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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7~12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24.11.24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어떤 물건을 두고 좋은 물건이라고 하면 그 성질이나 내용이 보통의 것보다 우수하다는 말입니다만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착하고 선하고 의롭고 바르고 괜찮은 의미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반대어는 ‘나쁜’입니다. ‘저 사람은 참 나쁜 사람이야.’라고 하면 착하지 않고 선하지 않고 의롭지 않고 바르지 않음을 뜻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쁜 하나님이 아니라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못된 분이 아니라 참 괜찮으신 분입니다. 악한 하나님이 아니라 선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좋은 사람, 좋은 성도, 좋은 목사이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버지는 근원, 본질,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본질, 생명의 근원, 나의 주인이기에 하나님 아버지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해서 우리 육신의 부모에 대한 개념, 즉 남자와 여자로 구별해서 하나님을 마치 남자로서 아버지, 여자로서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인식하고 부른다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하나님을 인식하면 결국 하나님 아버지와 어머니 하나님이란 오해를 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주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회는 어머니 하나님이 성경에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말씀을 가지고 이런 해괴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창1:26인데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했는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나’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했다며 하나님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일컬어 ‘우리’인데 이 구절을 근거로 그들은 어머니 하나님을 주장합니다. 기독교가 시작부터 믿고 따라온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동등하지만 동일하지 않다고 믿는 삼위일체 신앙을 정면 반박하는 이단입니다.
사람이 마치 남자가 여자와 합하여 하나가 되듯 하나님도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완전한 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지만 어머니가 있어야 완전한 분이 아니며 하나님은 스스로 완전한 분이고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어머니로 부르는 것 자체가 영적 존재요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피조물 세계 안으로 끌어들여 자연의 법칙과 육적인 관계 속에서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부성애와 모성애로 나눠서 이해하려고 접근하니 아버지와 어머니로 구분하려고 하지만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지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부성애와 모성애를 동시에 지니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이 인애하시고 자비로운 분이고 또한 아버지같이 엄하고 두려운 분이지만 그러나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이 곧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우리가 좋으신 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이 의롭고 바르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0:18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사도바울도 엡 2:10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선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선한 일을 계획하고 지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나타내어 주고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진행할 때마다 사람을 통해서나 사물을 통해서나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함을 드러내어주고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탄식하셨다’, ‘괴로워하셨다’, ‘진노하셨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시고 야곱을 보시고 네가 너를 기뻐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소돔성을 심판하실 때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해주셨습니다. 소돔을 심판하지 않으시도록 아브라함이 일곱 번씩이나 기도했다고 해서 마치 아브라함은 긍휼이 많고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라 소돔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함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전달해준 것입니다. 니느웨이성을 경고할 때에도 박넝쿨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얼마나 아끼고 불쌍히 여기시는가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도 불을 밝히고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벗은 발로 달려가 목을 껴안고 기뻐하는 모습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어쩌면 가장 잘 나타내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과거의 죄를 묻지 않고 오직 용서와 회복을 주시는 것이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이었습니다. 죽었던 동생이 살아왔는데도 시기하고 배 아파하는 형의 마음과는 너무도 비교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지만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또한 알려주고 있습니다. 9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너희보다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너희는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너희만도 못한 분이시냐는 것입니다. 롬8:32에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좋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믿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좋으신 아버지께 구하고 찾고 두르리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받을 것이요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을 약속하십니다. 할렐루야!
행 12장에 보시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당시 상황은 헤롯왕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잡아 칼로 목을 베었습니다. 다음날 베드로를 끌어내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쇠문을 열고 베드로의 손에 채인 쇠줄을 풀어주고 감옥을 빠져나오게 했습니다. 행 12:10,16입니다.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천사가 떠나자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형제들이 기도하고 있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집을 찾아 갔습니다. 그 문도 닫혀있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16절입니다.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처음에는 여종 로데가 듣고 문을 열어주지 않고 들어가서 베드로가 왔다고 하니 미쳤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계속 문을 두드리자 기도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여기서 두 문이 나옵니다. 감옥의 쇠문과 마리아의 집 대문입니다. 쇠문은 어떻게 열렸습니까? 저절로! 그러나 저절로 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쇠문은 죄수가 열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문은 베드로가 계속 두드리자 안에 있는 사람이 열어주었습니다. 사람이 열 수 없는 쇠문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열 수 있는 대문은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열렸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열어주시기도 하시고 천사를 통해 열어주시기도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문은 어떤 문입니까. 쇠문입니까, 대문입니까? 아직도 굳게 닫혀 있습니까?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열리지 않는 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열리지 않는 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 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시면서 하늘문도 열고 닫게 하셨습니다. 예수 이름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길 원하십니다. 빌2:13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다윗은 시편 103장 3절 이하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고 좋은 것으로 우리 소원을 만족하게 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계획한 것보다 더 큰 것을, 더 좋은 것을, 더 위대한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좋으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 없자 그의 종들 중에 하나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마음에 정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창15:1이하에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얼마나 속상한 고백입니까. 좀 다르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떠나라고 해서 본토 부모 친척 다 버리고 떠나왔는데 이게 뭡니까. 재물 많이 주신 것은 좋은데 상속할 아들이 없으니 양떼가 늘어나면 뭐합니까.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이런 마음의 속상함을 갖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한마디로 하나님은 더 좋은 것, 네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네 소원을 이루고 만족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고국을 버리고 온 며느리 룻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마음은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섬기며 따라온 며느리를 향해 시어머니 나오미는 고백합니다. 룻3:1에 보시면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합니다. 시집와서 고생만 하고 남편도 일찍 여의고 젊은 과부가 되어버린 며느리 룻을 향한 시어머니의 마음, 네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복되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 마음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구하기 전에도 우리의 사정과 필요를 다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왕하 3장에 보시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그리고 에돔의 세 왕이 연합하여 모압 왕을 치는 전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압을 치러 가는 도중 칠일 동안 물이 없어 더 이상 행군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여호사밧왕은 자신이 잘 아는 엘리사 선지자가 그 근처에 살고 있음을 알고 찾아가 물었더니 엘리사는 한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고 했습니다. 비록 바람도,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이 마시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것은 작은 일에 불과하며 이보다 더 큰일도 보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즉 전쟁의 승리까지도 약속하신 것입니다.
선지자가 명한대로 개천을 팠는데, 아무리 파내려가도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날 아침에 언덕 저편에서 물이 흘러와 그 개천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지자의 말대로 작은 일에 불과했습니다. 해가 떠오를 때 물의 색깔이 붉게 보이는 것을 보고 모압군사들이 그것을 피로 오해하여 다가오게 함으로 이기도록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일도 보리라고 한 말씀대로 하나님은 갈증만 해결해주신 것이 아니라 전쟁의 승리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더 큰 것을 주시길 원하시고 더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언제나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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