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일기 2016 동안거-4

[Wondam:원담]

2016년12월20일(화)맑음

  지난밤부터 몸살이 낫다. 열이 나고 온 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프다. 뼈를 발라내듯이 아프다. 지옥나졸들이 삼지창으로 이리저리 쑤시는 것 같다. 새벽에 겨우 정진하고 오전 내내 쉬다. 머리가 덜렁거리고 배속이 울렁거린다. 대중은 큰절에서 동지팥죽 끓이는 데 쓰일 새알 만들러 내려갔다. 아마존에서 쫑카파 대사의 전기와 연기와 공성에 대한 법문을 주문하다.

*Susan Kahn, The Two Truths of Buddhism and the Emptiness of Emptiness.

-<수전 칸, 불교의 두 가지 진리와 공성의 공성>에서

Ultimate truth does not point to a transcendent reality, but to the transcendence of deception.

절대적인 진리(眞諦, 勝義諦즉 空性)란 초월적인 실재(예를 들자면 불성, 여래장, 참 나, 청정본래심, 본래면목 따위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미혹에서 벗어남(초월)을 지시할 뿐이다.

It is critical to emphasize that the ultimate truth of emptiness is a negational truth.

공성이라는 절대적 진리는 부정하는 진리(그것은 진리에 대해 어떠, 어떠하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진리에 대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거기엔 자체모순이 생긴다)라는 걸 강조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In looking for inherently existent phenomena it is revealed that it cannot be found. This absence is not findable because it is not an entity, just as a room without an elephant in it does not contain an elephantless substance.

무언가 내재적으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추적해보면 그런 건 찾아질 수 없다는 게 드러난다. 이러한 없음(불변하는 고유의 실체가 없다는 것)은 실체가 (전혀) 없기에 찾아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가 없는 방은 ‘코끼리가 없다는 실재’도 없다는 걸(‘없다는 것’도 없다) 내포한다.

Even conventionally, elephantlessness does not exist. Ultimate truth or emptiness does not point to an essence or nature, however subtle, that everything is made of.

나아가 관습적으로도 ‘코끼리가 없음’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 진리 혹은 공성은 만물을 만들어내는-그것이 아무리 미묘하다 하더라도-어떤 핵심이나 성품(혹은 근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

Whatever depends on causes and conditions
Is empty of intrinsic reality
What excellent instruction could there be
More marvellous than this discovery?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발생한 것은 무엇이든지

자체의 고유한 성품이 없다,

이러한 발견보다 더 놀라운 탁월한 가르침이 어디 있으랴?

-패트릭 제닝스, 쫑카파: 연기를 찬탄하면서; 善說의 精髓

<Patrick Jennings, Tsongkhapa: In Praise of Relativity; The Essence of Eloquence>

  오후에 명섭스님, 도향스님과 함께 인봉스님 차타고 병원에 가다. 몸살이라 한다. 주사를 맞고 약 처방을 받다. 의사가 영양부실로 면역력 저하가 왔기에 잘 먹고 휴식을 취하라고 한다. 제주불교청년회에서 귤 4박스를 보내왔다. 누가 보내왔을까? 거기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어쨌든 보내주신 귤을 맛있게 먹겠다고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2016년12월21일(수)맑음

