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즈메니아, 호바트 투어스 기행
영국 사람들은 호주를 다운언더라 말한다. 그리고 호주 사람들은 타즈메니어를
다운언더 중에 다운언더라고 한다. 호바트는 그중에서도 제일 아래에 있는 타즈메니어
의 첫번째 도시이다.
2014년 10월 13일, 8시 30분경, 이른 아침에 제일 먼저 호바트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는
Air Bus, JETSTAR JQ721 이었다. 우리 일행은 공항 셔틀버스Shuttle Bus를 타고 숙박지로
지정된 Mantra Hotel에서 하차했다. Check in 하기에 너무 일러 배낭등.. 짐을 리셉션에
맡겨 두고 호텔과 연하는 스트리트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카페가 위치한 곳은 Constitution Dock 와 인접한 Salamanca Place 였다.
살라망카는 주의사당과 마주보고 있다. 1835년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시기에 사암으로
만들어진 창고들이 줄지어 세워진 곳이다. 현재는 공예품, 골동품, 특산물을 취급하는
상점들과 부티크, 갤러리,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는 쇼핑과 더불어 관광 명소로 인기를 끌
고있다. 매주 토요일은 노천시장으로 더 유명하다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월남식당과
중국식당에서 허기진 배만 채웠을 뿐이다. 우리의 여행 일정이 목요일까지 이니 기다릴
수가 없어 정말 유감이었다. 아! 그리고 또 있다. 살라만카 스퀘어에는 1642년에 타즈메
니어를 발견한 아벨 타즈먼의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는 호주를 상징하는 남십자성이
박혀있고 옆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호바트 근교 동북쪽으로 약 26Km 떨어진 유서 깊은 리치먼드Richmond 가 있다.
그 곳에 가는 길에 운전수 겸 투어가이드인 50대 호주인이 너스레를 떠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태즈머니어에는 아부리진이 단 한명도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투르가니니’란 마
지막 아부리진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란다. 유럽인들이 옮겨온 인풀렌자
에 감염이되어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백인과의 혼혈은 약간 있어도 순수 혈통 아부리진
은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 좀 의심스러워 어떤 문헌을 찾어보니 1830년에 불랙 워 라고
하는 원주민 소탕작전을 하고 로빈손 목사란 사람이 플린더 섬에 133명을 데려다 수용을
했다가 병으로 죽고 47명만 생존을 했는데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오이스터 코브로 이
주 하였다가 그곳 에서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우리의 행선지인 리치몬드는 비옥한 땅으로 그곳에서 경작하여 생산된 농산물은 당시 거
의 70%가 Main Land(본토)로 수출을 했다고 한다. 또한 드넓은 땅에 양귀비를 재배하여
아편을 만들어 대량 수출도 했단다. 그의 말을 들으니 한때 영국이 중국에 마약을 밀
수출하여 중국정부가 이를 몰수하여 모두 불에 태워 영국과 불화를 일으켜 소위 아편전
쟁이란 것이 있었다는 역사를 배운 적이 있다. 추측 컨데, 그때 아편이 리치먼드에서 생
산된 것이 아닐까? 현재 리치몬드의 볼거리는 거의 사라지고 1823 - 1825년에 유형당
한 죄수들에 의하여 건설된 석조다리가 유명하다. 이 다리는 여섯개(6)의 아치로 만들어
진 것이 특징이다. 보통 그 정도 다리는 철골로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리에 사용
된 돌들은 모두 리치몬드 쿼리에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아픈 추억을
가두어 놓은 교도소가 유유히 흐르는 더콜 리버를 내려다 보고 있다.
호바트에 와서 호바트 시티 투어를 빼놓는다면 앙꼬(단팟) 없는 찐방을 먹는 것과 무엇
이 다를까? 호바트는 어느 대도시 못지않게 도시계획이 잘 되어있고 태즈메니어의 캐
피탈로서 손색이 없다. 우리는 태즈머니어 트래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는 Davey St. 에
서 관광버스에 올라 약 3시간 루프식 관광을 했다. 번화가인 시내를 통과하여 South
Hobart 에 있는 ‘Cascades Female Factory Historic Site’로 갔다. 이곳은 1828 – 1856 까
지 약 5,000여 여성이 수감되어 세탁, 바느질등의 노역으로 벌금을 상쇄하는 일을 해야
만 했다. 우리는 다시 승차하여 Battery Point로 갔다. 빼터리란 말은 군대에서 포병부
대를 말한다. 여기에는 2차 대전 때 사용하던 야포 2문과 고사포 1문이 각각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은 1818년 영국 식민지 정부가 프랑스군을 막기 위해 포대를 세웠던 것에
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에는 아마 18세기에 썼던 대포도 전시가
되어 있었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현대식 무장을 한 군인이 어린아이를 안고 달리는
형상의 조각품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어린애를 아무리 보아도 동양인이다. 아마도 월남
전 참전을 기념하는 의도로 보인다. 죄 없는 아부리진을 학살한 그들이 평화의 사도가
되어 남의 나라 전쟁에 참가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로니칼 하다 하겠다.
이곳을 떠나 시티투어는 다시 이어져 호주에서 제일 긴 다리? Derwent River를 가로 지
나가는 태즈만 브릿지를 건너 Rosny Hill Lookout에서 방금 지나온 다리를 촬영하고 보
타니칼 가든 방문을 끝으로 시티투어 반나절의 종지부를 찍었다.
다음 날은 풀 데이Full day Tours를 하는 날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07.10분경, 벌레처럼
호텔을 빠져 나와 도보로 약 10분 거리인 미팅포인트 Constitution Dock으로 향했다.
