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0:15~33)
오늘은 말씀 전체가 참 짜임새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먼저, 아비에게 끝없이 '주세요, 주세요.'라고 울부짖는 딸들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자신에게 부여된 축복보다는 결핍한 것만을 바라보고 괴로워하는 모습인데,
정작 더욱 괴로운 것은 그 울부짖음을 듣고 더 채워주어야 하는 그들의 아비이다.
그리고는
여러 비유로 세상을 살아가는 갖가지 양태의 사람과 동물을 보여준다.
적절하지 않은 모습으로 세상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사례로는,
종의 자질을 가진 이가 권력을 가진 것, 어리석은 자가 육체적 욕망을 채운 것,
미움받는 여인이 시집을 가서 성공한 것, 여종이 여주인을 대신하는 행위 등이다.
존재는 작지만 능력 이상을 발휘하는 지혜로운 사례가 있는데,
여름에 음식을 준비하는 개미, 돌 틈에 집을 짓는 오소리, 왕 없이 줄지어 행진하는 메뚜기,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 그것이다.
또 자기 신분에 맞게 당당하게 행하는 존재들이 있는데,
사자, 사냥개, 숫염소, 그리고 왕이 그렇다.
현실과 실존은 복잡다난하다.
그래서 너무나 다양한 양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수도 없이 많은 옵션 선택이 내 앞에 놓여 있는데,
그래서 적절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것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그 본분에 맞게 충실히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나 자신은
먼저 감사함과 만족함을 기본으로 깔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질과 모습을 주신 이유,
즉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리고 타자를 바라볼 때
그의 위치를 세상의 가치와 편협한 선입견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에게만 부여하신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여겨야 하며
복잡한 옵션 선택의 실존적 삶 속에서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이해한다면
좌충우돌하는 순간의 단면만 가지고 비판하기보다는
보다 수용적차원에서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오직 그만 사용할 수 있는 그의 선택권을 인정하고
타자로서 도와줄 수 있는 것(encourge, faciliate, urge, support, persuade,
move/touch)에 충실하는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코 그를 장악하거나 내 생각을 선량한 것으로 단정하고
그것을 강요(force)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행동을 버려야 한다.
그러한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원리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대상자 타자와 나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