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공글따리, 쪼메, 쌔배따, 꼰는, 모데, 그렁지, 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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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말캉 마실소개 /no.310) 일월면 칠성리(七星里)가 궁금니껴?
칠성(七星)은 조선시대인 1895년까지는
영양군 북초면(北初面)땅이였니더.
마실 뒷산이 반달모양 가꺼러 생겼따 케가
반월형이라꼬 카게 된니더.
칠성산(七星山)은 그랑을끼고 돌고 돌면서
디게 아름다운 절벽캉 층암을 맹글면서
취적봉, 주월봉, 알운봉, 토하봉, 취성봉,
학소봉, 봉무봉 등 일곱개 산봉우리를
맹글었니더.
이 일곱개 산봉우리들은
북두칠성 가꺼리 쭈욱 늘어서 있따꼬 케서
칠성봉(七星峰)이라 카게 된니더.
칠성이라는 마실 이름또
이 칠성봉에서 따가 온거시더.
1914년에 행정구역 바낄때는
와구, 덕봉, 그리고 문상 일부를 엄체져가꼬
지금의 칠성리가 맹글어지게 됬니더.
(골마)
중심지마실(반월형)서 북쪼구로 약 600m
골짜기에 있니더.
1800년경 한양조씨(漢陽趙氏)들이
찔따란 골짜기 따라 경치가 댁낄로 좋은
산운봉(山蕓峰)알개 정착한 뒤.
꼴짝에 있는 마실이라꼬 골마라 켔니더.
(덕봉)
조선초(1413년) 영양현(英陽縣)이 분할될때
덕봉면(德峯面)이 설치되었떤 지역으로
덕봉원(德峯員)이 있었니더.
글꼬, 행인 편의를 제공하는 원(院)이
설치되어 있었꼬.
마실 앞에는 덕(德)이 디게 많은 데라서
신선이 내려와가 놀다 갔따는
선유봉(仙遊峯)이 있는데,
별칭으로 덕봉(德峯)이라 카니더.
덕봉이라는 산봉우리가 마실이름이 되었꼬.
섬촌리 쪼구에는
영양 소재지캉 칠성, 가천으로 이까지는
덕봉거리가 있었찌만
1960년 새로운 공글따리(콘크리트 교량)가
맹글어 지면서
삼거리는 칠성리 쪼구로 옮겨졌니더.
덕봉은 반변천 그랑을 경계로
양지덕봉캉 음지덕봉으로 나눠져 있니더.
삼거리에 있는
양지쪼구 마실은 양지덕봉(陽地德峯)
반변천 그랑 건네 있는
음지쪼구 마실은 음지덕봉(陰地德峯)
이라 카니더.
음지덕봉은 과거 한양조씨(漢陽趙氏)들이
모데가 맹근 마실로
지금은 새로운 공글따리(교량)를
맹글고 있니더.
(도가뫁)
중심지 마실(반월형)서
문암방면으로 국도따라 와두들을 지나면
우측에 있었니더.
과거 부(副)의 상징이었떤 술도가가
맹글어 지면서
도가뫁이라꼬 부르게 된니더.
(밤밭ㆍ율전)
칠성 본마실(반월형) 북동쪼구에 있니더.
밤낭기 쌔배따꼬 밤밭이라 카게 된니더.
율전(栗田)은 밤밭을 한자로 쓴거시더.
(반월형)
칠성리 마을회관이 있는
칠성리 전체 중심지 마실이시더.
1800년경 임씨(林氏)들이 마실을 맹근뒤
뒷산이 반달가꺼러 생겼따고
반월형(半月形)이라꼬 카게 됬니더.
(새마ㆍ신촌)
양지덕봉서 약 1km 북동쪼구에 있었니더.
1960년경 토지를 개간(開懇)하면서
새로 생겨난 마실이라꼬 새마라 켔니더.
신촌(新村)은 새마를 한자로 쓴거시더.
(와두들ㆍ와구)
밤밭 북동쪼구 언덕우에
임씨(林氏)들이 모데가 맹근 마실이시더.
기와를 꼰는(굽는) 기와굴인
요(窯)가 있었따꼬 와두들이라꼬 카니더.
와구(瓦邱)는 와두들을 한자로 쓴거시더.
(음지뫁)
와두들 그랑(반변천) 건네 있는 마실로
1900년경 강씨(姜氏)들이 모데가
마실을 맹글었니더.
그렁지(응달)가 디게 일찍 생기는
마실이라꼬 음지뫁이라꼬 카니더.
(정자뫁)
목씨(睦氏)들이 정착한뒤
마실입구에 있는 큰 낭구아래 칠성정(七星亭)
이라는 정자를 맹근뒤 부터
정자뫁이라꼬 부르게 되었찌만
칠성정은 2010년경
풍파를 이기지 못해 허물어져
지금은 터만 남가져 있니더.