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구운몽의 현대적 해석 장편 ‘꿈’ 출간
경향신문 1998-11-30
‘꿈과 세상은 하나였네’ 異說本 구운몽
줄거리 일부·인물 차용 당나라 배경 재창조
구운몽 철학·신화분석 현실 속 극락 구현/D.H. 로렌스의 영향 왕성한 생명력 그려
인생은 한바탕 꿈이다. 서포 김만중의 한바탕 어지러운 꿈 이야기인 「구운몽(九雲夢)」을 중견작가 한승원씨(59)가 시공을 초월하여 되받았다. 최근 출간된 장편 「꿈」(전 2권, 문이당)은 작가의 표현대로 「이설본 구운몽」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지난 30여년에 걸쳐「구운몽」에 대한 많은 연구서와 자료 분석을 마친 뒤 3년 동안 집필한 이 소설은 한바탕 꿈 이야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봄꽃처럼 현란하게 펼쳐지는 가작(佳作)이다. 서포 김만중이 남해의 유배지에서 이 소설을 썼듯이 작가 한승원씨도 스스로 「해산토굴」이라 부르는 전라도 장흥 율산 바닷가 집에서 유배(流配)된 채 이 소설을 썼다.300여년전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무하기 위해 썼다면 한씨는 『거품같이 가벼워진 삶의 답답한 고리를 푸는 화두로서 쓴 소설』이라고 말한다. 소설 「꿈」은 「구운몽」의 줄거리 일부와 거기에 설정된 인물들만 차용하여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재창조됐다. 「구운몽」은 주인공 양소유를 뛰어난 지략을 갖춘 이상적 남성으로 그리면서 시문(詩文)에 능하고 비단 같은 마음씨를 갖춘 미녀들이 그를 낭군으로 섬기도록 설정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생명력이 왕성한 여덟 여자가 가장 이상적인 한 남자의 유전자를 얻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작가는 남녀관계를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전제한 뒤 이를 지리멸렬한 삶으로부터 벗어나 한 차원 높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리고 있다. 이 왕성한 생명력은 흔히 성 문학 작가로 잘못 알려져 있는 D H 로렌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한씨는 『로렌스 문학의 중심은 생명력이며 그는 문학을 통해 문명비판을 충실히 수행한 작가』라고 밝혔다. 한승원씨는 소설을 위해 몇 차례에 걸쳐 김만중의 유배지를 찾았고,「구운몽」을 신화적·정신적·철학적으로 분석했다. 또 소설을 쓰기 위해 종교기하학, 노장사상, 생명본위사상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구운(九雲)은 흔히 알려진 대로 「아홉 장의 구름, 즉 아홉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도교에서 말하는 초월의 세계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 혹은 극락세상, 기독교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에 대해 남성본위의 소설이 아닌가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구운몽」과 달리 여성들에게 최대한의 선택권을 주고 있다. 또 남녀간의 질서가 존재했던 중국 당나라를 배경으로 삼은 것은 현대로 옮겨놓을 경우 자칫 한 남자와 여덟 여자의 성 편력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길고도 현란한 이 소설은 남악 형산의 연화봉에 위치한 도량에서 불도를 닦던 열 아홉살 성진의 「어지러운 꿈」이었음을 알리고 끝을 맺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면서 독자들은 배반을 맛보게 되지만 「꿈과 세상은 둘이 아니고 하나였다」는 마지막 문장에 유쾌하게 수긍할 수 있다.<오광수 기자>
한승원 장편소설 「꿈」/허무한 꿈 넘어 현실 속 극락 구현
세계일보 1998-12-01
'구운몽'의 줄거리인물 등 차용 재창작
중국 배경… 시경 시구절도 인용/철학종교적 관점서 현대적 해석 시도
하늘 아래서 누리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퇴락하고 스러져간다. 「영원」이란 인간의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만다. 시간의 흐름이 정지하고 영원히 현재만 존재하는 세상은 없을까. 그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解脫(해탈)」의 경지요, 극락의 세상이다. 작가 한승원씨(59)가 20여년에 걸친 공부와 구상 끝에 내놓은 장편소설 「꿈」(전2권·문이당)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 틀을 빌어 그 정토세계를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구운몽」은 선계에서 윤회의 수레바퀴 속으로 축출당한 여덟 선녀와 한 남자가 인간세상에서 펼치는 이야기. 한승원씨는 이 이야기의 인물과 골격만을 취해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생명력과 우주의 법칙을 새롭게 변주해 냈다. 넘쳐나는 젊음의 힘을 주체하지 못한 채 번민하는 젊은 수도승 성진을 깨우치기 위해 스승 육관대사는 그를 한 판 꿈으로 내몬다. 성진은 인간 세상에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이승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락의 최고 경지를 한평생 누린다. 그 복락의 중심에는 인간으로 환생한 여덟 선녀와 누리는 열락의 경지가 있다. 