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분 / 미성년자관람불가>
=== 프로덕션 노트 ===
제67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모네, 마네, 고흐로 대표되는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린 천재화가
세상을 매혹시킨 빛의 로맨티스트
마네, 모네, 르누아르 이전에 그가 있었다
인상주의의 시작이자 풍경화의 거장 윌리엄 터너의 숨겨진 이야기
19세기, 이미 미술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터너는 영국을 벗어나 여행을 다니며 영감을 얻던 중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동시에 기존의 화풍을 벗어나 파격적인 기법의 풍경화를 선보이지만 세간의 조롱을 사고, 심지어 시력이 나빠졌다는 소문까지 돌게 되는데…
=== 인물 정보 ===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 ~ 1851
영국의 화가로 고전적인 풍경화에서 낭만적 경향으로 기울어져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 《수장》 등에서 낭만주의적 완성을 보여주었으며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775년 런던 코벤트가든 템즈 강 주변에서 출생하였다. 터너의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가발을 제조하였고 어머니는 정신병환자였다. 터너는 어린나이에 그림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는 터너의 재능을 발견하고 장차 아들이 화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터너는 삼촌이 사는 시외에 머물며 목가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많은 스케치를 했는데 이때 생긴 풍경스케치는 그가 평생토록 즐겨했던 드로잉 습관이 되었다. 아버지는 터너가 11~12세 때 그린 드로잉을 가발가게에 걸어놓고 팔기도 하였다. 미 무렵 터너는 건축 제도사였던 토마스 말턴의 조수로 들어가 그림을 그렸으며 이때 정확한 원근법 묘사 등 영향을 받았다.
1789년 14세 때 로열 아카데미(왕립미술원)에 입학하여 수채화를 배우고, 이듬해 아카데미 연차전(年次展)에 수채화를 출품하였다. 그는 주로 수채화와 판화를 많이 그렸는데, 20세 무렵에는 유화를 시작하여 풍경유채화를 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R.윌슨을 비롯하여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영국의 국내 여행에서 익힌 각지의 풍경을 소재로 삼았다. 24세 때에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되고, 3년 후인 1802년 로열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무렵 터너는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의 그림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로랭의 작품 중《시바여왕의 승선》에서 캔버스 위에 화사한 빛이 생동감있게 묘사된 장면을 보고 장차 터너의 작풍에 큰 영향을 주게된다.
1802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상태를 종결하고 양국의 긴장완화를 협정하는 아미앵 조약(Treaty of Amiens)이 체결되자 터너는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과 다른 문화와 자연을 체험하였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고 다양한 프랑스 미술품을 접했다. 터너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풍경화의 소재를 모아 500점이나 되는 스케치를 남겼다. 이 무렵부터 N.푸생, C.롤랭의 고전주제적 풍경화에 끌려, 특히 구도를 잡는 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고전적인 풍경화가로 유명세를 타기시작했다. 1804년에는 자신의 화랑을 개설하였으며 많은 그림을 주문받았다. 1820년 전후부터는 그의 양식에 변화가 생겨, 자연주의적인 방향에서 벗어나 낭만적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1812년 터너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되는 《눈폭풍,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Snow Storm, Hannibal and his Army Crossing the Alps) 》를 남겼다. 이 작품에서 터너는 새로운 화풍의 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1819년 T.로렌스의 권유에 따라 처음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색채에 밝기와 빛을 더하게 되었으며, 로마에 머물며 많은 드로잉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후에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풍경화를 제작하였고 그의 작품은 구도가 단순해지고 빛의 섬세한 색채변화를 탐색했다.
1829년 터너의 가장 절친한 후원자였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실의에 빠져지내다 《창백한 말 위의 죽음》을 제작하였다. 1825년 런던의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난 화재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는데 터너의 독창적인 구도와 원근법 등 기존의 화풍과는 다른 모습을 잘 보여준다. 1938년에 제작한 트라팔가르해전에서 용맹한 해전을 펼쳤던《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 The Fighting Témé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은 터너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데 터너 자신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대비와 그리고 붉은색의 조화롭게 묘사되어 수작으로 평가된다.1840년 영국의 젊은 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을 만났으며 1843년 러스킨이 출간한 미술비평서 《근대화가론》에서 터너의 회화를 극찬하였다. 이후에도 터너는 《수장(水葬) Peace:Burial at Sea》(1843), 《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 서부 철도》(1844), 《디에프항》 《노럼성과 일출》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낭만주의적 완성을 보여 준다.
1845년 영국 로열아카데미 원장(대리직)을 맡았으며 그해 가을 이탈리아 등 유럽을 여행하였다. 1851년 12월 런던에서 사망하였고 세인트 폴 대성당 묘지에 묻혔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지만 마지막까지 함께한 부스라는 이름의 여성과 그리고 사라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는 죽은 후에도 주목받아, 프로이센-프랑스전쟁 중 망명해 온 그후의 인상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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