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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Karl Popper) 의 경고로 널리 알려진 교훈이 있습니다. 그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지상(地上)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는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는 식으로,
인간을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일부 편향적 이상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이고 전체주의적 시도가 오히려 지옥 같은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요즘의 국제 정세를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 팀이 되어 이란과의 전쟁은 세계평화를 위해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국제경제의 파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칼 포퍼는 1920년대와 30년대 초에 우리가 오늘날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부르는 인식론과 과학철학을 발전시킨 철학자 입니다
그는190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와 영국등에서 논리학과 과학 방법론을 강의하다가 1994년 타계하였습니다
그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사람이며 그의 핵심적 이론은 반증 가능성의 원리라는 것으로 어떤 이론이나 주장이 과학적 주장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론과 상충되는 관찰을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경험을 통해 반증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증의 방법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에 부딪힐경우 이때 해결책이 가설로서 제시되면 비판되어야하고 만약 비판된 가설이 관련된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과학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만일 반박을 견디어 낸다면 용인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합리적 비판주의는 우리의 모든 앎이란 합리덕 비판을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독단에 호소해서가 아니라 비판적 시험과 논의에 의해서 우리들의 잘못을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성의 오류가능성 때문에 그는 사회는 어떤 형태의 독재든지 독재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식론적 독단으로부터 비판을 허용하고 상호비판과 토론에 의해서만이 자유로운 열린사회가 될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열린사회는 비판을 수용하며 진리의 독점을 거부하는 사회입니다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열린사회와 반대로 인간보다는 위대한 어떤 존재의 뜻에 따라 역사가 진행한다는, 개인을 인류역사의 위대한 주체로 보지 않고 위대한 지도자이거나, 위대한 계급 이나 위대한 신념에 따르는 이념들을 추종하는 세럭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선민사상으로 나타나 종교적 영향을 떠나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한국의 통일교를 비롯한 유사 종교가 대표적입니다
역사는 인간의 힘으로 변형시킬 수 없는 지배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상이 존재하는양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칼 포퍼는 파시즘과 마르크시즘이라는 근대의 가장 중요한 두 역사철학이 역사법칙주의에 있다고보고 우파의 인종주의 내지는 파시즘의 역사법칙주의와 좌파의 마르크스적 역사법칙주의가 모두 이런 유신론적 역사법칙주의의 흐름을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파시즘은 선택된 인종으로 좌파인 마르크시즘은 선택된 계급으로 대체하여 역사의 발전에서 역활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법칙주의는 존재하지도 않는 역사의 필언적 법칙이나 운명의 틀을 인간에게 뒤집어씌움으로서 인간의 자유와 이성을 부정합니다
칼 포퍼는 서양철학을 대표하는 세사람의 철학자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를 닫힌사회의 주창자들로 규정하고 이들의 오류를 분석하고 비판합니다
세 사람의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은 끝내고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 그 적들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차별금지법이 최근 국회에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면 반대파들은 소속 정당이나 정파에 관련 없이 대부분 ‘동성애’(성적 지향이나 성적 정체성이 아니고 꼭 ‘동성애’라고 하더라)와 연관지어 반론합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한국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파시즘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란도 일어났고 법원이 습격당했는데 지금 동성애 같은 엉뚱한 핑계를 대면서 차별금지법을 회피할 때가 아닙니다.
극우와 파시즘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권위주의, 즉 ‘질서 잡힌 사회’를 이상화한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여기서 질서란 수직적인 질서입니다. 극우도 파시스트도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며 그러므로 불평등한 사회가 자연스럽다고 믿습니다.
극우의 특징 중에 토착주의, 즉 자생적인 민족이 국가를 점유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는 쉽게 인종차별로 이어집니다. 내란 일당이 “중국인이 조작한 부정선거”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내란 사유로 들이댔던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칭 극우라고 하는 집단의 토착주의는 상당히 이상하죠. 중국인은 혐오하면서 미국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트럼프가 내란 수괴를 구해줄 것이라고 외칩니다.
한국식 자칭 극우는 그러니까 그냥 노예 근성에 찌든 백인 사대주의자입니다. 진짜 극우는 자기 민족이 자기 나라를 점유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국의 자칭 극우는 한국이 약소국, 빈민국으로 남아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기생하기를 원하는것 아닌가요.