기온이 5도에서 15도 이내 이기에 두터운 복장으로 무장을 했다. 특히 오늘은 보트 투어
스를 하는 날이다. 출발은 7.30분으로 일정에 표기 되어있었다. 약 10분간의 여유가 있어
주변의 풍물들을 랜덤으로 촬영을 했다. 오늘 가이드는 약 60여세에 가까운 사람으로
눈 덮인 웰링톤 마운틴의 정상처럼 흰머리가 성성했다. 그의 이름은 베리라 했다. 서
로 인사를 나누고 작은 버스에 승차했다. 다른 사람은 없고 오직 우리 뿐이었다.
그는 우리를 향해 오늘은 스페셜 데이라고 농담을 걸어왔다. 오늘 행선지는 포트 아서,
호바트의 남동쪽으로 100Km, 태즈먼 반도의 끝 부분이다. 차로 약90분 이내에 도착할
예정 이었다. 베리는 사람이 좋아 보였다. 영어가 서툴다 했더니 차근차근 천천히 말해주
어 의사 소통에 이상이 없었다. 자욱한 아침 안개가 사라지고 도로변의 밀림 속은 눈부
신 햇살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광경이 이채롭기도 하고 평화스럽게 보
였다. 한적한 도로를 한참을 달려 어느 아늑한 해변의 별장 같은 식당 앞에서 차를 세
웠다. 여기서 15 - 20분 가량 모닝 티를 하고 출발한다. 오늘의 여행 일정 대로다.
서빙된 그라운드 커피는 향도 은은하고 맛이 아주 부드러웠다. 그리고 부드러운 버터가
곁들인 빵도 일품이었다. 빵을 좋아하지 않지만 반 정도를 먹었다. 베리는 다시 우리를
태우고 어느 작은 선착장으로 갔다. 어디서 왔는지 승선할 관광객이 40여명 정도
모여있었다. 쾌속정으로 보여지는 날씬한 배에 모두 타라고 한다. 승선 후 승무원 2
인은 후드가 달린 빨간 우비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운행중의 안전 수칙을 호주
사투리가 섞인 발음으로 빠르게 말한다. 무슨 말인지 반에 반도 못 알아 듣겠다.
세월호 선장처럼 가만히 있으란 말은 아닌것 같아 안심이다. 곧이어 멀미 약을 나누어
준다. 나는 멀미를 하지 않기에 받지를 않았다. 배는 물살을 가르며 30 – 40분 달렸을
까? 바다의 요새 같은 기암절벽이 보이는가 했더니 점점 커지며 우리가 탄 보트로 육박
해 온다. 그들의 선전물에 써있는 영문 내용 문구가 떠오른다. ‘… costal wildness cruise
along the spectacular…’ 정말 글자 그대로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대 자연의 경관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금강산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이보다 더할까? 이 작은 섬
을 도는 동안 기기묘묘한 기둥 같은 바위가 금방이라도 부서질듯 말듯 사납게 피칭하는
배위로 떨어질 것만 같다. 책을 쌓아 올린듯한 현무암으로 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거친 파도를 방파제 인양 막아내고 있었다. 군데군데 옥돌바위가 싸여있는 바람 벽에는
바다표범Seal이 제 집처럼 길게 누워 오수를 즐기고 힘빠진 파도가 널 부러진 포구에는
해조가 종이배처럼 둥둥 떠서 날개를 쉬고 있었다. 이 와일드의 평화와 상투어리…
저 아름다운 광경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나는 카메라에 담고 또 담았다.
그리고 다시 육지로 돌아 왔을 때, 나는 천국을 유람하고 돌아온 최초의 인간처럼 느껴
졌다. 예수는 부활하여 천국으로 갔지만, 아직 재림을 하지 않았다. 천국이 아무리
좋다 하나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면 천국은 인간에게 무의미할 뿐이다.
이제 일정이 짜여진 대로 중식이 끝나면 우리는 죄인 중에 죄인들의 유형지라고 알려진
포토 아서의 지옥 같이 비참했던 그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 볼 참이다.
여기에 유폐되었던 사람들은 본토Main Land에서 1830 – 1853까지 출옥하지 못한 죄수들
을 이감 하여 다시 수감한 곳이라 한다. 1877년 까지 유형 하는 동안 12,000여명이 수
감 되었다 한다. 중죄인들은 독방에 감금하기도 했다는 악명 높은 유형지였다.
반면에 모범수들 에게는 재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대장장이, 제화(구두)기술, 선박제조
기술 등을 훈련시켜 주었다. 여기에는 500명 까지 수감할 수 있는 교도소,병원, 공회,
망루등이 두루 있었다. 현재는 bush fire로 소실되고 철새가 버리고 간 지붕 없는 둥지
처럼 앙상한 골격만 남아 아픈 추억만이 깃들어 있다.
끝.
글/詩郞최진호
첫댓글 장문의 아름다운 필력으로 돋보이는 문향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대단하십니다
졸필을 과찬하여 주시니... 부끄부끄 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존 하루 행복한 하루가 되시고
내내 즐거운 날로 이어지시기를.....
타즈메니아엔
향이 진한 꿀이 유명하다지요




건강하시고 언제나처럼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타즈메니아, 호바트 투어스 기행문 하도 잘 쓰셔서 타즈메니아, 호바트에 가 있는 기분이네요
위트와 상식이 살아 있는 기행문 잘 보았습니다
늘
우~와!! 고은이가 드뎌 내 기행문의 문을 두드렸구만... 기행문이란 것을 별로 써본 일이 없어서....형편 무인지경이 이지요.
그래도 잘 썼다는 인사말 인줄 알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고마워요.
호주 본토에서는 타즈메니어 꿀이 유명하고 맛도 좋다 하는데... 몇군데 샵에 가보아도 꿀 한통도 못 보았어라...
전부 육지로 나가고 아니면 수출을 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