  동지 팥죽 먹는 날. 큰 절에서 동지 불공한다. 후원에 큰 가마솥 5개를 걸어놓고 팥죽을 끓여 신도들에게 나누어준다. 요즘은 집에서 팥죽을 끓이지 않으니 절에서 죽을 얻어다가 집에 가져가 식구들에게 맛을 보인다. 주차장에 빼곡이 주차해있는 걸 보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절에 온 듯도 하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불자는 아니고, 다수는 재미삼아 절에 팥죽 얻어 먹으로 온 사람들이다. 근래 통계에 의하면 불자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500만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젊은 세대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데 시간과 정력을 다 뺏겨 문화생활을 할 여가가 적어지고, 거기다가 세속화된 종교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되면서 무종교주의자가 늘어났다. 무종교주의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무신론자가 늘어난 것이라고 봐도 된다. 무신론자는 일신교에서 이탈하였기에 불교 쪽으로 기울 것 같은데도 불교신자는 계속 줄어든다. 이는 삶의 현장에서 보여주는 불교적인 행태가 대중에게서 매력을 잃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런데도 불교의 주류종단인 조계종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이다. 우선 조계종 자체가 어떤 불교를 지향하는지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고, 정립된 불교체계가 있다면 그에 맞는 교육체계가 갖추어져 있을 텐데 그것조차도 암중모색이며 지리멸렬이다. 게다가 조계종의 승가자체가 문중과 계파로 갈라져 파벌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破化合파화합승이어서 도대체 한 붓다패밀리(一佛弟子)라고 할 수가 없다. 스님들이 各自圖生각자도생으로 겨우 제 앞가림만하고 생존할 뿐인데 무슨 열의가 있어서 대중에게 불교를 가르칠 마음이 나겠는가? 설령 열의를 가지고 포교한다 해도 텅 빈 바다 가운데 섬처럼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고군분투해야 한다. 한 참신한 젊은이가 내게 와서 출가하여 조계종 스님이 되고자 한다 해도 나는 망설일 것이다. 이 사람이 조계종에 들어와서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이 된다고 불교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불법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많고, 잘못된 불교를 불교라고 착각하여 평생을 허송세월할 가능성도 많다. 나 같으면 그 젊은이를 차라리 티베트어를 배우게 하여 티베트 겔룩파의 불교대학과정을 이수하게 하겠다. 아니면 영어와 빠알리어를 습득하게 하여 미얀마나 태국, 스리랑카로 유학 보내어 위빠사나 수행을 시킬 것이다. 한국 승가에서 배울게 무엇이 있는가? 존경할만한 스승이 있는가? 조계종불자라면 누구나 따라야 할 수행체계가 정립되어 있기나 한가? 그것도 급조된 것이거나, 이 것 저 것을 뒤섞어서 비빔밥식으로 만든 것이 아닌 몇 백 년 아니면 천 년 동안 맥맥히 계승해온 수행체계가 있기나 한가? 그 길을 따라가면 긍정적인 결과가 보장되고, 또 그 수행의 결과를 지금 살아서 증명해보이시는 모범적인 고승이 있기나 한가? 한마디로 한국불교의 주류종단이나 비주류종단을 막론하고 권위와 전통이 없어 보인다. 모두 해방이후에 급조된 신흥종단처럼 보인다. 그들이 주장하는 ‘1600년 유구한 불교의 전통’은 선전용일 뿐이다. 과연 무엇을 전통해왔는가? 면면히 계승되어온 가르침의 통일된 체계가 있기나 한가? 세계적인 불교무대에 나가서 ‘이것이 한국 불교요’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있는가? ‘한국적인 불교’는 불교에다가 한국적인 문화의 옷을 입힌 것이기에, 한국불교에서 문화적인 겉옷을 다 벗겨버리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뭣고’와 화두는 중국에서 전해왔지만 본토에서는 사라져 한국에만 남아있다고 한국선사들이 주장하므로 그걸 ‘한국적인 것’이라 해야 할까? 강원에서 배우는 서장과 선요, 사집, 화엄경, 기신론, 구사론, 유식이 조금 불교적인 게 포함되어있기는 한데 그것이 스님들의 실제 생활과 마음을 가꾸는데 무슨 도움을 주었던가? 배움이 그것을 배우는 사람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한국의 절집에서 불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행사가 ‘불교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불교적’이란 말은 불교라는 이름아래서 벌어진 문화현상과 종교현상을 관통하며 그것이 빠지면 꼭 불교라 할 수도 없고, 심지어 비불교적, 반불교적이라 비판받게 되는 그 핵심이 되는 것, 정견을 말한다. 최근 한국에 위빠사나 수행과 아비담마 교학이 흘러들었다. 그리고 일부 티베트 불교의 흐름도 들어왔다. 기존의 한국적 불교와 어떻게 만나고, 어떤 식으로 섞이면서 어떻게 발전할지, 아니면 어떻게 변질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한국불교의 전망은 어둡다. 그러나 한국불교만 이렇지, 다른 나라의 불교는 생생하게 살아서 번영하고 있다. 세계불교의 전망은 밝다. 멀리 넓게 보고 살자. 지금 여기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너무 일을 크게 벌린다든 지, 그렇다고 너무 쪼그라들지 않으면서 가야할 길만을 간다.

2016년12월22일(목)비

冬至終夜雨, 동지종야우 동지인데도 밤새 비 내리니

疑是雪盡淚; 의시설진루 눈이 될 것이 녹아 눈물이 되었나?

異變猶世常, 이변유세상 이변이란 게 오히려 세상에선 늘 있는 일이라

披雲峰獨秀. 피운봉독수 구름 뚫고 나온 봉우리 홀로 우뚝하다.

  오늘 삭발목욕일. 밤새 내린 비로 산야가 촉촉이 젖었다. 때 아닌 비를 흠뻑 맞은 숲이 허연 입김을 내뿜는다. 찬 숲에 서린 비안개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땅이 뿜어낸 숨인지, 숲이 내뿜은 숨인지, 그도 저도 섞인 숨인지, 희미한 바람에 실려 하늘하늘 숲의 이마를 훑고 하늘로 오른다. 섬돌을 두드리는 낙숫물 소리가 창을 뚫고 들어와 방안에서 증발한다. 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증발되어 사라진다. 사라짐은 ‘있음’의 자발적인 부정이면서, ‘있음’이란 순간적인 착각이었음을 재확인하는 지성의 반짝임이다. 반짝이는 찰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에 가벼움의 극한값이다. 사라지는 건 머뭇거리거나 쭈뼛대며 자기존재의 타당성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사라짐은 단호하고 결연한 놓아버림이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하고 심각해야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냥 마음속에 무엇 하나라도 붙잡고 숨겨두지만 않으면 저절로 떨어져가게 마련이다. 땅에 떨어진 단풍잎이 예뻐 보여서 주었다가 한 번 보고 놓아버리는 것과 같다. ‘잘 가. 잘 있어.’ 그러고 그뿐이다. 그러니 마음의 문은 활짝 열려있으면서 밝게 깨어있다면 문으로 들어오는 어떤 것이든 자명해진다. 현상에 대한 인식이 자명해질 때 몸과 마음은 輕快安覺의 극한에서 빛으로 화한다. 發光地에 들어 법계를 관상하는 수행법이 있다는 것은 이런 이치 때문이다.