파시즘은 극우와는 또 다른 특징을 보입니다. 한국에서 자칭 ‘극우’는 많이 보았지만 본인이 스스로 ‘파시스트’라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파시즘은 이탈리아어 ‘fascio’(동맹)에서 온 단어입니다. 파시스트들은 법적, 윤리적 제재 없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대목입니다. 파시즘은 ‘정서적인 정치 양식’이라, 파시스트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권력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정서적이고 열정적인 믿음 아래 감정적으로 폭력을 사용합니다. 서부지법 폭동을 일으켰던 범인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파시스트들은 특정 집단이 사회 안의 다른 집단보다 당연히 우월하므로 사회는 불평등해야 하고, 그 불평등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원을 깨부수고 중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위협해도 된다고 믿으며, 그런 무제한의 폭력을 휘두를 수 없으면 사회가 불의하여 자신들이 고통받는 피해자라고 믿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결과 현재 미국에서 이민국 요원들이 길에서 아무나 쏘아죽이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판사가 중국인이라서 내란 일당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왔다’ ‘국회의원이 중국인이다’ 등의 거짓말은 사회관계망과 극우 언론을 타고 열심히 퍼져 나갔습니다. 현재 한국 법률상 외국인은 공무원이 될 수 없지만 열정적이고 정서적인 정치 양상에 물든 파시스트들은 그런 거 상관하지 않습니다. 불평등한 사회를 위한 무도한 폭력을 용납할 수 없다고 법과 제도로 못 박지 않으면 이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인 삶의 만족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 자살률은 2년 연속 증가해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5일 국가데이터처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국민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에는 고용·임금, 소득·소비·자산, 건강, 여가 등 삶의 질과 관련된 11개 영역의 71개 지표가 반영됐습니다.
2024년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6.4점으로 전년과 동일했습니다. 2년째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소득수준별로는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삶의 만족도는 5.8점으로, 평균보다 0.6점 낮았으며, 소득이 100만∼200만 원 미만, 200만∼300만 원 미만 가구는 모두 6.2점이었습니다. 300만 원 이상 가구부터는 6.4점∼6.5점으로 평균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었습니다.
세계행복보고서의 국제 비교를 보면, 2022∼2024년 기준 한국의 삶의 만족도는 6.04점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33위 수준으로, 전년(2021~2023년) 조사와 동일했습니다. 전체 조사 대상인 147개 국가 중에서는 58위입니다.
자살률은 2024년 29.1명(인구 10만 명당)으로 전년 대비 1.8명 증가해, 2년 연속 늘었습니다. 역대 최고치인 2011년(31.7명) 이후 가장 높으며, 성별로는2024년 기준 남자 자살률은 41.8명으로 여자(16.6명)보다 두 배 이상 높았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2022년 기준(22.6명)으로는 OECD 38개 회원국 중 1위입니다. 2위인 슬로베니아(17.5명)와 차이가 큽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10명 전후로 나타납니다.
ㅡYTN 이유나 기자
미국 극우의 탄생과 정교유착의 교훈
바야흐로 '극우의 시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배타주의와 인종주의를 극대화하며 세계를 혼란에 몰아넣었고, 유럽에서는 이민자들을 몰아내려는 정당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남미인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선 극우 지도자가 선출되는 모습도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가 알던 미국이 맞나? 이러다가 진짜로 내전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
요즘 미국발 뉴스를 접하면서 많은 이들이 한 번쯤 품어봤을 의문 아닐까 싶습니다. 불법 이민자 단속을 명목으로 영장 없이 가택에 침입하고, 복면을 한 연방 단속 요원이 비무장 시민을 대낮에 처형식으로 사살하고, 5세 아이를 미끼로 쓰는 체포 작전을 벌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들이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ㅡ강명구 기자
미국의 닫힌사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미국 정치제도에 내재한 허점들이 축적되고 결합한 산물이죠. 건국 때부터 존재한 균열, 정교분리 원칙과 현실의 괴리, 연방제와 선거제도의 구조적 편향이 맞물리며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백인 인종주의와 결합한 개신교 복음주의가 이 허점들을 반세기에 걸쳐 조직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이 위험한 역사적 궤적을 이해하는 것은, 미국 복음주의와 뿌리를 같이하는 한국 개신교계의 정치화를 이해하는 데도 필수적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종교에 의한 지배로
미국은 정교분리를 헌법에 명시한 나라입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종교를 분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에서는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정교분리 원칙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건국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1776년 독립선언서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남부에는 수십만 명의 흑인 노예가 있었고, 건국의 아버지들 상당수가 노예 소유주였습니다. 이 간극을 정당화한 것이 백인 교회들이었습니다.