공주 두 명을 좌부인 우부인으로 거느리고 여섯 명의 첩을 두었으며 천자 아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과 부를 누린다. 소설의 도입부와 꿈에서 깨는 말미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양소유의 여성편력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여성편력」이라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황홀한 비유와 섬세한 문체로 그려지는 그 열락에 대한 묘사와 행간에 넘쳐나는 철학적 의미들을 함축하기는 어렵다. 원전에서는 단순히 양소유가 여자들을 취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한승원씨는 여성들이 양소유라는 고급 유전형질의 수컷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형태로 그려나간다. 한승원씨는 이것을「우주가 지니고 있는 힘의 율동」으로 해석한다. 동물세계에서 수컷들끼리 겨룬 뒤 승자가 수 십마리의 암컷을 독차지하는 모습을 흔히 보는데 그것은 우수한 유전인자를 퍼뜨리기 위한 생명력의 내밀한 추동 원리라는 것이다. 양소유가 세상에서 누리는 지극한 영화의 끝은 참담하다. 사위가 역적모의에 가담해 여덟 처첩은 물론이고 슬하의 자녀들까지 망나니의 칼에 처참하게 처형당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자신의 목이 잘려나가야 되는 순간에 양소유는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아, 제발! 제발! 관세음보살님 이것이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 순간 양소유는 꿈에서 깨어나 초라한 승복을 입고 있는 성진으로 돌아온다. 꿈을 꾸기 전 각시거미가 요사채 추녀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는데 꿈에서 깨어나 육관대사의 설법을 들으러 나가던 성진은 완성된 거미줄에 나비 한마리가 걸리는 모습을 본다. 파란만장했던 인간세상의 일생이 거미 한마리가 거미줄을 치는 시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사의 설법…. 『너희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그 칙칙한 어둠에서 벗어난다면 너희들 있는 그 자리가 곧 극락세상인 것이다』 한승원씨는 80년 서울로 거주를 옮겨 전업 작가로 접어들면서부터 구운몽의 현대적 해석과 재창작을 고민해 왔다. 구운몽의 무대를 현대로 옮길 구상도 해보았고 이 소설과 관련된 각종 논문을 섭렵하기도 했다. 서양 물리학과 동양사상이 어떻게 만나는지, 종교기하학을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는지 그는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배경은 중국으로 둔 채 시경의 시구절들까지 인용해 구운몽을 완전히 새롭게 재창작해낸 것이다. 한씨는 『아홉 사람이 꾼 한바탕 허무한 꿈을 넘어서서 이상정토초월 세계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이 시대 많은 좌절한 이들에게 좋은 약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曺龍鎬 기자〉
한승원씨 소설 ‘꿈’(깊이 읽기)
국민일보 1998-12-01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 패러디/“꿈과 세상은 하나”
“한번 크게 깨달은 뒤에야 비로소 인생이 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스스로 확실하게 깨어 있다고 생각하여 똑똑히 따지고 가리면서 임금이니 소먹이는 종이니 하며 귀천을 가리려 한다.” 장자(莊子)의 말이다. 한승원씨(59)가 서울을 떠나 고향인 전남 장흥의 어촌 율산에 집필실을 마련한 것은 3년 전.삶의 답답한 고리를 풀기 위해 스스로를 유배했다. 가끔 서포 김만중이 ‘구운몽’을 쓴 남해의 유배 섬을 찾았다. 누군가를 벗 삼고 그와 더불어 교통하고 싶었다. 김만중이 그 상대이다. 그는 수풀 우거진 섬 북편 중턱의 유배살이 집터에 앉아 요동치는 남해의 쪽빛 물너울과 흰 구름을 바라보며 구운(九雲)을 떠올렸다. 그리고 ‘구운몽’을 패러디한 소설 ‘꿈’(전2권·문이당)을 써내려갔다. 작가는 ‘꿈’이 이설본 ‘구운몽’이라고 겸손해 한다.‘구운몽’의 줄거리 일부와 거기에 설정된 인물을 차용했지만 ‘꿈’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창작되었다. ‘구운몽’은 여덟 명의 미녀가주인공 양소유 한 사람을 낭군으로 섬기는 것으로 되어 있고 ‘꿈’은 양소유가 여덟 명의 여자에 의해 선택된다. 지리멸렬한 삶의 동어반복에서 벗어나 드높은 차원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구운은 흔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아홉 구름, 아홉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초월의 세계였고 기독교로 말하자면 천국이었다.” 그는 꿈과 세상은 하나라고 말한다.<정철훈>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 현대판 구운몽 '꿈' 낸 한승원씨
[한국경제 1998-11-30 00:00]
작가 한승원(59)씨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2년전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닷가에 집을 짓고 들어앉았던 그가 장편소설 "꿈"(전2권 문이당)을 안고 상경한 것이다.
