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지내시지요.
전 일전에 답사를 다녀온 후 그저 일상의 안일함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그리운 얼굴들이네요.
여성광장의 북카페 <공중그네>에 들러 바리스타 '도주'님이 만들어주는
내공깊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그것도 맘 같지만은 않네요.
각설하고
:
남들이 내게 가장 좋아하는 것
세 가지를 말해보라면
책(책보기, 책 소유욕), 만들기(목공), 술(술 그 자체보단 술 마실때의 사람과 그 대화)
이 세 가지를 들겠네요.
이 세 가지를 즐겨하기에 제가 있는 곳의 당호를 삼락재(세가지를 즐겨한다하여)로 할까하다가
이름이 좀 뭣해서 머뭇거리고 있네요..
자! 오늘은 의자 만드는 것 구경이나 하세요..
좋은 연장이나 공간이 있다면 좋은 작품이 나오겠지만
아직 어슬픈 촌목수라서 목수 연장 탓하듯 장소와 연장을 탓하게 되네요.
한때 목공예에 빠져 무엇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아파트라는 그 제한된 공간속에서는 생각만으로도 가상한 용기였는데
이제 한적한 교외의 단독건물에 기거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무엇을 만들어 보렵니다.
자, 그럼 다들 구경들 하시라!
먼저 도면그리기
세상에 그저와 공짜란 없는 법이죠.
작은 생각이라도 모으고 모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겠지요.
생각날때마다 틈틈이 생각도면을 그려보기...
처음엔 모방이지만 모방이 쌓이고 자기화되면 창조로 나아가는 거죠.
처음부터 창조로 나아가는 길은 없답니다.
어깨너머로 배울지언정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저야 좋은 스승을 만나기 어려우니(어쩜 매너리즘에 빠질까하여 제가 좋은 스승 만나길 거부하는)
그저 좋은 책과 나의 부지런한 발품과 좋은 작품을 볼(관상, 관람)시간과 노력만이 필요하겠지요..
좀 못 생긴 나무를 구해와 대패로 밀고 불로 지지고 볏짚이나 억새로 밀면(전통적 기법으로 낙동기법이라 한다지요) 이렇게 결따라 가지런한 모양이 나온다
나무결에 스민 저 은은한 모양(사실 이 나무가 결이 안 좋아서 그렇지 우리네 느티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같은걸 쓰면 엄청난 문양이 나온다)
좀 못나도 아끼고 다듬고 사랑하다 보면 정이 가게 된다. 같이 사는 부부 사이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의자 상판. 신문 절반(타블로이드)크기
일하다가 지루하면 틈틈이 조금씩 아껴가며 파내고 맞추어보고....
하트 모양이 위쪽으로 가면 더 좋아보일까? 결국 하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의자 측면, 좌우에 하트 문양을 도입했지요..
조상들이 만든 목물을 찾아보면 하트 문양 비슷한 사과문양(스페이드)이 있어요.
이를 뒤집어 보면 결국 하트가 되죠.
동양이나 서양이나 결국 미의식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대충 만들어서 맞추어 일단 한번 맞추어 보기
결합 준비완료
많이도 필요없고 5개의 나무 조각이면 의자 하나가 만들어지죠. 참 간단, 간결하지요?
풀칠로 결합 후 굳히기
뒤틀리지 않게 끈으로 고정해 준다. 고정하는데 조임쇠같은 장비들도 있지만 전통적인 방식대로 그냥 해보는 거죠.
1차 완성(결합) 후 대충 만들어진 작품을 이리저리 굴리며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시간...
잘 만들었건 못 만들었건 이 시간이 가장 뿌듯한 시간이 아닐까?
작품을 통해 자신도 돌아보고, '아! 이렇게 하면 더 좋았을걸' 같은 생각도 하고.
동백기름 바르기
바르기 전과 바르고 난 후.. 색깔이 확연하게 다르다.
우리네 전통칠은 색을 입히고 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은은한 색감이 살아오른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같은 그런 기다림의 맛이랄까?
요즈음은 다들 페인트랑 서양에서 도입한 칠을 올리지만 나는 조선의 것이 좋아 요즘 구하기도 어렵다는 동백(우리가 알고 있는 남해안에만 자라는 붉디붉은 꽃이 피는 그 동백)기름을 바른다. 8년전 구해다 놓은 것인데 이사때마다 고이 모셔 여기까지 가져왔다. 아껴서 조금씩 천천히 바른다. 동백기름 냄새는 식용유+들기름의 중간쯤 정도라고 보면 된다.
칠을 하고 2-3일이 지나면 기름이 나무에 스며들어 냄새도 거의 나지 않고 표면도 매끈하게 색감도 은근하며 예쁘진다. 대다수가 바니쉬란 서양 칠을 쓰지만 바니쉬는 너무 투명하고 눈을 피로하게 하여 거부감이 느껴진다. 바니쉬가 화장 진하게 한 여인같은 느낌이라면 동백칠은 청순한 여인의 그것이다.
동백기름이 놓인 의자는 우리 전통 목가구 결구기법 가운데 최고 난이도의 결합기법인데 초보자인 내가 가장 먼저 해 본 일이다. 어려운 걸 가장 먼저 한다고. 이미 맘 속으로 10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니 예상보다 쉽게 만들었나 보다.