남부 개신교 목사들은 흑인의 열등성이 신의 뜻이며 노예제는 성경이 허락한 질서라고 설교했습니다. 미국 최대 개신교 교단인 남침례회가 1845년 노예제 옹호를 위해 탄생했다는 사실은 이 결합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백인 교회들은 약 100년간 인종 분리 체제를 신의 질서로 정당화했습니다. 법이 바뀌어도 교회는 늘 차별의 편에 섰습니다.
1960년대 민권운동이 승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1971년 연방정부가 인종 차별 정책을 유지하는 사립학교의 면세 혜택을 박탈하고, 1973년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하자, 복음주의자들은 이를 종교 자유에 대한 침해로 규정하며 정치에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정교분리 원칙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 순간, 종교의 자유가 정치 개입의 명분이 됐습니다. 종교를 정치로부터 분리하려는 원칙이, 종교로 정치를 장악하려는 시도의 정당화 논리로 뒤집힌 것입니다.
1980년 대선은 그 전환점이었습니다. 매주 교회에 나가고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독실한 남침례회 신자 지미 카터 대신, 이혼 경력이 있고 교회에 거의 출석하지 않는 로널드 레이건을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선택했습니다. 카터는 인종 평등과 여성 권리를 옹호하고 정교분리 원칙을 존중한 반면, 레이건은 낙태 반대, 학교 기도 부활, 전통적 가족 가치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신앙심보다 정치적 입장이 중요했습니다.
이후 양극화는 심화됐습니다. 여성 권리, 성소수자 권리, 다문화주의가 확산되자 복음주의자들은 이를 선과 악의 대결로 재구성하며 문화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복음주의의 의미 자체가 변했습니다. 교회에 나가느냐가 아니라 공화당을 지지하느냐가 복음주의자의 기준이 됐습니다.
백인 복음주의자는 2006년 미국 인구의 23%였으나 2024년 13%로 줄었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정치적 영향력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그 비밀은 미국 정치제도의 구조적 허점에 있습니다.
첫 번째 허점은 예비선거입니다.
이는 시민이 직접 후보를 선택하게 한 상향식 민주주의 제도입니다. 그러나 공화당 예비선거 투표자의 50~60%를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차지합니다. 그들에게 투표는 시민적 의무가 아니라 신앙적 사명이며, 매주 교회에서 만나기 때문에 동원이 쉽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구의 13%에 불과한 집단이 공화당 후보를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온건한 정치인이 후보가 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두 번째 허점은 상원입니다. 미국 상원은 인구와 관계없이 각 주에 2석씩 배분됩니다. 건국 당시 작은 주들이 큰 주에 압도당할 것을 우려해 만든 타협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인구 약 4000만 명의 캘리포니아와 인구 58만 명의 와이오밍이 똑같이 2석을 갖습니다. 인구 비율로는 69대 1의 격차입니다. 이 구조의 수혜자는 백인 복음주의자가 집중된 남부와 중서부 소규모 주들입니다. 상원 과반은 51석인데, 인구가 가장 적은 26개 주에서 승리하면 52석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26개 주의 인구를 합쳐봐야 전체의 18%에 불과하다는 것 입니다
여기에 재정 구조의 왜곡이 겹칩니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캘리포니아, 뉴욕 등에 연방자금을 끊겠다고 위협합니다. 그러나 연방 세수의 대부분을 납부하는 것이 바로 이 주들입니다. 반면 공화당 우세 주들은 연방 재정의 순수혜자입니다. 덜 내고 더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켄터키는 연방에 1달러를 내고 3.35달러를 받습니다. 캘리포니아는 0.73달러만 받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연방 재정에 더 의존하는 이 중남부 주들이 불법이민 강경책을 지지하며 작은 정부를 외친다는 점입니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은 헌법 개정으로 고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합니다. 미국 헌법을 개정하려면 상하원 각각 3분의 2 찬성에 50개 주 중 38개 주의 비준이 필요합니다. 건국자들이 경솔한 개정을 막기 위해 높은 문턱을 설정한 것 입니다.
그러나 가장 작은 13개 주(와이오밍, 버몬트, 알래스카 등)가 반대하면 어떤 개정도 불가능합니다. 그 13개 주 인구를 합쳐봐야 전체의 4%에 불과한데 말이죠 즉, 인구 4%가 헌법 개정을 막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현 제도의 수혜자가 제도 개혁을 저지할 권한을 쥐고 있으니, 바꾸려 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대법원과 상원을 장악하는 법
이 허점들은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맞물리며 자기강화 시스템을 형성합니다.
