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6. 주일예배설교
창세기 1장 1~5절
혼돈의 시간이 아니라 창조의 시간입니다.
■ 제가 제 얼굴을 돋보기를 쓰고 볼 때와 쓰지 않고 볼 때, 평가가 달라집니다. 돋보기를 쓰지 않고 보면, ‘야, 잘 생겼네!’입니다. 하지만 돋보기를 쓰고 보면, ‘와, 이렇게 잘 생겼을 수가!’입니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다릅니다. 역시 제대로 봐야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렇습니다. 제대로 잘 봐야, 하나님 일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표면적으로 보면, 헷갈리고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일을 안 하시는 것 같고, 일을 엉망으로 만드시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래를 불안해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일을 허투루 하실까요? 그러실 일은 일도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표면만 보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표면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속을 보려고 하지 않는 불성실함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러한 사실의 내면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보면, 엄청난 은혜가 쏟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자, 무엇인지 가봅시다.
■ 본문은 우주적 사건입니다. 천(天)·지(地)·창(創)·조(造). 이것은 하나님만의 시간 속에 시작하신 우주적 사건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 인간에게 내주신 우주적 사건입니다.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 “태초”는 시작이 없는 영원, 하나님만이 시작이신 영원의 어느 한 시점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시간이고,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의 사건은 존귀한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 인간을 위해 내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2절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2절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뒷부분에 강조점이 있음을 눈치채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당장 눈에 띄는 단어는, “혼돈”, “공허”, “흑암”입니다. 모든 것이 무질서하고 공포스러운 단어들입니다. 긴장과 공포심을 갖는데 충분한 단어들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들 다음에 만나는 문장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서 긴장이 안도로, 공포의 느낌이 해방의 느낌으로 가게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2절을 조금 바꿔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지만,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딱 한 글자 바꿨는데, 긴장에서 안도로, 공포의 느낌에서 해방의 느낌으로 가죠?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똑바로 자세히 보면, 인생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현실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이 이러한 여러분의 현실 위에 운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에게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현실은 아무것도 없는 늪, 끝없는 깊은 공허,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늘 움직이시니, 여러분이 만난 시간은 혼돈의 시간이 아닙니다. 창조의 시간입니다. 공허한 시간이 아닙니다. 새것이 되는 시간입니다. 흑암의 시간이 아닙니다. 광명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 사실을 3절과 4절 상반절이 증명합니다. 보시죠.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자, 보시면, 하나님의 창조사건의 첫 번째 명령이 “빛이 있으라!” 이셨습니다. 이로써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하나 더 읽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문제에 갇혀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벗어나 빛 가운데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늪에 빠져있는 것이 아닙니다. 끝없는 깊은 공허에 시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헤매는 것도 아닙니다. 빛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밤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낮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빛 가운데 있게 하시려고 거룩한 수고를 하십니다. “빛 가운데 있으라!” 이 말씀은 우리를 빛 가운데 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모든 삶이 창조의 시간입니다. 새것이 되는 시간입니다. 광명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삶의 현실을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보지 마십시오. 이렇게 보지 말라고 낮과 밤으로 나누신 것이니 말입니다. 3~5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보시고 좋아하신 것은 빛입니다. 낮입니다. 어둠이 아닙니다. 밤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하루의 시작이 아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아침이라는 것입니다. 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관심은 밤이 아니라 아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심은, 우리가 어둠이라는 저녁이 아니라 빛이라는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렇게 매일 살아갈 것을 소망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런 복된 시간의 선물을 주셨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에 인생의 모든 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누었던 모든 설명과 이해를 종합해서 1절을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창세기 1장 1절은 우리들 인생의 최고의 답이자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주눅들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이것들에 메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다면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주님의 창조의 목적에 메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메이지 않아도 될 것에 놀아나는 인생이 되지 마십시오. 더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주눅드는 것은 마귀에게 놀아나는 영적 패배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없는 늪, 끝없는 깊은 공허, 칠흑 같은 어둠을 만나면, ‘아, 영적 전쟁이 시작됐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한순간도 혼란을 겪지 마십시오. 당장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삶을 의탁하십시오. 어둠은 사라지고, 밤은 물러갈 것입니다. 대신 빛과 아침-빛과 낮이 임할 것입니다.
■ 바라기는, 여러분에게 오는 매 순간이 혼돈의 시간이 아니라, 창조의 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매 주일 새롭게 창조된 여러분과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