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나무 지팡이
―막은골 이야기
이은봉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우제를 지낸 날 오후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일습(一襲)을 모아 불더미 위에 던져 넣었다
꽤 괜찮은 넥타이며 와이셔츠, 티셔츠며 양복 등도
불더미로 타올랐다 타오르는 것 중에는
가방이며 장갑, 털모자 등도 있었다
가장 아까운 것은 낙타털의 중절모였다
오른손으로 그것을 들고 있는 마음이 둥그렇게 부풀어 올랐다
어머니가 불어터진 갈퀴손으로
불쑥 그것을 빼앗아 불더미 위에 던져 넣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버지의 일습 중에
이제 더 남은 것은 없었다 바로 그때 담벼락에 기대 세워둔
박달나무 지팡이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바라보는 데도 나는 태연하게
자동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곳에
박달나무 지팡이를 집어넣었다 지팡이에는
‘1967년 麻谷寺 방문기념’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해 봄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갔던 마곡사의 상가에서
박달나무 지팡이 하나를 샀다 그런 뒤
멋으로 짚고 다니던 젊은 아버지의 박달나무 지팡이……
내가 막 시에 눈을 뜨던 중학교 2학년 때 봄의 일이었다.
―《2013년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아버지》(2014.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