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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라(말 4:1-3)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이 가을이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추워졌고, “지금이 겨울이다”라고 말하기에는 어쩡쩡한 그런 때입니다.
한때. 자동차 드라이브 하기에 좋은 곳으로, 청주의 가로수길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복대동 가경천 죽천교에서 석소동 경부고속도로 나들목까지의 길을 가로수길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드라마 “모래시계”가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살지 않았을 때에는 청주의 가로수길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에는 바로 이곳이 그 유명한 가로수길이라고 했는데, 오송으로 이사 가고 나서, 매일 한두 번, 이 가로수길을 왔다갔가 하다보니, 아무 느낌도 없이,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 가로수길을 달려오면서, 멋지고 아름다운 곳인데, 그 멋짐과 아름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월의 마지막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때쯤, 모두가 아는 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라는 어느 분의 간증을 잠깐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 죽음의 문턱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일까요? 그 죽음의 문턱에 가서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 수 있는 것일까요? 매일매일 반복되어지는 일상의 삶 속에서는,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매일 가로수길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다 보니, 전혀, 그 은혜와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죽음의 문턱에서만 하나님께서 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매일반복되어지는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는 구해주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이 시기에, 어느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 한 마디가 기억납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2023년,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 주일 말씀을 준비하면서, 매주일, 성경 한 권씩 살펴보고자 계획을 세웠는데, 어느 덧,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마지막 날이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날,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말했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감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라고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400년 전에 기록되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죄악과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주시고, 특별히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끌려가서, 70여년 동안이나 모질고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을 한 후,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머나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고,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하나님께서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9)고 약속하신 축복과 번영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언의 말씀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다리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에 빠졌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하였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고, 오히려 교만한 자가 복되다고 하는 잘못된 불신앙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책망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며, 육체적인 질병을 고쳐주시고, 죄에서 구원받게 하시고, 억압에서 자유케 하시며, 축복과 은총을 통해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시되,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서, 병을 고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고침 받은 사람들이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기뻐하며 뛸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치료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하나님의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섬기고, 사랑하며, 가장 소중한 것으로 예물을 드리고, 악을 멀리하고, 정직하게 살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자 할 때, 하나님은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에게, 자녀의 번성과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길 때,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언 22:4절을 보면, 솔로몬은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자신과 자손이 복을 받고, 또 영혼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짐을 받고, 복되고 형통하게 하며, 마음의 간절한 소원도 이루고, 건강하고,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고, 더 나아가서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용광로 속에 들어가 금방 타 버릴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교만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황금 들녘을 바라볼 때마다, 푹 숙인 벼들을 보게 됩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기독교의 정신은 경외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외라고 하는 것은 “두려워하고 공경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면, 불순종과 죄악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2:11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했고, 시편 5:7절에는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라고 했고, 시편 34:7절에는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라고 했고, 시편 34:9절에는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했고, 시편 115:13절에는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 때, 성전을 향하여 예배할 때, 여호와의 천사가 그를 둘러 진을 치고, 위험으로부터 건져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심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시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축복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 주십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라고 했습니다.
“공의로운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어둠 같은 죄에서 빛과 같은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절을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첫 번째인 책인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파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아름다움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온 세상에 파괴와 어둠과 죽음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폭력과 마약과 살인과 전쟁이 너무나 흔해 빠진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점점 더 길고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고, 짙게 깔린 어둠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이 빨리 와야 합니다. 의로운 해가 떠올라야 합니다.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성경을 펴서 읽으셨는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한 순간부터, 그의 삶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망에 처한 사람이 소망을 얻고, 캄캄한 흑암 가운데 사는 사람이 빛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롭고 복되고 영원한 삶을 살게 됩니다.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로 살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료의 광선을 비춘다’는 것은, 마치 태양 광선이 세균을 죽이고, 안정감을 주고, 기분을 좋게 해 주고, 새롭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가 모든 죄악에서 구원받고, 상한 심령을 고침 받고, 육체적인 질병도 치료받고, 완전히 회복되어, 건강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십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할지라도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망한 사람도 흥하게 되고, 버림받은 사람도 새롭게 되고, 어둠의 자식처럼 살던 사람도,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치료하는 광선을 많이 쬐셔서, 건강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외양간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던 송아지를 외양간 밖으로 내보내면, 들로, 밭으로, 뛰어다니며,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중고등학생시절, 집에서 토끼를 키웠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싱싱한 풀을 뜯었다가 주기도 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토끼를 꺼내, 풀밭에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풀을 먹으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토끼들을 잡으려고 애를 써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악과 가난과 저주, 질병의 외양간에 갇혀 있었습니다. 딴세상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 죄악과 저주의 외양간에서 꺼내어 풀어주셨습니다. 자유와 해방을 얻었습니다. 푸른 풀밭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는 송아지처럼, 하나님의 복과 사랑, 은총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그 죄와 저주의 외양간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그 죄와 저주와 어둠의 외양간에서 우리를 꺼내주셨습니다. 우리를 다시 그 외양간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그 외양간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죄악의 포로된 상황에서,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절망과 염려 속에서 살아가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아직도 외양간에 갇혀있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죄악 가운데, 어둠 가운데 갇혀 있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어둠과 절망과 염려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을 받아서, 자유와 기쁨과 평강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3:8절을 보면,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했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거지가, 성전 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구걸하자, 베드로는 그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며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서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는 기쁘고 즐거워하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다시 성전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거지의 삶을 살아간다면 어찌 되겠습니다. 그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날, 뜨거운 용광로 불에 타 버릴 지푸라기 같은 인생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날이 온다고 할지라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맘껏 뛰놀 수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하여, 그 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모든 것들을 파괴해버렸습니다.
파괴와 어둠과 죽음과 고통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꺼내주셨고, 우리의 삶과 세상을 다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참된 자유와 기쁨과 강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직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오니,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와 어둠과 저주와 죽음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과 더불어, 주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와 기쁨과 평강만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