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은 투명한 유리창과 같다."
현대 영성가이자 시토회 수사인 토마스 머튼(1915-1968)은 자신의 저서에서 자신이 뒤늦게 깨달은 성모 신심의 소중함을 고백하
며성모님을 "투명한 유리창"과 같다고 했습니다. 성모님을 자세히 오래도록 바라보면 볼수록 성모님은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보였기 때문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수시님의 이러한 고백은 "올바른 성모 신심은 예수님을 향하게 한다."라는 말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이 아닐까요?
성모님을 사랑하고 그 신심을 추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신통방통한 현상이나 특별한 기적, 단칼에 이루어지는 치유'를 기대하거
나. '신비로운 발현과 섬뜩한 사적 메시지'에 집중한다면 그것을 올바른 신심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성모님을 기적의 요술 방
망이로 여기며 끊임없이 뭔가를 집요하게 졸라대는 것에 불과합니다.
참된 신심은 반드시 참된 신앙에 근거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이란 난데없이 다가온 이해하지 못할 고통도 담담히 수용하고, 삶이 내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큰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을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 지금 내가 머무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 목숨 걸지 않는 것, 그래서 아무리 높은 파도가 밀려와도 자신의 중심에 하느님께서 굳건히 자리하시니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뜻이 이루기 위해 졸라대기보다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이루시는 성실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믿음을 두고 귀를 기울이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소유하셨던 성모님의 삶과 같이, 성모 신심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십자가 고상에서 시작하여 십자가 고상으로 끝나고, 각 신비의 모든 선포는 예수님의 생애 앞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이렇게 가톨릭 교회의 성모 공경과 성모 신심은 한 신앙인을 궁극적으로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그러니 성모 신심의 주인공이자 최종적인 도착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모님은 절대 예수님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은 예수 성심성월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달! 그 어느때 보다 우리를 위해 불타오르는 예수 성심의 사랑에 자신을 의탁하며 지냈습니다. 그 사랑의 불이 우리 마음에도 타오르기를 바라며 나의 삶과 존재도 성모님처럼 '투명한 유리창'이 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