목욕탕에 갔다 오다. 여태까지 비가 내린다. 산간지역엔 눈이 내렸을는지? 저녁 정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의성불자들이 대중공양 올 거라는 카톡 문자가 들어와 있다.

2016년12월23일(금)흐림

  새벽에 눈이 살짝 내리다. 도향스님이 목감기가 심하다. 내 병도 아직 낫지 않았는데 도향스님까지 아프구나. 아침 먹고 인봉스님 운전하여 병원에 같이 가다. 의사선생님이 며칠 쉬어야 회복될 거라 한다. 오후에 봉선사 사중에서 송년행사를 한다고 대중 스님들을 시내에 있는 <늘봄>이라는 웨딩홀로 모셨다. 병신년 한 해 동안 수고했던 신도임원과 봉사자들에게 상을 주고 격려한다. 조실스님의 덕담과 주지스님의 인사말을 듣고 뷔페식으로 저녁 공양을 하다. 2부 행사로 노래자랑과 초청가수들의 공연이 있는데 선원스님들은 일찍 돌아와 다각실에서 차 한 잔 하고 쉬었다. 밤에 달라이라마존자의 <수심팔훈(修心八訓)-마음 바꾸는 여덟 가지 게송>법문을 정리하고 윤문하여 카페에 올렸다.

2016년12월24일(토)

  자고 나니 아직도 아프다. 하루 쉬다.

2016년12월25일(일)흐림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일독하고 느낀 감상.

1. 자본주의는 현재 인간의 의식수준에 상응하는 시스템이다.

2. 이변이 없는 한 세계를 움직이는 돈의 힘은 무소불위이며 지속된다.

3. 자본주의 일변도로 나갈 경우 지구의 미래는 극단적인 빈부 차별,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불평등, 테러와 국지전, 군비경쟁, 자원고갈, 환경파괴로 황폐화된 지구를 버리고 외계로 이주하던가, 아니면 핵전쟁으로 자멸하던 가이다.

4. 우리 앞에 남은 길을 세 가지이다.

하나는 자본주의에 빠져 살거나

둘, 자본주의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든가

셋, 자본주의라는 환경에 거주하면서 탈자본주의적으로 생존하는 것.

5. 불교승려로 산다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환경에 발을 디딘 채 탈자본주의적으로 생존하면서 자본주의라는 매트릭스를 해체하여 정토를 건립하는 身口意 作法이다.

2016년12월26일(월)흐림

  조금 차도가 있어, 점심 먹고 한 시간정도 걷다.

2016년12월27일(화)아침 눈, 오후 갬

  반 철이 지났다. 하루 정진 쉰다. 봉영사에서 점심 공양청이 와서 대중이 다녀오다.

2016년12월28일(수)맑음

  아침에 눈 쌓인 마당을 쓸다. 한 스님이 아파서 병원 다녀오다. 큰 절에서 송구영신을 즈음하여 대중공양하다. 저녁 정진을 쉬다.

2016년12월30일(금)흐림

  남양주 흥국사에서 공양청 와서 대중이 갔다 오다. 풍수가 잘 갖춰진 길지에 자리 잡은 고찰이라 닷집과 후불장식이 품격이 높다. 滿月閣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다. 그런데 신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썰렁한 형편이다.

2016년12월31일(토)맑음

  한해가 보낸다. 큰 절에서는 제야의 타종식을 갖는다. 방에서 종소리를 듣는다. 한 해가 이렇게 흘러가고 또 한 해를 맞는다. 이런 식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을 것이 뻔하다. 결국 한 생애는 이렇게 마감될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이 한낱 ‘것’이 해체될 뿐. 그 ‘것’이란 것도 ‘것’이 아니었음을.

[초당 草堂]

스님~ 많이 아프셨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세계불교의 전망을 밝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세계불교 속의 한국불교가 제 자리를 빨리 찾아가기를 한국의 한 불자로 간절히 바래봅니다. 수행 잘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시길..._()()()_

[몽월]

물은 흘러도 여울은 여울대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반조하며 소소한 것들에서 새로운 시작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