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으로 / 강성관
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계절의 변화를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주말농장이다. 귀여운 자식을 기르듯이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김을 매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키운 농작물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그동안 흘린 땀방울에 대한 열매를 거두어들일 생각으로 마음이 바쁘다. 맨 먼저 손길이 가는 곳은 땅콩이다. 땅콩은 제때 수확하지 않으면 까치와 너구리 같은 불청객이 찾아와 농장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다음은 고구마 넝쿨로 손길이 간다. 주말농장을 시작한 지 어언 2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고구마 농사만큼은 확실한 경작 방법을 몰라 헤맨다. 이곳저곳에서 전문 농사꾼이라는 사람들에게 귀동냥해가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였다. 원인이 고구마밭의 토질 때문인지, 날씨와 주변 환경 탓인지, 아니면 고구마 품종에 문제가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나는 풍성하게 자란 고구마 넝쿨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다.
다음은 무서리가 내려앉은 야콘을 수확할 차례다. 지난겨울, 한파로 창고에 갈무리해 둔 씨눈이 모두 썩어버렸다. 할 수 없이 이번에는 시장에서 구매한 모종으로 파종해 보았는데, 추수한 야콘이 생각보다 크고 수량도 아주 많았다. 예전에는 재배 방법을 잘 몰라서 기피 우선순위에 해당하던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것이 진국이다. 퇴비를 넣은 밭고랑에 한 번 심어 놓으면 가을까지 뒷손이 필요 없는 효자 농작물이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인생을 살아보니, 인간의 삶도 주말농장의 고구마 덩굴처럼 복잡 미묘하게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게다가 땅속에서 성장하는 뿌리 열매의 속성을 알아내기란 쉽지가 않다. 세상의 모든 일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일 터이다. 무슨 일이든 독하게 마음먹고 시작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우리 삶의 안전과 건강, 날씨,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코로나19에 이어 델타 변이와 오 미크론이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이 세상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많은 슬픈 소식을 쏟아낸다. 우리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이 최대의 관심사가 된 것도 어언 두 해가 지나갔건만, 아직도 그 끝이 어디쯤이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요즈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신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따르릉….” 막내 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전화다. 어린이집 원생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며, 우리 가족도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라는 통보다. 우리 가족은 밀접 접촉자는 아니지만, 만약의 일에 대비하여 감염 여부를 검사해보라는 뜻일 것이다. 콧속을 면봉이 스치고 지나갈 때면, 전기에 잠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한 통증이 일어난다. 다행하게도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요사이 내 마음속에서는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1차, 2차에 이어 코로나 백신을 계속 맞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임이다. 마음은 백신 주사를 피하고 싶지만, 몸은 나도 모르게 병원을 향하여 간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연계된 일이므로 하는 수 없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움직이는 현상일 터이다. 그렇다고 하여 백신을 내가 직접 골라서 접종할 수도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백신 부작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못되었던가. 심지어 선진 외국에서는 백신 무용론까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으니, 어느 누가 기분 좋게 백신을 접종하려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백기 투항을 했다. 3차 백신은 교차 접종으로 했다. 아직도 백신의 효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이지만, 우리 가족과 귀여운 손주들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하여 혹시 내가 잘못되는 일이 있더라도 감내하겠다는 생각으로 나라의 시책에 따라가려고 마음먹게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요즈음 세상살이는 완전히 ‘복불복’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언젠가 울산 간절곶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아침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간절곶.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한 절대자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원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이 세상에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불편 부당한 것들이 하루속히 사라져서, 다시 평온했던 예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련다.
지금까지 고구마밭에는 퇴비와 비료를 넣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퇴비와 비료를 주면, 줄기와 잎만 무성하고 뿌리 열매가 부실하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이것을 굳게 믿었다. 이번에도 혹시나 하며 고구마 농사를 시작했는데 역시나 실패였다. 마침내 내 마음속에서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며 반란을 일으킨다. 고구마 농사도 퇴비가 분명히 어떤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를 통해 고구마 농사 방법을 배웠다. 고구마 농사는 점성토질보다 공기가 잘 통하고 물 빠짐이 좋은 사질토가 좋다. 수분이 많은 토질이면 모양이 길게 자라고, 수분이 적은 토질에서는 모양이 동그랗고 상품성이 있은 고구마가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구마의 품질과 수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퇴비와 양분 공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뿌리 열매는 생기지 않고 잎만 무성하다면 마그네슘, 규산, 황산칼륨 등 미량 요소의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구마의 질긴 심은 붕사를 조금씩 뿌려주면 저절로 해결된단다. 지금까지 경작 방법을 잘 몰라서 헤매기만 하던 고구마 농사가 앞으로는 희망을 품어도 될 듯하다. 아마도 세상 모든 일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