이 소설은 서포 김만중의 국문소설 "구운몽"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작한 작품.
부제를 "이설본 구운몽"이라고 붙이고 줄거리 일부와 등장인물을 빌어 왔다고 한다.
수도중인 성진이 육관대사의 뜻에 따라 인간세상으로 환생하는 도입부도 닮았다.
양소유로 다시 태어난 그는 과거급제 후 외침을 막아내는 등 공을 세워 천자의 공주를 비롯한 여덟 여자를 처첩으로 맞는다.
아들 하나 딸 일곱을 둔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리지만 사위들이 역적모의에 연루돼 일가족 참수의 위기에 처한다.
망나니들이 아내와 자식들의 목에 칼날을 대고 희룽거리는 순간, "차라리 꿈이라면..."하고 발버둥 치던 그는 호통소리에 꿈을 깬다.
이 작품이 원작 구운몽과 다른 점은 여성(팔선녀)들의 현실 대응방식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법, 작가 특유의 묘사력에 힘입은 이미지 상승효과 등이다.
원작에는 여덟 미녀가 무조건 한 남자를 섬기도록 설정돼 있지만 여기서는 여자들이 이상적인 남성의 유전자를 얻기 위해 주체적으로 선택권을 행사한다. 또 "하늘을 움켜잡고 뙈기를 칠"만큼 충일된 생명력과 성적 에너지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그 힘의 율동이 소설 전체를 뜨겁게 달구면서 무색계의 해탈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상향의 의미도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꿈과 참의 경계가 없는 영역"으로 확장된다.
꿈에서 깬 성진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빛"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꿈과 세상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참된 자유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정토 찾기, 혹은 이상세계 꿈꾸기 과정으로 읽힌다.
작가는 20여 년간 "구운몽"에 대한 신화적, 정신분석학적, 철학적 접근을 시도했고 집필하는데 3년을 보냈다.
어떤 때는 김만중이 유배됐던 남해 노도를 찾아가 수풀 무성한 섬 중턱의 옛 집터에 오래 앉아 있곤 했다.
쪽빛 물너울과 바다 물빛을 닮은 서울 쪽 하늘, 그 속으로 날아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꿈"의 의미를 되새겼다.
3백년전 김만중이 혼자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붓을 잡았다면, 한승원씨는 우리 곁에 있는 수많은 이웃들의 "거품 같은 삶"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이다.
한승원씨는 "개인이나 국가 민족을 막론하고 힘든 시기에는 장자의 생각처럼 꿈 이야기가 가장 좋은 처방"이라며 "구운은 아홉 장의 구름, 아홉 사람의 꿈이 아니라 불교의 극락, 도교의 초월세계, 기독교의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http://cafe.naver.com/jhlovetwo/262
첫댓글 "개인이나 국가 민족을 막론하고 힘든 시기에는 장자의 생각처럼 꿈 이야기가 가장 좋은 처방"......에이고....어떤 꿈을 만들어서 처방하나..........
우와, 구운몽의 현대적 해석을 위해 꼬박 3년간 집필을 했다니..
구운몽의 주제 <봄꽃처럼 흩날리는 덧없는 인생>에 매료되었나 봐요~ㅎ
구운몽의 현대적 해석? 흠...새롭네요ㅎㅎ
잘 읽었어요~
구운몽의 문학적 가치가 재해석 되는군요
"개인이나 국가 민족을 막론하고 힘든 시기에는 장자의 생각처럼 꿈 이야기가 가장 좋은 처방"이라며 "구운은 아홉 장의 구름, 아홉 사람의 꿈이 아니라 불교의 극락, 도교의 초월세계, 기독교의 천국을 의미하는 것"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1998년도에 나온건가요. 이런게 있는지 몰랐는데 찾아봐야겠어요 ㅎㅎ
구운몽은 현대의 시점에서 재해석 해보았다라.. 정말 재미있겠네요.
구운몽을 재해석하다니.. 어떤 내용인지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ㅋㅋ 종강도 했으니 이제 부지런히 책 읽어야겠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