인의 삶이 곤고한 아픔일수록 시는 더욱 아름답고 단단하고 눈물겹다.
시의 세계에서 끊임없는 풍자 의식들이 살아 있음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하여 우리에게 잔잔한 반성과 함께 기쁨을 선사한다.
조 순 선생님은 현실 속에서도 주변의 정치적인 또는 사회적인 문제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 모두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가슴 뜨겁게 불어 넣어 주면서 살아가신 그런 분이셨다. 지금도 많은 문인들은 어렵고 각박했던 그 시절에도 풍류와 인간미가 넘치던 시인으로 기억하면서 선생님을 그리워하리라 생각한다.
4. 조 순 선생님 시의 특징
조 순 선생님의 시는 평자들의 평론에서 대략 다섯 가지의 특징으로 나눈다.
그 중 첫째는 문명 비평 시로서 드물게 보여 지는 처연한 서정성이며, 둘째는 신랄한 사회 풍자성을 언어의 절약과 이미지의 새로움으로 형상화 해냄으로써 이념과 경직성을 탈피한 점이며, 셋째는 삶과 죽음의 변증법, 넷째는 순수한 인간성 옹호와 폭넓은 사랑,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탁월한 시적 형상화의 기교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의 발전이 결코 인간성의 풍부함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구호나 선언문같이 단순한 메시지의 나열이 아닌 시, 빈정거리듯 애정 없는 언어의 내팽개침이 아닌 다듬고 응축된 상황의 시어 선택과 그 조립에까지 각별히 유의하는 바로 이러한 미덕이 결집된 것이 선생님의 시인 것이다.
앞에서도 서술하였듯이, 선생님의 세 번째 시집인『눈물 씻은 눈으로』는 이런 특징을 가장 적절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슬픔과 아픔을 포용하는 눈물은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되고 진정한 정화가 되는 것이리라.
하루를 지워버리는
日暮가
손수건을 흔들면서 이별하고 있다
새들은 놀을 저으면서
귀갓길에 오르고
허전함이 애수를 머금고 땅거미에서 서성거린다.
슬픔을 닦아라 사랑하는 사람아
오늘이 가면 내일은
다시 태어날 고운 것들이
꽃처럼 필 것을
눈물 젖은 눈으로 웃으면서 바라보자
저 빛나는 탄생을
신선한 햇빛을.
- 조 순 시,「눈물 씻은 눈으로」 전문
나는
죽어서 별이 되고 싶다.
살아서 별이 되어야
죽어서도 별이 된다고 한다
누구에게 별이 될까
우리집 강아지에게
여름 모기에게
바퀴벌레에게
별이 되기 위해
살충제와 목걸이와
모기향을 버려야겠다
아내 몰래
딸들 몰래
내 아내도
내 딸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데
나는 별이 되는 연습을
등산이나 하면서 해야겠다
풀잎사귀에게나
산속을 기는 개미나 벌레들에게
별이 되는 연습을 조심조심하련다
- 조 순 시,「별이 되는 연습」전문
시인은 죽어서 별이 되고 싶어 한다. 별은 맑고 아름답고 신비스런 존재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맑은 별이 되고 싶어 하는 시인의 지고한 삶의 자세. 그것은 인고와 깊은 통증이 없이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세계이다. 그러한 아픔으로만 이루어 낼 수 있는 별의 세계를 스스로의 실존과 대비시켰다. 삶이 지향하는 대상과 자신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삶의 본질임을 깨닫게 하는 이 시는 초기시의 기교와 상징성과는 크게 구분되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깊이 있게 바라보면서 체념이 아니라 순리에 대한 순응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지순한 삶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의 정신을 알 수 있다.
5. 산으로 간다.
진달래의 향기 번지는
연두 빛 새잎의 궁궐
새들이 노래하는
산에
묻히는 주검의 행복이여
풀꽃이 사철 피고
여름에는 구름도 와서 놀고
가을 잎이 온 산을 물들이는
어머니의 노래 들리는 산
내 기쁨의 죽음이 묻힐 것을 생각해 보라
죽음은 두려운 것도
슬픈 것도
허무한 것도 아니다
겨울에 눈이 덮어 주고
바람이 원시의 품으로 안아줄
산에
오욕의 살을 썩게 하는 그리고 너의 죄를 침묵하는
아 산으로 돌아가는 사람만의 은총
죄의 껍질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 주는
산의 고마움으로 매양
산을 간다 산을 간다
내 막내의 못다한
재롱을 만날 산
人間史 씻긴 달빛이
풀잎에서 별빛과 놀고 있는
산으로 묻히는 일
생각만으로 설레이는
산으로 간다.
- 조 순 유고시,「山으로 간다」전문
이 시는 선생님의 사후에 유족들이 선생님의 쓸쓸한 책상 위에서 발견한 시 작품이다.
부산 <사직야구장> 입구 공원에는 선생님의 유고시「산으로 간다」가 새겨진 시비가 잘 정리된 푸른 숲속에 단아한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모든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자 갈망했던 그는 치열했던 삶과 무구한 사랑을 껴안고 “인간사 씻긴 달빛이/ 풀잎에서 별빛과 놀고 있는” “연두 빛 새잎의 궁궐” 같은 “가을 잎이 온 산을 물들이는/ 어머니의 노래 들리는” 산으로 떠나신 것일까. “내 기쁨의 즉음이 묻힐 것을 생각”하신 것일까.
선생님의 시들을 새삼스럽게 들추어내면서, 시 작품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깊이 있는 것인지를 깨닫는다. 또한 그것들은 진정 선생님의 치열한 삶의 정신과 열정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시인 조 순 선생님을 비롯한 부산의 작고시인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문학적 재조명이 더욱 깊이 있고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