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며
녀석을 처음 만난 건 푸르른 5월이었다.
엄마가 자전거를 타러 가다 우연히 발견한 녀석은
무슨 사연인지 목줄이 끊어진 채 버스 정류장에
웅크리고 있었단다.
녀석은 활짝 웃으며 처음 보는 엄마를 따라오다가도,
나이 든 할아버지가 지나가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와 나는 녀석을 유기견 센터로 보냈으나 열흘이
지나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녀석은
'똘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식구가 되었다.
유기견 센터에서 나온 똘똘이는 많이 아팠다.
귀가 축 처지고, 발가락은 갈라졌으며, 열이 났다.
동물 병원에선 절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개홍역입니다. 꽤 진행된 데다 치료 방법도 딱히 없어서
안락사가 나을 것 같아요. 결정하면 다시 오세요."
녀석의 상태만 보고 포기하라는 수의사가 미웠다.
첫 직장에서 경영난으로 쫓기듯 나온 뒤, 공시에 계속
떨어져 절망에 빠진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수의사의 말이 머리로는 이해됐지만 내 마음은 아니
라고 외쳤다. 엄마도 녀석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병원에서 '주인이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를 듣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호기로운 시작과 달리 녀석의 병은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녀석은 혈변까지 보았다.
부랴부랴 찾아간 병원에선 파보바이러스 장염이라고 했다.
녀석은 삶을 포기한 듯 식사를 거부했다.
엄마는 제발 살아 달라며 2시간마다 먹이를
입에 넣어 주고 모든 치료법을 동원했다.
엄마의 간절함을 알았을까,
녀석은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다리를 부르르 떨며 배변을 보았다.
그런 녀석과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병은 깊어졌다.
발바닥이 점점 딱딱해지고 발작 증세를 보였으며,
이따금 의식을 잃기도 했다.
그렇게 두 달 남짓한 시간이 지나갔다.
"폐에 흉터는 남았지만 완전히 나았네요. 주인분과
강아지의 의지로 기적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축하 드려요."
병원을 나오는 길, 우리 가족은 잘 버텨 준 녀석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나 또한 마음먹었다.
녀석처럼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 내겠다고.
몇 달이 지났다. 여전히 구직중인 내게 친구가 부탁했다.
"우리 회사에 큰 프로젝트가 있는데 사람이 급하게 필요해.
혹시 도와줄 수 있어?"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언제부터 하면 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밟아 나가기로 했다.
비록 나의 이력서엔 3년의 빈 시간이
녀석의 폐에 남은 흉터처럼 자리 잡았지만,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떤가.
실패는 누구나 하는 것이다.
불행도 언젠가 끝난다.
넘어지면 몇 번이고 일어나면 된다.
똘똘이가 그랬듯 나도 그럴 테다.
우리는 힘들었던 시간만큼 더 행복해질 것이다.
제6회 청년이야기대상 동상
김난희 | 경기도 고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