흐름은 이렇습니다. 먼저 예비선거에서 후보를 결정합니다. 전체 유권자의 5~7%만으로 공화당 후보를 극단적 입장의 인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 후보가 소규모 주들에서 승리하면, 인구 18%만으로 상원 과반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상원을 장악하면 대법관 인준을 통제할 수 있다. 대법관은 종신직이므로 한 번 임명되면 수십 년간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대법원을 장악하면 의회를 거치지 않고 법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 개정 요건이 이 모든 것을 고착시킵니다. 인구 4%가 제도 개혁을 막을 수 있으니, 한 번 장악한 권력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첫 임기 4년 동안 세 명의 대법관을 임명해 대법원을 6대 3 보수 우위로 만들었고, 2022년 대법원은 50년간 유지된 낙태권 판례를 뒤집었습니다. 복음주의 운동의 반세기 숙원이 이뤄진 순간이었습니다.
트럼프가 탄핵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도 상원에 있습니다. 탄핵 유죄 판결에는 상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데,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당파적으로 결집하는 한 그 문턱을 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1기 집권 시에 두 차례 하원에서 탄핵 소추됐지만 두 차례 모두 상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세 번 결혼하고 성경 구절도 제대로 인용하지 못하는 트럼프를 백인 복음주의자의 80% 이상이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주의가 정치적 편 가르기가 된 이상, 개인의 도덕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낙태 금지, 동성애 반대, 강경 이민 규제를 위해 싸우는지가 중요합니다. 트럼프가 여전히 낮은 지지율로 임기를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냉전 시기 미국이 사용한 외교정책 수단 중 하나는 정권교체였습니다. 민주주의 체제·질서 수호자를 자처하며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권을 전복시키고 친미 정권을 수립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공작이 있었습니다.
ㅡ 박상훈 정치학자
한국의 현실
한 국가 안에 두 국민이 있다. 한쪽에는 주식과 코인 투자로 흐뭇한 국민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연일 그들을 치켜세우고 스스로 앞장섭니다.
그는 1998년도 IMF시절에 변호사하면서 3억 6천만원 주고 대형아파트를 사서 29억에 매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은 투기꾼이 아니며 주식투자를 할것이라고 합니다
3억 6천만원이 29억원이 되었으면 대박아닙니까. 그는 월세방에서 시작해 변호사해서 돈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시골에서 나이들어 농사 못짓는 노인들에게 농지가격이 올라서 젊은 사람들이 시골로 농사지러 못가니 시골땅 주인들은 농사 안지으면 정부가 강제로 벌금이나 강제매도하기 전에 매도하라고 난리 입니다
투기와 투자의 차이는 한가지 입니다
둘다 무노동이고 최종결과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것 입니다
과거에 주식투자도. 도박처럼 여기고 집안 망친다고 금기시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정부에서 최고의 권리 시민은 주식투자하는 그들입니다.
다른 쪽에는 우울한 국민이 있습니다. 공실률로 상징되는 영세자영업자, 66세 이상의 40%에 해당하는 빈곤 노인, 구직 활동을 단념한 20대, 수도권과의 격차에 절망하는 지방민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들은 서민입니다. 서울에서 밀려나고 수도권에서도 밀려나는 중인 주변인입니다. 그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일종의 비가시적 무권리자 입니다.
현 집권 안에는 두 개의 평등 관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재명식의 1원 1표 평등주의입니다. ‘밸류업’ 종목을 찾아 투자하라. 자본 수익률을 믿어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끝났다. 정부가 이를 보증한다.
다른 하나는 정청래식 1인 1표 평등주의입니다. 그는 당원 주권을 말합니다. 매달 1000원만 투자하라.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표·대선 후보 경선 참여자를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63만명의 권리당원이 여당 대표를, 68만명의 권리당원이 대통령을 만든 나라입니다. 그들은 장담하기를 6개월 당비 40억원이면 730조원 국가 예산을 주무른다. 입법도 자유롭다. 민주당이 이를 보증한다.라고 말이죠
그들의 민주주의는 중산층 민주주의입니다. 주식과 아파트로 상징되는 수도권 자산가 민주주의입니다. 그들의 진보는 검찰개혁처럼, 서민과 무관한 권력 엘리트만의 관심사입니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금융 자본주의의 하위 개념입니다. 한국의 때늦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이재명·민주당 정부에서 완성될 모양입니다.
한국의 정치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비판자들은 전부 수박이 되고 정당안에는 비판적 합리주의는 사라지고 오직 그분이 옳다라고 하는 사상이 여야 모두 충만 합니다
종말은 항상 멀지 않은 거리에 있음으로 있을때 잘해라는 말이 헛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