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일어나요. 거름 실러 간다 매. 시간이 늦어요”
안사람이 깨우는 소리가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처럼 은은하게 내 귀를 스쳐지나 간다. 그래도 눈이 떠지지 않는다.
‘운전이 피곤한 거 구나.’ 정산에서 아산을 거쳐 대전까지 왔다고....
“여보 많이 피곤해 ?”마누라도 안스러운지 큰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일어 나야지” 부스스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나선다. 현관을 열고 나가자 어디선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비가 오는 거야 ?’ 그래서 방 안이 침침했던 모양이다. 비가 너무 잦아 걱정이다. 특히 거름 실을 때는...
백제당에 가서 거름을 실었다. 오늘도 꽤 양이 많다.
“여보 애들 깨워요. 미역국 같이 먹어야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더가 떨어진다. “충희야. 일어나. 오늘 충정이 생일이야. 다 같이 밥 먹어야지”
“충정아 생일 축하해. 엄마가 네 생일이라고 미역국 끓였어” 워난 늦잠쟁이들이라 꿈쩍도 않는다. 몇 번을 깨워도 그대로다. ‘이 거 생일 날 야단칠 수도 없고....’ 살살 달래며 깨워야지. “충정아 밥 먹고 네 생일 선물 사러 가기로 했잖아” 충정이가 눈도 뜨지 못하고 대답한다. “나 생일 미룰래요” “뭐 네 생일 양력으로 하기로 했잖아” “음력으로 할래요” 눈도 안뜨며 대답은 잘한다.
“안 돼. 생일이 왔다갔다하는 거 아냐. 빨리 일어나” 톤이 저절로 올라가더라.
어젯밤의 일이다. “충정아 네 생일 뭐로 할래 ? 네 생일이 양력으로 하면 내일이고, 음력으로 하면 28일인데....” “양력으로 할래요” “양력 ? 우리 식구들은 다 음력으로 하는데.... 왜 ?” “빠르잖아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다시 음력으로 가 ?
넷이 둘러 앉아 미역국을 먹었지.
“자 이제 생일 선물 사러 가자. 충정아 받고 싶은 거 정했니 ” “아직요”하더니 제 엄마를 부르더라. ‘자식 아빠가 들으면 뭐 덧나냐 ?’
“충정이가 내일이 어버이날이라 엄마, 아빠한테 선물을 해야 하는 데 오늘 저 사줄 선물하고 서로 박치기하고 말재요. 그 대신 책이나 한 권 사달래요”
‘그 놈 머리 쓸 줄도 아네’ 어쨌든 복합터미날로 향했다. “우리 농수산시장부터 들리자. 과일이 떨어졌어” 농수산시장으로 방향을 틀었지. 단골 69번으로.... “참외 얼마예요 ?” “한 박스 4만 5천원예요” “어라 많이 비싸네요” “초파일 전까지는 비싸요. 지나면 내리구요” “초파일하고 참외값이 무슨 상관예요 ? 그럼 우리 다른 과일 먹다가 초파일 지나서 참외 사먹자”
각자 먹고 싶은 거 하나씩 샀다. 다음은 수산시장이다. 코다리 힌 코를 사고, 오징어 채, 주개살 말린 것, 고추장 바른 파래를 사들었다. 푸짐하다.
“얘들아. 우리 점심은 충정이 생일 기념으로 외식하자.” 다들 좋다다.
송촌동 메뉴가 다양한 식당을 향했지. 각자가 먹고 싶은 것 시켜놓고 숟가락을 집어드니 소리도 없이 음식에 탐닉을 하였다.
오늘 충정이 생일 제대로 축하해 준 거지. 배가 불룩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배도 부르니 은근히 졸음이 스며 든다.
‘아냐 안 돼. 정산에 일이 밀려있다. 피곤해도 일어나자’
“여보 나 내일 매실 농약하기로 했어. 비도 그쳤으니 지금 떠날 게” “하루 더 쉬고 가요” “미안해. 일어날 게” 몇 번을 만류하더니 밸이 꼴리나 보다.
“아이구 마누라가 미우니까 간다고 하지. 마누라가 이쁘면 가래도 안 간다고 할 거다. 갈려면 가요” 눈을 곱게 흘긴다.
“아냐. 당신이 얼마나 이쁜데.... 여보 사랑해요”
문을 나서니 세 식구가 문 밖까지 나서고, 안사람은 에리베이터 1층까지 배웅나오네. 이쁜짓 하느라고....
“여보 금요일 날 올 게. 애들하고 잘 있어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