책상 상판 결합하기, 끈으로 묶기도 하고 책으로 누르기도 하면서 굳히기 단계
나무가 부족해 내가 살던 고향집(월북화가 이쾌대 생가)에서 이사 나오면서 떼온 마루판(제일 상단부의 이쁜색깔, 어린시절 내가 매일 같이 발딛고 다니던 그 마루판이다)과 대학시절 노가다 다니면서 구해온 스프러스 종류의 판재(가운데 안 이쁜 색깔)를 같이 결합했다.
고향의 정신과 내 노동의 결합이라.. 아! 이 얄궂은 조합이란?
나무 종류에 따라 이렇게 색감도 보는 맛도 감촉도 다 다르다. 매일 손으로 만져지는 그 느낌을 사랑해 원목을 좋아한다고 할까?
드디어 완성
오랜 고민 끝에 내 몸 사이즈(앉은키, 팔길이, 상판에 놓아 둘 책의 권 수 등)에 철저히 맞춘 나만의 의자와 책상이다. 책상은 자주 멍하니 창밖을 보거니 뭔가 멍청한 생각이 많은 나를 위해 양 팔을 편히 기댈 수 있게 가운데 부분을 파내었다. 등받이용 의자가 아닌 불편한 의자를 채택한 것은 하루의 일과 중 불편과 오만해진 내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선 과감히 불편을 선택해야 겠기에(장시간 하는 컴퓨터 작업 같은건 등받이로 하고, 잠깐의 독서나 신문보기, 멍 때리기, 메모나 술마시기, 도면 그리기 등은 불편한 의자로)
책상 판재 밑에는 간단한 필기구들 두는 공간도 설치하고(돌리면 안으로 들어가 안보인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여기에 앉아 멍청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두 팔을 책상에 턱 하니 올려 두고...
그간 나도 나무인 당신도 참 고생 많았소! 나와 함께 10년을 떠돌고 이사 다니고 따라 다녔으니..
자! 그간의 고생을 털고 한 권의 책과 소맥 폭탄주 한잔 받으시구려!
나무의 신이시여! 고맙고 또 고마우니
이곳에서 평안함도, 신사상도, 진리도 발견케 해 주시구려...
이제 우리 평생을 함께 맘 맞추어 잘 해보시구려! 많이드소서!
:
일본인들은 세계 목가구 중에 조선의 목가구를 최고로 친다지요.
특히 군더더기 없고 기교를 부리지도 않은 조선 선비의 정신이 스민 것들을요.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심풀하면석도 정갈한 그것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조선의 다기에 심취하는 것은 잘 알지만
목가구에 심취한 것은 잘 모르죠.
저도 그 선비향이 스민 조선의 목가구에 홀짝 빠진 사람입니다.
누군가 나무로 만드니 인간의 감정을 빼고
그저 기계적으로, 공학적으로만 접근하고 생각하려는 것 같네요.
그러나 정확한 치수, 황금비례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자란 나무를 가지고 그것을 용도에 맞게 이용해 얼마나 인간의 감정에, 사용자의 심정에 다가섰느냐가 중요하겠지요.
만약 만든 사람이 책상다리를 약 15도 정도로 약간 비딱하게 해서 만들었다면 그 15도의 의미를 생각해 낼 줄 아는 안목이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우리네 목가구는 기교를 부리지 않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 속에 숨은 기교나 정신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를 두고 우리나라 최초의 미학자라 할 우현 고유섭은 '무기교의 기교'라 말했지만.... 글쎄요, 우리네 목가구 속에는 자연과 동화되어 살았던 우리네 조상들의 노자의 무위자연 같은 그런 사상들이 스며 있을테고 그걸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안목 높은 사람이라 하겠지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장인의 손길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볼 줄 아는 눈 밝은 이의 높은 안목도 중요한 법이지요. 안목! 두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은 말입니다.
:
세상을 살다가 어떤 사람의 이력이, 그의 투철한 역사성이
제 맘에 꼬옥 드는 느티나무같은 사람이라면
제가 만든 목물 한 점 선물하고 싶네요.(이건 빈말이 아니라...)
모두들 건강 하세요.
-- 멀리 계룡산 자락에서,
추신) 찌명님!
이번 답사에서 아이들이 너무 많아 놀랐소이다.
제가 아무리 동안이기로 아이들에게까지 인기가 이리 많을 줄 정말 몰랐네요ㅎㅎ
담에 아이들 이리 많은 답사면 답사인솔 안 갈 거예요? (이건 협박이예요ㅎㅎ)
첫댓글 ㅋㅋ 안케도 오늘쯤 원고청탁 전화를 드리라고 찌명언니한테 시킬 참이었는데, 이케 먼저 흔적을 남겨주시고..ㅎㅎ, 글을 주십시오, 일주일 드리면 되겠지요? 늦어도 28일까지 부탁드릴게요!^^
저도 요즘 경황이 없어 까페에 한참만에 들어왔는데 쌤 안부 반갑네요^^목공예에 심취해있으신가요...멋지네요.새우깡에 소주는 좀 거시기하지만요 ㅋㅋ
아, 네! 28일까지라고요, 잘 알겠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이들처럼 그런 강고한 압박감 속에 28일까지 버티어야 겠네요. 적당한 긴장은 활력이 있어 좋지요. 여성만세님과 찌명님께 위에 있는 소맥 폭탄주 한잔씩 보냅니다. 안주는 새우깡이예요.. 아시죠! 원 샷!
ㅇㅎㅎ 감사!^^
넵!원샷..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